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신의 한 수
105. 신의 한 수
흑염소는 클럽을 빠져나와 곧장 펜트하우스로 왔다. 조선족 두목과 한마디로 못 나누고 돌아온 것이 몹시 불쾌했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그런 일이 벌어지냔 말이야.”
길만 막히지 않았어도 일이 터지기 전에 충분히 클럽에 도착했다. 그럼 클럽에서 조선족 사내가 살해당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 대장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치명이 이야길 듣고 먼저 살해당한 조선족 사내 두 명은 차 대장 짓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래서 백경이한테 차 대장이 어디에서 사는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늘 클럽에서 조선족 사내가 죽을 때, 차 대장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치명이가 한눈을 팔아서 못 봤다고 했지만, 자신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차 대장이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가는데 못 본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보고도 못 봤다고 하거나 차 대장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는 차 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봤다.
“차 대장이 아니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클럽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사람을 죽이고 가는 걸 보면 기술 하나는 대단했다. 전문가니까 그렇게 쉽게 죽이지, 보통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었다.
“그건 치명이 말이 일리가 있어.”
새해 첫날 새벽에 젊은 남자를 몽둥이로 때려 쓰러뜨리고, 마약에 취한 여자를 승합차에 태워 떠난 조선족 일당 세 명이 모두 죽었다. 그 세 사람이 차례로 죽었다는 건 치명이 말대로 그자가 그날 현장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복수심은 아닐 테고, 그자는 왜 그들을 죽이기로 작심했을까. 돈을 받고 한 것도 아니고, 혼자 결정을 내리고 한 행동이지 않은가.”
그자가 조선족 일당 세 명을 죽인 건 돈을 받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날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러기도 쉽지 않아. 아무리 안 좋은 장면을 목격했어도,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인데,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차례로 세 사람을 죽이겠어. 더군다나 그들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조선족 깡패들이지 않은가. 아무튼,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자가 차 대장밖에 없다는 게 문제야.”
그때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백경이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백경 씨, 지금 어디예요?”
“교주님을 댁까지 무사히 모셔다드리고, 지금 숙소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교주가 퇴근해 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백경이가 자기 차를 타고 뒤를 따랐다. 교주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나타나 리무진을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주는 리무진에 누군가와 함께 타는 걸 싫어했다. 좁은 공간에서 갑자기 칼을 빼 들고 덤비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운전기사만 앞에 타고, 조수석이나 뒤에는 아무도 태우지 않았다. 백경이도 교주가 싫어한다는 걸 알고, 교주가 리무진을 타고 밖으로 나가면 자기 차를 타고 따로 움직였다. 그게 자기한테도 훨씬 편했다.
“그럼 운전 중이겠군요?”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전화한 사람은 백경 씨 아닌가요?”
“그렇군요. 깜빡했네요. 방금 차 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교주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백경이한테 전화한 사람은 우성이었다. 우성이도 거구와 통화를 마치고 바로 백경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곳이 어딘데요?”
“며칠 전에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차 대장이 가끔 가는 식당이 있다고요.”
“지금 차 대장이 그곳에 나타났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려고 전화한 겁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만 알면 돼요.”
“차 대장이 하나교를 비방하고 다니는지 알려면 계속 감시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칫 차 대장 눈에 띄었다가는 도리어 당할 수도 있잖아요.”
차 대장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역시나 신경이 쓰였다. 차 대장은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는 줄 알면 반드시 찾아내 죽일 것이었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애들한테 이야기를 잘해뒀으니까요.”
“차 대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그건 국장님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차 대장이 사람 죽이는 기술이 뛰어나다면서요?”
“저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렇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 기술은 차 대장 혼자만 가지고 있겠죠?”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사람 죽이는 기술을 차 대장 말고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는 말에 흑염소가 관심을 보였다. 조선족 사내 세 명이 살해당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서실장요.”
“비서실장이라고요?”
“비서실장이 별동대에 있었다는 건 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그 기술을 차 대장이 비서실장한테 가르쳐줬다는 거네요?”
“다른 사람한테는 안 가르쳐주고 오직 비서실장 한 사람한테만 가르쳐줬죠.”
“비서실장한테 그런 기술이 있는 줄 몰랐네요.”
“국장님도 조심하세요.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 모르니까요.”
스마트폰에서 백경이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농담인 줄은 알지만, 죽는다니까 기분이 안 좋았다.
“비서실장이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언제 나빠질지 모르는 게 사람 관계니까요.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튼, 차 대장을 감시하는 건 좋은데,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요.”
백경이가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라는 백경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비서실장과 적이 될 수 있을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라서,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흑염소는 린이 사람 죽이는 기술을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차 대장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비서실장한테 그 기술을 가르쳐줬을까?”
차 대장과 린의 관계가 궁금했다. 별동대 대원 중에 여자는 린이 유일했다. 린을 별동대 대원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차 대장이었다. 사람들 이야길 들어보면 차 대장은 여자를 대원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차 대장이 별동대 대장으로 있는 동안 다른 여자 대원이 한 명도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차 대장이 린을 대원으로 받아들이고 사람 죽이는 기술까지 가르쳐줬다.
“차 대장은 뭘 믿고 비서실장을 별동대 대원으로 받아들였을까?”
흑염소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집어 전화를 걸었다. 린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디에요?”
“집이요. 방금 들어왔어요.”
“조금 전 백경이와 통화했는데, 차 대장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네요.”
“백경 씨가 차 대장을 봤다던가요?”
“직접 보지는 않고, 다른 사람이 보고 백경이한테 알려준 모양이에요.”
“백경 씨가 어떻게 하겠다던가요?”
“일단 어디에서 사는지 알아보라고 했어요. 미행하면 어디에서 사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백경 씨가 일을 벌이지 않으려나 모르겠네요.”
백경이가 차 대장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흑염소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컸다. 린은 그 점을 우려했다.
“일이라니, 무슨 일요?”
“백경 씨가 차 대장님을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별동대에서 뛰쳐나왔고요.”
“그 이야긴 들어서 잘 알아요.”
“백경 씨는 분명히 차 대장을 가만 안 놔둘 거예요.”
“차 대장을 찾아내 헤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백경 씨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는 국장님도 잘 알잖아요.”
“그건 백경이가 알아서 할 일이고요.”
백경이가 차 대장을 죽이든 말든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백경 씨가 차 대장을 죽여도 괜찮다는 말이네요?”
“솔직히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고요. 그럼 이만 전화 끊을게요.”
“잠깐만요. 그래서 어쩌려고요?”
“어쩌긴요. 가서 알려야죠.”
“차 대장이 어디에서 사는지는 알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전화 끊어요.”
린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흑염소가 스마트폰을 소파 위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하고 들어와 아직 옷도 못 벗었다.
“알아서 하겠지. 내가 무슨 상관이야.”
백경이는 흑염소와 통화를 마치고 우성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우성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미행하는 건 좋은데, 차 대장 눈에 띄면 안 된대.”
“그거야 당연한 말 아닙니까. 그럼 애들한테 전화를 걸어 어디로 가는지 뒤만 밟으라고 할까요?”
“그런데 말이야.”
백경이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았다.
“왜요? 할 말 있으면 해보세요.”
“아니야. 일단 방금 내가 말한 대로 해.”
“그런데, 만일 뒤를 밟다가 차 대장 눈에 띄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도망쳐야지.”
“차 대장이 가만히 있을까요?”
“차 대장이 쫓아와 죽이기라고 한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민이다.”
백경이는 이번 기회에 차 대장을 없애고 싶었다. 민호가 대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 그 모든 게 다 차 대장 때문이었다.
“뭐가 고민이라는 겁니까?”
“내가 누구 때문에 별동대에서 도망쳐 나왔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그거야 차 대장 때문이 아닙니까. 형님이 대장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차 대장이 민호 형님을 밀어주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잠이 안 온다.”
“그럼 이번 기회에 차 대장을 없애버리죠. 형님도 지금 그걸 바라지 않습니까?”
“쉽게 그럴 수 있을까?”
“뭐가 걱정입니까.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체로 몰려가 덤비면 차 대장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차 대장 하나 죽이겠다고 단체로 우르르 몰려간단 말이야?”
차 대장이 아무리 미워도 조직원을 모조리 데려가 죽이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그런 줄 알면 교주가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백경이가 데리고 있는 조직원은 교주를 지킬 목적으로 있지, 그런 사적인 목적으로 쓰려고 둔 게 아니었다. 사적인 목적으로 쓴 줄 알면 교주가 불같이 화를 내고 조직원을 내칠지도 몰랐다. 그럼 백경이는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건 부담스럽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네요.”
“그게 뭔데?”
“차 대장 몰래 가까이 다가가 죽이는 거요.”
“그건 차 대장이 쓰는 수법이기도 하잖아?”
“일단 저한테 맡기고, 형님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세요. 형님한테 피해 안 가게끔 알아서 할 테니까요.”
백경이가 “실수 없이 잘해. 알았어?” 하고 끊었다. 우성이는 바로 거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차 대장, 지금도 식당에 있어?”
“식당에 들어간 뒤로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너희 둘이서 차 대장을 없앨 수 있겠어?”
“형님께서 시키시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내가 시킨다고 무조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하는 말 아니냐.”
“그러니까 형님은 지금 우리 둘을 못 믿는다는 말 아닙니까?”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야.”
“차 대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저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기술 하나는 뛰어나다면서요.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몰래 접근해 찌르면 차 대장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차 대장은 그렇게 쉽게 당할 자가 아니야.”
“형님! 내가 유도가 몇 단입니까. 칼로 안 되면 힘으로 눌러서라도 죽이겠습니다.”
옆에서 자기들을 믿고 맡겨보라는 꽃미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할 수 있겠어?”
“아따! 형님 왜 그러세요? 정 불안하면 다른 사람한테 시키든가요.”
그때 꽃미남이 옆에서 “나왔어요.” 하고 말했다.
“뭐가 나왔다는 거야?”
“방금 차 대장이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급하니까 통화는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차 대장 사는 곳을 알아내면, 그때 다시 전화해.”
거구가 알았다고 말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우성이가 숙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시계를 보았다. 시계가 저녁 여덟 시를 가리켰다. 거구와 꽃미남이 차 대장을 뒤쫓고 있을 시간이었다.
“차 대장도 오늘부로 끝이군.”
백경이와 함께 별동대를 도망쳐 나오던 때가 생각났다. 그는 백경이 하나만 믿고 뒤따라 나왔다. 솔직히 그때는 백경이를 따라가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별동대에 남으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데, 백경이를 따라가면 먹고 자는 것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 정도로 백경이한테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백경이가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교주와 손을 잡은 게 신의 한 수였다. 그 뒤에 사무국장이 교주가 되고 백경이까지 술술 풀렸다.
“그때 백경이 형님이 교주님과 손을 안 잡았다면 큰일 날뻔했어.”
만일 교주님과 손을 안 잡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면, 두 사람은 아마 차 대장 손에 죽었을지도 몰랐다.
“차 대장은 그때 우리를 배신자라고 생각했을 거야.”
차 대장은 다른 건 몰라도 배신자만큼은 절대로 용서를 안 했다. 배신자는 끝까지 찾아내 죽였다.
“상황이 바뀌어 차 대장이 우리 손에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신도 몰랐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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