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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계의 아이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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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쒸
작품등록일 :
2023.05.10 11:00
최근연재일 :
2023.06.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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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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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41

작성
23.05.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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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패션 모델 4

DUMMY

2월 2일 오후 7시.


레이시는 엄마 손을 잡고 패션쇼가 열리는 캘빈 클레인 (이하 CK) 본사에 도착했다.


2월 초 매서운 날씨 속에서 레이시의 엄마 하정숙 여사는 정말 이곳까지 오고 싶지 않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를 보러 가자며 보채는데 이길 수가 없었다.


풍성한 블랙 밍크코트에 캐쉬미어 목도리를 한 그녀는 털장갑에 밍크 모자까지 써서 뉴욕이 아닌 알래스카에서 막 날아온 듯했다.


패션 위크 기간 타임스퀘어 지역은 교통 체증이 상당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근처까지 온 다음 한참을 걸어야 했다. 덕분에 따뜻한 CK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 여사는 로비에 들어서자 모자와 장갑 목도리를 벗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로비에는 한겨울임에도 얇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델 같은 관람객들이 모여 있었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정문에서 내린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두꺼운 옷을 잔뜩 입고 온 자신과는 다른 세계어서 온 듯한 VVIP의 옷차림을 보며 하 여사는 툴툴거렸다.


"정말 사귀는 거 맞아?"

"맞다니까!"

"이런 곳에서 모델까지 하는 애가 왜 너랑 사귀어?"

"내가 꼬셨다니까!"

"걔 좀 모자란 애 아니니?"

"엄마는!!"


레이시와 하 여사가 티격태격 되는 사이, 시간이 다 되어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5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초대장을 확인하며 차례로 관객들을 입장시켰다.


레이시와 하 여사의 자리는 무대 가장자리에 마련된 곳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패션 매거진 에디터, 인플루언서 등이 앉는 맨 앞자리와 달리, 그들의 자리는 뷰가 좋지 않은 일반 관람객 자리였다.


그렇지만 레이시는 이런 패션쇼에 참석할 수 있는 것만으로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고. 온통 검은색으로 장식된 무대는 꽤 어두웠지만, 레이시는 이미 카메라를 꺼내 전경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줄리안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상상하고 있었다.



"이거 남성복이니?" 하 여사가 물었다.


"아니. 남녀같이 나오는 거라던데?"


"봄 신상이야?"


"아니, 올해 가을 꺼. 알아보니까, 봄에 가을 꺼 선보이고, 가을에 봄 꺼 선보인다고 하더라."


"그래?"


패션쇼는 크게 남성, 여성, 그리고 풀 컬렉션(남성+여성)으로 나뉘는데, 오늘 케빈과 줄리안이 참여하는 쇼는 풀 컬렉션이었다.


패션쇼장은 점점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7시 30분.


갑자기 무대가 밝아지면서 경쾌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울려 퍼졌다.


첫 번째 모델이 등장했다. 그녀는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다크 그레이 색의 시프트 드레스를 입었는데, 간결한 실루엣과 섬세한 주름이 특징이었다.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고 경쾌한 워킹은 패션쇼의 개막을 화려하게 알렸다. 주위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두 번째 모델은 정장을 입고 런웨이에 나타났다. 클래식한 그레이 컬러의 체크 패턴이 들어간 이 옷은 싱글 브레스트 재킷과 슬랙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워킹과 포스로 그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냈다.



세 번째 모델이 A라인 스커트와 짧은 재킷을 입고 런웨이에 등장했다. 울 소재의 베이지색 스커트는 무릎 아래에서 찰랑이며, 재킷은 치마와 어울리는 아이보리 색이었다. 세 번째 모델까지 지나가자, 레이시도 오늘 패션쇼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패션쇼 주제가 미니멀리즘인가본데?"


"응? 미니멀리즘이 뭐니?"


"간단하고 간결한 디자인 있잖아. 그 애플 제품처럼."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엄마도 봐봐. 의상들이 깔끔하잖아."


"그렇긴 하네···."



레이시는 무대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옷차림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녀는 지난 일주일 동안 '바보도 아는 패션'이라는 책을 독파해 기본 상식은 갖췄다.


남녀 모델 합쳐서 거의 100명은 되어 보이는 모델들이 쉴새 없이 등장해 레이시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워낙에 음악도 빠른데 모델들이 등장하고 런웨이를 돌고 사라지는 속도도 빨라 정신이 없었다.



"어, 저거 케빈이다!"


"케빈? 그게 누구니?"


"줄리안 절친."


멀리서 런웨이에 등장하는 케빈이 보였다. 그는 옅은 회색의 더블브레스트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바지로는 검은색 슬림핏 슬랙스를 입었다.


케빈은 배경 음악이 마치 자신의 음악인 듯 완벽한 밸런스의 워킹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해서 정말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절대로 이번이 첫 무대인 모델 같지 않았다.


케빈이 레이시와 하 여사 근처를 지나가자 두 사람의 눈도 케빈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케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마치 케빈의 영혼의 자국이 런웨이에 남아있는 듯했다.


케빈이 사라지자 레이시와 하 여사는 꿈에서 깬 듯 아까의 대화를 이어갔다.


"케빈은 어떤 애니?"


"케빈 걔는 학교에서도 킹카 중에 킹카야. 랩도 정말 잘해. 아마 졸업하면 가수 데뷔할걸?"


하 여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네. 쟤는 얼굴만 내밀고 다녀도 밥 먹고 살게 생겼다."



케빈이 사라진 후, 하 여사는 두리번거리며 레이시의 줄리안을 찾았다. 하지만 이 무대 위에 동양인 자체가 없었다.


"그 줄리안이라는 친구는 언제 나오는 거니?"


"저기 나온다."


줄리안이 런웨이에 등장하자 레이시와 하 여사는 집중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화장 덕분인지 평소 선해 보이던 눈매가 날카롭게 강조되어 있었고, 블링블링하던 턱선은 강인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위에 있는 다른 각진 얼굴의 모델들과 비교해도 그의 포스에서 전혀 꿀리지 않았다.



줄리안은 다크 네이비 컬러의 싱글 브레스트 재킷과 같은 색의 슬랙스를 입었다. 피크 라펠이 타이트한 라인을 강조하며 그의 우아한 몸매를 드러냈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게 뻗었지만 가볍게 들렸고, 배경 음악과 적절히 어울려 마치 딱 떨어지는 춤 스텝을 밟는 것 같았다.


줄리안은 무대 끝에서 잠시 멈추며 관객들에게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그는 레이시를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살짝 보인 뒤, 무대 뒤쪽으로 사라졌다.


레이시의 눈은 황홀함에 젖어 들었고, 몸에서 기운이 사라지는 듯했다.



"진짜 잘 생겼네. 그래서 너랑 사귀는 거니?"


"응. 그렇게 생각하면 돼." 레이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어두운 조명에 가렸다.


"뉘 집 아들인지는 몰라도 인물 참 좋다. 공부는 잘하니?"


"줄리안은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야. 옷을 정말 잘 만들어. 공부는···. 별 취미 없다던데?"


"뭐야?"


"쟤 파슨스나 FIT 갈 거라고 했어. 발표는 안 났지만. 그리고, 엄마. 저렇게 잘생기면 공부 좀 안 해도 돼."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한마디 하려다 마는 하 여사. 그렇지만 이제 12학년 된 딸 남자친구에 입을 대자니 구차했다. 그래도 경고는 잊지 않았다.


"저 아이가 정말 좋다면 스스로를 더 아껴야 한다. 어린 나이에 함부로 몸주고 잘된 꼴을 본 적이 없어요."


레이시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벌써 잔소리는. 얘랑 결혼이라도 한대?"


"잘 사귀다 결혼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잔소리를 이어가려는 하 여사를 못 본 척하고, 레이시는 줄리안의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줄리안은 한 번 더 나왔다. 총 두 번. 이 많은 모델이 최소 두 번 의상을 입고 나왔으니 도대체 몇 벌의 옷을 선보인 것인지 모를 정도로 큰 행사였다.



줄리안을 보면 볼수록 레이시는 저런 남자를 놓치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대학 콜롬비아 갈까?"


"갑자기 왜? 하버드나 예일 간다더니."


"엄마랑 떨어져 있기도 싫고."


갑작스레 딸이 학교를 바꾸려 하자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봐도 짐작이 됐다.


콜롬비아, 하버드, 예일 모두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이지만, 학교 위치가 달랐다. 하버드는 보스턴, 예일은 코네티컷, 콜롬비아는 뉴욕 맨해튼 북서쪽에 있었다. FIT에서 콜롬비아는 차로 20분 거리이고, 집에서 FIT까지는 차로 10분도 안 걸렸다.


"은정아. 거짓말하지 마라. 엄마랑 계속 같이 살자고 할 때는 모른 척하더니, 남자친구 생기니까 바로 말 바꾸는 거 봐."


"치이."


하 여사가 본질을 꿰뚫는 말을 하자 레이시도 말을 더 꺼낼 수가 없었다.



모델들 전부가 나와 촘촘하게 런웨이를 행진했다. 패션쇼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였다. 얼마 후,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장년 디자이너가 나와 인사를 건넨 뒤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렇게 패션쇼는 한 시간을 훌쩍 넘어 한 시간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 사이 하 여사는 딸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하 여사는 그제야 줄리안의 부모님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포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 정서가 많이 남아있을 텐데, 아들이 이런 큰 무대에 서는 것을 놓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줄리안 부모님은 뭐하시니?"


"이쪽 업계 종사하신다는데, 일 년 중에 제일 바쁘시데. 더는 나도 잘 몰라."


이쪽 업계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건지, 옷 도소매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던 몽롱해지는 레이시의 눈빛을 보며 딸의 급발진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다.


"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하버드나 예일 가."


하 여사의 말에 레이시는 싫어하는 티를 역력하게 드러냈다. 그런 딸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주려고 하 여사는 조곤조곤 말했다.


"이어질 인연이면 몸이 떨어져 있어도 이어진다. 반대로 헤어질 인연이면 몸이 붙어 있어도 헤어지고. 그러니까 지금은 죽자 살자 달라붙지 말고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만. 엄마가 코치해 줄 테니까."


코치까지 해준다는 말에 레이시의 표정이 풀렸다. 평소 까탈스러운 하 여사를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 응. 알았어."


"그래야 똑똑한 내 딸 은정이지. 그래, 이제 다 끝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그냥 집에 가면 돼?"


"아, 먼저 가라고 했어. 내일 다른 패션쇼 있다고,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내일도 있다고?"


"마크 제이콥스라고 하던데?"


잘 모르는 브랜드지만 하 여사는 딸이 만나는 남자가 정말 잘 나가는 모델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모습만 봐도 확실히 빛나는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줄리안을 보니 자신이 아는 남자를 보는 기준이 바뀌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레이시의 집안은 뉴욕에 많은 부자처럼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의 재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남들과 비교해 그리 꿀리지 않는 집안이라고 생각했고, 딸에게도 그런 집안의 남자가 어울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줄리안을 보니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렇게 빛나는 젊음 앞에선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물질적인 부분이나 집안 배경은 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 여사도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닫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의말

다음 주에 개인적으로 큰 일이 있어 연재가 힘들 것 같습니다.


29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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