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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님의 서재입니다.

오세요 북해빙궁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JOON™
작품등록일 :
2024.06.05 13:18
최근연재일 :
2024.06.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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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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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14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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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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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

DUMMY

인간에게는 겨울잠을 자는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랬다면 인간도 지금보다는 수월하게 차디찬 겨울을 날 수 있었을 텐데.


때문에 이승기도 진작에 잠에서 깨어난 상태였다. 그저 심란하여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을 뿐,


그는 누운 채로 팔을 들어 주먹을 쥐였다 펴보았다. ‘남의 몸’을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소궁주?’

‘빙백신공.’

‘빙궁.’

‘심법.’

‘북해······.’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다.


‘아!!’


바로 대표이사 놈이 옆에서 귀찮게 떠들어대던 단어들 아닌가? 그때는 흘려들었지만, 분명히 저런 단어를 말했던 것 같았다.


‘맞아, 분명해!’


하지만 이승기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는 못했다. 대표 놈이 비행기에서 고문한 시간과 지금의 일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대표 새끼가 억지로 출장에 끌고 오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당하진 않았겠지?’


이승기는 다른 건 몰라도 어쩐지 그것 하나만큼은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문밖에서 음성이 들렸다.


“소궁주, 들어가겠습니다.”


이승기의 대답은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 거침없이 두 여인이 들어왔다. 둘의 공통점은 그가 팔등신 미녀로 가득했던 러시아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도 보지 못했던 미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승기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 말에 두 미녀의 표정은 세상 심각하게 변해버렸다. 그냥 무조건 그가 잘못했다고 말해야할 것처럼······.


하지만 이승기는 억울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으니까! 아니, 그래서 너희들 누군데!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이승기의 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랬다. 아니, 이제는 ‘빙승기’라 불러야 했다.


사실 빙승기라는 이름도 저들이 그렇게 부르니 납득한 것일 뿐,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스물네 살의 군필 청년 이승기여야 했지만.


그리고 이런 건장하고 진한 구릿빛의 팔뚝이 아닌, 군필치고는 하얗고 여리여리한 팔뚝을 가져야 했으며.


아직 위치조차 파악 못 하는 장소가 아닌, 바이칼 호수 옆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의 숙소에 있어야 했지만!


이승기는 빙승기라는 남자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


허나 영문도 모른 채 엉뚱한 사람의 몸에 들어갔음에도,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공황장애에 빠지지는 않았다.


왜냐?


그건 그것조차 억누를 관심사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


빙승기는 지금 점토를 구워 만든 것처럼 반질반질한 찻잔을 쥐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며 낯설지만 은근한 향을 풍기는 차가 있었다.


뜨거운 차는 아마 추운 날씨를 이겨내는 사람들의 지혜인 듯싶었다.


‘아니면 말고.’


물론 그건 빙승기에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집중하니 뱃속의 서늘한 기운이 찻잔을 쥔 손으로 이동한다는 것.


“······.”


그리고 그렇게 하니 찻물에서 나오던 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


심지어 찻잔 가장자리부터 얇은 눈꽃 결정이 피어올랐다.


찻물이, 얼어붙은 것이다!


‘미치겠네.’


빙승기는 찻물이 절반쯤 얼자 숟가락으로 그것을 부수고 다시 얼렸다. 그는 첫날 무언가 엄-청나게 괴로운 경험을 하고 난 뒤 생긴 능력에 아주 푹 빠진 상태였다.


아니, 눈이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얼리고 부시기를 네 번 반복하니 찻물은 이제 아주 미세한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무언가로 변해있었다.


빙승기는 그제서야 경건한 자세로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혀의 미뢰를 찌릿하게 긴장시키는 냉기. 항온동물인 인간의 입 속 온도를 순식간에 낮춰버리는 이 감각.


빙수였다! 그것도 매우 깔끔한 맛의!


빙승기는 고등학교 때 빙수 전문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본사의 연구개발센터로 들어가 새로운 소재를 찾아 상품에 적용하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재료로 빙수를 만들어봤다고 자부했는데, 이 낯선 차를 얼려 먹은 건 처음이어서.


그는 오랜만의 신선함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다.


“존맛!!”


그걸 건너편에 앉아 ‘심각하게’ 바라보던 두 명의 여인 중 하나가 입을 떼었다. 갓 씻어낸 듯 하얀 피부에 금발을 가진 색목인이었다.


“책임져라.”


그러자 옆에 앉은 검은 머리의 여인이 반박했다.


“궁주님 자식입니다. 궁주님이 책임지셔야지요.”

“네가 이렇게 만들지 않았느냐?!”


금발의 여인은 책망의 조로 받아쳤다. 하지만 다른 여인도 기가 센지 결코 지지 않았다.


“궁주님이 한 번이라도 소궁주 젖을 줬습니까, 기저귀를 갈아줬습니까? 제가 다 했습니다. 제가 소궁주를 업고 젖동냥을 다니고 똥오줌을 갈아줬고, 운기조식 중에도 소궁주가 깨면 제가 밥을 먹였고, 걸음마부터 글, 무공까지 다! 제가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일류 무인까지 키운 저에게 지금 책임 운운하십니까?”

“나는······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궁주라 불린 여인이 켕기는 듯이 목소리가 작아졌다.


“일만 하면 끝입니까? 저기 중원 놈들은 그러면 일이 없어서 애를 키우나 봅니다. 제가 많은 걸 바랐습니까? 일이 끝났으면 와서 아이를 돌보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녕 네가 한 일이 아니란 말이냐?”


급기야 궁주라 불린 여인은 말을 돌렸다.


“당연히 아닙니다. 소궁주가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건 자진을 했다고 볼 수밖에요. 모두 소궁주가 궁주님의 애정을 갈구하다 생긴 일로 사료되옵니다. 궁.주.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래도 궁주님이라 불린 여인은 그동안의 행실이 떳떳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상대는 일궁의 궁주인데, 검은 머리 여인은 쌓인 게 많았는지 참지 않았다.


“자그만치 십오 년입니다. 그동안 제 수련도 미루고 인생을 갈아 넣었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단 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한 궁주님이 어떻게 제 기분을 짐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신경 좀 써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싸우지 마시죠, 사부님. 그리고······어머니?”


결국 빙승기가 빙수를 내려놓고 민망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둘이서 벌써 비슷한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어서.


지금까지 대화로 보면 검은 머리 여인이 그의 사부이자 유모 같은 존재 같았고, 노란 머리 여인이 그를 낳아준 어머니인 듯했다.


또 저들은 그에게 주화 뭐시기 무슨 엄청나게 큰일이 생겼다고만 여기지만, 사실은 사람 자체가 바뀌었을 뿐인데.


그러니 이전 사람의 기억이나 경험이 모조리 날아갔고, 앞으로도 기약이 없다 해도 어쩌겠는가.


‘그게 뭐 내 잘못인가?’


빙승기는 스스로 떳떳했다. 그리고 누구 짓인지 알 수 없는 이 장난에 한동안 어울려 주기로 결심을 마친 상태였다.


왜냐하면 맨몸으로 빙수를 만들 수 있는 미친 능력이 생겼으니까!!


시발, 이런 능력을 갖고 빙수를 만들지 않는다면 미친놈일 테니까!!!


여기에 비하면 무통보로 러시아에 새로 연 빙수 매장에 끌려온 건 매우 사소한 일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가 생겼다고?’


빙승기에게 어린 시절이란 좋은 게 없었다. 그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란, 앉아있는 그에게 빙수를 먹고 있으면 곧 다시 오겠다던 그 장면.


그때 살갗을 익히던 더위.


그 빨갛고 딸기향이 나던 시럽의 맛.


빙승기는 그 후의 고아 생활로 기억이 이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직접 만든 빙수를 떠먹었다.


“와~. 이거 그런데 팔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제라서 그런가?’


역시 뭐든 수제가 최고인 모양이다. 제자 중에서도 으뜸인 제자를 수제자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는 법.


‘빙수를 먹을 대로 먹어본 사람이 마지막에 찾게 되는 맛이야, 이거. 하지만 여기에 단맛은 무조건 넣긴 해야 겠지. 빙수와 단맛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빙승기가 알기로 인간의 몸에는 체온 조절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사람은 추워지면 자율 신경계와 호르몬을 조절해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모세혈관은 수축해서 열 방출은 억제하고 정해진 온도가 될 때까지 몸을 데우는데, 집이 추우면 창문을 모두 닫고 보일러를 트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대신 보일러를 틀 때 가스나 전기를 소모하듯이, 우리 몸도 체온 조절을 할때 열량을 꽤나 소모하므로, 우리 몸은 동시에 고열량의 탄수화물을 보충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빙수를 먹으면 단 게 당기는 거다.


따라서 이 기묘한 차로 빙수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이 좋아 죽는 단맛을 더하면서도 더위를 날려버리는 이 깔끔함을 유지하는 게 대중성을 잡는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빙승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만든 빙수에 점수를 매겼는데, 칠십 점은 돈을 주고 팔 수 있는 수준이고 팔십 점이 넘으면 대박을 노려봄직했다.


빙승기의 생각에 이 빙수는 지금 수준으로는 육십 점도 줄 수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십점은 오려야 했다.


‘시럽을 얼렸다가 갈아서 뿌리면 어떨까? 두 종류의 빙수를 섞어서 먹는 거지.’


이렇게 하면 깔끔한 맛은 유지되고, 빙수도 더 천천히 녹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빙수 매장에서 보통 쓰이는 방법은 아니었다.


‘첫맛이 중요하니까. 처음 먹었을 때 맛이 없으면 그건 망한 거야. 묵직함과 깔끔함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을까?’

‘산미를 더해? 유제품을 빼버려? 여기에 어울리는 재료가 뭐가 있을까? 또 그러면서 구하기 쉬운 것이어야 하는데.’


빙수의 조합은 쉽게 말해 무한대였다.


따라서 얼음에 상큼한 시럽만 뿌려 먹는 것도 종류가 한가득이었다. 빙승기도 좋아했다.


‘하지만 상품으로는 글쎄······.’


왜냐하면 빙수도 음식인데, 음식은 맛뿐 아니라 식감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괜히 빙수를 팔 때 떡이나 케이크, 팥이나 타피오카, 생과일 같은 걸 함께 올리는 게 아니었다.


적당한 씹는 맛은 최우선 고려 사항이었다.


‘겉바속촉, 겉바속촉.’


빙승기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마치 수학 7대 난제를 앞에 둔 사람처럼 생각하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직업병이었다.



***



“아주 백치가 됐습니다그래······.”


검은 머리 여인이 대화 중에 갑자기 멍해진 빙승기를 보며 또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 이상해졌잖아! 책임지고 고쳐놔라.”

“궁주님 자식을 왜 제가 책임집니까? 단절된 제 무인 경력은 책임져 주시는 겁니까?”

“너도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데 당연히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왜······혼인도 안 한 저에게 자식이 생긴단 말입니까? 저는 미혼입니다, 궁.주.님.”


검은 머리 여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부모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는 사회적 부모가 역할을 행사하는 것이다. 친권이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자랑이십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일 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고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습니다. 무관심도 학대입니다. 왜 그걸 모르십니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라 궁주님 자식이란 말입니다. 궁주님 자식!”

“너도 동의해서 한 것이지 않느냐······.”


노란 머리 여인이 또다시 검은 머리 여인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제 의사가 있었습니까? 저도 이제 제 경지를 올려야겠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면 아이는 누가 키운단 말이냐?”

“당연히 부모가 키워야죠!!”


둘의 투닥거림이 커지자 빙승기는 상상 속에서 빙수 만들기를 멈추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도 이 얘기를 하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건 마치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을 서로 미루는 부모의 모습 같달까.


“저기요, 두 분이 그러시면 저 상처받는데요······.”

“소궁주, 북해인은 이 정도로 상처받지 않습니다.”


검은 머리 여인이 즉답하자 노란 머리 여인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엣, 북해인은 인간의 마음이 없기라도 하나요?’


빙승기는 북해인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는 상처받는다고 한 말이 무시받아 또다시 상처받았다.


빙승기는 차가운 빙수처럼 살고 싶었다. 마음을 얼음처럼 얼리고 살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원래 얼음이란 단단해 봐야 석고보다 부드럽고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것.


그리고 빙승기는 가족을 동경하며 살았으나, 가족이 생긴 지 하루 만에 이것도 마냥 행복한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진리를 깨닫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화목하다고 봐야 하나?’


그보다는 슬슬 살아남기 빡센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생존이 목표가 되어버린 거친 땅 북해.


심심하면 중원을 제집처럼 침략하는 몽골 유목민들조차 꺼리는 땅.


그곳에 자리 잡은 북해빙궁에는 약자가 설 자리란 없었다.


그러니까 빙승기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했다.


X됐다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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