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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담 님의 서재입니다.

나비의 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정한담
작품등록일 :
2012.11.14 16:25
최근연재일 :
2013.01.31 22:43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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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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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글자수 :
47,563

작성
12.10.0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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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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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
24쪽

새로운 세상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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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옥의 어머니는 당소련은 기녀였다. 당일옥이 어미의 성을 쓴 것은 그가 아비가 없는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아비가 없었으나 당일옥은 어미와 그녀의 친구들인 이모들 사이에서 행복했다. 그가 15살 되던 해에 당일옥은 그의 아비가 영웅회의 회주인 남궁천상임을 알았다.

창천무애검법으로 천하로부터 검왕이라는 호칭을 불리던 남궁천상은 정무맹의 맹주인 무당의 자허도인, 소림의 숭허 선사과 함께 정도 삼천의 일인이기도 했다.

아비가 있으나 아비의 성조차 물려주지 못한 아들로 인해서 한이 서린 피눈물을 흘리는 당소련을 보고 당일옥은 어미 앞에서 맹세했다. 어미가 원한다면 천하를 그의 무릎아래 두겠다고...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하오문의 문주가 되었고, 삼십이 되었을 때는 십전공자로 불리며 우내십일천의 한사람으로 불릴 정도의 강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마교와 사황련의 연합과 정무맹과 영웅회의 연합이 부딪친 3년간의 전쟁, 후에 파천대전(破天大戰)이라고 불렸던 이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천마교의 12대 천마인 탈명수라 갈중혁, 사황련의 연주인 혈기린 혁무광, 정무맹의 맹주이자 천하제일권인 무당의 자허 도인, 그리고 그의 아비인 검왕 남궁천상이 모였다.

당일옥이 그들과의 암중 비무에서 승리함으로써 그가 내세운 종전의 조건을 네 사람이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천하제일인'의 호칭은 천하사패(天下四覇)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를 받으며, 또한 가장 성격이 급한 갈중혁에게서 나왔다.

성격이 급한 만큼 화끈한 이 사내는 자신을 꺾은 당일옥이야말로 '천하제일인'이라고 세상에다 천명을 한 것이다.

당일옥의 백초지적이 되지 못했던 다른 강자들도 이견이 있을 수 없었기에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모두가 그를 '천하제일인'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그를 천하제일 강자로 처음 명명한 이는 갈중혁이었으나 이러한 자리를 제안한 이는 천마교 제일의 지낭(智囊)으로서 마뇌라 불리는 사마광이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자리가 천하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제안에 의해 전쟁을 일으켰던 각 단체에서는 자신들의 신물(信物)을 내걸고 향후 삼십 년 간의 상호 분쟁을 금지를 약속하는 무림 평화 선언을 하기로 하였다.

신물(信物)은 그야말로 신물(神物)이었다. 천마교의 성물은, 천마교의 전신인 조로아스터교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는 천마경(天魔鏡)이었다.

사황련의 신물은 죽은 이의 영혼을 조정할 수 있다는 사혼령, 정무맹 맹주의 신물은 비록 맹주가 무당의 소속이나 구파일방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의 항마장이었다.

그리고 영웅회의 회주인 남궁천상이 내놓은 것은 중국 제일의 명검으로 칭해지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였다.

어느 하나라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천하가 피바람에 잠길 수 있는 천하의 무가지보(無價之寶)가 마뇌가 준비한 원형의 탁자 위에 올려졌다.

마뇌가 준비한 테이블은 별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특이한 모양이었다.

천하의 패자인 네 집단에서 내어 놓은 신물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낼 예정이었다.

당일옥은 그러한 예식이 끝난 후 만인들 앞에서 자신의 출신을 밝힐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남궁천상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보려했다.

그러나 마뇌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드리는 순간 하늘에는 시커먼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이 마뇌를 감싸는 순간 무언가 이상을 느낀 당일욱이 마뇌를 향해 사자후를 외치며 그에게 몸을 날렸다.

그의 사자후에 피를 토한 마뇌였으나 곧 미지의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갔고, 마뇌를 잡으려 했던 당일욱 역시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이미 조화경에 근접한 그로서도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인해 무저갱(無低坑)과 같은 어둠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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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이런 개 같은 사실을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 퍽

끓어오르는 분노로 벽을 치자 주먹에서 시작해 팔목까지 욱씬- 하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르렀던 나로서는 최근에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통증이었다.

“흐흐흐~. 천하의 당일옥이 장기판의 졸만도 못했단 말이냐. 이런 빌어먹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나는 아예 바닥에 누웠다.

온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어린 시절 이후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눈물이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호인들은 나를 가르켜 ‘십전공자’라 불렀다.

이 별호가 말해주듯이 나는 무예는 물론이고 시(詩,)서(書),화(畵)에서 유가, 불가, 도가를 아우르는 학문적인 능력과 외도라고 경원시하는 천마교와 사파의 지식까지 두루 섭렵하여 각각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내 입으로 금칠을 하는 것은 그렇지만 천하제일의 두뇌라는 만박서생 제갈현도 눈 아래 두던 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만은 도대체 납득할 수 없었다.

현경을 넘어서 조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내가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은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정신이 들었을 때 완전히 낯선 장소에서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몸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머리에서는 지끈거리는 통증이 일어났고, 몸에는 토사물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하오문 출신인 나에게 이정도의 더러움은 자주 경험한 일이었고, 지금의 처한 상황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사황련이나 천마교에서 쓰는 소환술 중에 하나에 당한 것일 거야. 그들에게는 영혼을 전이하는 대법도 전해져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 후 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낯선 기억과 지식은 열다섯 살 이후 한 번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평정심을 깨고야 말았다.

“으아! 차라리 이곳이 저승세계였다면, 아니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받아들이기 쉬었을 것을…….”

정말 장자가 이야기한 ‘나비의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그러나 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이 빌어먹을 기억들은 그것마저도 부인하고 있었다.


김재욱!!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몸뚱이의 주인이었다.

김재욱은 ‘한상그룹’이라는 상단 - 아니 이곳의 지식으로는 회사라고 해야겠지 -의 우두머리가 낳은 서자였다. 첩의 자식인 셈이다.

나 역시 아비에게 버림받고 어미 손에 길러진 처지라 김재욱이라는 인간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충격적인 기억은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기녀인 어미 밑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절치부심하여 십전공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천하제일인'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바로 나 당일옥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머릿속의 기억은 내게 당일옥이란 인물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크크큭, 나의 피맺힌 삶이 모두 한낮 백일몽일 뿐이라고? 내가 열아홉 살짜리, 고등학생이 쓴 무협 소설 속의 등장인물일 뿐이라고 것을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내 존재가, 나의 인생이 한낱 어린아이의 낙서 나부랭이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눈을 들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의 낯선 인물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

얼굴이 굳어진 피의 흔적으로 인해 조금 기괴하기는 했지만 미욱하리 만치 착해 보이는 이 얼굴의 주인이 바로 김재욱이다.

내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몸뚱이의 주인이자, ‘풍류공자’ 당일옥을 만들어 낸 창조자라 할 수도 있다.

“천하의 당일옥이 어미 잃은 불쌍한 어린 아이의 몸에 깃든 것이냐, 아니면 정말로 나란 존재가 현실에 있지 않은 소설 속의 가상인물일 뿐이란 말이냐. 네 놈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고 있느냐?”

컴퓨터란 것의 앞에 앉아 김재욱이 쓴 소설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삭제하려다 지우지 못한 소설을 보며 나는 연신 입에서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크크크... 허접하다. 허접해!! 이 당일옥의 인생이 겨우 이런 어린 아이의 현실도피용 소일거리였단 말이냐. 킥킥 아니지, 아니야. 현실도피가 아니라 자위용 도구라고 해야 할까.”

평소에 나 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고 있고 있었으나 이를 제어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한 없이 허접하다는 비웃음을 날리면서도 가슴 한 쪽이 아픈 이 불균형의 상황을 어떻게 제어한다는 말인가.

“빌어먹을 사마광... 아니지. 마뇌 이놈~!! 아니다. 아니다. 그 놈의 죄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마뇌를 이런 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모두 작가 놈의 죄겠군.”

나는 마뇌 사마광의 수상한 수작을 제지하려다가 이곳으로 빨려들어 왔다.

그런데 막상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빌어먹을 김재욱이란 놈이 자신이 쓰던 허접한 무협소설의 2부를 쓰기 위해 갑작스럽게 만들어 놓은 설정이었다.

소설이 끝나갈 무렵 마뇌의 캐릭터가 급작스런 변화를 겪었다.

그는 ‘루드 반 체히스터’라는 이름으로 9써클에 이르렀던 어둠의 대마법사였으나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이계인 강호로 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마나라는 것이 희박한 강호에서 자신의 원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신성력이 높은 신물을 모아 차원 이동대법을 진행했던 것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3년간의 ‘파천대전’도 마뇌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란다.

결국 나를 포함해 마뇌 사마광을 만들어 낸 빌어먹을 창조주 김재욱은 천하의 패자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마뇌의 수작에 의해 주인공인 내가 드래곤이라는 용과 온갖 괴물들이 살아가는 세계로 떨어져서 새로운 세계의 영웅으로 살아가는 설정을 해 놓았었다.

“흐흐, 만약 이 인간의 소설에 따라 계속 삶을 살았다면 드래곤이란 동물도 베어버리는 짜릿한 경험을 할 뻔 했군. 하지만 놈의 글 어디에도 천마교의 천마경과 남궁천상이 가지고 있는 천하 명검인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모조품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진품은 내가 훔쳐내고 모조품을 갖다 놨었는데.……. 킥킥킥. 내가 이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도 작가란 놈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겠지. 내가 이곳으로 왔다면 사마광 그놈도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놈. 작가 놈의 설정이었든 뭐든 나를 물 먹인 놈을 용서한다면 내가 당일옥이 아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오체분시(五體分屍)하고 말겠다.”


김재욱의 허접한 소설, 킥킥... 아니, 아니 나의 일생이라고 해야겠지.

컴퓨터에 담긴 글을 찬찬히 읽어가면서 나는 나의 머릿속에 담긴 그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려 보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당일옥 본래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허접한 소설 속의 이야기였을 지라도 아귀다툼의 하오문과 도산검림(刀山劍林)의 비정강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의 끈기와 냉철한 두뇌였다.

흐흐, 아니지. 내 삶이란 것 자체가 설정이라고 해야겠지.

“어쨌든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나를 창조한 창조자인 김재욱이란 아이는 죽었고, 나 당일옥이 그 몸뚱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킥킥, 또 모르지 이것마저도 누군가의 소설나부랭이일지도…….”

김재욱이란 놈은 나 당일옥을 무예 뿐 아니라 학문에도 능한 인물로 묘사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서오경, 도경, 불경 등의 구절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김재욱이란 아이의 머릿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 아이는 ‘학이시습지면...’ 하는 논어의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학문적 기틀도 없었다.

“하하하, 웃기지 않은가? 자신을 넘어서는 피조물을 만들어낸 반쪽짜리 창조주라니.”

김재욱이 쓴 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지만 너무도 피상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어미가 ‘홍화루’의 일패기생이고 내가 그곳에서 기생들에게서 자랐다는 것은 나와 있으나, ‘홍화루’의 홍화(紅花)가 ‘붉은 꽃’, 다시 말해 ‘한창 물이 오른 꽃’을 의미한다는 내용도 없다.

더구나 나의 이모들이 되어주었던 150여명의 꽃들 중 언급된 이는 어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춘앵 이모와 나의 시중을 들어주던 향난이 정도였다.

김재욱의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당일옥이란 존재가 허접한 작가가 쓴 작품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작가란 존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창조주는 전체의 얼개만 잡을 뿐이고, 작품 속의 존재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덧 내가 단순한 꼭두각시이거나 정신적 자위행위의 도구였다는 자학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그 순간부터 나의 두뇌는 빠르게 활성화되어, 현실의 상황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세상, 비정강호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단시일 내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우선은 김재욱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이제 이 몸의 주인은 나 ‘당일옥’이 될 것이다.


나 당일옥이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다.

삼십오 년의 삶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지도 않았고, 아이의 낙서로 치부될 만큼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비록 세상이 뒤집어지는 정신적 공황을 겪기는 했지만 나의 자존감을 버릴 정도로 나약한 존재는 아니다.

어차피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이기에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김재욱은 어떤 인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김재욱은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지금 나의 결심은 나의 정신적 붕괴( 이것을 여기의 용어로 ‘멘붕’이라는 말을 쓰더라. )를 이겨낸 정신적인 깨달음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야 나는 내 정신으로 밀려들어오는 김재욱의 기억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김재욱에게는 내가 있던 강호가 환상의 공간이었겠지만, 그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곳이야말로 정말 환술의 세계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것이 넘쳐나는 세계로구나! 인간이 하늘을 날고, 컴퓨터라는 것이 혈관처럼 세상에 퍼져 있는 세상이라니…….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두 헛된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의 허황되게 꾸며낸 일이라 했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

이 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김재욱의 기억은 더욱 빠르게 흡수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의 자아의 일부는 쉽게 합쳐지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천상심공이라면 억지로라도 합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자아와의 만남은 무당의 소환술을 공부하면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누구나 죽게 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바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재욱의 영혼도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테고 그것이 념(念)이라는 불완전한 자아의 형태로 이 몸속에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의 내게는 이러한 사실보다 내가 ‘천상심공’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천상심공’은 무당의 ‘양의심공’과 유사한 심법으로 나만의 독보적인 무공이다. 나는 천마교를 세운 천마의 비전인 ‘천마신공’과 무당의 ‘양의심공’의 원리를 융합하여 ‘천상심공’을 만들어냈다.

사실 ‘천상심공’은 무공이라고 보다는 정신 수양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상심공’의 운용을 통해 증가하는 것은 내공이 아니라 정신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언어로 표현하면 초능력 또는 염력 정도가 될 수 있을 텐데, 어쨌든 나는 ‘천상심공’의 힘으로 ‘십전공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35세의 나이에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천상심공’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그 깊이가 커질수록 부동심도 깊어지며, 더불어 정신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정신의 힘은 염력으로 사물을 움직이거나 상대를 제압하는 등의 능력을 낼 수 있다.

‘천상심공’의 가장 큰 장점은 기절하거나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공을 모으는 것이 아니기에 주화입마의 위험이 없기에 가능한 것이요, 내공 한줌 없는 현재의 몸으로도 ‘천상심공’을 운용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이러한 이유이다.

이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천상심공’은 김재욱이란 아이가 게임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의 레벨을 살필 수 있는 상태창이란 것에서 아이디어를 갖고 왔다.

제길.. 그러나 이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록 미약하지만 내가 ‘천상심공’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가 ‘천상심공’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저장된 다른 무예들도 이 세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낯선 곳에 떨어진 나로서는 내가 가졌던 일신의 능력을 이 세상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구명줄을 잡은 것과 다름 없다.

참고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구파일방의 무예, 사황성 및 천마교의 무공까지 두루 저장되어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내가 있던 세상에는 ‘도둑의 왕’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그림자의 종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그를 가리켜 ‘무영신투(無影神偸)라고 불렀다. 내가 바로 13대 무영신투였다.

남들이 학문에 뜻을 둔다는 지학(志學)의 나이 15세에 나는 도둑질에 뜻을 두고 12대 무영신투의 제자가 되었다.

내가 무영신투의 제자가 되는 순간 역대 조사(祖師)들이 훔쳐서 모았던 재물과 무공비급이 모두 내 것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재물을 쌓아놓고도 쓸 생각이 없고, 비급을 훔치고도 익히지 못했던 아니 익힐 필요를 못 느꼈던 조사(祖師)들과는 달리 나는 재물을 아낌없이 썼고, 쌓여있는 비급을 모조리 익히고 탐나는 비급이 있으면 소림사든 천마의 무덤이든 닥치지 않고 털었다.

이렇게 도둑질한 것들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었던 나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솔직히 한 마디로 나를 규정짓는다면 ‘무사’나 ‘천하제일인’과 같은 단어보다는 ‘도둑’이니 ‘야왕(夜王)’이니 하는 단어가 더 맞을 것이다.

내 몸 속에는 뼛속까지 도둑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흠흠~. 자랑이 아닌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겠다.


이 세상에 와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서 나는 무척 놀랐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이 세상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무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생의 나라면 대포나 총 같은 무기에 굴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사일이나 핵폭탄 등은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인간의 탐욕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힘을 추구하는 것은 내가 있던 세상이나 이곳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세상에서 예전의 능력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생존하고, 뜻을 펼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무기들과 직접 대면을 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지난 생의 힘을 되찾아서 그 어떤 무기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천상심공’을 통해 찬찬히 내 몸과 내가 처한 상황을 관조한 나는 서서히 두 눈을 떴다.

아마 다른 이들이 봤다면 내 두 눈에 푸른빛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으리라.

‘천상심공’에 전념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내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지만 나의 조그만 의지만 있어도 ‘천상심공’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운용을 할 수 있다.

이전의 삶에서는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상심공’을 운용했는데 꾸준히 수행만 한다면 죽거나 기절하기 전까지는 ‘천상심공’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운공을 끝낸 나는 우선 쾌쾌한 냄새의 근원이 되고 있는 바닥의 토사물을 치웠다. 그리고 샤워를 시작했다.

김재욱의 기억으로 인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샤워기란 물건만 해도 정말 신기하다.

이런 것이 존재했다면 내가 있던 ‘홍화루’의 기녀들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샤워와 함께 머리에 굳었던 피딱지가 묽어지며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몸이 깨끗해지니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

어쩌면 지금 이 세계도 꽤나 괜찮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샤워 후에 거울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조금 둔해 보이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선한 눈매에 쓸 만한 얼굴이다.

물론 예전의 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킥킥.. 이놈 이거 뱃살 잡히는 것 좀 봐라. 천하의 당일옥의 몸에 뱃살이라 정말 사는 게 재미있구나.”

나는 여러 겹으로 잡히는 뱃살을 만져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천상심공’을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무당의 ‘양의심법’에 착안해서 심령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된 이후 ‘천상심공’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운공이 되고 있다.

물론 전심전력으로 할 때의 십분의 일도 되질 않는 정도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차곡차곡 ‘천상심법’의 기운인 ‘천상지령’을 쌓을 수 있으니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지금 내가 운용하는 심법은 천마교의 ‘마천단기’와 소림의 ‘달마심법’ 등과 함께 무림 최고의 심법으로 전해지는 ‘북명신공’이다.

나는 나의 독문심법이 된 ‘북명신공’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김재욱의 기억을 통해 내가 알아낸 사실은 내가 익힌 ‘북명신공’이라는 이름이 김용이라는 무협작가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명색이 작가란 놈이 창의성이 전혀 없는 것에 분노해서 주화입마에 걸릴 뻔 했다.

물론 이런 나의 분노와는 상관없이 ‘북명신공’은 자연스럽게…… 아니 아주 힘겹게 몸속 기의 통로를 따라 순환하고 있었다.

곳곳의 혈맥이 막혀있으니 기를 순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는다.

“20 여년의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일이다. 더구나 지금 당장 이것 말고 할 일도 없으니 찬찬히 이 몸에게 기의 통로를 기억시키면 되는 일이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도록 하자. 당일옥.. 아니, 아니 앞으로는 김재욱이라고 해야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북명신공의 운공에 전념했다.

상승의 무예는 정신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궁극에는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므로 몸이 철저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금을 통해 제대로 익힌 이가 없을 정도로 난해한 ‘북명신공’이 무림 최고의 심법인 이유는 깨달음의 크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커져가는 발전 속도 때문이다.

다른 무공이나 심법은 어느 경지에 이른 후에는 그 발전 속도가 지체되기 마련이지만 ‘북명신공’은 깨달음만 받쳐준다면 발전 속도가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증가하게 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북명신공’을 익히기 어려운 이유는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는 기의 흐름으로 인해 내공이 커질수록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북명신공’을 접하는 기연을 얻었던 많은 고수들이 연공 중에 폐인이 되었다.

오죽하면 저주받은 마공으로까지 불리며 무림에서 연공을 금지했을까.

그렇지만 내게는 천상심공이 있기에 ‘북명신공’을 운용하는 중에도 내 몸의 상태와 기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천하제일좌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킥킥, 낯선 곳에 떨어진 주제에 자랑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찌 되었든 내가 ‘천상심법’과 ‘북명신공’을 익힐 수 있는 이상 이 낯선 세상에서도 충분히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99 온밝누리한
    작성일
    12.10.04 13:12
    No. 1

    글을 조금 정리하심이.....
    읽히 힘들어요
    눈이 아파요
    m(_`````_)m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부정
    작성일
    12.10.04 15:43
    No. 2

    소재가 신선하네요. 자신이 쓴 글로 가는 건 있어도 자신이 쓴 글의 주인공이 죽은 몸에 빙의한다니요. 무협 부분에서의 테이블이란 단어가 묘하게 거슬리긴 하지만요. 현대인의 관점으로 서술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꺼릴 이유가 없다면 무협에서의 묘사는 외국어는 안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쭈뱀
    작성일
    12.10.04 23:18
    No. 3

    설정들이 쏟아져나오는군뇨...
    < > 이 표시는 없애거나 눈에 덜 띄는걸로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요
    읽다보니 징검다리처럼 ~심공 밖에 기억에 남질 않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바닐라꽃
    작성일
    12.10.05 14:09
    No. 4

    당일옥의 어머니는 당소련은->당일옥의 어머니 당소련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트래픽가이
    작성일
    12.10.10 18:44
    No. 5

    마뇌가 테이블에 신물들을 올려놓는군요..
    무협인데, 탁자라고 하심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cj**
    작성일
    12.10.15 17:19
    No. 6

    마뇌도 같이 넘어와 ㅈㅝㄴ공 하고의 대결이 될꺼 같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일화환
    작성일
    12.10.16 05:56
    No. 7

    십전공자이라는 - > 십전공자라는
    재미있네요. 추천 보고 왔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12.10.24 12:26
    No. 8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잎
    작성일
    12.11.02 23:51
    No. 9

    넘 많은 설명에 어지러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Indianbl..
    작성일
    12.11.05 12:17
    No. 10

    설정은 맘에 들지만. 2~3편으로 나눠서 해주셨음 좀더 나았을 뻔 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키온
    작성일
    12.12.01 00:44
    No. 11
  • 작성자
    Lv.6 소설독자7
    작성일
    13.02.01 14:52
    No. 12

    천상심공이 어떻게 상태창과 관련이 있는지 두고봐야겠군요 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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