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김기사

2화 신삥 강남 사모님

본의 아니게 엿들은 얘기지만 뜨거운 사이인 것 같은데 대화의 주제는 집에 가면 남자가 감자와 같이 끓일 미역 해장국 이야기다. 참으로 가상?한 남자다.

오전 내내 안양을 간 뒤로부터 금천구, 구로구,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여의도 등 서울 서북권 쪽에서만 차를 몰았다. 무슨 법칙이 있는 것 인지 좀처럼 차가 그 구역을 벗어나질 못한다. 연구대상이다.

새벽에 금천구 시흥에서 오늘 두 번째 태운 고객은 내리면서 무주사과라면서 맛보라고 두 알이나 주고 내렸다. 뇌물일 턱은 없지만 이런 일도 있나 싶다.

심지어 요금 3,000원에 12,000원을 주고 갔다. 만 원권 1장, 천 원권 2장으로...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앞으로 하차 시 실내 등을 켜야겠다. 잘 실행이 될지는 모르지만...

06시 24분, 사당동에서 묘령의 여자를 태웠다. 6시 40분까지 광화문에 있는 새문안교회 앞에 세워 달랜다.

겨우 16분 남았는데, 괜한 오기가 괜히 발동한다.

가다 늦어도 어쩔 수 없고 요금도 안 줄 리 없겠지만...

“그럼, 지금부터 달릴 테니 뒤에서 보시고, 늘 다니는 길을 이야기 해주세요.”

“동작대교로 해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발에 힘이 들어간다. 네비가 있으니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도착해 차를 세우고 지불 버튼을 누르니 정확하게 6시 40분, 어깨 너머로 카드를 건네준다.

순간 힘이 빠진다. 기사로서 본분을 다 한건 맞지만...

‘오 마이 갓! 내가 미쳤지.’

아직은 시 외곽만 나가면 행선지에 당황한다. 간선도로는 아니지만 거길 사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길들이 많다. 네비도 모르는 이거야 말로 커리어가 필요한 일이다.

어젠 그렇게 힘만 들고 영업이 시원찮아 오늘은 ‘여유를 갖자’, ‘성급하게 하지말자’하고 출발을 했더니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괜찮았다. 겨우 4일이지만 일당?이 조금씩 올라간다.

금요일이라 이런 건가? 낼은 토요일인데 어떨지 궁금하다.

벌써 4일째인데 아직도 발바닥 밑이 지진이 난 듯 흔들거린다. 혹시 직업병의 전초 증세는 아닌지?

** 2월 7일 토요일/오전반

이제 5일차 인데, 몸살기가 있는 것 같다.

새벽 출발은 좋았다.

첫 고객을 태우고 남양주시 퇴계원으로 갔다. 고객이 내리고 바로 외곽순환로와 88대로로 강남 선릉역으로 원점 회귀, 이내 또 장거리 한탕을 더 뛰었다.

길을 잘 알아 태릉 방향으로 왔으면 빈차로 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고참들 이야기, 그 만큼 경험이 부족해 미스김(네비)에 의존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오전 10시 이후 토요일이라 그런지 너무 승객이 없어 근처까지 간 길에 혹시나 싶어 강남 삼성의료원엘 들어갔다. 오전이라 다른 날과 달리 좀 한산하다.

토요일은 정상적인 진료가 없다는 일반적인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체 한 대씩 줄을 줄여 가면서 30분을 기다렸다. 혹시 장거리 고객이라도 탈 것 같은 바보 같은 기대감?을 잔뜩 안고서...

그러나 신은 가혹하게도 우려했던 대로 초 단거리 고객이

당첨되었다. 바로 인근에 있는 수서경찰서 쪽으로 가자는 고객... 그마저도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끝에 있는 동으로 가는 고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서비스? 정신으로 아파트 동 입구까지 갔다. 속으론 울면서...

어제까지의 고객과 오늘의 고객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어떻게 이렇게 극명할 수가 없다.

옷차림부터 틀리고, 커플 고객에 애기까지 동반한 고객도 있다. 평일에는 전혀 없던 애기가 오늘은 2명이나 탔다.

새벽 출발이 좋아 오늘은 대박을 예감했지만 결과는 개 끗발, 강남으로 빈차로 돌아 온 거리가 50km나 되었다.

다른 날보다 40km를 더 운행했는데 결과는 허당...

내일 일요일은 또 어떤 부류의 고객들을 만날지 기대된다.

** 2월 8일 일요일/오전반

회사를 나서는 차 위로 새벽달이 무척이나 밝다.

지금 이 달이 대보름날 전날 달인 셈이다.

뉴스에 짙은 안개로 인해 비행기 결항이 많을 거라고 했는데 양천구 목동을 가는 고객을 태우고 88대로로 한강철교 밑을 지나니 안개가 장난이 아니다. 비상등을 켜고 시속 40km의 속력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더더욱 신기한 게 돌아오는 길에도 상황은 똑 같았는데 한강철교 밑을 지나오니 여기부터는 안개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오늘은 종일 비행기가 결항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이라 고객이 있을까 꽤나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더 많다. 거리엔 빈 택시도 많지만 고객도 끊이지 않고 탄다. 덕분에 수입도 기록을 경신했다. 비록 6일차지만...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가능하면 주말은 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주말에 집 콕 대신 술집을 찾는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젊음은 목~토요일 밤을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보는 내 눈엔 신기했다. 남녀노소 골고루 술 냄새 풍기고 비틀거리며 일요일 아침을 열고 있다. 강남역 인근 골목에는 5시 반 경인데도 고음의 음악과 청춘남녀로 골목이 새벽시장처럼 붐비고 있다. 마치 해방구를 보는 듯한...

그렇게 난생 처음 보는 우리의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은 열리고 있었다.

6시 반, 광명시에서 서울로 오면서 구로에서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탔다. 한참 날 살피던 술 냄새 풍기는 아주머니,

“기사님 엄청 존경합니다. 기사님은 새벽부터 나와 일하고 있는데 우리 집 양반은 1년 전 쯤 사업에 실패하고 여태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데, 저라도 벌려고 언니가 하는 식당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이제 집에 가는데... 어휴...”

“......”

“저요, 고2, 고3 딸만 둘인데, 두 년 다 예능만 해서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어휴...”

“......”

“기사님도 험한 일 하신 분은 아닌 것 같은데, 택시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네요.”

“좋은 기회가 오겠지요. 아주머니 힘내세요.”

“남편 자존심 상할까봐 돈 벌어 오라는 말도 안하는데...”

“......”

“친정이나 친구들, 어디에도 이야기를 못하는데 기사님 한테라도 얘기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네요.”

하소연을 줄줄이 늘어놓는 아주머니, 어디 노래방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남편이 이 일하기 전 내 모습인 것 같은 생각은 왜 들까?

오전 내내 백미러로 본 그 아주머니의 근심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요일에 치르지는 각각 다른 시험의 수험생 두 팀과 다양한 컬러의 복장을 한 등산객들, 가족 단위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일과는 다른, 정말 평화로운 일요일 모습이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휴일이라도 이렇게 길거리를 누비지 않으면 휴일의 도시 모습을 어찌 알 것인가?

서초구 사당역(관악산 입구)과 송파구 거여동(남한산성 입구)을 가는 등산객들은 묘하게 내 마음을 뒤 흔들어 놓았다.

매주 가던 등산을 2주째 못 갔으며 이제는 가기가 더 힘들 것 같아 휴일이라 산을 찾는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저들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9시쯤 김포시를 가는 고객을 태웠는데 그때까지도 올림픽대로에서 김포시까지 안개로 뒤 덮여 있었다.

‘느긋하자’, ‘급하지 말자’, ‘고객은 또 있다’하면서도 내 앞에 빈차가 있으면 급해지고, 급브레이크를 밟고, 급가속을 자주 해댄다. 택시기사, 운전에 나쁜 습성이 생기기 딱 좋은 직업이다.

내일은 처음 갖는 휴무, 그리고 모레부터는 오후반이다.

퇴근길에 껌 한 통을 샀다.

다음 주 고객 접대용으로...

** 2월 10일 화요일/오후반

내내 흐리다 이젠 비까지 온다.

전국이 많이 가물어 비가 좀 와야 하지만 첫 오후반 일을 하는데 영업?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은근한 걱정도 들지만 설레는? 기대를 안고 차를 몰고 나갔다.

역시 강남 인근 지역은 도로마다 차가 넘쳐난다.

정체로 차가 밀려도 미터기 요금은 올라가니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만약 고객 입장이라면 올라가는 미터기 요금에 가슴이 벌러덩 거릴 것 같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 길과 동대문구 외대 근처를 세 번씩이나 갔다. 희한하게 한 번 가니 근처서 돌다가 또 다시 원점회귀 하듯 출발지 근처로 돌아간다.

드디어 퇴근시간과 함께 어둠이 몰려왔다.

길거리에 널린 게 빈 택시다. 웬 택시가 이리 많은지...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에서 큰 여행용 가방을 가진 고객이 타서는 노원구 중계동을 가잔다. 중국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의사며, 모처럼 귀국해 일을 보고 내일 출국하기 전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간다는 고객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중계동 길을 잘 모르는 고객은 근처 호텔이나 모텔에 세워 달란다. 10년 전에 가족까지 전부 중국에 들어가 여긴 쉴 집이 없단다. 이 고객 흔한 핸드폰도 없다.

노원역 근처면 적당한 호텔이 있지 않을까 하고 돌아 다녔지만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건영백화점 앞에서 내 핸드폰을 주면서 친구 분에게 전화를 해서 연결해주면 그 집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다행히 통화한 친구가 나온다고 백화점 앞에 있으라고 한단다. 결과는 잘 되었지만 고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초보라 죄송합니다.’

벌써 시계는 새벽 1시 45분, 강남의 술집 근처를 배회하지만 내가 찾는 취객들은 온데간데없고 빈 택시만 사열을 하듯 줄지어 서있다.

이면 도로에서 야근을 했다는 일산 화정역가는 고객 한 분이 탔다. 오후반 첫 심야 장거리 고객이다. 할증 버튼 누르고 88대로로 강변로로 열심히 달렸다. 시간이 돈이니...

고객이 내리고 2시 15분,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강남으로 총알처럼 날아 가 한탕 더 뛰느냐 아님 시내를 경유해 영업을 하면서 회사로 가느냐?

어느 하나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만 지난 6일간 학습한 대로 시내 경유를 택해 경기도 화전과 은평구 수색을 거쳐 신촌과 여의도까지 훑었지만 그 어디에도 승객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오로지 빈 택시만...

결국 강남 신사동과 압구정동, 선릉을 거쳐 빈차로 귀사 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허망한 첫 오후반 이었으며, 수입이 6일째 오전반보다 못했다.

빈차로 날아다니는 택시들 에너지만 모아도 우주로 로켓도 올릴 것 같다.

** 2월 11일 수요일/오후반

회사를 나가 강동구 길동 근처로 네 번을 간 것 같다. 대신 강남으로 올 땐 송파구청 인근까지는 빈 차로 와야만 했다.

빈 차로 나오면 다시 타는 고객이 강동구 인근이다. 안 갈 수도 없고...

오늘은 강북도 두 번 갔다 왔다. 어제만 해도 외대 경희대 근처만 3번을 갔다 왔는데 오늘은 그쪽 고객들은 전부 일찍 집에 들어 간 모양인지 기척이 없다.

선릉역에서 취객들이 차를 세운다. 서너 명이 타는 줄 알았는데 그 중 엉망으로 취한 한 명을 차에 태우고는 목적지만 말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 일행을 택시에다 버리고 저희들은 2차를 가는 모양이다. 나쁜 넘들...

차 안에서 계속되는 잠꼬대 같은 횡설수설, 차 바닥에 침은 뱉어대고, 집도 기억이 안 나는지 자세한 목적지를 대지 못 한다. 요금이나 받을 수 있을지, 혹시 차에다 토나 하지 않을지 온갖 걱정으로 뒤쪽에만 신경이 쓰인다.

심지어 달리는 도중에 차 문을 여는 끔직한 일도 저지른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옆 차선에 차가 없어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겨우겨우 목적지를 알아 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길거리 가로수를 껴안고 있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저렇게 마셨나 싶다?

장거리 손님은 없고 거의 강동구와 송파구 그 인근 지역 고객들뿐 이다. 부지런히 고객을 모시고 다니느라 별로 쉰 적도 없는데 수입은 엉망이다. 사납금 내면 38,000원 남는다.

쩝, 오전반보다도 못하다.

2시 45분쯤, 선릉역에서 탄 고객이 시흥을 가자는데 내 재주로는 도저히 귀사 시간을 맞출 자신이 없어 뒤차에 양보했다. 오늘 유일한 장거리였을 뻔 했는데...

좀 무리가 따르더라도 갔어야 했을까?

아직 내 실력으로는 미스 김만 의존해 갔다 오기에는 무리가 많다.

취객들의 귀가 시간은 2시 30분인 모양, 희한하게도 2시 30분만 넘어서면 그 큰 10차선 도로에도 인적은 없고 사열하는 빈 택시와 안쓰러운 담배 피우는 기사들만...

** 2월 12일 목요일/오후반

오늘은 출발 때부터 비님이 오신다.

비 오는 날은 어떨까? 아무래도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 고객도 적고 수입도 줄지 않을까? 하긴 별로 줄 수입은 아직 없었지만...

가뭄 탓에 비도 많이 왔으면 하지만 우중 영업이 오늘의 관전 포인트다.

강남에서 애 둘을 동반한 젊은 어머니를 태웠다.

몇 달 전에 마포에서 강남 개포동으로 이사 왔는데 이렇게 강북과 강남이 다른지 몰랐다고 한다.

양재천이 있어 넘 좋고 공기도 좋단다.

애들 교육정보와 부동산과 재테크에 대한 정보가 사방에 널려있으며 이웃들의 교육열과 생활수준이 높단다.

구청 등에서 무료로 또는 싸게 제공하는 애들 교양과 교육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좋으며 특히 강남에는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있는 학원이 많아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이사 오기를 잘했으며 이제 다른 동네에서는 못살 것 같단다.

하긴 대치동 일대는 평일 밤 10시가 되면 애들을 데려 가려는 승용차들이 인도 쪽 2개 차선을 꽉 메우며 또 다른 늦은 밤 정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지경이다.

나도 강남 아닌 잠실에 20여년을 살았지만 좀 틀리는 점이 없지는 않다. 강남이 집값이 엄청 비싸지 않은가? 전세가 다른 지역 집값보다 비싸고 물가도 비싸지만 아래 위층 이웃들은 데면데면하기만 한 동네다.

학교에 가면 아파트와 일반 주택에 사느냐로 친구가 가려지고, 아파트 평형별로 친구들이 만들어 지며 심지어 이름이 알려진 유명 단지는 남편의 직책에 따라 부인들마저 남편들 직급에 따른 그룹이 만들어 지기도 하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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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