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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담 님의 서재입니다.

나비의 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정한담
작품등록일 :
2012.11.14 16:25
최근연재일 :
2013.01.31 22:43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27,803
추천수 :
555
글자수 :
47,563

작성
12.10.01 22:09
조회
19,490
추천
66
글자
7쪽

김재욱

DUMMY

“모두 2만 5천 5백원입니다.”


김재욱은 양복 주머니를 뒤져서 주섬주섬 3만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은 후 편의점을 나왔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지만 키가 180cm에 110Kg가 넘는 거구인지라 그가 소주와 안주를 사고 계산을 할 때도 편의점 주인은 학생증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덩치도 덩치지만 검은 양복을 입고 있어서 학생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가을 햇볕이 유난히 눈을 부시게 한다.

몇몇 초등학생들이 축구공을 들고 재욱의 앞을 가로질러 뛰어간다.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해버렸는데 이놈의 세상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불과 보름 전에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사흘 전에 엄마가 죽었다.

오늘 그 엄마를 화장하고 오는 날이다. 오직 한 남자만을 바보처럼 쳐다보고, 그 남자가 자신을 신데렐라를 만들어 줄 날만을 꿈꾸었던 바보 같은 여자였지만 어쨌든 그를 낳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으니 오늘은 수학여행 때를 빼고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술을 먹어볼 생각이다.


엄마는 소위 말하는 재벌의 세컨드였다.

우리나라에서 30대 그룹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언저리를 맴도는 대기업인 ‘한상그룹’ 회장의 비서였던 엄마는 곧 그의 내연녀가 되었고, 얼마 후 김재욱을 낳았다.

그 후 죽기 전까지 그녀의 꿈은 한상그룹의 안방마님이 되는 것이었다.

김재욱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들의 집을 찾아오는 것은 일 년에 서너 번뿐이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진한 화장을 하고 생활이 힘들다, 우리 아들의 장래는 어떡하느냐는 등의 하소연으로 그의 연민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때마다 그 남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반복했으나 재욱은 알고 있었다.

“킥킥킥, 온 세상 인간들이 다 아는데 오직 당신만 몰랐어요. 그 사람에게 우리가 얼마나 짜증스런 존재였는지 오직 당신만 몰랐단 말이에요. 이 불쌍한 양반아!”

병을 입에 대고 몇 번을 들이키자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재욱은 죽은 엄마의 사진을 부여잡고 살아생전에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듯이 넋두리를 시작했다.

“그 사람이 당신을 볼 때 얼굴에 가득 담긴 짜증과 권태를... 왜 당신만 몰랐을까요. 그래서 바보같이 혼자 해바라기가 되어서 그 남자만을 바라보고 살았단 말이에요.”

엄마는 정말 해바라기 같은 여자였다.

오직 자신을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줄 남자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몸매 가꾸고 화장하고, 한상그룹의 주식 동향 등만을 들여다보며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재욱에게 아버지, 엄마는 오로지 생물학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뿐이었다.

어린 아이였을 때도 그에게 엄마가 되어준 사람은 집안일을 돌봐주던 아줌마였다.

그나마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는 그에게 정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인 김신성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TV뉴스를 봤을 때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뉴스를 보고서는 방바닥에 울릴 정도로 쓰러지며 실신을 하더니 며칠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집에서는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다.

연신 뭐라고 궁시렁 거리며 불안한 증세를 보이던 어미는 결국 수면제를 과다 복용으로 죽고 말았다.

아마 엄마나 김재욱에게 상속된 유산이 별로 없었던 것이겠지.

엄마의 상을 치루는 동안 문상을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낙 엄마의 인간관계가 좁았던 것도 있었지만, 김재욱 자신이 누구에게 엄마의 죽음을 연락할지도 몰랐다.

이모네 식구들이 와서 첫날을 지켜줬으나 그뿐이었다.

“지금 집은 누구 명의로 되어 있는 거니?”

“아무리 네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네 몫이나 엄마 몫으로 남겨진 유산이 있을 테니까 너는 걱정이 없겠다.”

그런 질문을 해대는 이모네 식구에게 재욱은 ‘이 집은 죽은 아비의 명의에요. 유산이 있었다면 엄마가 그렇게 수면제를 먹고 죽지 않았겠지요. 우리 식구는 철저히 버려졌어요.’ 하고 마른 웃음을 웃어 주었다.

이모네 식구들은 발인 때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엄마를 화장하고 유골함을 안치시킬 때 김재욱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죽은 엄마의 인생이 불쌍해서 우는 것인지, 천애고아가 된 자신의 신세가 불쌍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줄줄 눈물이 흘러내렸다.

6병이 한 세트로 된 소주병 중에서 네 병이 이미 비었다. 이렇게 술을 먹으면 취할 줄 알았는데 화장장에서 다 흘렸던 줄 알았던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릴 뿐 정신은 말짱했다.

재욱은 몸을 비척이며 일어나서 컴퓨터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화면에는 장르문학이 연재되는 사이트의 바탕화면이 떠있었다.

이곳에서 재욱은 무협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선작을 했고, 몇몇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기도 했다.

습작이었기에 출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재욱의 소망과 함께 그가 남몰래 꿈꾸던 그의 은밀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재욱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힘 있고 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 치이거나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 세상의 중심으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지배하는 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다음에는 그러한 꿈을 담아서 남들이 비웃을 지라도 먼치킨 물을 쓰고 싶었다.

악당을 무찌르고 약자에게 힘이 되는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글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일 년여 동안 써왔던 글이지만 아무런 미련 없이 모두 지워버릴 생각이다. 운동도 공부도 딱히 잘하는 것 없는 그가 작가가 되어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남모르는 꿈도 이제는 이 글과 함께 지워질 것이다. 이제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힘겹고 지겹기만 하다. 철이 든 때부터 어차피 혼자였던 인생이지만 이제는 정말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렸다.

재욱은 마우스를 삭제 버튼을 누르다 그만 구역질이 밀려와 몸을 일으켰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할 것 같아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데 화장실까지 이르기 전에 구토가 밀려나왔고, 먹었던 내용물을 바닥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연 머리가 핑 돌더니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그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쓰러지면서 어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강한 충격이 한번 오더니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바닥으로 쓰러진 그의 머리를 적시기 시작한 피는 이제 그가 토해놓은 토사물 위로 번져가고 있었다. 재욱의 몸은 갑작스럽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 잠잠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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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욱 +8 12.10.01 19,491 6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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