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익명의 신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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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익명의 신고자
아우디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이안은 더는 따라가지 않고 골목 입구에 차를 세웠다. 더 따라가면 교주 운전기사 눈에 띄어, 몰래 뒤따라온 의미가 없어졌다. 좀 번거롭더라도 차를 안 보이는 곳에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는 게 나았다.
“바람이 차갑군.”
날이 저물어 어둡고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더운 바람이 나오는 차 안에 있다가 나와서 더 춥게 느껴졌다. 골목에 가로등도 몇 개 없고, 한 개는 전등이 깨져 불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 날씨 때문이지 싶었다. 날이 추우니까 다들 일찍 집으로 들어갔으리라. 그게 아니면 원래 사람이 많이 안 사는 동네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런 형편없는 동네에 누가 들어와 살려고 하겠어. 그런데 그 인간은 이 먼 곳까지 뭐하러 왔나 모르겠군.”
이안이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길이 좁아 큰 차가 들어왔다가 나가려면 애 좀 먹을 듯했다.
“이제야 알겠어!”
교주 운전기사가 리무진을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세워두고, 왜 아우디로 바꿔 타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길이 좁아 리무진같이 큰 차는 문짝이 담벼락에 닿아 긁히고 말았다.
“혹시 전도부장이라는 여자를 근처에 숨겨둔 게 아닐까.”
햄버거도 자기가 먹으려고 산 게 아니라, 분명히 전도부장 주려고 샀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 난방유를 한 통 샀던 이유도 다 전도부장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
전도부장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니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가서 자기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 올라가도 아우디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 끝에 이르자 드디어 아우디가 눈에 띄었다.
“저기 있군.”
이안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우디는 골목이 끝나는 맨 끝에 세워져 있었다. 차에 누가 타고 있나 확인하고 위쪽으로 올라갔다. 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자락에 보이는 건 낡은 집 한 채뿐이었다.
“이런 집에서 누가 살기나 할까?”
겉으로 봐서는 누가 들어와 살 것 같지 않았다. 곳곳이 떨어져 나간 낡은 집이라서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낡은 집 뒤쪽은 수풀이 무성한데, 겨울이라서 썰렁하지 여름이면 푸른 잎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듯했다.
“누군가 있군.”
낡은 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안이 소리가 안 나게 조심하면서 낡은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몸을 낮추고 집 주변을 살폈다. 먼저 집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몇 명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중 한 명은 분명히 교주 운전기사였다.
“유리창마다 다 가려져 있군.”
낡은 집에 유리창이 몇 개 안 되는데, 그마저도 다 천으로 가려져 있어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이 얼른 몸을 숨기고 밖으로 나온 사람을 보았다.
“분명히 그자야!”
날이 어두컴컴해 얼굴까지는 확인이 어려워도, 옷차림뿐만 아니라 몸집만 봐도 교주 운전기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교주 운전기사가 일 분 정도 서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그대로 밑으로 내려가 아우디에 올라탔다. 곧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밑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갈 리가 없잖아?”
교주 운전기사가 낡은 집에 들어가 머문 시간은 길어봐야 십오 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머물다 가려고 이곳까지 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우디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물쇠를 채웠군.”
문이 잠겨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켜져 있던 전등도 꺼져 있었다. 그것만 봐도 교주 운전기사가 오늘은 다시 올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런데 무슨 일로 왔을까.”
순간 교주 운전기사가 롯데리아 매장에서 샀던 햄버거가 생각났다. 햄버거만 건네주고 바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노인이 전화해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전도부장 있는 곳을 알게 되면, 함부로 들어가지 말고 먼저 자기에게 알리라고 했다. 이안은 곧 스마트폰을 꺼내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딘가?”
“전도부장 있는 곳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낡은 집에 와 있는데, 교주 운전기사는 조금 전 떠나고 저만 있습니다.”
“전도부장을 봤나?”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문도 천으로 가려져 있어 들여다볼 수가 없고요.”
“집 안에 누군가 있는 건 확실한가?”
“먹을 것을 사서 건네주고 가는 걸 보면, 집 안에 누군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난방유도 한 통 샀습니다.”
“먼저 집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게.”
“문이 잠겨 있는데, 부수고 들어갈까요?”
“그건 안 되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면 교주 운전기사가 의심할 거 아닌가.”
“그럼 창문을 한 번 더 확인해보고, 다시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이 전화를 끊고 집 뒤쪽으로 갔다. 앞쪽만 확인하고, 집 뒤쪽 창문은 아직 확인을 못 했다. 그때 고양이가 야옹!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다.
“시팔! 깜짝 놀랐잖아.”
고양이가 도망친 곳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집 뒤쪽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다. 창문이 높아 들여다보려면 바닥에 무언가를 놓아야 했다. 저쪽에 나무로 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는 속이 비어 가벼웠다. 삭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래서 힘을 빼고 조심조심 딛고 올라섰다. 뒤쪽은 사람 눈에 잘 안 띄는 곳이라서, 창문을 천으로 가리지는 않았다.
“방 안에 불을 피웠다는 건 누군가 있다는 뜻이야.”
밖으로 새어 나온 불빛은 난로에 붙은 불꽃에서 나왔다. 치명이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난로를 방 안으로 옮겼다. 전도부장이 덜덜 떨지 않고 무사히 밤을 보낼 거라는 생각만 하고, 밀폐된 공간에 불을 피우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해 위험하다는 생각은 못 했다.
“분명히 누군가 있는데, 잘 안 보여.”
뒤쪽 창문은 먼지가 잔뜩 묻어 방 안이 또렷이 안 보였다. 소매로 먼지를 닦아도 창문이 워낙 더러워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좀 더 높이 쳐들고 방 안쪽을 살폈다. 바닥에 매트리스에 깔려 있고, 그 위에 침낭이 놓여 있었다. 사람이 침낭 안에 들어가 있어 얼굴은 보기 어려웠다. 그때 딛고 선 상자가 바삭! 하고 깨졌다. 떨어질 때 발을 잘못 디뎌 말목이 시큰했다.
“빨리 노인한테 알려야겠어.”
이안이 집 앞으로 빠져나와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 안에 누군가 있습니다.”
“얼굴도 봤나?”
“침낭에 들어가 있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경찰에 알리게.”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말씀입니까?”
“문이 잠겨서 들어가지 못한다며? 그럼 경찰한테 알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제가 들어가 데리고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집 안에 있는 사람 몸 상태도 모르는데, 데리고 나와서 어쩌려고? 자네가 데려가 돌볼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경찰에 알리게.”
“제 이름도 밝혀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익명으로 신고한다고 하면 받아줄 거야.”
“그럼 스마트폰으로 신고하면 안 되겠군요?”
경찰서로 전화를 걸면 번호가 남기 때문에 익명으로 신고하려면 공중전화나 다른 사람 전화기를 빌려서 해야 했다.
“안 되지. 번호를 알게 되면 경찰이 자네가 누군지 알 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겁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공중전화기가 보일 거야. 공중전화기가 안 보이면 아무 가게라도 들어가게. 전화기 좀 잠깐 쓰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안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생각은 전혀 못 했어.”
이안은 집 안에 갇힌 사람을 데리고 나가면 자기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장기간 갇혀 지냈으니 몸이 많이 상했을 게 빤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데려가 돌보는 것보다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하는 게 훨씬 나았다. 경찰서에 신고하면 그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자기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근처에 공중전화기가 있으려나 모르겠군.”
이안이 골목을 빠져나와 랜드로바에 올라탔다. 아까 오면서 봤던 구멍가게가 생각나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래된 가게라서 그곳에는 공중전화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근처에 공중전화기 없나요?”
“요즘 누가 공중전화기를 쓰나요. 다 핸드폰 쓰죠. 그런데 공중전화기는 왜 찾는데요?”
가겟집 주인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자는 육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어디론가 전화를 한 통 걸어야 하는데, 제 스마트폰 전원이 나갔거든요.”
“마을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큰 마트가 보일 거예요. 저도 가끔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가는데, 거기서 공중전화기를 본 기억이 나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있었으니까, 가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안이 마을 이름을 묻고 가게를 나왔다. 경찰에 신고하려면 마을 이름을 알아야 했다. 가겟집 주인 여자 말대로 대형 할인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공중전화기가 있었다.
“여보세요. 익명으로 신고 좀 하려고 합니다.”
“무슨 신고죠?”
“사람이 납치당해 빈집에 갇혀 있습니다.”
“피해자가 있는 곳이 어딘데요?”
이안이 살인마의 집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랜드로버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자신의 임무는 끝났으니 그곳에 더는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안이 경찰서로 전화를 걸고 이십 분도 안 돼 경찰차와 구급차가 달려왔다. 구급차는 길이 좁아 들어가지 못하고, 경찰차만 살인마의 집 근처까지 들어갔다.
“길이 좁아서 구급차는 못 올라갑니다.”
“구급대원만 차에서 내리면 되잖아.”
운전기사가 길이 좁아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자, 구급대 요원이 차에서 내려 구급용 들것을 챙겨 들고 뛰어 올라갔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경찰이 위치를 확인해주자, 구급대원이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해자부터 찾아봐!”
경찰이 뒤따라 들어서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 있습니다!”
구급대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낭 안에 든 전도부장을 들것에 실었다. 마을 사람들이 요란한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와 하나둘 골목을 채웠다.
“이 시간에 갑자기 무슨 일이래?”
“저긴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 집 아닌가?”
“모르는 차가 드나들어서 수상하다 싶었더니만, 결국 이런 일이 생겼지 뭔가.”
구경 나온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자, 들것을 든 구급대원이 비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죽었는가?”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르신들은 날씨가 추우니까, 집에 들어가 계세요.”
경찰이 두 팔을 벌리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도 노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살짝만 건들어도 넘어질 것 같아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어이, 경찰 양반! 사람이 죽었는가, 그것만 말해주면 안 되겠나?”
“어르신이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요?”
“궁금하니까 묻는 거 아닌가.”
“죽지는 않았어요. 이제 됐나요?”
들것이 차에 실리자, 구급차가 뒤로 후진해 골목을 빠져나갔다. 구급차는 곧장 병원으로 갔다. 전도부장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검사를 받았다. 자세한 것은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사람치고는 몸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 상태를 면밀히 살펴본 뒤에 일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면 퇴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분, 내 말 들리죠?”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전도부장이 입을 굳게 다물고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했다. 전도부장이 입을 열지 않자, 경찰이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경찰은 곧장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했다.
“피해자 신원은 확인했고?”
“하나교 직원이라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납치한 사람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고?”
“저도 궁금해 계속해서 물어봤는데, 피해자가 도무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네?”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면 모른다고 했을 거 아닙니까.”
“그럼 자신이 왜 납치당했는지도 말하지 않았겠군?”
“납치한 사람이 누구라고도 밝히지 않는데, 그걸 말하겠습니까.”
“하나교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아까 납치당한 지 꽤 오래되어 보인다고 보고했잖아?”
경찰이 현장을 둘러보고 떠나기 전에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감금당한 지 한 달은 넘어 보인다고 말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최소 한 달은 갇혀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교에서는 여태 신고도 안 했다는 거잖아?”
경찰이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하나교 쪽에서 실종 신고한 적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잠시 후 그런 신고는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러 안 한 거 같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이군. 근데 감금당한 장소가 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장소라며?”
“저도 현장에 가서 알았습니다. 살인범은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고요.”
“살인범과는 연관이 없다는 거네?”
“범인이 일부러 그곳을 고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민들 이야길 들어보니까, 살인마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사람들이 근처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이라서, 감금하기 좋은 곳이라고 판단했겠지. 마을 사람들이 다른 말은 안 하고?”
“노인 몇 분과 잠깐 이야길 나눴는데, 모르는 차가 매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노인네들뿐이면 차 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겠군.”
“운전기사 얼굴도 못 봤다고 합니다.”
“도리없이 피해자 입을 통해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어.”
“피해자가 입을 도무지 열려고 하지 않으니, 오늘은 일단 철수하고 내일 다시 와서 물어보겠습니다.”
“지금은 심신이 몹시 피곤한 상태일 텐데, 물어본다고 다 이야기하겠어.”
경찰이 내일 다시 보고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꽤 많은 눈이 내리겠어.”
경찰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경찰차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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