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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창조신의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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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1.05.12 12:44
최근연재일 :
2021.06.29 20:39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624
추천수 :
290
글자수 :
208,832

작성
21.06.23 23:17
조회
101
추천
3
글자
10쪽

[3장] 금기에 관하여 11

DUMMY

아이리스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고스란히 주인인 강혁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진실을 마주한 강혁은 침묵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침묵이 길어지자 참다못한 아이리스가 말을 걸었다.


“괜찮으냐고?”


강혁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네가 한 모든 일이 헛일이었다는 건데 말이야. 그래도 나를 위협하던 첫번째 위험이 사라졌으니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걸까?”

“주인님···”


아이리스가 말 끝을 흐리고 강혁의 눈치를 살피자 오히려 강혁이 그녀를 달래 듯 머리를 토닥였다.


“뭐 일단은 괜찮다고 하자. 거기다.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일도 있고 말이야.”

“네에? 아니 이것보다 급한일이 있다고요?”

“그래 여기서 나가는 게 우선이다.”

“아··· 그. 그렇죠?”


아이리스가 반색했다. 어차피 그녀가 알려준 진실은 깊이 생각한다고 뭔가 달라질 게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하고 대처할 수 있는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게 훨씬 좋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의문이 들어서 질문했다. 아이리스가 보기에 이곳은 강혁이 그토록 바랬던 안전이 보장된 장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서 서책이나 뒤적이고 있을까? 그리고 여기는 네 생각처럼 안식의 장소도 아니고 안전한 곳도 아니다.”


강혁이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길고 긴 이야기다.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강혁과 이어져 있는 아이리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말이 좋아 공허의 도서관이지, 실상은 유배지나 재활용 쓰레기장에 가깝다는 거죠?”

“그래. 제대로 이해했다.”


과거 강혁이 경험했던 공간 구슬과 마찬가지다. 그 속에 있던 우주와 다양한 세계를 하위 세계라고 불렀지만, 사실 강혁이 있는 곳도 거기서 크기만 커진 수준에 불과했다.


“공간 구슬에서 예전 것을 멸망시키고 그 부산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그리고 멸망한 세계의 부산물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이곳, 공허다.”


공허의 바다에는 멸망한 세계의 모든 것이 흘러든다. 당연히 그 중에는 지금 강혁이 보고 있는 서책도 포함된다. 멸망한 세계의 지식과 정보가 포함된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일만 있는 곳이라면, 금기에 물든 존재, 아니 루테스. 그 망할 영감이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탁.


강혁이 읽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 그것은 루테스 드 알베인, 멸망한 세계의 신이었던 존재가 경험했던 모든 것이 적혀 있는 서책이었다.


“이 많고 많은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내가 고른 서책이 하필이면 그 자신의 과거였을 거라고는, 루테스 영감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겠지.”


루테스에게는 정말 천문학적인 확률로 벌어진 사고다. 하지만 동시에 강혁에게는 극단적인 기회다. 그와 강혁 사이의 전세를 한순간에 뒤집어 엎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스륵. 스르륵.


강혁의 의지에 반응해 공허의 도서관에 무언가 움직임이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은밀하게 무언가 변해가고 있었다.


“어라? 주인님 설마. 공허도 사용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 모습에 아이리스가 놀랐다. 경악했다.


커다랗게 뜬 눈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공허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분명히 공허를 움직이셨잖아요?”


움직인 건 맞다. 하지만 공허 전체가 아니라 그 중 일부다. 그리고 그렇게 공허의 일부를 부르는 말은 공허가 아니다.


“신성이지.”


세계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공허의 바다에서 공허를 퍼올리고 그 중 기존의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걸러낸다. 그렇게 걸러낸 공허의 일부를 신성력 혹은 신성이라 불렀다.


“내가 움직인 것도 신성력일 뿐.”


공허는 아니다. 공허에서 극히 일부, 강혁이 인지할 수 있는 힘을 분리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루테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준비할 시간까지 주어졌다. 그와의 격차가 지금보다 수십 배 더 크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여기는 곧 사라질 거다.”


공허는 혼돈의 또 다른 말이고 지속되는 것이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작은 힘으로도 그 붕괴를 촉진시킬 수 있다. 그렇게 소용돌이 치는 공허의 물결은 파괴된 자들, 멸망한 세계의 원한과 독기로 가득한 힘을 끌어올릴거다.


공허 속에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자들, 스스로를 공허의 현자라 불리는 자들조차 그 붕괴에 휩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물며 공허의 현자라는 탈을 쓴 가짜, 루테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준비는 이미 오래전에 끝냈다. 이제 할 일은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



***



강혁이 예상했던 것처럼, 얼마 후 정말 루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붕괴의 흔적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서가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허허허. 잘 지냈나? 어떤가 공허의 도서관은 지낼 만하던가?”


강혁이 자신의 과거를 전부 알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못한 채, 여전히 진리를 쫓는 현자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강혁을 불러온 것은 자신이 아니라며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다. 강혁은 더 이상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과거의 그를 알고 있는 만큼 오히려 그 인자한 모습이 더욱 더 역겹다.


“세계수를 오르면서 함정 벌레라는 녀석들을 만났어. 함정을 파고 먹이가 함정에 떨어지기까지 기다리는 녀석들이지.”

“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강혁의 반응이 뭔가 다르다. 그렇게 느낀 루테스가 다가오던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최소한 이 근처의 공허에 대해서는 강혁의 영향력이 더 크다.


강혁의 의지가 반응했고 도서관의 외형이 일렁이며 변해갔다. 붕괴가 빨라졌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근처 공간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뒤틀리고 뜯겨 나갔다.


그 너머로 일렁이는 어둠, 공허의 가장 어두운 얼굴이 드러났다. 멸망한 세계의 원한과 독기가 가득 흘러나왔다.


“루테스 드 알베인


강혁이 진명을 부르자 루테스가 당황했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리 짜 놓은 안배 그대로 강혁의 의지에 이끌린 공허의 소용돌이가 그를 휘감았다.


“공허의 어둠 속에서 숨어서, 이제 막 세계신에 오른 존재들을 잡아먹는 혼돈의 뱀.”


신들의 전장이라는 [혼돈의 정원]에서 패배하고 [부서진 세계를 짊어진 자]가 되어 세계수를 배회하다. 결국은 금기에 손을 댄 존재다. 그렇게 얻은 금기의 힘을 이용해 이제 막 세계신에 오른 어리고 약한 존재들을 꾀어내 살찌우고 잡아먹는 존재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불쌍하다. 루테스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얻은 힘으로는 자신의 세계를 복구할 수 없다.


“차라리 먹이를 노리며 함정을 파기보다, 여기 있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쪽이 옳았을 거야. 뭐 이제와서는 무의미한 일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공허에서 숨어서 살아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기어이 소용돌이를 뚫고 나왔다. 짓이겨진 루테스의 얼굴에서 인자한 현자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네 이노오옴!”


마치 악귀와 같다. 질투와 분노,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찬 눈으로 강혁을 노려봤다.


“내 본명을 어떻게 알았지? 아니 그보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만든 거야? 신격조차 완성하지 못한 반푼이가 공허를 움직이다니.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루테스의 질문에 강혁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시간은 가장 흔한 자원이고 여기는 세상 모든 지식이 모여드는 도서관이라 한 게 본인 아니었나?”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정작 그 자신은 금기에 물들게 두려워 그 지식의 극히 일부만을 얻었던 거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을 거다. 부족한 부분은 금기를 먹고 성장한 다른 세계신, 갓 세계신에 이른 어리고 약한 존재를 집어 삼키는 걸로 충분했을 거다. 그들은 처음 이곳에 왔던 강혁처럼 루테스의 분위기와 말에 속아 그를 신뢰했을 테니까.


촤라락.


강혁의 의지에 반응해 움직인 공허가 수십 수백개의 촉수를 뻗어내 만신창이가 된 루테스를 휘감았다. 고치처럼 칭칭 휘감아 그를 봉인했다.


“언젠가 다시 세계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강혁이 다가갔다. 그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부서진 세계를 짊어진 자] 루테스가 가지고 있던 세계의 일부다. 하지만 그 일부라도 루테스와 상위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로는 충분했다.


“그것이 이정표지? 그걸 목표로 움직이면 공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강혁은 할 수 없다. 아니 지금의 강혁은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신성, 그 마지막 한조각을 가져가겠다.”


그래서 얻어야 한다. 강탈해야 한다.


강혁이 손을 뻗자. 두려움을 느낀 루테스가 도망치려 몸부림 쳤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의 말처럼 시간은 가장 흔한 자원이었고 강혁은 그 자원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콰드득.


루테스가 몸부림치면 칠수록 공허에서 뻗어나간 촉수들은 더욱 강하게 그를 구속했다.


“사··· 살려줘. 이건 아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거라고. 넌 오해하고 있어. 내가 설명할게. 전부 설명할 수 있어. 믿어줘. 제발!”


그 꼴이 된 주제에 여전히 어떻게 든 벗어나려 말을 걸어왔다. 해명을 했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강혁이 그의 과거 기억과 경험을 계승한 이상 뱀의 혓바닥은 무의미하다.


덥썩.


완전히 무방비가 된 그를 제압한 강혁이 루테스를 집어 삼켰다. 그의 지식도 그의 지혜도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세계신으로서의 마지막 조각도 지금 이 순간부터 강혁의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신, 그 미숙한 자들을 집어 삼키며 성장한 존재, 혼돈의 뱀이, 자신의 둥지에서 자신이 먹이라 생각했던 존재, 강혁에게 집어 삼켜졌다. 그리고 강혁은 드디어 혼돈에서 벗어날 방법을 얻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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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21.11.01 16:39
    No. 1

    들어는 줘야죠. 물론 하나가 되면 바로 알 수 있으니 거기서 들어주면 될테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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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규격 외의 존재 09 +1 21.05.20 288 9 12쪽
8 [1장] 규격 외의 존재 08 21.05.19 300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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