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한담 님의 서재입니다.

나비의 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정한담
작품등록일 :
2012.11.14 16:25
최근연재일 :
2013.01.31 22:43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27,810
추천수 :
555
글자수 :
47,563

작성
12.10.01 22:14
조회
11,638
추천
39
글자
11쪽

새로운 세상3

DUMMY

- 학학…. 어쨌든 내 몸이잖아. 난 너의 소원을 들어줬는데~. 너도…….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져가는 그의 사념이 나에게 전달한 마지막 의지였다.

“갈~~!”

순간적으로 나는 사자후를 내뿜었다. 비록 터럭만큼의 내공일 지라도 내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다. 사자후는 장경각에서 훔쳐 온 사술과 미혹을 물리치는 소림의 술법이다.

“김재욱! 네 놈은 내가 네 놈의 억압된 욕망을 채우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혹시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줬다고 생각하는 거냐? 만약 그랬다면 너는 그 순간을 훼방하면 안 됐었어. 내 앞에서 남궁천상이란 인간이 고개를 숙이는 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망쳐놓고. 킬킬킬.. 어쨌든 네 놈 몸값은 해야겠지. 좋다. 네 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네 놈이 이 당일옥을 만들었고, 허접하긴 하지만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으니 한 번 더 네놈의 뜻대로 살아주마. 대신 이제 영원한 안녕이다~.”


나는 김재욱이 눈앞에라도 있는 것처럼 고래고래 큰 소리를 쳐댔다. 한 마디로 미친놈처럼…. 놈의 사념을 완전히 지우는 데 실패했다. 놈의 사념은 주기 전에 무슨 원한이 많았는지 원념(怨念)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푸는 방법은 놈의 소원을 들어주는 방법이다. 게기랄… 나는 <북명신공>을 통해 놈의 원념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자아와의 합일을 꽤했다. 이제 놈의 자아는 사라지고 놈의 념의 일부가 나의 자아와 융화가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전의 김재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전의 당일옥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김재욱과 당일옥이 하나로 융화이 되어버렸으니 새로운 잡탕 인간이 탄생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몸의 주인은 바로 나다. 김재욱은 죽었고 나는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킬킬킬~.

이 놈 소원이라는 것이 예전에 내가 꿈 꿔왔던 소원이랑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고 싶다. 뭐 이런 극히 유아적인 욕망이다. 미친놈. 친 애비, 에미가 다 죽었는데 누구에게 인정을 받겠다고….

쩝.. 말을 해 놓고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난 그래도 이곳으로 떨어질 때까지는 엄마가 살아계셨는데, 아비란 존재야 살아있든 죽었든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래 이왕 뱉은 말인데 까짓것 놈의 소원대로 살아주는 것이 뭐 어려우랴. 어차피 놈의 소원이란 것이 별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소원대로 살아주련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놈은 꾸준히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꿈꿔왔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대상이 얼마 전에 전화를 한 큰 엄마라는 여자라는 것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애비, 에미도 아니고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여자, 그것도 함께 지낸 시간이 거의 없었던 여자에게 인정받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다니…. 물론 놈의 무의식이니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김재욱이란 놈의 첫사랑은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김재욱의 자아를 동화시킨 후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이 남는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남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보거나 몸을 단련했으나 지금은 부지불식간에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하게 된다. 김재욱이란 놈이 원래 컴퓨터에 폐인 수준이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나의 궁금증과도 맞닿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디까지가 죽은 놈의 습관이고 어디부터가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인지가 불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사소한 부작용이다.

김재욱은 게임이란 것도 좋아했는데, 그 속은 내가 있던 ‘강호’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피가 끓는 부분도 있으나 그뿐이다. 바다를 항해한 선원이 연못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듯이 도산검림(刀山劍林)을 헤쳐 온 내게 게임의 세상이란 조악한 모조품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놈의 습관과 욕망은 이제 나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새롭게 갖게 된 취미가 음악 감상이다. 기계만 조작하면 흘러나와 원하는 음악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서 만난 축복이다. 이곳의 음악은 내가 이전에 알던 음악과는 궤를 달리하나 몸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계속 듣고 있다. 클래식이란 것은 정신의 안정에 좋았고, 가요란 것은 기를 자극하고, 신명을 내는데 좋기에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이 몸의 원주인이 갖던 습관대로 TV라는 것을 틀었었다. 호기심도 있었기에 한동안 지켜봤는데 신기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강렬한 자극에 어지럽기만 해서 이제는 잘 보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인터넷을 하고 있자니 정보의 바다란 말이 실감이 난다. 직접 접해보니 세상에 돌아가는 원리가 금세 파악이 되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하오문의 정보수합단체인 밀본의 많은 인원이 전혀 필요 없을 것 같다. 잠시 여러 싸이트를 둘러보던 나는 지난 번 이후로 애써 피하고자 했던 싸이트에 접속을 했다. 김재욱이 허접한 소설을 썼던 바로 그 사이트.


- 빨리 다음 편 부탁드려요. 추천 꾹.

- 별로 새로운 내용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읽게 되다니. 님하.. 나름 중독성이 있네요.

- 매일 연재하시더니 중요한 순간에 잠수를 타시다니. 흑흑흑…..


여러 개의 댓글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평정심을 가지고 천하사패에게서 ‘천하제일인’으로 추대되던 순간의 장면을 다시 읽어보았다. 젠장 당시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듯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다. 마뇌 사마광 이 세상 어디엔가 살아만 있어라. 내가 천마교에서도 구경 못했던 처참한 지옥을 구경시켜줄 테니….

“큭큭…. 다시 봐도 허접하기 그지없군. 이런 필력으로 작가를 꿈꿨다니….”

김재욱의 꿈은 작가였다. 십절공자 당일옥이 파천대전을 종식시켜 세상의 인정을 받았듯이 십절공자 김재욱은 작가로서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이런 허접한 솜씨로.. 주제에 필명이 십절공자라고…. 시원찮은 놈. 이런 놈과 명호가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충동적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눌렀다. 그리고 그곳에 내용을 채우기 시작했다. 내가 써내려간 것은 나에게 도둑질을 가르쳐준 우리 사부의 이야기였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십절공자(十絶公子)’에서 ‘십절’은 열 가지가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십이란 완벽의 숫자이다. 즉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뜻이다. 내가 좀 잘난 척 한다고 재수 없어하지는 말아라. ‘십절’은 내가 붙인 명호가 아니니까. 얘기를 계속하자면 10절에는 문(文)의 영역도 포함된다. 처음에는 잠시 서투르게 시작된 자판 소리는 점차 빠른 속도를 냈다, 나의 손가락은 전광석화처럼 자판 위를 날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내가 쓴 글, <무영신투>를 등록시키며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빌어먹을……. 지금의 이 뿌듯한 미소는 절대로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정도로 뿌듯해할 사람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김재욱의 잔재가 만들어놓은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다. 몸과 정신의 주인으로서 나는 이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서적인 영역이나 습성의 부분에서는 지금처럼 김재욱의 잔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는 한다. 내가 충동적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일 뿐 어떤 문학적인 긴밀성도 갖추지 않은 작품이다.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문학적인 긴밀성을 ‘플롯’이라고 하더군. 하여튼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쓰고 만족해하는 미소라니. 십절공자의 이름이 부끄럽다. 부끄럽다. 어디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아무리 충동적으로 썼다지만 이런 글을 쓰고 뿌듯한 미소를 짓던 내가 부끄럽다. 내가 다시 여기다 글을 또 쓰나봐라. 그러나 이러한 나의 결심은 <북명신공>을 운영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전보다 내 혈관을 타고 도는 북명의 힘이 훨씬 강하고 기운찬 것이다. 정말, 정말 빌어먹을 일이지만 김재욱이 가졌던 원초적인 욕망이 채워질 때 내 몸의 힘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살았고, 놈은 죽었으니 내가 승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론을 얻고 보니 아직도 나는 놈의 자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생긴다. 이 씨방새가 죽어서도 날 갖고 노는구나~!!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배달 음식도, 식당 밥도 당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동스럽기까지 했던 짜장면도 영 먹고 싶지 않다. 이것도 다 그놈 탓이다. 빌어먹을…. 이놈은 살림살이에 손을 놨던 엄마 탓에 식당음식이 아주 질렸나보다. 생각만 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수는 없지.

결국 나는 옷걸이에 걸린 야구 모자를 쓰고, 지갑을 챙겨 든 후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준비하려면 시장을 봐야하니까. 오늘 남경의 <영춘각>의 숙수에게서 배운 불닭 요리를 한번 해볼까. 갑자기 죽엽청주 생각이 나네. 그 동안 새로운 세상에 와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오늘 오랜 만에 한잔 먹어봐야겠다.


집에서 오랜 만에 부린 솜씨로 저녁을 차려놓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데 큰 엄마라는 여자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재욱아 네 큰엄마다.

“어쩐 일이세요?”

- 어쩐 일은 지난번에 했던 유산 이야기를 마저 하려고 한다.

“그런 것은 변호사를 통해서 해도 되지 않나요?”

- 네 죽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너의 후견인으로 나를 세워 놨단다. 나를 어린애 주머니를 노리는 나쁜 여자 만들지 말고 한번 나오도록 해라. 안 그러면 내가 네 집으로 찾아가랴~?

“아니에요. 그럼 만나도록 하지요. 준다는 돈 안 받는 것도 웃기긴 하겠군요. 어디로 나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비의 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홍보] 두 번 사는 남자 1, 2권 출판했습니다. +1 13.02.14 928 0 -
공지 저도 모르게 출삭했습니다. 13.02.02 991 0 -
공지 현재 연중상태입니다. +9 12.12.02 3,450 0 -
10 문형근 +6 13.01.31 4,221 28 10쪽
9 김재욱 +27 12.11.14 10,505 121 10쪽
8 태수파 +8 12.11.14 8,402 62 6쪽
7 태수파 +18 12.11.08 10,420 73 8쪽
6 꽁치 +3 12.10.01 13,485 50 14쪽
» 새로운 세상3 +1 12.10.01 11,639 39 11쪽
4 새로운 세상2 +3 12.10.01 12,031 35 15쪽
3 새로운 세상 +12 12.10.01 16,887 49 24쪽
2 김재욱 +8 12.10.01 19,491 66 7쪽
1 프롤로그 +5 12.10.01 16,016 32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