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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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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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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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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2)

DUMMY

어깨가 숨을 쉬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들썩였다. 몇 번이나 혀를 깨물 뻔하면서 나는 말들을 으스러뜨렸다.


“멋대로 결론내린 거잖아. 자신이 희생되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모두에게 최선인 세계에 걸었는데. 리사가 죽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혼자서 결론짓고. 대신 죽기 위해서 나를 이용했어. 자신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양 나를 속여서, 내가 내 손으로 나의 노력을 망가뜨리게 만들었어. 그런건 ‘놀아났다’ 이외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심지어 결코 복수할 수도 없어요······ 죽여버릴거야. 진짜 죽여버릴거야. 근데 이미 죽였어요. 그리고 그게 목적이었다면 난 이제 어떻게 해?”


휘청거리는 나를 탐정님이 머뭇대며 부축했다. 나는 닮은 몸에 화풀이하듯 마구 가슴을 때렸다. 탐정은 가만히 두드려 맞고 있다가 내 힘이 빠지자 놓아 주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입맛이, 없어서. 이만 갈게요. 감사했어요.”


다 식어빠진 음식들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막 신발을 다 챙겨신었을 때, 문득 어깨가 붙잡혔다. 뒤돌아보자 탐정님은 제 쪽이 어깨를 잡아채인 사람같은 표정으로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아, 무심코. 그게. 아니, 죄송해요.”


나는 음식을 바라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탐정님의 얼굴을 조금 응시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탐정님은 그걸 무언의 압박으로 받아들였는지 두서없이 변명을 흘려냈다.


“갑자기 미래가 보여서······ 그런데 뭔가, 착각이나, 그런 거 같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실례했어요.”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짧은 목례를 남기고 탐정님의 집을 완전히 나섰다.


* * *


워드 프로세서는 몇 시간 째 비어 있었다. 이미 제출했던 레포트를 다시 쓰는 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작업이었다. 사유는 간단했다. 소급하면서 과제 제출일 이전으로 돌아왔고, 내게는 너무 옛날 일이라 기억 속에서 과제 내용은 휘발된 지 오래였다. 저장해둔 파일도 당연히 사라졌다.


당연히, 라고 할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소급에 의한 타임리프를 눈치채기 어려웠던 이유는 ‘방학이었다’와 ‘늘 동일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아주 당연하게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인지하는 물건은 시간열과 관계없이 남아있기도 한다’는 것. 예컨대 3일 전에 산 컵으로 모닝 커피를 마시는 게 눈뜨자마자의 습관이 되었다면, 소급으로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갔는데 그 컵이 멀쩡히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윤은 그게 일종의 ‘버그’ 현상이라고 말했다. ‘나’라는 존재 역시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과거의 세계집합으로 비집고 들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느니 어쩌니 장황하게 설명해주었지만 잘은 모르겠다. 아, 그건 기억난다. 남의 인지ㅡ그게 거기 있을 리 없다ㅡ와 충돌하면 남아있기 어려워져서, 보통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물건들에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그러니 이 레포트는 내가 당연히 여기지 않았던가, 아니면 사소하고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에 유실되었다. 혹은 교수님이 강경하게 ‘이 학생이 아직 레포트를 다 썼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적당히 현실도피적 생각을 끊어냈다. 어차피 다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더 이상 타임리프도 없고 내가 찾아가야 할 피해자도 없다. 써야 할 레포트가 있을 뿐이다. 나로서는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소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시작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빈 화면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3초만에 실패했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인터폰이 없는 집이기에 목소리를 높여 문 밖으로 물었다. 되돌아온 건 예상치 못한 목소리였다.


“···리사예요. 심부름, 입니다.”


알고 있는 리사의 목소리는 맞았다. 그렇지만 찾아올 이유도 모르겠고 안전한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잠깐 아저씨가 말해주었던 리사의 처분에 대해 곱씹어본 후, 안전고리를 걸고 조금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까무러쳤다.

높이 올려묶은 포니테일에 올블랙 정장을 빼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신발굽은 높지 않았지만 키가 늘씬한 탓에 눈높이가 너무 높았다. 거의 턱을 꺾다시피 올려다본 눈은 지루한 듯, 나른한 듯 반쯤 감겨 있었다. 어디로보나 리사같진 않은 그 여자는 웬 쪽지를 내밀었다.


“서윤, 으로부터. 통화를 원하는, 용건이 있어요. ···당신의 번호는, 알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번호를 교환하진··· 않은 사이이므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받아든 쪽지에는 휴대폰 번호가 쓰여 있었다.


“전달을 마쳤으니 저는, ···돌아갑니다.”

“잠시만요······.”


미련없이 돌아서는 리사를 나도모르게 불러세웠다. 리사는 반쯤 몸을 돌린 자세 그대로 멈추고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만, 나는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여러 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잠시 후 리사는 다시 내 쪽으로 반듯이 몸을 돌려 마주섰다.


“놀라게··· 했나요?”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이란, 자신의 본질. ···쉽게 말하면, 영혼이라고, 특수단속반에서 배웠습니다.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영혼의··· 일부가 잠든 저는. 당신의 기억과는, 같지 못합니다.”


리사는 제 옆머리를 툭툭 쳐보였다.


“여기에··· 있어요. 당신이 아는, 사람은.”

“······.”


총체적으로 할말을 잃고 잠시 굳어 있던 나는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


“서윤의 능력은 탐정님, 그러니까 진짜 서윤이랑 달랐잖아요? 능력이 그 사람의 영혼과 연관된다면, 다른 능력은 곧 별개의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 돼. 그렇다면 당신의 그 가짜 자백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데······?”


리사는 자백 과정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건 ‘서윤의 생김새를 흉내내어 만든 꼭두각시’라고 진술했다. 알맹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었다고. 그 서윤의 상세한 사정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복잡미묘했으니 납작한 요약이 받아들여진 건 별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방금의 말은 그 요약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증거가 아닌가. 내가 아는 서윤의 능력은 목격자를 감지하는 거지만, 탐정님의 능력은 미래의 사건을 예지하는 것이다.

갸우뚱한 채 긴 머리카락을 스르르 어깨에 흘려내고 있던 리사는 한참 늦게 아, 하며 입을 벌렸다.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의 능력은··· 능력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영혼이 없으니까요. 제 기억에 따른, 흉내입니다. 서윤이 저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게, 원인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목격자를 감지할 줄 안다’고 둘러대두어서.”


그러니까 리사가 탐정님의 능력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내가 아는 서윤의 능력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달라졌을 뿐 독립적인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뜻인 모양이다. 끓어오르던 아드레날린이 갑작스레 가라앉았다. 그걸 느껴서 나는 의아해졌다. 증명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별로 증명하고 싶지도 않은 내용이다. 나의 패배만이 확고해지는 사실이니까.

고개를 저어 털어버리곤, 대화의 물꼬를 비튼다. 약간의 감정을 화풀이삼아 실어서.


“그나저나 봉사활동이라더니 별로 반성한 것 같아보이진 않네요. 이리 뻔뻔하게 나를 찾아와 사과도 않는 걸 보면.”

“그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괜찮은 발언이야 이거? 듣고 있나요 특수단속반?


“그렇지만, 서윤이 믿는 세계를···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그렇다는 것, 같습니다.”


리사는 제 머리를 살짝 흔들면서 그렇게 답했다.

우뚝 굳어버린 나를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시선으로 응시하던 리사는 문득 손목을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야기가 즐거워서, 시간을 많이 써버렸습니다. 이만, 돌아갑니다. 괜찮다면··· 전화를, 부탁해요.”


리사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졌다. 나는 살짝 열린 현관문 틈새로 머리통을 끼워넣는 로레인을 발뒤꿈치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이내 문을 닫고 방 가운데 주저앉아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두어 시간쯤 흐른 뒤에,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 은하 씨. 전화줘서 고마워요.”


전화 안하실 줄 알았는데, 라는 말이 생략된 듯한 인상을 받았지만 딱히 짚지는 않았다.


“무슨 일 때문인가요?”

“제 사무소에서 의뢰인용 테이블 말고 사무용 책상 아래 컴퓨터 본체가 있는 곳의 반대쪽 바닥에는 뭐가 놓여 있었나요?”


왜 이걸 묻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 물음이었지만, 잊을 수 없이 선명한 풍경이 머릿속에 펼쳐진 탓에 순순한 대답이 그보다 먼저 목구멍을 치솟았다.


“금고요.”

“아하. 금고 자리라. 역시 은하 씨 기억 때문이 맞나보군요. 고마워요, 궁금증 해결했어요.”

“상황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사무소의 방금 말한 위치에 제가 모르는 흔적이 있어서요. 무언가 있다가 사라진 것 같은데, 제가 이 자리에 뭔가를 놓은 기억도 치운 기억도 없거든요. 그래서 무슨 일이려나 추리 중이었어요. 예상대로 소급의 버그인 걸로 결론이 났네요. 근데 중요한 걸 넣어두셨던 건가요? 사라져서 어째요. 다시 찾아드릴······”

“아뇨, 별 건 들어있지 않았어요. 저와의 고용계약서였어요. 제 기억에 그게 남아있는 이유는, 음.”


너무 어이없었던 나머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 설명을 하려면 금고를 주인 몰래 땄었다는 얘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삼키고 말을 돌리려는데 탐정님이 한 발 빨랐다.


“계약서요? 와. 저랑도 써요.”

“······아르바이트라면 됐어요.”

“아뇨, 동업 계약서요. 그러니까 MOU죠. 은하 씨도 동등한 탐정이니까. 그것도 훌륭한 탐정이요. 저랑 같이 일하셨으면 해요.”

“탐정님.”


나는 가만히 말을 끊었다.


“저는 이제 됐어요. 전부 다.”

“······.”

“다른 용건이 없으시다면 끊겠습니다. 앞으로는.”


전화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 말과 거의 동시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나는 몸을 웅크렸다. 세상에서 가장 동그래지고 싶었다. 이미 한껏 냥모나이트가 된 로레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묻었다.


몰래 탐정 사무소를 뒤지던 날을 생각했다. 사무소에 혼자 있었던 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 날이 유일했다. 그래선지 그날의 풍경은 유독 기억 속에서 선명했다. 하얀 햇살이 들이치는 가운데 샅샅이 훑어본 사무소의 내부는 마치 심상풍경처럼 내 안에 자리잡았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사무소의 출입문을 곁눈질하면서 손끝으론 금고의 다이얼을 돌리던 감각을 기억한다. 온갖 숫자를 추리했지만 다 실패해서 원시적인 방법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이 안에 분명히 약점잡을 거리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느껴져 어떻게든 열고 싶었다. 케이퍼 무비를 흉내내어 한 칸씩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진짜로 미묘하게 다른 찰칵임이 들려서, 그걸 계속 쫓았더니 금고가 정말로 열렸다. 나는 뭐가 들었나 보기도 전에 다시 다이얼을 돌리며 금고의 비밀번호를 확인했다. 0, 4, 2, 5. 날짜같은 숫자지만 영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몇 번 미련을 담아 다이얼을 만지작대곤 금고 안의 것으로 시선을 돌렸었는데······


“0425?”


나는 몽상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섰다.


작가의말

다음편이 완결편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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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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