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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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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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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6.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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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63. 함락陷落

DUMMY

마교 본산의 큰 공터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북천과 두 영주의 격돌이 만든 흔적이다.

공터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무인들은 입을 벌린 채 이제 큰 공터의 가장자리로 물러나있다.

인간들의 격돌이 아니었다. 북천과 두 영주간 장풍과 검풍이 충돌할 때는 귀청이 떨어질 듯 천둥같은 소리가 울렸으며, 소용돌이 같은 바람이 곳곳에서 격류처럼 용트림했다.

격돌의 여파로 날아온 돌에 맞아 부상을 당한 무인들이 이미 수십 명에 이르고 있었다.

‘사령주의 무공이 정말 대단했군. 저런 괴물 같은 노인네를 맞아 이처럼 싸우다니.’

갈군형의 감탄은 노인네에서 일정령주와 신기령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 노인의 신위를 봤을 땐 입이 벌어지고 숨이 턱 막혔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신위였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덧 노인네의 신위는 갈군형의 머리 속에서 분석과 검토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냥 괴물이나 악마로 단정되어 버린 것이다.

두 영주에 대한 감탄은 노인을 악마로 규정하고 난 뒤부터였다. 인간이 악마와 맞서 싸우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누가 악마와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두 영주의 옷은 이미 누더기가 되었고 입 주위에는 가느다란 핏자국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내상을 입은 것이다. 반면 노인은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얼굴에 실날 같은 웃음을 머금은 채 가볍게 손을 휘젓고 있을 따름이었지만 두 영주는 허공으로 뛰어 오르고, 바닥을 구르고 하면서 노인의 공격을 사력을 다해 피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지.”

북천이라고 불린 노인이 담담한 한마디를 한다.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 같지가 않다.

북천의 말에 두 영주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자신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왔다. 사실 피하는데 그 큰 공력이 들었지만.

싸우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고자 하였으나 불가능했다. 빈 틈도 없었고 내공이 고갈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자신들이 사력을 다하는 반면에 상대는 사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 끝이 온 것이다. 두 영주는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어찌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두 영주가 서로 마지막 눈빛을 교환한다. 마지막 남은 진원진기까지 끄집어 내려는 것이다.

노인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손 위에서 희미한 빛 같은 것이 보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점점 형상을 띠어갔다. 두 자루 검이었다. 기氣로 만든 검劍. 기검氣劍이었다.

절대고수들은 기를 형상화할 수 있었고 운용할 수 있었다. 얼마나 자유자재로 형상화할 수 있는지, 운용할 수 있는지는 천양지차였지만.

두 자루 기검氣劍이 점점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한다. 두 영주는 알았다. 노인의 강기 색깔이 붉어질 수록 위력이 커짐을.

두 기검氣劍이 용트림을 하기 시작한다. 발출되고 싶은 것을 노인네가 억지로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인네가 고삐를 놓는 순간 두 자루 기검氣劍은 쏜살같이 두 영주에게로 날아가리라.

갈군형은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두 영주 역시 마찬가지로 마지막 순간임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갈군형은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사람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자신이 모든 것을 보아야 교주에게 상세히 보고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저항 수단이 없었지만 교주라면 다를 것이다.


쐐액~

드디어 두 자루 기검氣劍이 두 영주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갔다. 삼장 정도 떨어져 있던 노인과 두 영주간의 거리에서 두 기검氣劍은 눈 깜박할 사이에 두 영주의 심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두 영주는 빤히 두 자루 기검氣劍을 보고 있었음에도 그 속도에 놀라며 각기 부딪히기 보다는 기검氣劍을 피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일정령주는 허리를 뒤로 눕히며 별탈 없이 기검을 피했다. 단지 가슴께의 무복이 베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기령주는 날아오르면서 허벅지를 깊게 베였다. 허벅지에서 제법 굵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갈군청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국면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이번 공격은 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영주을 스쳐간 기검은 이내 급선회하더니 두 영주에게로 다시 쏘아져 갔다. 실제 검이었으면 이기어검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단지 그것이 기검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북천이라는 노인네가 다시 두 손을 앞으로 뻗어 가볍게 새로운 두 자루의 기검을 밀어내었다. 이제 앞서 날아간 두 자루 기검은 뒤에서, 새로운 기검은 앞에서 두 영주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두 영주는 부딪히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피하면 새로운 기검이 계속 날아오리라.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면 비루해질 것이다.

일정령주의 두 손이 시뻘겋게 변했다.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이 한번의 공격에 담았다. 신기령주의 검에 검푸른 강기가 한기와도 같이 싸늘한 기운을 내며 맺혔다. 그 역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것이다.

두 영주가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 받는다. 일정령주가 싱긋 미소를 보내자 신기령주도 마주 웃어준다.


이야압~

일정령주가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자신에게로 새로이 날아오는 기검을 향해 시뻘겋게 달구어진 양손을 바람개비처럼 휘젓자 화염火焰이 양손에서 줄기줄기 뻗어나오며 노인의 기검과 부딪혀갔다.

신기령주 역시 정면에서 날아오는 기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폭사시켜 갔다. 신기령주가 이기어검을 발출한 것이다. 신기령주의 실제 검에 의한 이기어검과 노인의 기검에 의한 이기어검이 맹렬한 속도로 부딪혀갔다. 무림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었다. 이기어검간의 대결. 진검과 기검간의 대결.


콰콰콰쾅~캬캬캬칵쾅쾅~~~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금속성 같기도 한 미증유未曾有의 굉음이 온 천지를 울렸다.

갈군형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충돌의 여파에 휘말린 것이 아니다. 관념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이다. 천둥소리에 이어 불어오는 먼지와 바람에 세 사람의 대결 결과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갈군형의 머릿속에는 선명한 그림이 먼저 그려졌다.

일정령주와 신기령주가 맥없이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그 순간 자신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어지럼증이 몰려온 것이다.


먼지가 내려앉고 바람이 그쳤지만 큰 공터는 조용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가을로 접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채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어깨 한 곳에서 피분수가 솟고 있었다.

일정령주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기검을 겨우 막았으나 뒤에서 날아오는 기검에 가슴이 뚫리고 말았다. 그 순간 절명했다.

신기령주 역시 정면에서 날아오는 기검의 이기어검과는 거의 동수同數를 이루었으나 뒤에서 날아오는 기검에 우측 팔이 어깨에서부터 날아갔다. 다행히 몸을 조금 비트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으나 내상도 심해, 곧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대단하구나. 내 기검을 막다니. 교주의 무공이 보고 싶어지는군.”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무공에 감탄하던 북천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갈군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본래 마교를 이 땅에서 완전히 불살라 버리려 했으나 이 두 사람의 무공에 제법 흡족한 마음이 들어 제자의 목숨 값은 이 정도로 갈음하겠다. 교주가 돌아오면 북천이 다녀갔다고 전해라.”

제법 먼 거리지만 북천의 목소리는 뚜렷했다.

말을 마친 북천이라는 노인네가 정문을 향해 저벅 저벅 걸어간다. 정문 주위에 있던 무인들이 마치 바다길이 갈라지듯 갈라지면서 노인에게 길을 내준다.

노인네가 향하는 방향은 갈군형이 서 있는 곳에서 직각이다. 걸어가는 노인네의 옆모습이 보인다. 걸음의 속도는 보통 사람의 그것이다. 경공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걷는다. 갈군형의 눈에 노인의 걸음은 승자의 오만함보다 당연함이라고 보였다. 애초 승부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노인에게는.

노인이 향하는 방향에 있던 정문은 담벼락과 나무 기둥만이 남아 있고 문은 거의 날라가고 없었다. 언제 만들어진 문인가? 갈군형이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자신의 머리 속에는 정문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자신이 알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문일 것이다. 그 문을 자신 대代에서 잃었다.

물론 교주가 느낄 분노와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먹먹한데.

갈군형이 공터 중앙에 쓰러진 두 영주를 바라본다. 금은 장로가 무인들을 대동해 두 영주를 나르고 있다.


누가 있어, 홀홀 단신으로 청해의 마교 본산을 찾아왔던가?

누가 있어, 홀홀 단신으로 마교의 정문을 부수고 유유히 돌아갔던가?

누가 있어, 홀홀 단신으로 제자의 목숨 값을 마교로부터 당당히 받아 냈던가?

함락陷落 당한 것이다. 정복 당한 것이다.

마교 역사상 처음 당하는 함락이다. 숱한 전쟁을 치러는 동안 패배는 있었어도 함락은 없었다.

갈군형은 교주가 없었음을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교주가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처참한 참패와 함락을 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주가 있었다 하더라도 참패와 함락을 면하지 못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것은 마교의 종말이었다.

함락은 권토중래의 각오로, 와신상담의 결의로 수복할 수 있고 복수도 꿈꿀 수 있다. 교주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교주님께 연락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장로가 다가와 갈군형의 상념을 깨웠다.

“그래야지. 두 분은?”

갈군형이 두 영주의 상태를 묻는다.

“일정령주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만 신기령주께서는 정신을 잃었을 뿐 무사하십니다.”

“다행이군.”

갈군형이 가을로 접어드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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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궁즉통窮則通 +3 17.06.09 2,465 47 9쪽
157 156. 청해의 먹구름 +3 17.06.07 2,554 41 10쪽
156 155. 낙수落水 +3 17.06.04 2,463 48 10쪽
155 154. 불안不安 +3 17.06.02 2,405 47 10쪽
154 153. 후퇴後退 +3 17.05.31 2,620 47 10쪽
153 152. 적대강狄大江의 단서 +3 17.05.28 2,711 47 10쪽
152 151. 속수무책束手無策 +3 17.05.27 2,619 43 10쪽
151 150. 글씨 +3 17.05.25 2,648 48 11쪽
150 149. 열린 문 +3 17.05.22 2,513 45 10쪽
149 148. 사각 열쇠 +3 17.05.20 2,442 47 10쪽
148 147. 압박壓迫 +2 17.05.18 2,462 45 10쪽
147 146. 수색搜索 +3 17.05.16 2,450 47 10쪽
146 145. 백사일생百死一生 +3 17.05.13 2,690 49 10쪽
145 144. 무림맹과 마교 +3 17.05.11 2,606 47 10쪽
144 143. 소용돌이 +3 17.05.10 2,596 43 10쪽
143 142. 버섯구름 +5 17.05.09 2,587 51 10쪽
142 141. 화약火藥 +5 17.05.06 2,595 48 11쪽
141 140. 공동의 적敵 +3 17.05.04 2,623 49 10쪽
140 139. 오의붕경五衣朋競 +4 17.05.02 2,581 46 11쪽
139 138. 굴갱대호堀坑大虎 +3 17.04.30 2,635 49 10쪽
138 137. 재연再演 +2 17.04.28 2,594 48 10쪽
137 136. 공세攻勢 +2 17.04.26 2,701 5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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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3. 마교魔敎 +2 17.04.18 2,886 4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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