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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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나쁜 사람
“아직도 그 집에서 사는지 모르겠군.”
오후에 치명이가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머리에는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에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었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누군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오는군.”
새 교주가 사는 이 층짜리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새 교주를 출퇴근시키려고 아침마다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났다. 치명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새 교주 때문이 아니었다. 교주 집에 사는 여학생이 어떻게 지내나 보려고 온 것이었다. 여학생이 임신했다는 사실은 이야기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교주 아들이라고 했다. 치명이는 그 말은 온전히 믿지 않았다.
“총에 맞고 쓰러진 교주의 아이일 수도 있어.”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 그 여학생이었다. 하얀 운동화를 신고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저번 때 봤을 때보다 배가 훨씬 불룩했다. 뱃속에 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여학생이 마당을 지나 대문 쪽으로 걸어오자, 치명이가 얼른 몸을 숨겼다. 여학생이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골목을 따라 걸었다.
“혼자서 어디로 가지?”
치명이가 여학생 뒤를 밟았다. 여학생이 향한 곳은 나무들 사이로 난 산책길이었다. 나뭇가지가 햇빛을 가려 혼자서 걷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릴 들으며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운동하러 나온 모양이군.”
여학생이 삼십 분쯤 걷다가 다리가 아픈지 나무를 붙잡고 멈춰 섰다. 위쪽에서 오십 대로 보이는 두 여자가 수다를 떨면 내려왔다.
“아이 나올 때가 얼만 안 남았나 봐요?”
한 여자가 여학생을 보고 말을 걸었다.
“한 달도 안 남았어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딸이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많이 힘들겠어요?”
“괜찮아요.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나오는걸요.”
뒤에 선 여자가 여학생을 유심히 보고는 “학생이죠?” 하고 물었다. 이곳에 오면 자주 듣는 말이라서 이제 신경도 안 썼다. 여학생이 “학생 아니에요. 학교를 그만뒀어요.” 하고 대답하자, 앞에 선 여자가 “그런 걸 뭐 하러 물어봐. 빨리 가자고.” 하고 뒤에 선 여자를 잡아끌었다. 두 여자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자 치명이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가 자기를 수상한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다.
“저 남자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한데?”
“아이 엄마 뒤를 졸졸 따르는 것 같잖아. 못 느꼈어?”
“아니, 난 못 느꼈어.”
치명이가 두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여자가 산책길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근처에 여학생과 치명이 둘만 남았다. 이때다 싶어 치명이가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하고 여학생한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누구시죠?”
치명이가 선글라스를 벗자, 미래가 깜짝 놀라 “아, 여긴 어쩐 일이죠?” 하고 물었다. 원룸에서 처음 봤을 때처럼 무섭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호연이 아빠한테 자기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생각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너 보러 왔지.”
“내 뒤를 따라왔다는 거네요?”
“교주 집 앞에서 너를 봤어.”
“거기서 봤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말을 걸지 않았어.”
“저는 산책하러 나왔어요. 걸어야 아이를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해서요.”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군.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배가 그렇게 많이 부르지 않았잖아.”
“시간이 언제 지나가나 했는데, 벌써 아이 낳을 때가 되었어요.”
“근처에 앉아서 이야기 나눌 곳이 없을까? 서 있으면 힘들잖아?”
“조금만 더 가면 나무로 만든 의자가 나와요.”
“그럼 그곳으로 갈까?”
미래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고는 앞장서 걸었다. 미래는 속으로 저 남자가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생각했다. 교주 운전기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그 뒤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 낳을 때가 가까워지자 다시 나타났다.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나와요.”
“배가 불러서 걷기 힘들 텐데, 나보다 더 잘 걷는군.”
“매일 한 시간씩 걸으니까요.”
“한 시간씩 걸으면 운동이 되겠어.”
“벌써 땀이 나잖아요. 그만큼 운동이 된다는 뜻이죠.”
미래가 손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았다.
“저기예요.”
미래가 가리키는 곳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보였다. 미래가 먼저 의자에 앉아 “안 앉을 거예요?” 하고 물었다.
“나는 서서 이야기하는 게 편해.”
“그럼 그러든가요.”
미래가 모자로 부채질해 열기를 식혔다.
“꽤 더운 모양이군.”
“아저씨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어봐요. 안 더우나!”
“그래도 한여름에 아이를 낳지 않아서 다행이야. 지금도 더운데, 한여름이면 얼마나 덥겠어.”
“며칠 전에 아저씨가 사고치고 그만뒀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교주님 운전기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서 궁금했거든요.”
미래가 자기 이야길 꺼내자 치명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도 알겠네?”
“누군가를 빈집에 가뒀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이 사실인가요?”
“사실이야. 나도 그 여자 때문에 독방에 갇혀 있었거든.”
“당한 만큼 되돌려줬다는 거네요?”
“세상을 당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 그러니 당한 만큼 당연히 되돌려줘야지.”
“그래서 다시는 안 나타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며칠도 안 돼서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요.”
“내가 나타나서 실망한 모양이군?”
“실망한 건 아니에요. 아저씨가 약속을 지켜줬으니까요.”
“내가 무슨 약속을 지켜줬는데?”
치명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남자친구 아빠한테 내가 누군지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지켰으니까 남자친구 아빠가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을 테고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지 않아?”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나쁜 사람으로 보였으니까요.”
“지금도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여?”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나쁜 사람으로 보여요.”
미래가 치명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치명이가 실망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잘해줘야 나쁜 사람으로 안 볼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아저씨가 아무리 잘해줘도 내 눈에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요.”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이 없다는 거네?”
“그거야 모르죠. 아저씨가 나한테 진심을 보이면 좋은 사람으로 봐줄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왜 다시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아?”
“왜 다시 나타났는데요?”
“너 때문이야.”
“내가 무슨 잘못이라고 했나요?”
“그건 아니고.”
치명이가 고개를 살짝 흔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오래 교주 집에 붙어 있을 줄 몰랐어.”
“왜요? 남자친구 집에 오래 있으면 안 되나요?”
“교주 집 앞에서 이야기 나눌 때, 네가 분명해 그랬어. 교주 집에 있으면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그건 사실이에요. 요즘 들어 그런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져요. 무서워서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세게요. 아이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지 발로 차고 그래요.”
뱃속에 든 아이를 달래려는 듯 미래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졌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뱃속에 든 아이도 불안감을 느껴 더욱더 세게 발로 찼다. 미래는 치명이와 단둘이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마냥 즐겁지 않았다. 뱃속에 든 아이도 그걸 느끼는지 발로 툭툭 찼다.
“지금도 아이가 엄마 배를 발로 차는 모양이지?”
“남자친구 집에 있을 때만큼은 세게 차지는 않아요. 그래도 발로 찬다는 느낌은 느껴져요.”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그 집에 있겠다고 했잖아? 지금도 같은 생각이야?”
미래가 “그래요!” 하고 고개를 끄덕했다. 호연이네 집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있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네가 그 집에서 왜 나오려고 하는지는 잘 알겠는데, 과연 그 집 식구들이 네가 원하는 대로 내보내 줄까?”
“그게 무슨 뜻이죠?”
“잘 생각해봐. 그 집 식구들이 네가 좋아서 데리고 있는 것 같아?”
미래가 “아니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호연이 엄마 얼굴만 봐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호연이 엄마와 아빠는 뱃속에 든 아이가 나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두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훤했다. 돈 좀 쥐여 주고 나가라고 할 사람들이지, 함께 살자고 붙잡을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 집 식구들이 너를 데리고 있는 건 뱃속에 든 아이 때문이야. 그 집 식구들은 네 뱃속에 든 아이가 필요해서 데리고 있지, 네가 필요해서 데리고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저도 알아요. 남자친구 엄마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말도 그렇게 하고요. 내가 밖에 나간다고 하면 넘어질까 봐 불안해하는데, 그건 다 뱃속에 든 아이 때문이지 내가 다치는 걸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아이를 그렇게 끔찍이 아끼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면 그 집 식구들이 허락할까?”
“아이를 떼어놓고 나와야 한다는 말이네요?”
“아이를 빼앗고 너만 나가라고 하면 방법이 없지 않아?”
“그렇긴 하죠. 저도 그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고요.”
“그 집 식구들한테 아이를 빼앗겨도 괜찮아?”
“아니요. 내가 왜 내 아이를 그 사람들한테 빼앗겨요. 내 아이는 내가 꼭 지킬 거예요.”
“그러면 그 집에 계속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미래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갈 데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갈 데가 왜 없어? 전에 살던 집이 있잖아?”
“원룸을 말하는 거예요?”
치명이가 고개를 끄덕했다.
“원룸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돈도 없고 쌀도 없는데, 뭘 먹고 살아요? 무슨 일이라도 해야 먹고 사는데, 이런 몸으로 뭘 하겠어요?”
“그럼 나를 따라가지 않을래?”
“따라가면 아저씨가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할 거예요?”
“일단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내가 책임질게.”
“그 이후에는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거네요?”
“급한 건 아이를 지키는 거잖아. 그래서 그때까지만 너를 돌보겠다는 뜻이야. 그 이후에는 당연히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겠지.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왔잖아.”
고민이 되는지 미래가 입을 다물고 앞쪽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불길한 기운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분간 호연이네 집에 머무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방 따뜻하고 먹을 거 잘 나오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건 어려웠다. 한 달 뒤에 아이를 낳으면 그곳에서 무조건 나와야 했다. 아까도 거실에서 마주치자 호연이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참자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 밑에서 어떻게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문제는 아이였다. 호연이 엄마는 절대로 아이와 함께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호연이네 집에서 나와 호연이 엄마가 찾지 못할 곳으로 가야 했다.
“정말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나를 책임질 수 있어요?”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뭐가 문제야. 한 달은 금방이야. 그 사이에 아이가 나올 수도 있고.”
“아저씨도 내가 아이만 낳으면 내쫓을 생각이네요?”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책임진다고 했지, 내쫓는다고는 하지 않았어.”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책임진다는 말은, 그 이후에는 내쫓는다는 말 아닌가요?”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내가 나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네가 싫다고 나가버릴 수도 있고. 내 말이 틀렸어?”
“그럼 그때까지만 저를 맡아줘요. 그 이후에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미래가 체념한 듯 말했다. 치명이가 미래를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겠어?” 하고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나를 따라가면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어?”
“한방에서 함께 자는 건 아니겠죠?”
“방은 두 개야. 거실에 주방 시설이 갖춰져 있고. 거실이 넓어서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을 거야.”
“그럼 문제 될 게 없겠네요. 잠만 따로 자면 되니까요.”
미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요!” 하고 천천히 걸었다.
“지금 바로 가자고?”
“어디 들렀다 갈 데 있어요?”
“교주님 집에 가져갈 짐이 있을 거 아냐?”
“없어요. 옷만 있는데, 전부 겨울에 입었던 옷이라서, 봄에 입을 옷을 새로 사야 해요.”
“가는 길에 옷 가게를 들러야겠군.”
“차는 가지고 오셨나요? 집 앞에 차가 안 보이던데요.”
“차는 주택가 골목 입구에 세워뒀어.”
왔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주택가 골목 입구에 치명이가 타고 온 차가 세워져 있었다. 치명이가 조수석 쪽 문을 열자, 미래가 엉덩이를 시트에 걸치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배가 불러서 다리부터 넣고 타면 불편했다.
“남자친구한테 이야기 안 해도 되겠어?”
“이야기 안 하려고요. 이야기하면 어디로 가냐고 꼬치꼬치 물을 거 아녜요.”
“교주님 식구들한테는 철저히 숨기겠다는 거네?”
“알면 안 되잖아요. 어디 있는지 알면 아이를 빼앗으러 올 테니까요.”
치명이가 알았다고 하고는 후진해 차를 도로로 뺐다.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뒤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치명이가 룸미러로 뒤차를 확인하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좀 천천히 가주면 안 되나요?”
“임산부가 옆에 탔다는 걸 깜빡했군.”
“거칠게 운전하면 바로 차에서 내릴 거예요.”
“걱정하지 마. 차를 아주 얌전하게 몰 테니까.”
먼저 옷 가게에 들러 미래가 입을 옷부터 샀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는지 미래가 선뜻 고르지 못했다. 치명이가 다른 가게로 갈 거냐고 묻자, 미래가 그냥 여기서 사자고 했다. 미래는 다른 데 가면 가격이 훨씬 비싸다는 걸 잘 알았다. 결국, 외출할 때 입을 옷이랑 집에서 입을 옷 몇 벌만 골라 쇼핑백에 담았다. 속옷은 나중에 혼자 가서 사겠다고 하자, 치명이가 빙그레 웃었다. 옷 가게를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하려고 하자, 미래가 “왜 그런 눈으로 봐요?” 하고 물었다.
“내가 뭐?”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 웃잖아요?”
“전에 나를 보고 골목으로 부리나케 도망쳤잖아. 그런데 지금은 함께 차를 타고 가잖아.”
“그게 그렇게나 웃겨요?”
“너는 하나도 안 웃긴 모양이지?”
“그게 뭐 웃을 일인가요.”
치명이가 오피스텔 문을 열고 미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미래가 안으로 들어가 “여기가 아저씨 집이에요?” 하고 물었다. 생각보다 공간이 널찍했다.
“내 집은 아니고. 다른 사람 집인데, 내가 잠깐 빌려 쓰는 거야.”
치명이가 살 곳이 없다고 하자, 조직폭력배 두목이 오피스텔 위치를 알려주고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옷가지랑 가구가 그대로 있었다. 누가 살다가 몸만 빠져나간 듯 보였다. 이곳에 살던 조직원이 다른 조직폭력배 칼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조직원을 통해 알았다. 조직원이 그렇게 죽자 월세와 관리비를 조직폭력배 두목이 냈다. 그 사실을 알고 치명이가 두목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두목이 월세 낼 돈이나 있냐고 물었다. 월세 낼 돈은 있다고 하자, 몇 달만 자기가 낼 테니 다음부터는 네가 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옷 갈아입고 쉬고 있어. 더우면 욕실에 들어가 샤워라도 하던가.”
치명이가 나가고 오피스텔에 미래 혼자만 남았다. 미래가 거울을 보며 “이곳에 들어온 게 잘한 짓일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봐야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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