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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녹개미 님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마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정차녹
작품등록일 :
2021.05.13 02:48
최근연재일 :
2021.06.12 12: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072
추천수 :
101
글자수 :
41,620

작성
21.05.17 16:11
조회
196
추천
15
글자
13쪽

1화 아파트의 생존자

DUMMY

더스트맨(DUST-MAN)

차녹개미

1화




“흐아아아아암.”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일어났다.

선우는 침대 머리맡을 더듬더듬거리며 후레쉬의 위치를 찾았다.


곧 침대에서 일어난 선우는 후레쉬를 키곤 배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향했지만.

츳.츳.츠츳.

후레쉬의 불빛이 점점 약해지며 깜빡 거리더니 급기야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

건전지의 수명이 다 한 것이었다.


다시 어둠이 내리앉아 컴컴한 집 안에 선우의 짧은 한숨 소리만이 들렸다.

선우는 이 어두운 집안에서 기억에 의존해 식탁까지 다가가 라이터를 하나 집어들었다.


칙.치직.

라이터에 불을 키자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의 위치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 중 촛대를 하나 집어들어 심지에 불을 붙이자 어두컴컴한 집 안을 주홍빛이 다시 환하게 밝혔다.


선우는 촛대를 후레쉬 대신 들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전기가 끊겨 제 역할을 못 하는 냉장고 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바람과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냉장고 안은 시원하지도, 그렇다고 음식이 들어있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건전지도 수명이 다 하고 식량도 다 떨어지고.”


어휴. 또다시 한숨을 내쉰 선우는 이번엔 안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잠깐의 시간 뒤 그는 활동성이 편한 츄리닝과 양팔을 청테이프로 잔뜩 감은 후드티를 입고 나왔다.

등에는 용적이 큰 가방과 함께 한 손에 가정용 망치도 쥐고 있었다.


후우! 현관을 나서기 전 짧고 굵은 심호흡을 한 선우가 망치를 꼭 쥔 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선선한 아침 공기가 퀴퀴한 집안의 공기를 비집고 들어왔고 문틈으로부터 아침햇살이 선우와 선우가 서있는 현관을 비추었다.


선우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현관문을 더 열어젖혔고 문턱 너머로 한 발을 내디디려던 찰나.


문 바로 뒤에 서있던 큰 키에 회색 피부를 가진 존재를 발견했다.

뚝···뚝···

양손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채로.


쾅!

저 괴물을 보자마자 문을 닫고 걸어잠궜다.


“······”

선우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굳어버렸다. 심장만이 미친듯이 쿵쾅대고 있었다.


“·····X발.”


그우어어어어·····

스르르르륵·· 스르르르륵··


문 밖의 괴물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천천히 긁어대는 걸 애써 무시했다.

“···오늘은 굶어야겠네 젠장.”


선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베란다로 향했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커튼과 신문지로 빈틈없이 가려진 창문.

그 커튼을 아주 살짝 젖혀 집밖의 상황을 살폈다.


앞 동의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덩쿨식물들.

그 아파트 중간 층에 매달려 두 팔과 두 발로 기어 오르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

도로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들과 그것들 사이를 오가는 좀비, 드물게 보이는 구울들.


쿵·········쿵········쿵········.

저 멀리 덩치가 아파트 6층 만한 거인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커다란 날벌레들까지.


“오늘도 엿 같은 하루구나.”



*

*

*



꼬르르르륵···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자보려고도 했지만 도저히 공복감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소파 옆에 놓인 페트병을 입에 갔다 댔다.

···········뚝········뚝.

식수도 다 떨어졌다.


“이런!”

선우는 빈 페트병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고 하필이면 방향이 현관문 쪽으로 날아간 페트병이 문과 부딪히며 가벼운 소음을 만들었다.

퉁.


그우어어어어어어···.

스르르르륵. 스르르르륵.


“········.”

심장 떨어질 뻔 했다.


“저 놈은 왜 안 가고 우리 집 앞에만 있냐고.”

X발새끼. X새끼···


그우어어어어···

스르르륵···스르륵..

문 밖의 구울은 그런 선우를 놀리기라도 하듯 현관문을 천천히 긁어댔다.


“제발 좀 지나가라고···.”


*

*

*



꼼꼼히 여민 커튼 사이로 아침햇살이 스며 들었다.

선우는 결국 허기에 더해 탈수까지 느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로 불면증은 고질병이 되었고 거기에 허기와 갈증까지 더해지면서 선우는 하루 종일 스스로와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꼬르르르르르륵!

물론 하루가 지났다고 바뀐 건 없었다.


“그래, 이렇게 굶어 뒤지든 저 구울한테 뒤지든 죽는 건 똑같은데!”


선우는 볼까지 내려온 다크써클과 벌게진 눈을 한 채로 망치만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문밖 괴물의 대가리를 깨부술 듯한 기세로 현관으로 다가갔지만 막상 문을 열자니 겁이 나 문고리까지 손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울이랑 싸울 생각을 하다니. 내가 잠깐 미쳤네..”


선우는 차마 문을 열진 못 했고 현관문의 렌즈를 통해 문밖의 상황만을 살폈다.


“어..?”

밤새 집앞에서 서성이던 그 구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사각에 있는 건 아닌 지 샅샅이 살펴 봤지만 어디에도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갔구나!”


물론 잠깐 구울이 안 보인다고 바로 집에서 기어 나오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선우는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렸다. 구울이 다시 나타날지 몰라 몇 시간은 잠자코 상황을 살폈다.


한참의 시간 동안 가끔 고양이만 한 크기의 쥐만 지나다닐 뿐. 구울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선우는 곧바로 가방과 망치를 챙긴 뒤 집을 나왔고 나오자마자 문을 단단히 잠궜다.

식량을 구해 오느라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집에 괴물이 침입하기라도 하면 낭패도 정말 그런 낭패가 없기 때문이었다.


철컥.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까지 해본 뒤 선우는 문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어제의 그놈이 문에 해놓은 낙서들을.

문 전체에 손가락 굵기의 붉은 선들이 낭자했다.

그 구울이 벽을 긁으며 묻은 피의 낙서들이었다.


“·····더럽게도 만들어놨네.”


짧은 감상평 뒤 선우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복도를 나아갔다. 목표는 아래층 집이었다.



*

*

*



ㄱ자 코너에 선 채로 손거울을 살짝 내밀어 아래층 복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


그어어어어···

안도하려던 찰나 좀비 한 마리가 걸어나왔다.

‘젠장.’


선우는 곧장 주머니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내들었다. 언젠가 이 난리통에 주운 여러 핸드폰들 중 하나였다.

눈은 놈을 주시한 채로 알람설정이 된 핸드폰을 놈과의 적절한 거리에 밀어넣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망치를 꼬옥 쥔 선우는 손거울로 놈을 살피며 때를 기다렸다.


10초 뒤. 핸드폰은 진동음과 함께 후레쉬를 터뜨리며 저 좀비에게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놈은 밝은 빛과 진동음에 홀린 듯이 핸드폰을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한 걸음씩.

턱·····스르륵·····턱·····스르륵·····

질질 끄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꿀꺽..!

마른침을 한번 삼킨 선우는 망치를 꽈악 쥐곤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어어어어어···

손거울을 통해 놈이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에 몰두하는 게 보였다.

조심히 다가갔다.

놈은 여전히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근거리까지 다가가 망치를 들어올린 그 순간.

좀비가 홱 머리를 쳐들어 선우와 눈을 마주쳤다.


퍽!!

좀비가 반응하는 것보다 선우가 망치를 내려치는 게 더 빨랐다.

선우는 엎어진 좀비의 머리를 향해 연신 망치를 내려쳤다.

퍽!퍽!퍽!

꿈틀..! 꿈틀..!

바닥에 쓰러진 좀비는 미약하게 경련하더니 머지않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선우는 얼굴에 튄 피를 대충 닦아내곤 머리가 박살 난 시체를 내려다 봤다.


“········죄송해요 아저씨.”


처리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선우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해졌다.

비록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 얼굴도 생전과는 달리 흉물이 돼버린 좀비를 죽인 거였지만 그 좀비는 생전에 선우와 알고 지낸 이웃이었다. 그것도 꽤 친했었던 이웃.


선우는 손을 뻗어 시신의 눈을 감겨주고 그의 옷 주머니들을 뒤졌다.

그렇게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신의 안주머니에 챙겼다.


“·····집은 깨끗하게 들어갔다 나올게요.”


선우는 그렇게 시신을 향해 중얼거리곤 피 묻은 망치와 함께 복도를 나아갔다.


결연한 표정으로 걸어가던 선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뒤돌아 시신에게 다가왔다.


“핸드폰 까먹을 뻔했네.”


유인용으로 쓴 핸드폰과 아저씨의 핸드폰까지 전부 챙긴 선우는 다시 복도를 나아갔다.



*

*



널린 게 집들이었지만 문이 열려 있는 집은 얼마 없었다.

숨죽여 이동하며 가장 가까이 있던 집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혹여나 이런 일자복도에서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나 문앞에 있던 그 구울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땐 방금의 좀비처럼 대응할 수 없다.


‘좀비를 만난다면 다행이지.’


좀비들은 인간수준의 완력에 지능도 떨어지는 편이고 일정확률로 생전에 가지고 있던 물품이라도 준다.

하지만 다른 괴물들은 잡기도 힘들고 아니 인간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놈들 천지고 정말 우연히 죽였다고 해도 성취감 외에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구울.

좀비처럼 사람이 변한 게 아닌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 중 하나다.

팔다리가 길어 2m에 달할 정도로 키가 크고 앙상하게 마른 외형을 가진 이 괴물은 평소에는 아주 굼뜨고 얌전한 편이다.


이렇게만 보면 좀비보다 더 잡기 쉬운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얌전한 성격도 눈 앞의 대상이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초. 구울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눈앞의 대상을 인식하는 대략적인 시간이다.

딱 3초 후에도 놈의 눈앞에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정말 종이처럼 찢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옆집의 형이 그렇게 두 동강나는 걸 목격한 뒤로는 구울을 보면 무조건 피해 다닌다.


‘그건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심지어 구울이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져 아주 묵사발이 된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시체인 줄 알았던 그 구울은 하루 뒤 완벽히 회복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애초에 죽일 수도 없던 거였다.



선우는 혹시 몰라 아직 문을 열어둔 채로 빈 집 안을 조용히 들어왔다.


하여간에 다른 괴물들도 끔찍한 건 매한가지이지만 구울이 가장 섬뜩하고 마주하기 싫은 녀석이다.


아, 구울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었다. 집에서 혼자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 괴물들 이름이나 지어줬는데 저렇게 시체나 뜯어먹는 모습이 꼭 구울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X발 저게 왜 여깄어.


문이 열린 빈집을 들어갔더니 구울이 한창 식사중이었다.


끼이이이익. 쿵.

조심히 뒷걸음쳐 나와 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

선우는 망치를 꼬나쥐고 다른 집으로 도망가듯 이동했다.


철컥.

다행히 아저씨의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선우는 주위를 살피며 아까 얻은 열쇠로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손에 든 곰팡이가 잔뜬 핀 식빵들을 내려다 봤다.

세상이 이렇게 돼버린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1년 동안 방치된 음식들은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식량을 구하기 점점 힘들어지더니 이제는 간신히 찾아도 이렇게 상하거나 곰팡이 핀 게 대부분이었다.

곰팡이 핀 식빵을 그대로 내려놓고 아저씨 집의 냉장고와 선반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아저씨 집에서 건진 건 500ml 생수 한 병과 봉지라면 1개가 전부. 아, 아저씨가 개를 키우셨던 건지 개 사료도 좀 있었다. 근데 이거 사람이 먹어도 되려나..


“····· 굶어죽을 바엔 이거라도 먹어야겠지.”


선우는 식탁 의자에 앉아 곧장 라면의 봉지를 뜯어 건면을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씹어 삼켰다.


수프는 뿌리지 않고 가방에 그냥 챙겨뒀다. 괜히 짠 거 먹으면 물만 많이 먹게 된다.


“하··· 이제 좀 살겠네.”

라면 반 개로 허기를 해결한 선우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이런 생활만 1년.

언젠간 오겠지, 나를 찾아주겠지란 생각으로 구조대를 기다린 지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소리다.


“오긴 오는 거냐··· 라디오로 그렇게 떠벌떠벌 대놓곤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데.”


그렇게 선우가 부엌에 멍하니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거실 소파 위의 있던 이불이 혼자 꿈틀거리더니 옆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작가의말

2021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차녹개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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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악연 그리고 선연(3) 21.06.12 56 10 9쪽
8 8화 악연 그리고 선연(2) +2 21.06.09 72 9 10쪽
7 7화 악연 그리고 선연 21.06.06 78 9 10쪽
6 6화 밖으로(2) +2 21.06.03 115 8 9쪽
5 5화 밖으로 21.05.31 120 11 11쪽
4 4화 변화(3) 21.05.29 123 13 10쪽
3 3화 변화(2) +2 21.05.26 142 12 8쪽
2 2화 변화 (삽화 추가) +1 21.05.21 167 14 13쪽
» 1화 아파트의 생존자 +2 21.05.17 197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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