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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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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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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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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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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회담장의 변變2

DUMMY

구체가 온전한 구형을 이루지 못한 건 아니었다.


짐승이 아가리를 벌려 먹이를 삼키듯. 구체가 죽은 이의 시체를 감쌌다. 다만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으니. 아랫단은 아래 층의 천장에 달라붙은 형상일 테였다. 회담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물체를 뚫으면서 기능하는 보호막이다. 빛은 무지갯빛 구체 안에 갇혔다. 완벽하게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막이 하나 씌워진 것처럼 아까보다 광량이 덜했다. 주변 사람들은 눈을 비로소 뜰 수 있었다. 지나치게 눈부신 빛 때문에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금 더 나아졌다. 필립이 찢어지듯 외쳤다.


“모두 거리 벌려!”


그가 내릴 수 있는 명령이 달리 없었다. 회담장에 기력술사 하나와 초상술사 하나가 있었다. 필립의 뒤쪽에 서 있던 이들 중 사내 하나와 여인 하나였다. 모두 공국의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었다.


회담장 테이블에 앉아 있던 무리들은 시체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를 썼다. 일반병들의 목숨을 갈아넣어서 막을 수 있는 사태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공국 쪽의 초상술사가, 허리춤에 끼워두었던 검고 얇고, 긴 막대기를 꺼내며 스킬을 써보려고 했다. 기력술사는 부리나케 달려, 필립의 근처에 다가와 그를 몸으로 보호했다. 필립은 기력술사로 인해 가려지는 시야를 확보하려 고갯짓을 하며 외친 참이었고.


곧, 엎어져버린 사내의 시체가 터져나갔다.


가장 가까이, 몇 걸음 안팎에 있던 제시는 놀라서 순간 몸이 굳었었다. 피한다면 어디로 피해야 할까. 자신이 피하면 로말린은. 그리고 이 곳에 있는 NPC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퀘스트의 목적은 일단 회담을 정상적으로 끝내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회담에 참여한 여러 NPC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고. 퀘스트, 동료, 자신의 목숨. 여러가지 것들이 머리에서 뒤엉켜 그녀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물론, 이게 현실의 일이었다면 제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몸을 던졌을 테였다. 그러나 이건 게임이었고. 그녀는 우선순위를 확인해야 했다.


아티피서들의 아이템들은 보통, 이동기, 공방기로 나뉜다. 다른 분류로는 유틸기, 전투기, 로도 나뉘고. 아이템을 나누는 말이었다. 한 개의 아티팩트가 여러 역할을 하는 종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류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녀는 드문 부류의 아이템을 끼고 있었다. 손발목에 차고 있는 네 개의 링은 곧 이동기이면서, 공격기의 역할도 하니까.


방어기라고 할만한 것은 달리 따로 있었다. 그녀가 든 검은, 공격기이면서 방어용 기물이었다. 아이템에 빛이 터져나왔고. 일단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녀 역시 MP를 쏟아냈다.


흰 빛의 검날이 빛을 낸다. 그리고 곧, 우산처럼 둥그런 막을 만들어내 자신의 전면부를 가렸다.


눈으로 드러나게 보이는 정도의 크기는 넓은 우산 정도였다. 그 정도면 무릎 아래의 몸이 노출되어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 역시, 칼날의 투명한 검날이 있었던 것처럼 방어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부분이 더욱 방어력이 높다.


죽은 사내의 시체는,


곧 폭발을 일으켰다.


쾅-!


강렬한 굉음이 울렸다.


회담장에 있는 사람들은 머리가 어질거리는 기분을 느꼈으리라. 다행이어다. 로말린의 대처가 빨라서 말이다.


무지갯빛 보호막, 이라고 외치며 만들어낸 보호막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빛과 똑같이 한 겹 막이 쳐져 있는 상태에서 난 굉음은. 어딘지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 먹먹했다.


화염, 연기, 뭐 그런 것들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쳤다. 무지갯빛 보호막은 한 번의 폭발을 자신의 내부에 담아내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마스터 급의 술사였다. 로말린은. 마스터 마기아임과 동시에 오브Orb 마스터였다. 아티피서로서 그가 다루는 아이템이 그것이다.


사실 두 종류의 능력을 갖고 있다지면 본질적으로 로말린이 선보이는 능력은 한 가지였다. 오브는 그의 스킬들을 강화시키고, 또 보조하는 역할을 하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잘 단련된 초상술사와 다를 바가 없으리라.


릿샤 애드윈을 비롯해서 많은 초상술사들 역시 아티팩트를 충분하게 다룬다. 아이템은 전투력을 쉽게 보충하고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릿샤 애드윈은 아티피서로서 마스터는 아니었고, 로말린은 오브 마스터이다.


그건 일반적으로 아이템이 갖고 있는 능력 이상의 기능을 발현한다는 뜻도 되고. 릿샤 등이 다루는 아티팩트들은 기본적으로 능력이 다소 제한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른 기능의 낙차가 적은 대신 아이템의 위력도 그다지 크지 않다.


릿샤는 아이템들의 기능을 온전히 재료로만 삼고, 자신의 초상술을 주로 사용하여 거대한 술식을 짜내곤 했다. 반면 로말린이 다루는 오브는 아이템에 생명이 담겨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역량과 기술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큰 위력의 낙차를 보인다.


릿샤가 한 개의 스킬을 발현할 때 10초의 시전 시간이 걸린다고 가상으로 가정해 보았을 때.

아티피서인 로말린은 오브를 사용해 1개의 스킬은, 1, 2초만에 발현하던가 혹은 아예 시전 시간이 없이 발현하는 수준이었다.


1개의 스킬에 대해서 완벽하게 특화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아이템을 이용하여 발현하는 능력이지만 마치 스킬 숙련도 레벨이 올라가듯 점차 위력이 강해지고. 시전 시간도 더욱 짧아지고 하는 변화가 있었다. 아이템 하나를 완벽히 다루어 나간다는 건.


릿샤 역시 자신의 초상술 스킬 한 개를 단련하여 시전 시간을 줄이는 등의 변화를 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위력이 줄어들게 된다.


초상술사는 허공에 술식의 토대부터 짜올려 스킬을 발현함으로. ‘스킬 이미지 구상’, ‘스킬 술식 작성’, ‘스킬 발현’, ‘발현 후 세부조정’으로 단계를 크게 나눠볼 수 있겠으나.

아티피서의 경우에는 이미지 구상과 술식 작성의 단계가 사라진 셈이었다. 이미 구현화된 술식이, 아티팩트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빠른 반응이 가능하다. 로말린이 오브로 쓸 수 있는 기술은 유틸기였지만.


그는 초상술사이나 더블 캐스터는 아니었다. 릿샤의 경우에는 트리플 캐스팅도 가능했지만. 그러나 아티피서로서 능력을 가짐으로써 스킬을 언제나 하나 더 덧붙일 수 있는 셈이었다. 오브는 로말린의 스킬을 보강해주고, MP를 채워주고. 위력을 증가시켜 준다. 중첩, 보조 스킬을 시간적 허비 없이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아티피서들도 마찬가지였다. 4, 5개의 스킬을 시전 시간을 없다시피한 속도로 쓸 수 있었으니. 초상술사로서 최고의 워메이지가 되기 위해서는 다중 시전이라는 재능이 필요하지만. 아티피서의 경우라면 그런 재능이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몇 종류의 스킬을 마구잡이로 난사할 수 있었다. MP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초상술사보다 근본적으로 빠른 리듬감의 전투가 가능해지는 법이었다.


아티피서 겸 초상술사. 더블 클래스의 로말린이 만들어낸 보호막이 폭발을 막아냈다. 사내의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회담장에 있던 이들은 얼얼한 고막에 적응해야 했다.


제롬왈드 또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처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회담장으로 가기까지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몬스터니 강도니. 온갖 위협적인 무리들이 나타날 수 있으니. 그러나 벨베르에 도착해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왕실 사절단의 행보와 일정을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 그리고, 산슈카와 벨베르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인물일 테였다. 저런 일을 벌인 건.

벨베르에 일어났던 의문의 사건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만. 그 사건이 제롬왈드에게 ‘현실’로 와닿지는 않고 있었는데. 제롬왈드라는 NPC는 그 순간에 그것을 현실로서 인지했다. 위기의식이 자리잡았고, 그의 표정으로 드러난다.


로말린의 방어막이 폭발을 막았으나, 암살자의 습격이 끝난 건 아니었다.


새로운 무리가 열린 창문이나 회담장의 문을 통해 들어온 건 아니었고.


철퍼덕, 엎어진 채로 죽어있는 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회담장에는 그 시체가 누워 있던 자리에 둥그런 원형의 구멍이 생겼는데, 그 근처에 시체가 남긴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폭발력은 로말린의 보호막 바깥으로 조금도 새어나가지 못했으므로 말이다.


스킬이 어떤 종류일지 알 수 없어서 로말린은 무지갯빛 보호막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반투명한 막 안쪽으로, 아래층의 전경을 엿볼 수 있었다.


치이이,


하는 소리가 났다.


가까이서 듣는 제시가 가장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씨.”


제시는 욕지기를 뱉고 싶었다. 기이한 이펙트Effect는 사건을 늘 암시한다. 스킬의 전조 현상이기도 했다.


남자가 남기고 간 핏자국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케이시, 그러니까 산슈카 측의 초상술사가 나무 지팡이를 뻗으며 외쳤다.


“회담장의 바람이여, 손끝을 따르라!”


축약된 시동어가 아니라 읊는 식의 말이었다. 저런 식의 스킬 시전은 상대에게 빠르게 파훼될 수 있었다. 어떤 형태와 위력의 스킬일지 짐작하기 쉬운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 역시 간단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다른 장점을 찾아보자면, 시전자의 머릿속에 강력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도와주었다. 사람의 뇌라는 건 한계가 있는 법이었고. 그건 보이지 않는 정신력, 상상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암호화된 시동어로 스킬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바, 상상한 바에 맞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것만큼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욱 더 유연하게 스킬을 다루고, 미세하게 컨트롤하고. 그런 일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시전어語였다. 물론 최고의 워메이지라면, 상대가 알아차리기 어려운 약어만으로 스킬을 빠르게 발현하고. 그런 방식으로도 실전 상황에 맞는 최고의 컨트롤을 해내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케이시의 말에 따라 회담장에 바람이 일었다. 고요하던 회담장은 소란스러워졌고. 군인들은 모두 대피를 했다. 남자의 시체가 있던 장소로부터 말이다. 요인要人을 지키기 위한 임무에 따라서 필립 경의 근처로, 그리고 산슈카 측 사절단의 근처로 이동해서 몸뚱이로 보호막을 세우고 있는 채였다.


케이시가 불러 일으킨 바람은 유색有色했다. 푸른 바람의 줄기가 이동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여러 갈래로 찢어진 그 바람의 줄기들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케이시의 조정에 따라서, 손끝과 나무 지팡이 머리의 미세한 움직임에 맞추어서.

바람의 줄기가 놀며 괴인의 피에서 솟아나는 검은 연기를 잡아챘다.


바람과 대기를 다루는 건 까다로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손으로 잡히지 않는 연기를 완벽하게 잡아채어 가두는 것까지도 말이다. 검은 연기는 언뜻 보기에도 유독해보였고, 제시는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창문 근처까지 물러났다. 벽에 막히자 곧 벽을 따라 옆으로 이동을 했고,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아직 정체가 밝혀진 건 아니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독이 든 듯한 독연기는 케이시의 스킬로 인해 허공에 둥글게 뭉쳤다. 그러나 양이 아주 많았다. 점점, 피가 끓어오르면서 연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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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308. 박제가 될 뻔한 천재를 아시오 24.05.11 9 1 23쪽
308 307. 파고 들기 24.05.10 8 1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7 1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6 1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9 1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6 1 20쪽
302 301. 눈알 24.05.05 10 1 15쪽
301 300. 나무 위의 사색 24.05.04 13 1 28쪽
300 299. 걸음(2) 24.05.04 7 1 14쪽
299 298. 걸음 24.05.04 8 1 15쪽
298 297. 어지러운 생각 24.05.03 9 1 15쪽
297 296. 제냐의 경우 24.05.02 12 1 21쪽
296 295. 세이드 소마 24.05.02 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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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9 1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12 1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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