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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창조신의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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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1.05.12 12:44
최근연재일 :
2021.06.29 20:39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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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글자수 :
208,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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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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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필로그 02 (完)

DUMMY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을 발하는 찬란한 은발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하지만 그 빛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 흐리다.


“이걸로 마지막인가?”


은발의 소녀가 바위에 등을 기대고 누워있다.


소녀가 힘 없는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절반은 아직 괜찮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 그녀의 왼쪽 반신은 공허에 침식되어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침식을 잠시 잠깐 멈춘다.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로구나.”


공허의 침식을 막기 위해서 남아있던 모든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러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공허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남아있던 반신은 순식간에 침식당할 거다.


“마치... 필멸자가 된 기분이군···”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건 말이다.


소녀가 죽음을 아니 소멸을 기다리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랐다.


“뭐 였을까? 나는?”


빛과 창조의 여신 에일로아.


분명 그녀의 본체는 그리 불리고 있었다.


“본체··· 본체라···”


소녀가 쓴 웃음을 지었다.


월드 시스템이 세계수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줬을 때. 빛과 창조의 여신은 그 권한을 거부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자신이 관리하는 세계를 놔두고 떠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신의 권한조차 월드 시스템을 넘을 수는 없었지.”


빛과 창조의 여신은 고민했고 결국 그 해답을 찾았다.


분신이 그 해답이었다.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분신을 만들어 자신을 대신해 세계수로 보내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나인가?”


소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알고 있는 기억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가 없었다.


소녀에게는 빛과 창조의 여신으로서 행했던 모든 기억과 경험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그녀 자신이 분신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내가 분신이라고? 이··· 내가?”


그 생각만으로도 허탈했다. 하지만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델리온··· 내가 창조하고 관리해온 나의 세계···”


그녀에게는 세계신으로서 가장 중요한 세계가 빠져 있다. 세계신으로 행했던 모든 기억과 경험 그리고 능력이 남아있지만, 신성 코어로서 존재해야 할 그녀의 세계만은 빠져 있다. 그게 그녀가 분신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지끈···


왼쪽 반신에서 시작된 고통이 커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공허가 다시 활동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도 이걸로 끝이군···”


허탈함이 밀려왔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존재감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세계수를 여행하며 그녀 자신이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공허 때문만은 아니다. 공허에 잠식되지 않았다 해도 어차피 더 이상 오르지 못했을 거다. 세계를 가지지 못한 세계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가 한계였다. 더 이상 오르기 위해서는 권능이 필요했다. 귀속된, 자신만의 신성력이 필요했다.


“세계라··· 나만의 세계···”


사실은 만들 수 있었다. 세계신으로서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능력까지, 세계수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준비가 끝나있었다.


“그래··· 내가 분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면 말이야.”


소녀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쪽 팔로 얼굴을 가렸다.


세계를 만들고 새로운 세계신으로 태어나는 것, 그것은 그녀 자신이 분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결국 하지 못했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이 그것을 가로 막았다.


“그래··· 이렇게 소멸하는 게 오히려 내 자존심에 걸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식되어 가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 했다.


“호오··· 벌써 죽었나?”


꾹··· 꾸욱···.


뭔가 나뭇가지 같은 걸로 찔러대는 느낌이다. 아니 나뭇가지는 아니고 신성력이다. 신성력을 막대기처럼 뻗어 그녀의 얼굴을 찔러대고 있었다.


“하아···”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 자신조차도 처음 세계수에 도착했을 때 신기한 개체를 발견하고 한동안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분명 그럴 수는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과 예의가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녀가 자신에게 뻗어오는 신성력을 쳐냈다. 그리고 짜증을 담아 소리쳤다.


“이건 죽어가는 존재에게 보일 예의가 아니잖아!”

“어? 그랬나? 너도 나를 따라다닌 적 있잖아? 관찰한다면서?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뭐라고?”


소녀가 자신이 소멸해 가는 상황에서도 관심을 드러냈다.


“너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고?”


그녀가 따라다녔던 이레귤러는 하나뿐이다. 세계수에 도착하고 가장 처음 만났던 이상한 존재.


“안녕?”


강혁이라고 불렸던 인간과 메타스의 인격이 뒤섞인 존재, 그 존재가 지금 그녀의 앞에서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다.


“너··· 너어···.”


그의 등 뒤로 은은한 후광이 보였다. 빛의 날개, 광익도 보였다. 그것들 모두가 그가 온전한 세계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었다.


“세계신으로 다시 태어났구나.”

“어. 그랬지. 꽤 힘들더라고.”

“힘들다라···”


소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단순히 힘들다고 말하는 수준에서 끝날 일이라니 게 신기했다. 아니 그것보다. 결국 뒤바뀐 입장 차이가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흐하하하. 그래··· 재밌구나··· 정말 재미있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인간도 씨드 메타스도 아닌 기묘한 존재였는데, 어느틈에 입장이 변했다. 뒤바뀌었다.


이제 어중간한 것은 그녀다. 세계신도 아닌 주제에 신격을 가지고 있다. 세계신도 아닌 주제에 그 지식과 경험을 가진 반편이다.


“소멸 직전에 참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는구나···”


조용히 한숨을 내쉰 소녀가 눈을 감았다. 잠시 흥미가 동 했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잠시다. 공허의 침식이 이미 그녀의 목 아래까지 밀려와 있었다. 그녀의 최후가 다가온 거다.


“이대로 소멸할 생각이야?”


강혁의 목소리에도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뭔가를 원해서 그녀를 찾아왔음을 안다. 하지만 뭔가를 해줄 생각은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가져가라··· 말리지 않으마.”


공허에 물든 몸이라도 필요하다면 가져갈 거다. 어쩌면 여러가지 실험을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공허에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미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가져가라··· 말리지 않으마.”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야기다. 강혁이 반색 했다.


“어? 정말 그래도 되는거야?”


소녀는 대꾸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격을 가진 자가 말한 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가진다.


“어떻게 말할까 고민했는데 그렇게 쉽게 말해줘서 고맙군.”


강혁이 의지를 움직였다. 그녀의 몸을 침식하고 있던 공허를 밀어내고 대신에 그녀의 정신과 육체 여기저기에 자신의 각인을 박아 넣었다.


“어··· 뭐야? 이건?”

“뭐라니? 네가 허락했잖아?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가져가라고?”


강혁이 히죽이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본 소녀는 경기라도 들린 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발악하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히에엑. 공허를 이렇게 쉽게 밀어 낸다고? 거기다 이 소유의 각인은 뭐야? 너 악마였어? 악마구나!!!”

“아니. 새로운 주인님에게 악마라니 버릇이 없구나. 너.”


소녀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관심 없다. 이미 허락한 이상 무를 생각도 없다.


거기다 그녀를 잠식한 공허 정도는 이미 강혁에게 아무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위 신이 필요했었거든?”


그래서 적당한 녀석을 찾아 주위를 헤맸는데 마침 적당한 녀석을 주웠다. 이른바 경력 있는 신입니다.


강혁은 지금 상황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너 내 하위신이 되어라. 물론 거절은 거절이다.”

“아악! 이미 저질러 놓고 물어보는 게 어디 있어!!!”


소녀가 악을 썼지만 강혁은 태연했다.


사실 그녀의 말이 옳다. 이미 자신의 각인을 사방에 찍어 놓은 상태에서 묻는 질문이니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


“그래? 나도 그냥 해 본 말이었다.”


강혁의 말에 이번에는 그의 등 뒤에 둥둥 떠 있던 아이리스가 대신 대답했다.


“하아... 여전히 악취미시네요.”

“악취미가 아니라 효율적인 일 처리라니까 그러네.”


강혁이 절망감에 몸을 떠는 소녀를 보며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지어 줘야지?”


자신의 하위신이 된 순간부터 소녀는 이전의 그녀와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음··· 그럼 너는 오늘부터 하위신 1호다!”

“꺄아아악! 뭐라는 거야 이 망할 주인놈아!!!”


어딘지 익숙한, 들어본 듯한 비명 소리와 욕설이 들려왔다. 하지만 상관없다. 분명 기분 탓일 거다.


“아뇨··· 전혀 기분 탓이 아닌데요···”


그 옆에 있던 아이리스가 어쩐지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린 소녀를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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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장] 금기에 관하여 13 +1 21.06.25 134 2 10쪽
34 [3장] 금기에 관하여 12 21.06.24 109 3 8쪽
33 [3장] 금기에 관하여 11 +1 21.06.23 101 3 10쪽
32 [3장] 금기에 관하여 10 +1 21.06.22 98 4 11쪽
31 [3장] 금기에 관하여 09 +1 21.06.21 102 3 9쪽
30 [3장] 금기에 관하여 08 21.06.18 111 3 11쪽
29 [3장] 금기에 관하여 07 +1 21.06.17 117 2 19쪽
28 [3장] 금기에 관하여 06 21.06.16 121 3 10쪽
27 [3장] 금기에 관하여 05 +1 21.06.15 123 4 15쪽
26 [3장] 금기에 관하여 04 +1 21.06.14 129 3 13쪽
25 [3장] 금기에 관하여 03 +1 21.06.11 158 5 16쪽
24 [3장] 금기에 관하여 02 +2 21.06.10 165 6 11쪽
23 [3장] 금기에 관하여 01 +2 21.06.09 171 8 10쪽
22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8 +1 21.06.08 158 9 11쪽
21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7 +1 21.06.07 178 10 15쪽
20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6 +3 21.06.04 190 9 13쪽
19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5 +1 21.06.03 165 8 11쪽
18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4 +1 21.06.02 176 7 18쪽
17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3 +2 21.06.01 186 8 10쪽
16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2 +1 21.05.31 185 8 11쪽
15 [2장] 멸망에 대항하는 자 01 +1 21.05.28 240 9 20쪽
14 [1장] 규격 외의 존재 14 +2 21.05.27 260 11 11쪽
13 [1장] 규격 외의 존재 13 21.05.26 228 8 15쪽
12 [1장] 규격 외의 존재 12 21.05.25 251 8 11쪽
11 [1장] 규격 외의 존재 11 +1 21.05.24 263 7 11쪽
10 [1장] 규격 외의 존재 10 21.05.21 254 9 10쪽
9 [1장] 규격 외의 존재 09 +1 21.05.20 288 9 12쪽
8 [1장] 규격 외의 존재 08 21.05.19 300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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