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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녹개미 님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마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정차녹
작품등록일 :
2021.05.13 02:48
최근연재일 :
2021.06.12 12: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084
추천수 :
101
글자수 :
41,620

작성
21.05.31 17:58
조회
121
추천
11
글자
11쪽

5화 밖으로

DUMMY

탕!

머리에 구멍이 뚫린 쥐 한 마리가 철푸덕 쓰러졌다.


“쥐새끼가 어딜 기웃거려.”

선우는 축구공 두 개 만한 크기의 쥐를 대충 발로 밀어버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철컥.

현관을 열고 들어온 선우는 내용물로 가득한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곧바로 그 안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꺼내 물었다.


초콜릿바를 오물오물 씹고 있는 선우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간만에 몸을 많이 썼더니 피곤과 허기에 절여진 거였다.


“하..이제 좀 살 것 같다.”

선우는 초콜릿바를 먹으며 자신의 손 위에서 흩날리고 있는 보라색 알갱이들을 내려다봤다.

작은 선행에 보답하듯 고양이가 선우에게 준 능력.


이 능력 덕에 더 수월하게 아니, 훨씬 쉽게 식량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좀비나 다른 괴수들은 멀리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그동안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 했던 집들도 문고리를 부셔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새롭게 얻은 능력. 손에서 가루들을 뽑아내고 그걸 뭉쳐 총처럼 쏘아내는 이 능력에는 나름 심각한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손가락총은 웬만한 권총 이상의 살상력이 있어 호신은 물론 괴수의 사냥까지 가능케해주었지만 또 그만큼 에너지를 선우에게서 뺏어갔다.


그 에너지는 바로 선우의 체력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체력 쯤이야 가진 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말하겠지만.

1년 동안 어떠한 운동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저질체력이 돼버린 선우에게는 과분한 능력이었다.


때문에 대략 15발 정도를 쏘곤 이렇게 녹초가 되어서 초콜릿바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선우는 초콜릿바를 금세 다 먹어치우곤 새로운 식량으로 손이 가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꼬르르르륵!

배에서 음식을 요구하는 항의 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질끔 감은 선우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버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면 허기도 달래지겠지란 발상이었다.


선우는 배낭 가득 구해온 식량들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참자..참아야 돼...’


눈앞의 식량은 이전의 선우에게 있어서 몇 달은 족히 버틸 수 있는 양이었지만 지금의 선우가 능력을 남발한다면 과연 일주일은 갈지 걱정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선우는 이내 침중한 표정이 되어 몸을 일으키곤 서랍으로 가더니 노트 하나를 빼들고 와 바닥에 펼쳤다.

노트 안에는 이 아파트의 구조와 현황을 선우가 간략하게 적은 지도가 있었다.


지도 위에는 집들의 각 호수가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의 집에는 X 표가 쳐져 있었다.

그동안 선우가 다녀간 집들을 표시해 놓은 거였다.


“앞으로 4곳...”

오늘 간 곳들을 제하고 아직 들어간 적 없는 집, 식량이 있을 지도 모르는 집은 이제 4 곳 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상해서 어떠한 식량도 남지 않았을 경우도 있다.


선우는 펼쳤던 노트를 접고 커튼으로 꼼꼼히 여민 유리창을 바라봤다.

'....곧 여길 떠야 될지도 모르겠는데.’


선우는 생각했다. 이 아파트를 벗어나 수많은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밖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는 과정을.


선우의 표정이 깊게 침잠됐다. 아무리 이런 능력이 생겼다 해도 저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들 천지인 저곳은 기관총을 들고 와도 못 뚫을 것 같았다.


선우가 암울한 생각에 잠긴 그때였다.


똑.

베란다 밖에서 무언가가 유리창을 건들었다.


똑.똑.똑.

규칙적으로.

똑.똑.

마치 노크하듯이 인기척을 내는 것 같았다.


선우의 심장이 쿵쾅댔다.

선우는 조용히 손가락을 총모양으로 만들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겨냥했다.


‘괴수? 젠장 그동안 너무 소란스럽게 돌아다녔나.’

간혹 이렇게 유리창을 건드는 괴수들이 있다.

그걸 막으려고 신문지와 커튼으로 꼼꼼히 가려놓긴 했지만 요 근래 너무 소란스럽게 해서 그런지 집까지 찾아온 거 같았다.


선우는 긴장을 머금은 채로 총 모양으로 편 오른손을 바라봤다.


유리창을 두들기는 정체 모를 무언가와 그걸 향해서 검지를 내세우고 있는 선우.


".........."

선우 스스로도 대게 없어보인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왼손도 검지를 펴 유리창을 향해 내밀었다. 쌍권총이었다.

선우는 한층 안정감이 든 표정으로 다시 유리창을 응시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선우는 일단 침묵을 선택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녀석도 흥미를 잃고 다시 갈 길을 갈 거라 생각했다.


“·········”

규칙적으로 두들기던 소리가 멎고 정적이 내려 앉았다.


‘간건가..?’

제발 그냥 가줬으면 좋겠다. 괴수가 집안으로 침입하는 경우만은 너무 최악이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소리는 선우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고 그의 평정심을 흔들어 놓기까지 했다.

선우는 침묵을 깨고 인기척을 낼 뻔 했다. 그 정도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 소리는 선우가 반년 전을 마지막으로 듣지 못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거기··· 누구···있나요..?”

선우의 눈이 커졌다.

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하게 저건 사람의 목소리였다.


‘혹시 구조대···?!’

선우의 가슴에서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고개를 들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구조대입니다. 어서 창문을 열어주세요.”

선우의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해주듯 목소리의 주인은 스스로를 구조대원이라 밝혔다.


‘드디어. 드디어···!’

선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1년 동안의 악착 같은 생존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거 같아 울컥한 거 였다.

선우는 유리창을 덮은 신문지와 커튼을 젖히고 어서 저 사람에게 자신의 생존을 알리려고 했다.


그렇게 유리창 앞으로 가 급히 커튼을 젖히려 했던 선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근데····· 어떻게 온 거지? 밖의 괴수들은? 총소리도, 어떤 전투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일말의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과연 정말 구조대일까?


“구조대입니다. 어서 창문을 열어주세요.”

자신을 구조대라고 소개한 이 존재는 재촉하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커튼을 잡던 손을 놓고 유리벽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떤 근거 없이 그저 직감이었지만 이 직감 또한 선우의 생존에 많은 기여를 했기에 선우는 이 느낌을 불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태양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지나가며 내리쬔 햇살이 선우의 집 유리창을 비추었다.

그렇게 커튼과 신문지 위로 유리창 너머의 존재의 윤곽이 그림자로 비추어 졌다.


사람의 형상이었다.

평범한 사람.

말하는 것도, 실루엣도 평범했다.


다만··· ‘벌레’처럼 유리창에 붙어있었다는 것만 빼면.


또 그림자의 머리로 보이는 곳에는 더듬이처럼 기다란 무언가가 두 가닥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유리창을 가볍게 쳤다.

똑.똑.


“거기··· 누구···있나요..?”

똑.똑.

“구조대입니다. 어서 창문을 열어주세요.”


무언가 이상했다.

유리창 밖의 무언가는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녹음된 소리처럼.


선우가 침묵을 지킨 채로 한참을 조용히 있자 소리가 바뀌었다. 가래가 잔뜩 낀 것 같기도 했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도....없나....?”

저것은 기괴한 목소리로 천천히 중얼거렸다.


선우는 숨죽인 채로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곤 양손을 저것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선우의 직감대로 저건 괴수가 분명했고 만약 저것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려 한다면 아니, 그 낌새라도 보이면 곧바로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

선우가 아무 말이 없자 저것도 침묵한 채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유리창을 응시하는 듯했다.


“구조대 입니다····· 열어주세요.”

다시 저것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조대라 소개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

.


“살려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괴물이 쫓아오고 있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몇 분의 시간 뒤 이번엔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아빠야. 괜찮아. 주변에 괴물 없어. 빨리 문 열어줘. 아빠가 먹을 거 구해왔어.”

다음으로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

.



“아빠···나···무서워···빨리 문 열어줘··· 빨리.. 열어줘..나 혼자 두지 마..괴물이 다가와..빨리..!”

어린 아이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약간의 소름이 끼쳤다. 사람의 목소리들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괴수라니.. 마치 괴담 속 장산범이 떠올랐다.


똑똑똑똑!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들에 반응이 없자 놈은 더듬이 같은 머리의 촉수로 유리창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인 노크였다.

하지만 선우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대로 흥미를 잃고 가주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왜....”

젊은남성, 여인, 중년남성, 어린아이가 동시에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놈이 말하기 시작했다.

“왜....없는....척...해...?”


‘이것도 낚으려고 떠보는 말인가?’

선우는 이 말 또한 숨어있는 사람을 꾀어내려는 놈의 지능적인 수작질인가 싶었다.


쩌적.

무언가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봤는데....여기로...들어..오는...거...”

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쩌저저저적.

유리창이 당장이라도 깨질 것 처럼 금 가는 소리가 더 커졌다.


탕탕!

선우는 기다리지 않고 놈의 머리와 가슴 부근으로 손가락총을 쐈다.


선빵 필승이랬다.

유리창은 작살이 났고 2개의 구멍이 뚫린 커튼이 바람에 펄럭였다.


선우는 가만히 양 검지를 내민 채로 베란다 유리창을 응시했다.


유리창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올 기세로 보여 바로 공격을 가한 것도 있었지만 괴수답지 않게 머리 굴려 역겨운 장난질을 하는 게 짜증이 났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히 구조대인 척을 해? 괜히 설렜잖아."


선우는 놈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아마 이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죽었을 거라 확신하고 경계를 풀었다.


“다른 멀쩡한 집 찾아서 또 옮겨야겠네.”

선우는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고 식량과 짐들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너무 소란을 부렸으니 어쩌면 다른 괴수들이 선우의 집까지 찾아올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선우는 급하게 필요한 짐들을 배낭에 챙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눈여겨본 집이 몇 개 있었다. 일단은 중요한 거만 챙겨 그 쪽에 있다 다시 돌아와 물건을 챙겨가기로 했다.


쩌저저적. 쩌적.

“······?”

배낭에 짐을 챙기고 있던 선우의 귀에 유리창이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유리창은 선우가 쏜 총에 다 깨져버렸으니 들려선 안 되는 소리였다.


쩌저저적. 쩌적.

그럼에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마치 녹음된 소리처럼.


선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소리 또한 괴수가 내는 소리였다는 걸.


“있....었..네...?”

사람을 닮은 무언가가 베란다의 난간을 잡고 서서히 기어올라오는 게 커튼 위 그림자로 비쳤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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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악연 그리고 선연(3) 21.06.12 57 10 9쪽
8 8화 악연 그리고 선연(2) +2 21.06.09 73 9 10쪽
7 7화 악연 그리고 선연 21.06.06 80 9 10쪽
6 6화 밖으로(2) +2 21.06.03 116 8 9쪽
» 5화 밖으로 21.05.31 122 11 11쪽
4 4화 변화(3) 21.05.29 125 13 10쪽
3 3화 변화(2) +2 21.05.26 143 12 8쪽
2 2화 변화 (삽화 추가) +1 21.05.21 168 14 13쪽
1 1화 아파트의 생존자 +2 21.05.17 198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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