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안내하는 검은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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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안내하는 검은 짐승
“동화작가님 오셨네요!”
미나가 승강기에서 나오자 간호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무슨 동화작가예요.”
“책을 냈으면 작가지. 작가가 별거니?”
신문에 얼굴이 실리면서 미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었다고 부러워했다. 다른 신문사에서도 미나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전화가 매일 걸려왔다. 그때마다 엄마는 미나가 학교에 가고 없다고 말했다. 식당까지 찾아와 미나가 있는지 보고 가는 사람도 나타났다. 장사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가는 걸 귀찮아하면서, 얼굴은 마냥 싫은 표정이 아니었다. 미나를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엄마 표정도 그만큼 밝아졌다.
“나는 미나가 동화를 그렇게 잘 쓰는 줄 몰랐어. 그런데 동화는 언제부터 쓴 거야?”
미나가 가까이 다가오자 간호사가 물었다.
“아빠가 영혼을 상실한 날부터 썼어요.”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썼다는 거네? 그럼 미나가 동화를 쓴 이유가 아빠 때문이야?”
“아빠한테 동화를 읽어주려고 썼어요. 동화를 읽어주면 아빠가 기뻐하니까요.”
“아빠가 기뻐하는 게 느껴지니?”
“말은 안 해도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내가 동화를 읽으면 아빠가 미소를 지어요.”
간호사는 미나 말을 믿지 않았다. 미나 아빠는 식물인간이라서 미나가 읽어주는 동화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웃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화를 읽을 때 아빠가 웃는다고 느낀 건 미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아빠 얼굴을 보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물건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좋게 보이고 나쁘게 보였다. 길가에 핀 꽃도 예쁘다고 생각하면 좋게 보이고 안 예쁘다고 생각하면 안 좋게 보였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누군 좋게 보이고 누군 안 좋게 보였다.
“그런데 왜 언니한테는 읽어주지 않았어? 맨날 아빠한테만 읽어주고 갔잖아?”
“언니는 동화를 읽어주지 않아도 기뻐하잖아요.”
“미나 눈에는 내가 기뻐하는 얼굴로 보이니?”
“언니는 맨날 웃는 얼굴이잖아요.”
“얼굴만 웃는 얼굴이지, 실제로는 기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간호사는 하나도 기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할 때가 많았다. 웃는 얼굴로 병실에 들어서야 환자들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자를 돌보러 병실에 갈 때마다 늘 기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아서 항상 기쁜 표정을 지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라도 만나면 짜증이 나고, 아침부터 수간호사한테 싫은 소릴 들으면 종일 기분이 나빴다. 그럴 때는 알게 모르게 짜증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환자나 환자 가족을 보면 미소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자기 기분이 안 좋다고 다른 사람까지 안 좋게 할 수는 없었다. 미나는 모든 간호사가 그런 마음으로 일한다고 생각했다.
“기쁘지 않으면 그런 얼굴일 수가 없어요.”
“네가 웃을 때만 봐서 그래. 언니도 화가 나고 짜증 날 때가 많아.”
“아무튼, 언니는 동화를 읽어주지 않아도 기뻐하잖아요. 그래서 읽어주지 않는 거예요.”
“오늘도 아빠한테 동화를 읽어주려고 왔니?”
“오늘은 동화책을 보여주려고 왔어요.”
“미나가 썼다는 그 동화책, 언니한테도 한 권 줄 수 있니?”
“오늘은 한 권밖에 안 가져왔어요.”
“그 책을 나에게 주면 되잖아?”
“줘야 할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그건 몰라도 돼요. 그럼 다음에 봐요. 저는 빨리 가서 아빠한테 동화책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미나가 그렇게 말하고 아빠가 누워 있는 병실로 갔다. 아빠는 오늘도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아빠, 오늘은 동화책을 가져왔어요. 내가 쓴 동화가 책으로 나왔거든요.”
미나가 가방에서 동화책을 꺼내 아빠 얼굴 옆에 놓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어놓으면 아빠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 뒤에도 볼 수 있었다.
“아빠, 오늘은 아빠랑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빨리 가서 동화책을 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미나가 동화책을 집어 다시 가방에 넣었다.
“너무 빨리 간다고 섭섭해하지 않을 거죠? 다음에 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잘 있어요, 아빠!”
미나가 문을 열고 병실을 나갔다.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조금 전 봤던 간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환자를 돌보러 간 모양이었다. 그때 승강기가 올라와 문이 열렸다.
“이 동화책을 꼭 드려야 해!”
미나가 지하도를 걸었다. 미나가 지하도에서 만나려는 사람은 늙은 교수였다. 잔혹한 동화는 늙은 교수를 만나고 썼기 때문에 동화책을 한 권 주고 싶었다. 동화에 늙은 교수가 나오기 때문에 동화책을 받으면 늙은 교수도 기뻐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늙은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약속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못 만나고 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하도를 걷다 보면 만나리라 믿고 계속해서 걸었다.
음매!
그때 어디선가 염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미나가 염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곳에 검은 염소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사람들은 검은 염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검은 염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미나는 검은 염소를 보는 순간 아라니야 숲에서 들은 안내자가 떠올랐다. 통나무집 주인이 검은 염소를 안내자라고 했다.
“너는 안내자니?”
“맞아. 나는 안내자야. 길을 잃은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주지.”
검은 염소가 머리를 위아래로 살살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나를 안내해주려고 나타났겠네?”
“너는 길을 잃은 게 아니잖아?”
“길을 잃은 게 아니라서 도울 수 없다는 거야?”
“길을 잃은 게 아니어도, 네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울 수는 있어.”
“내가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다는 거네?”
“그러니까 안내자 아니겠어?”
검은 염소가 노란 눈동자를 높이 쳐들고 미나를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너한테 눈길을 안 주지? 다들 네가 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잖아.”
“내가 안 보이니까 그렇겠지.”
“네 목소리도 안 들리고?”
“목소리도 안 들리지.”
“그런데 왜 내 눈에는 네가 보이고, 내 귀에는 왜 네 말이 들리지?”
“그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눈에만 보이니까.”
“누군가가 안내자를 간절히 원하면 네가 나타나 돕는다는 거네?”
“아내자가 하는 일이 그거니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미나는 잔혹한 동화를 쓰고 난 뒤에 동화에 나오는 검은 염소가 궁금했다. 검은 염소가 눈앞에 나타나자 늙은 교수가 지하도로 데려갔다. 그 검은 염소를 지하도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잡아먹었다.
“내가 쓴 동화가 있는데, 너도 알고 있니?”
“잔혹한 동화를 말하는 거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아는 수가 있어.”
“그 동화에 검은 염소가 나온다는 것도 알겠네?”
“그 검은 염소는 나니까 잘 알지.”
“동화에 나오는 검은 염소가 너라고? 하지만 검은 염소는 동화 속에서 죽잖아?”
죽었는데 어떻게 눈앞에 나타날 수 있냐는 뜻이었다.
“동화 속에서 죽는다고 안내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세상에는 수많은 검은 염소가 있으니까.”
“검은 염소가 죽으면 안내자가 다른 검은 염소 몸으로 옮겨간다는 거네?”
“너도 검은 염소를 죽인 적 있지 않아?”
“내가 검은 염소를 죽였다고?”
“아라니야 숲에서 검은 염소를 죽였잖아.”
“그건 검은 염소 속에 아쑤라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야. 통나무집 아저씨가 아쑤라가 들어있으니까 빨리 죽이라고 했어. 그래서 죽였어.”
미나가 동화 [공중을 달리는 소녀]에서 검은 염소를 죽였다. 통나무집 주인이 검은 염소 몸에 아쑤라가 들어있으니 죽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검은 염소를 죽이자, 검은 염소 속에서 커다란 거미가 나왔다. 그 커다란 거미가 아쑤라였다. 미나가 그 커다란 거미를 쫓아가 죽였다.
“그 검은 염소도 안내자였어. 아쑤라가 안내자를 내쫓고 검은 염소 속으로 들어간 거지.”
“내가 검은 염소를 죽이고 난 다음에 통나무집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어. 안내자는 다른 염소가 맡으면 된다고.”
“다른 염소가 맡는다는 말은 안내자가 다른 염소 몸으로 옮겨간다는 뜻이야.”
“아내자가 사람 몸에도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갈 수는 있지. 하지만 사람한테는 잘 안 들어가.”
“주로 검은 염소 몸에만 들어간다는 말이네?”
“검은 염소가 좋으니까.”
“검은 염소가 왜 좋은데?”
“그건 나도 몰라. 그냥 좋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아한다는 거네?”
“그렇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미나는 이해가 가지 않으나 검은 염소가 이해해달라니까 그러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검은 염소를 죽이자, 그 속에서 커다란 거미가 나왔어. 그 커다란 거미는 아쑤라였고. 통나무집 아저씨가 아쑤라가 안내자를 내쫓고 검은 염소 몸에 들어갔다고 말했어. 내가 궁금한 건 아쑤라가 어떻게 안내자를 내쫓고 검은 염소 몸에 들어갔냐는 거야.”
“아쑤라가 더 강하니까.”
“아쑤라가 힘으로 내쫓으면 안내자는 무조건 나가야 하네?”
“힘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쫓겨나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냐?”
“나는 안내자가 그렇게 힘이 약한지 몰랐어.”
미나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내자는 힘이 셀 필요가 없으니까. 안전한 곳으로 안내만 하면 되는데, 강한 힘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그래도 아쑤라 정도는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좋은데, 힘이 약한 걸 어쩌겠어. 없는 힘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아쑤라는 검은 염소뿐만 아니라, 사람 몸에도 들어갈 수 있어.”
“아쑤라가 사람 몸에 들어가 주인 노릇을 한다는 거네?”
“아주 못된 짓을 저지르지.”
“얼마나 못된 짓을 저지르는데?”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어.”
“너도 봤어?”
“그 이야긴 그만하고, 네가 찾는 곳으로 빨리 가자.”
검은 염소가 이야기를 중간하고 지하도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미나가 쫓아가며 “내가 찾는 곳이 어딘지 알아?” 하고 물었다. 그러자 검은 염소가 “안내자가 그것도 모르겠어.”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산속으로 가는 거야?”
검은 염소가 지하도를 빠져나와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주택가 골목이 끝나고 곧바로 산길로 이어졌다. 검은 염소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미나는 검은 염소가 산속으로 무작정 들어가니까 약간 불안했다. 산속은 수풀이 우거져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네가 찾는 사람이 산속에 있으니까.”
“내가 찾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를 지하도로 데려가 죽게 한 노인이잖아.”
“그분은 교수님이야.”
“지금은 교수가 아니잖아.”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 교수였으니까 교수님 아니겠어?”
“노인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으니까, 너 알아서 불러. 대신 나한테 강요하지는 말고.”
“너는 교수님이라고 부르기 싫어?”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노인으로 보일 뿐이야.”
미나는 속으로 염소 몸에 들어 있어서 안내자도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다.
“방금 교수님이 너를 지하도로 데려갔다고 했어. 그런데 원래는 네가 교수님을 따라갔던 거 아니야?”
“노인이 나를 데려갔든 내가 노인을 따라갔든, 그게 뭐가 중요해. 검은 염소가 죽었다는 게 중요하지.”
“따라가면 죽을 줄 몰랐어?”
“알았어.”
“그런데도 따라갔단 말이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다른 염소 몸으로 옮겨가면 되니까.”
“죽은 염소가 불쌍하잖아.”
검은 염소가 죽은 건 안내자가 그곳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죽을 줄 알면서 왜 늙은 교수를 따라갔나 몰랐다.
“검은 염소를 죽이고 먹어치운 사람들이 나쁘지, 노인을 따라간 내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그때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렸다. 검은 염소가 걸음을 멈추고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미나가 검은 염소를 지나쳐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살았다. 텐트는 모두 다섯 개였다. 그날 밤 늙은 교수와 함께 있었던 청년이 미나를 알아보고 “너는 미나 아니니?” 하고 말했다.
“아저씨가 왜 여기에 있죠?”
“영감님이랑 여기서 살아.”
“다른 사람들도 있네요?”
“처음에 교수님이랑 내가 들어오고, 다음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
“텐트는 어디서 났는데요?”
“남들이 버린 걸 가져왔어.”
“다른 사람도 남들이 버린 걸 가져왔나요?”
“그건 모르겠어. 다들 알아서 가져왔겠지.”
그런 걸 왜 꼬치꼬치 캐묻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미나가 동화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저씨, 내 동화책 나온 거 알아요?”
“신문에서 봤어. 영감님도 네 동화책이 나왔다고 하니까 좋아하셨어.”
“아저씨가 내 공책을 신문사로 보냈다는데, 그 말이 맞나요?”
“너 몰래 가방에서 공책을 꺼낸 건 미안하게 생각해. 나중에 돌려주려고 가니까 네가 떠나고 없었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신문사로 보냈어. 신문사 기자가 공책에 적힌 동화를 읽고, 책으로 만들었으면 했으니까.”
“결국은 아저씨 바람대로 되었네요?”
“한 권 사서 보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어. 다음에 시내에 나가면 꼭 사서 볼게.”
“아저씨는 공책을 읽어서 어떤 내용인지 다 알잖아요?”
“공책으로 읽는 느낌과 책으로 읽는 느낌이 다르잖아. 영감님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하고.”
“그래서 내가 한 권 가져 왔어요. 교수님 드리려고요.”
미나가 가방에서 동화책을 꺼내 호영에게 건넸다. 호영이 동화책을 살피더니 “예쁘게 잘 나왔네.” 하고 빙그레 웃었다.
“교수님은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이곳에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데리러 갔거든.”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텐트촌이 되겠어요.”
“지금까지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게 좀 걱정이야.”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이곳은 주인이 있는 땅이야. 그래서 함부로 들어와 살면 안 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와 사는 줄 알면, 주인이 쫓아와 당장 나가라고 난리 칠지도 몰라. 그럼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해.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자연이 망가지잖아. 벌써 나무가 몇 그루나 뽑혀 나갔는지 알아? 텐트 하나가 들어올 때마다 어린나무 두세 개가 뽑혀 나가. 그런 식으로 어린나무가 뽑혀 나가면 금방 황폐해질 거야.”
“교수님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자꾸 들어오게 하는 거죠?”
그때 뒤에서 “미나 왔구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늙은 교수가 한 여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여자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가방을 들었다. 늙은 교수도 가방을 하나 들었는데, 텐트가 든 가방이었다.
“영감님한테 동화책을 주려고 왔다네요.”
“그래? 고맙구나.”
“나는 교수님이 여기서 사는 줄 몰랐어요.”
“지하도보다 여기가 더 좋으니까.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검은 염소가 데려왔어요.”
“검은 염소?”
검은 염소라는 말에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미나가 주위를 살피며 검은 염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검은 염소는 보이지 않았다.
“저랑 함께 왔는데, 어디로 가버린 모양이네요.”
“영감님한테 숲속에 텐트를 치라고 한 그 염소 아닐까요?”
“자네는 애 엄마 데려가 텐트 치는 걸 도와주게.”
노인이 가방을 호영에게 건넸다. 호영이 가방을 건네받아 “따라오세요!” 하고는 여자를 데려갔다.
“방금 호영이 아저씨가 말한 염소가 맞을 거야. 검은 염소가 나타나 텐트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거든. 그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어.”
“그럼 저는 그만 가볼게요. 저는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요.”
“혼자 갈 수 있겠니?”
“갈 수 있어요. 길을 잃으면 검은 염소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고요.”
“동화책은 잘 읽으마.”
미나가 노인에게 손을 흔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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