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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창조신의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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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1.05.12 12:44
최근연재일 :
2021.06.29 20:39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625
추천수 :
290
글자수 :
208,832

작성
21.06.22 23:29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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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3장] 금기에 관하여 10

DUMMY

공허의 도서관에 버려진(?) 강혁은 애써 담담하려 노력했다.


“그래.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야. 적어도 희망은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끝없이 펼쳐진 서가뿐이다.


갑자기 암담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희망이 있기는 한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는 한참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나마 ‘그런데 끝까지 찾아봐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라는 부정적인 결말만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혁이 한숨을 내쉬며 가장 가까이 있는 서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놓인 서책을 꺼내 들었다.


파라라락.


꺼내 든 서책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 든 것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기억이다.


어딘가의 혹은 누군가의 기억이 강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자가 아니라 읽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세계신으로 수행할 때 공간구슬 속에 들어가 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강혁은 책 속의 누군가가 되어 여행을 했다. 다양한 생물과 인종이 되어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했다. 수없이 많은 종교와 정치를 배우고 실제로 사용했다.


한권의 책이 끝나면 누군가의 탄생과 사멸을 경험하고 또 한권의 책을 읽으면 어딘가의 세계를 창조하고 멸망시켰다.


반복되는 지식과 지혜의 향연이 이어졌다.


경험하고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반복하는 행위를 무한히 반복했다. 그리고 착실히 자신의 수준을 높였다. 그 격을 향상시켰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강혁의 눈빛이 변해갔다. 마치 넓디넓은 바다를 보듯,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주위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이 쌓여 마치 이전의 그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듯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경박하고 가벼운, 절대적인 존재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자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변해가는 자신을 경계하듯이 보였다. 스스로에게 자각하듯이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성격인지를 기억하고 떠올리려 했다.


“아··· 찾았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되새길 필요가 없는 유일한 방법을 말이다.



***



“흐음··· 이렇게 인가?”


쭈물쭈물. 덜그럭 덜그럭.


“아닌가? 그럼 요렇게?”


쿵쿵. 콰직. 콰드득.


“음? 뭔가 소리가 이상한데? 기분 탓이겠지?”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이 쌓여 신성을 사용하는 수준이 월등히 증가했다. 그렇기에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세밀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거기다 공허의 도서관에서 얻은 설계도까지 있으니 완벽하다.


“어··· 완벽해야 한 건데··· 그래야 했는데···”


강혁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공허의 도서관은 분명 대단했다. 마치 가상현실을 하듯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며 알아간다.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것들도 직접 써보니 뭔가 부족함이 있다.


“이거 깨어나면 어째 제대로 한 소리 들을 것 같은데?”


아무리 진짜처럼 전해지는 경험이라도 실제 자신이 겪은 게 아니다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리스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어디가 문제지?”


덜그럭거리며 다시 신성 회로를 점검했다.


원래라면 다시 월드 시스템과 연결되기 전에는 깨어나지 못한다. 조언자는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강혁은 공허의 도서관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 설계도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월드 시스템의 간섭 없이 오로지 강혁의 힘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일종의 비상 가동 모드다.


무수히 많은 실패가 반복됐다. 여전히 아이리스가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강혁이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래. 시간이란 자원은 무한하니까.”


적어도 강혁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그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바탕으로 결국 월드 시스템의 설계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



아이리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들리고 흐리던 소녀의 눈빛에 총기가 돌아왔다.


“어··· 여보세요? 저기요? 괜찮아? 괜찮은 거지?”


한참을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에 조바심이 난 강혁이 아이리스의 볼을 쭉 잡아 늘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있다. 아니 반응이 너무 좋다.


아이리스의 눈동자가 강혁을 향했다. 그리고 물기가 찼다. 붉어졌다.


“훌쩍··· 으아앙!”


아이리스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어? 어라? 드디어 일어났구나. 어 그런데 왜 우는 거야? 볼 늘린 게 아파서 그래? 정말 그런 거야?”


당황한 강혁이 다시금 아이리스의 신성회로를 확인했다. 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반응이 더 빨랐다. 예상치 못했던 전혀 새로운 반응이다.


“주인님··· 내가 제일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 주인님.”

“어? 그게 무슨 소리냐? 원래는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논리 회로 쪽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이려 했는데 이번에도 아이리스의 반응이 빨랐다. 거기다 조금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죠? 아니 그 전에 여전히 공허에 갇혀 있는 듯한데 저를 어떻게 깨웠어요?”


아이리스의 언제 울었냐는 것처럼 눈물을 멈추고는 정색하며 강혁을 바라봤다.


강혁의 기억속에 있는 아이리스다.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아··· 다행이다. 성공했구나. 이번에도 샐패하는 줄 알았다. 간담이 써늘했어.”

“이번에도? 라고요?”


강혁의 말에 뭔가를 느낀 아이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어···”


하지만 굳이 어렵게 확인할 것도 없었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목 아래 부분의 감각 자체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아이리스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주인을 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게 말이야··· 일단 너를 깨우려고 말이지···”


길고 긴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리스가 이해 못할 말은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절 마음대로 개조하셨다고요?”

“야··· 말을 그렇게 하니까 뭔가 이상하잖아. 그냥 월드 시스템의 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 있게 살짝, 아주 살짝 손 좀 본거지.”


더 이상 말다툼할 생각조차 사라진 아이리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월드 시스템의 계약 내용을 변경하고 설계를 다시 한다. 그리고 결국은 성공시켰다.


그 말만으로도 이미 강혁의 격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지금은 화를 내기보다 주인의 성장을 기뻐해야 할 상황··· 이긴 개뿔이다.


“그래서 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거군요.”


아이리스의 한탄에 살짝 억울한 듯한 강혁의 반응이 이어졌다.


“근데 어쩔 수 없었어. 여기서 나가면 월드 시스템과 다시 접속해야 하니까 그 부분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았거든. 그 정도로 살짝만 손보고도 네가 깨어났으니 더 대단한 거라고.”

“뭐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저를 그렇게 급하게 깨웠는지도 대강 알았고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리스는 자신의 역할,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눈을 뜨기 무섭게 강혁이 현재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강혁은, 아이리스의 주인은, 유달리 자신의 자아를 소중히 했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공허의 도서관에서 막대한 경험과 지식을 얻으며 그 격이 상승했음에도 그 점을 좋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변할까 봐 걱정했다.


“저를 깨워서 자아를 유지하려 하셨군요.”


강혁이 슈퍼 컴퓨터라면 아이리스는 강혁을 보조하는 보조 단말에 해당한다. 거기다 영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망각을 모르는 보조 단말이다.


그 특성 때문에 아이리스가 깨어 있다면 강혁은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이리스가 대신해서 그를 기억할 테니 말이다.


“탁월한 선택이네요. 자아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는요.”

“음? 뭔가 말에 뼈가 있다.”


아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강혁이 자연스럽게 알아내는 게 좋을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그녀가 알고 있는 이상 그녀의 주인인 강혁이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깨어나자 마자 할 말도 아닌 것 같지만, 숨기는 것도 무의미하니 일단 말해두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하나씩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아이리스의 심각한 표정에 찔끔한 강혁이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하··· 둘 다 듣지 않는 다는 선택은?”

“물론 없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이상 주인님이 모를 수는 없어요.”


망각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이리스는 받아들인 정보를 지울 수조차 없다. 그러니 결국은 강혁이 알게 될 일이다.


“쩝···어째 깨우자 마자 더 귀찮은 일이 생긴 것 같다.”

“애초에 필요에 의해서 저를 깨우셨으면서 무슨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아이리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주인을 바라봤다. 여전히 들을 생각 없어 보이는 주인을 무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은 일부터 말하죠. 주인님은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내부에 봉인된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죠.

“갑자기?”

“내. 그렇게 됐어요.”


강혁이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로 자신의 조언자를 바라봤다.


공허의 도서관에서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무수히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악몽과 그의 내부에 봉인된 존재에 대한 것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눈 뜨자 마자 그걸 알았다고?”


강혁이 뭔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그럼 그 이유를 듣기 전에 우선 나쁜 일이 뭔지도 들어 보자. 문제없지?”

“네. 상관없어요. 나쁜 일은 주인님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니까요.”

“부정한다고? 내가 부정한 게 뭐지?”

“자신의 자아,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겠죠.”


아이리스가 주인의 눈을 바라봤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확고한 눈빛이다.


“저는 잊지 않습니다. 망각을 모르죠. 한 번 본 것과 들은 것은 무슨 수를 써도 지울 수 없어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고 있다면 당연히 주인님도 기억할 수밖에 없죠.”


유감스럽게도 강혁이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깨운 조언자는 오히려 강혁의 자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21.11.01 16:31
    No. 1

    깨우고나서 "이번에도 샐패하는" 이라고 써있는게 '실패' 라고 해야 맞는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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