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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녹개미 님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마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정차녹
작품등록일 :
2021.05.13 02:48
최근연재일 :
2021.06.12 12: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091
추천수 :
101
글자수 :
41,620

작성
21.05.26 13:29
조회
143
추천
12
글자
8쪽

3화 변화(2)

DUMMY

3화



구울의 발을 보자마자 선우는 급하게 문을 닫으려 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틈에 뭐라도 걸린 건지 당황한 채로 문을 살피던 선우는 고개를 들어 문 위를 보게 됐고.

자신의 키보다 두 뼘 정도 위에 문을 잡고 있는 회색의 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순간 벙찐 채로 선우는 커다란 회색 손을 바라봤다.

문틈으로 그림자가 지고야 선우는 시선을 돌려 다시 문틈 너머를 바라봤다.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춘 구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장 2미터가 넘는 징그러운 몰골의 괴물이 문틈 사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소름끼치는 광경에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했다.


순간의 공포도 잠시 선우는 즉시 구울의 특징을 떠올리곤 그 눈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수,숨어야..돼..!’

3초. 구울이 자신을 인식하기 전에 어서 빨리 숨어야 한다. 그 시선에서 달아나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모,몸이..!?’

선우는 못 박힌 듯 서있었다.

처음보는 구울의 기행에 당황을 했고 이 상황에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고작 당황하고 겁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 했다면 선우는 여러 괴수들 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 했을 거다.

그를 지금 억압하고 있는 건 감정적인 이유 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온몸을 짓누르듯이, 혹은 밧줄로 온몸을 구속해놓은 듯이 어떤 불가해의 힘이 선우를 억누르고 있었다.


선우는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여전히 두 다리는 현관문 앞에 꼭 붙어있었다.


‘제,젠장···’

떨리는 눈동자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구울을 바라봤다.


‘끝났다···’

3초의 시간이 지났다.


선우를 지그시 바라보던 구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입이 쩌억 벌어지며 누런 이빨을 드러냈고 눈의 실핏줄이 다 터지기라도 한 듯 흰자위가 새빨개졌다.

목과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기도 했다.

마치 매우 화난 것 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목구멍이 훤히 보일 정도로 입을 벌린 구울은 그대로.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괴음과 함께 잡고 있던 문을 쥐어뜯어버렸다.

얼마나 완력이 강한 건지 걸어 잠근 걸쇠는 그 역할을 전혀 못 하고 문에서 분리되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철문은 그대로 찌그러진 채로 떨어져 나갔다.

구울과 선우 사이를 막고 있던 철문이 사라졌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은 구울이 절규하듯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손톱이 얼굴 피부를 파고 들어갈 정도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 뜯던 구울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아 선우를 바라봤다. 그리곤 악을 지르며 선우를 향해 오른손을 강하게 휘둘렀다.


‘아···1년 동안 잘 숨어지냈었는데.. 인생 X발.’

회광반조라 하던가..? 죽기 직전의 초집중력인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구울의 손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여 저 다가오는 손을 피할 수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가오는 구울의 손을 그저 바라봤다.


그렇게 죽기 싫어서 악착같이 버텨왔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니까 초연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죽을지 잠 못 드는 새벽마다 수십 번의 죽음을 상상해봐서 그런가 별로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죽음도 선우가 언젠가 상상해본 수많은 최후 중 하나였다.


눈동자만 굴려 왼손으로 안고 있는 고양이를 내려다 봤다.


‘같이 살기로 하자마자 내가 먼저 죽어버리네’

안간힘을 써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고양이가 천천히 현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평소의 구울은 사람에게만 반응하지만 저 상태의 구울이라면 그 화가 풀릴 때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적대적이다. 그러니 가까이 있던 이 고양이도 위험할 수 있다. 아니, 분명 공격적일 거다. 이미 사람 냄새가 충분히 묻었으니.


‘···나는 늦은 것 같지만 살 놈은 살아야지.’


그렇게 고양이를 몸에서 떨어뜨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구울을 바라봤다.


‘죽음이라는 게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거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만난 지 10분 만에 이별은 너무하지 않냐.’


어느새 구울의 손은 선우의 복부에 닿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선우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쾅!!!!

내장이 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아니, 진짜 내장이 전부 파열된 건지 입으로 피가 분출하듯 뿜어져 나오며 현관에서 직선으로 날아가 큰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쳤다.


“쿨럭..!”

늑골이 죄다 박살난 건 당연했고 순간의 압력으로 눈과 귀에도 이상이 생긴건지 삐이ㅡㅡ이 하는 이명이 들렸다. 시야도 핏빛으로 매우 흐릿해졌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놈은 또 한번 악을 지르며 뛰어와선 선우를 향해 긴 팔다리를 휘둘러댔다.

쾅!쾅!쾅!


시끄러운 이명과 매우 흐릿한 시야로 구울이 이번엔 어깨와 왼팔을 잡는 게 느껴졌다.

쩌적. 투둑.

그대로 선우의 왼팔을 어깨에서 뽑아버렸다.

구울은 뭐가 그리도 분한 건지 뜯어낸 선우의 왼팔을 움켜 쥐고는 바닥을 내리치며 격분을 표출했다.

이내 고깃덩이가 된 왼팔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선우의 나머지 오른팔마저 뽑아버린 구울은 그 앞에서 바닥을 내리치며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에는 한계가 있다고 들었다. 지금 내 상태를 보니 맞는 소리인 것 같다.

감각이 옅어지며 고통이 흐려졌고 자꾸만 눈이 감기려 한다. 이게 죽는 건가 보다.


막 눈이 감기기 직전 흐릿한 시야로 현관 문 앞에서 뒤돌아 보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안 가고 뭐하는 거야..’

고양이는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발자국 가고 뒤돌아보고 다시 한 발자국 가고 뒤돌아보고.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고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아주 짧은 만남. 별로 한 건 없지만 나름의 치료도 해주고 먹을 것도 줬다고 나를 은인으로 보는 건지 혼자만 도망가는 게 미안한가 보다.


‘저 기분 내가 잘 알지.’

파노라마처럼 그간의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이런 세상이 되기 전의 기억들부터 나를 구해주고 희생한 형과 엄마의 기억까지.

그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선우의 눈이 점점 감겼다.



*

*

*



양팔이 뜯기고 온몸의 뼈가 박살 난 선우를 향해 구울이 망치처럼 주먹 쥔 양손을 들어 보였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연신 시끄러운 비명을 내지른 구울이 선우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려찍기 직전.

어디선가 작지만 분명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잔뜩 흥분한 구울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작은 울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펑! 소리와 함께 움직임이 멈췄다.

스르륵.

머리 위로 들어올린 양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이내 실 풀린 인형처럼 구울의 전신이 뒤로 허물어졌다.

쿵···.

뒤로 자빠져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구울은 어찌 된 영문인지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고 목에서 시꺼먼 피만을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다.


구울을 이렇게 만든 존재는 아주 천천히 선우를 향해 걸어갔다.

네발로 걷던 그 존재의 주변으로 보라색 가루들이 흩날리고 있었고 그 존재의 신체 일부들 또한 가루들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수복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주 지친 기색이 된 고양이 한 마리가 구울을 지나쳐 핏덩어리가 된 선우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선우에게 다가간 고양이는 선우의 볼을 몇 번 핥고는 가만히 서서 한참을 선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신체가 전부 보라색의 가루들로 화하더니 고양이의 형태가 사라지고 보라색 안개처럼 변하였다.

그것은 공중에서 잠시 일렁이며 선우의 주변을 맴돌더니 곧 선우의 입과 코 속으로 전부 들어가 버리며 사라졌다.


고양이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자 그 앞발을 감싸고 있던 붕대만이 바람에 흩날려 선우의 팔에 떨어져 감싸안아주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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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더스트맨(DUST-MAN) 21.05.30 80 0 -
9 9화 악연 그리고 선연(3) 21.06.12 58 10 9쪽
8 8화 악연 그리고 선연(2) +2 21.06.09 75 9 10쪽
7 7화 악연 그리고 선연 21.06.06 80 9 10쪽
6 6화 밖으로(2) +2 21.06.03 117 8 9쪽
5 5화 밖으로 21.05.31 122 11 11쪽
4 4화 변화(3) 21.05.29 125 13 10쪽
» 3화 변화(2) +2 21.05.26 144 12 8쪽
2 2화 변화 (삽화 추가) +1 21.05.21 169 14 13쪽
1 1화 아파트의 생존자 +2 21.05.17 199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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