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87호 전제용 선장의 "베트남 보트 난민 구조" 미담
36회차/삐뚤 빼뚤
가재모(장편소설집 "얼레리 꼴레리" 작가)
이날 태안중앙교회 오후 예배는 부목사님 인도 하에 진행되었다.
순서에 따라 부목사님 설교가 시작되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사도행전 1장8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입니다.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선교 대국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한국 선교사는 2019년 2만 8089명을 정점으로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하여 현재는 약 2만 2000여명으로 점차 감소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에 2023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 이주 노동자, 유학생 등 장기 체류자 188만 명, 단기 체류자 62만 명으로 외국 인수가 2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불법 체류자와 미 등록 외국인 자녀까지 포함하면 300만 명을 육박할 것입니다. 정부는 2030년이 되면 국내 거주 외국인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0%인 53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그 땅끝까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한국이 이제 다 민족 국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앞으로 더 이상 이주민에 대하여 경계하고 차별하며 박대를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글로벌 선교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 목사들을 외국에 파송 하는 것과 외국인 목사를 자국에 파송하는 것만을 글로벌 선교로 생각하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이주민 입장에서는 지구촌 땅끝이 한국입니다. 다문화 이주자 선교도 국내 전도가 아니라 세계 선교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자기들 비용으로 비행기 타고 제 발로 찾아온 이주민들을 한국 교회가 교회 문을 활짝 열고 복음 안에서 환대를 해야 합니다. 저출산, 초고령 사회로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의 농어촌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하여 이주 노동자들을 안 받아드릴 재간이 없습니다. 위기에 처한 농어촌 교회가 이제 이주 노동자들을 복음 안에서 형제처럼 받아드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이어서 우리 안흥만의 유명한 마도로스 류항목 선장님께서 “원양어선 '광명 87호' 전제용 선장의 베트남 보트 피난민들을 구조한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 설명하시겠습니다. 설명회가 끝나면 류항목 선장님의 안내로 안흥만에 가서 해양 폐기물 수거 작업에 동참하게 됩니다. 류항목 선장님 나오실 때 큰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자 나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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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류항목 선장이 ‘원양어선 '광명 87호'의 전제용 선장이 베트남 보트 피난민들을 구조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때는 1985년 11월 14일 늦은 오후 태양이 수평선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전제용(당시 44세) 선장이 이끄는 원양어선 ‘광명87호’는 망망대해에서 9개월간의 고되고 힘들었던 어로 작업 끝에 만선을 이뤄 부산항으로 귀항 중이었다.
전 선장은 물론 모든 선원들이 9개월 동안 떨어져 있었던 사랑하는 가족과 만난다는 생각에 모두가 들뜬 마음이었다.
광명87호는 싱가포르에서 보급과 최종 점검을 끝낸 터라 항해에 필요한 최저 속력과 최소 조타 만을 유지한 채 홀가분하게 출발했다.
전 선장은 선원들에게 항해에 필요한 모든 지시를 끝내 놓고 선장실에서 항해일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선원이 선장실 문을 노크를 했다.
항로 견시를 하고 있던 이등 항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전방에 목선에서 구조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난민인 것 같습니다.”
바다 저쪽에서 베트남 피난민들로 가득 찬 목선이 파도에 횝쓸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고했다.
전 선장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5톤 남짓 돼 보이는 낡은 목선 한 척에서 누군가 흰 천을 휘두르고 있었다.
구조 요청이었다
전제용 선장은 일단 간부 선원들을 급히 선장실로 불러 놓고 의견을 물었다.
전 선장은 “자신이 이끄는 배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다른 배의 위급상황을 돕는 것은 선장의 의무다. 그러나 저 목선에는 베트남 난민들이 타고 있을 것이다. 보다시피 저 낡은 목선으로 이 거센 파도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저들을 구하면 나 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고초를 겪게 될 거야. 자칫하면 다시는 배를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일은 선장 혼자서 결정할 일이 못 되니 너희의 의견은 어떤지 말해 봐라.”
전 선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목전에 베트남 난민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행동함이 좋은 지를 물었다.
그런데 간부 선원들은 “아니, 선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선장님 지시만 따릅니다. 선장님이 배에서 내리면 저희도 내립니다. 그런 걸 무서워 하면 뱃사람이 아니지요. 선장님 우리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귀한 생명부터 구조하라고 명령을 내리세요. 급합니다. ”
간부 선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귀한 생명부터 구해 놓고 보자고 했다.
그때 갑자기 백파가 일면서 강풍이 휘몰아쳤다.
베트남 난민을 태운 목선이 파도에 뒤흔들리자 배 위에 엉겨 붙은 난민들의 상황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베트남 난민들은 울부짖으며 “헬프미!”, “헬프미!” 외쳤다.
전 선장은 자신의 직위와 선원들의 직장 퇴출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고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즉시 현장 구조에 나서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지체 없이 뱃머리를 돌려 침몰 위기에 처한 베트남 난민 목선에 접근했다.
전 선장은 먼저, 목선에 타고 있던 밀입국자들에게 구명 쪼기를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목선이 침몰하지 않도록 자신의 배 하중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바다에 아낌없이 던졌다.
5톤 남짓한 낡은 목선에서 원양어선 ‘광명87호’로 구조된 베트남 난민은 모두 96명이었다.
베트남 난민 96명을 뱃전에 옮겨 일단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을 구해줬다.
전 선장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96명의 밀입국자들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어린아이와 임산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 선장은 구조한 베트남 난민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베트남 난민 대표는 “베트남 전쟁은 1975년 4월 30일 월맹(북 베트남)이 월남(남 베트남)을 통일하면서 종료되었지요. 그러나 남 베트남의 패망과 함께 남 베트남의 정치인, 군인, 지식인 등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했습니다. 1976년부터 탈출하기 시작한 난민들은 조각 배에 의지해 무작정 망망대해로 나갔지요. 보트 피풀은 대략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저희들도 숙청을 피해서 무작정 돈을 모아 낡은 배 한 척을 사서 해 뜨는 방향을 보고 동쪽인가 보다 하고 배를 몰고 나왔습니다.그러다가 배에 구멍이 생겨서 바닷물이 흘러 들어 왔고 강풍에 풍랑까지 심해지자 죽기 살기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배들은 못 본 체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장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희들을 구조해줬습니다. 선장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 선장은 베트남 난민 구조를 끝내고 본사에 전신을 쳐서 모스 부호로 ‘베트남 난민 96명을 구조했다’고 알렸다.
그 후에 본사에서 회신이 왔는데 난민을 싣고 부산에 오지 말라고 했다.
전 선장은 자선에 위험이 없는 이상, 이유를 막론하고 타선의 위급한 상황을 구조할 의무가 있다고 강경하게 버텼다.
이후 본사와 전신의 조복이 이뤄졌는데 본사의 마지막 전신은 “난민들을 무인도에 내려놓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전 선장은 “말이 무인도지 이 사람들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하고 답했다.
그런데도 본사에서는 “뗏목을 만들어서 태워 보내라’고 했다.”
수평선 끝에서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하자 전제용 선장은 자신이 겪을 고초에 대해서는 이미 각오를 한 터였기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나 선장의 입장은 젊은 선원들이 행여 생계라도 잃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기껏 구한 베트남 난민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염려스러웠다.
배가 부산항으로 접근하자 선원들은 입항 준비로 부산했다.
그때 베트남 난민들이 선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Thank you, captain!”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 선장의 주위를 떠날 줄 몰랐다.
입항 절차가 완료되고 전 선장과 선원들은 난민들과 함께 부산항에 내린 즉시 외무부·법무부·안기부의 조사를 받았다.
부산 난민 캠프 옆 사무실에서 안기부 요원들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전 선장이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난민 구조 대가로 금품을 제공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벌렸다.
당시 전 선장은 모든 선원들한테 “난민들에게 동전 한 푼이라도 받지 마라. 그거 하나 받으면 평생 신세 망친다"고 강한 어조로 전달했기 때문에 그때 선원들이 10센트 짜리 하나도 안 받은 것으로 결말이 나서 일행은 풀려났다.
전 선장은 서류만 간단히 챙겨서 보고하러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전 선장, 그동안 고생 많았어. 배는 다른 사람이 맡아서 일본으로 갈 거니까 전 선장은 신경 쓰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어”라는 허망한 말을 듣고 면직되었다.
전선장은 이후 타사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말썽꾸러기’ 로 낙인이 찍혀 30개월을 실업자로 지냈다.
전제용 선장에게 구조된 베트남 난민 96명은 부산 난민구호소에서 1년6개월여간 머물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떠났다.
전씨의 미담 이야기는 당시 구조된 베트남 난민 중 한 명이었던 피터 누엔(65) 씨가 2002년에 생명의 은인인 전씨를 찾고, 그들의 사연을 미국 내 한인 사회와 베트남인 사회에 전하면서 알려졌다.
이러한 전 선장의 인도주의적인 용기와 희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의 선행은 우리 사회에 큰 귀감이 되었다.
그는 '인도주의를 실천한 선장'으로 인정받아 198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이어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고, 국제해사기구(IMO)로부터 '바다의 의인'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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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항목 선장의 발표가 끝나자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류항목 선장의 안내로 교회 성도들과 안흥만 주민들이 합세해서 항만 주위의 해양 환경 보호 작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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