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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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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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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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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1)

DUMMY

상 위로 근사한 양식요리들이 부려지고 있었다. 흰 빵과 올리브오일, 치즈가 올라간 샐러드, 양파를 넣은 포타주, 관자 그라탕, 필레미뇽 스테이크, 시럽에 절인 과일. 탐정님은 풀코스를 꽉 맞춘 구성을 만들어 놓고선 정작 그 음식들을 두서없이 한꺼번에 상 위에 펼치고 있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상다리 부러짐을 양식요리들이 연출하는 부조화한 풍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리를 잘 하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탐정님은 이미 빈틈이 없는 상에 새로운 자리를 개척하려 애쓰며 대꾸했다.


“그야 그렇겠죠. 리사가 속상해할까봐 보여준 적 없거든요. 리사, 나름대로는 요리에 자부심이 있으니까.”


나는 집중한 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어 흐트러진 그의 앞머리를 바라보았다. 이어 옷차림과 몸짓을 바라보았다. 탐정님이 마지막으로 와인잔을 우겨넣는 데 성공했을 때,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너무 달라.”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어떻게 수습하고 싶은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조금 후 탐정님은 멈췄던 손을 움직여 와인 병을 집어들었다.


“······뭐야, 저랑 다르다고요? 그럼 그게 애인님 취향이란 말야? 그것 참 질투나네요. 제 어디가 모자라서 다른 사람을 상상한단 말이죠?”


분위기를 돌이키려는 너스레와 함께 빈 잔에 빨간 와인이 콸콸 쏟아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일주일 전, 6월 30일이자 4월 25일의 일을 생각했다.


리사는 ‘자신이 서윤을 정당방위로 살해한다’는 사건이 부정된 순간, 이후의 모든 범행을 포기했다. ‘나와 서윤 간의 의견 차이 때문에 파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반복되고, 그걸 피하려면 세계를 갈아치울 수밖에 없다’는 리사의 견해를 반박할 논리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리사와 그의 의견 차이를 만드는 전제 또한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리사는 ‘자신은 그저 진짜 서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벌였다’는 납작한 요약을 받아들이고 그 내용으로 자백해 특수단속반에 검거되었다.


리사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알 수 없다. 탐정님의 오열에 의지가 꺾인 건지, 자신이 벌이게 될 범행을 알고 있는 제 3자의 존재에 압박을 느낀건지.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이유에 무게를 싣는다. 본래 소급으로 지워진 사건과, 소원이 이루어진 동안의 기억은 가해자와 탐정에게만 남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한 사람이 더 기억했다. 민익 아저씨였다. 소급의 순간 내 몸에 퓨리파이어를 꽂고 있었던 탓에 기억을 잃지 않고 함께 과거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미 특수단속반의 주요 인물에게 자신이 이 모든 일에 연루되었다는 꼬리를 밟혔고, 세부 사항은 그 주요 인물과 친밀한 관계인 내가 증언해줄 게 빤한 체크메이트에서 리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킹을 쓰러뜨리는 것뿐이겠지.


그렇지만 사실 나는 별 것 증언하지 않았다. 두 달이나 건너뛴 탓인지 아니면 누굴 끌고 같이 소급한 탓인지 3일동안 기절해 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정신이 들었을 땐 언젠가처럼 아저씨가 제일 먼저 눈을 마주쳐왔고, 그 동안 리사를 어떻게 처분하기로 결정되었는지 알려주었다. 리사는 소원이 이루어진 한 달 동안은 그냥 평범하게 지냈지만, 그 이후 어디선가 교환법칙을 이용해 세계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진술했다. 그 뒤 30일동안 시간을 반복하며 189건의 교환법칙 사건을 일으켰다. 리사의 범행은 모두 없었던 것이 되어 개념적으로는 아직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점과 가진 능력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이 참작되고, 그녀가 세계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인지한 경로가 불명확하여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검토되었다. 그래서 리사는 완전히 처분되는 대신 능력을 일부 제한받은 채 특수단속반에서 ‘봉사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리사의 기억에서 태어난 남자는 영원히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눈 앞의 아주 다른 남자뿐이었다.

아주 다른 남자가 와인을 권했다.


“은하 씨.”


나는 물끄러미 유리잔 안 찰랑이는 액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잔에 비친 탐정님이 어깨를 늘어뜨리는 것이 보였다.


“은하 씨는 지금 이런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나는 끝내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네.”

“절망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으음.”


내 머리꼭지를 빤히 쳐다보는 듯하던 탐정님은 이내 권하던 잔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탐탁찮은 듯 팔짱을 푹 꼈다.


“좋아, 탐정답네요. 꺼진 사건도 다시보자. 짧게 말하셨지만 ‘당신이 죽는 순간 절망했으니까 교환법칙이 성립했겠지만, 사실 당신이 절망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건 이상하다’는 거죠?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미래를 바꿀 수 없어 절망하는 이야기는 꽤 클리셰지만, 저는 그걸로 절망하는 건 이미 졸업했지. 그래요. 제가 절망한 건 마지막 순간에야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아서예요.”


정성껏 만든 요리가 차게 식어가는 광경을 별다른 유감 없는 눈길로 내려다보며 탐정님은 말을 이었다.


“아까도 설명했지만 저는 미래의 범행을 봐요. 누가 언제 무엇을 저지를지 알죠. 즉 리사가 저를 죽일 건 알고 있었어. 다만 알아도 범행을 막을 수는 없어요. 약간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뿐이지. 예컨대 신속하게 검거하거나,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거나.

······그래서, 리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방향으로 범행을 수정하려 했어요. 리사가 저를 고의로 죽일 리는 없으니 분명 실수일텐데, 그랬다간 평생 저를 죽였다고 자책하며 살게 될 거잖아요. 그건 싫어서, 제가 죽어 마땅한 인간이 되기로 했죠. 어떤 쓰레기가 가장 쓰레기같은 쓰레기일까 생각하다가 애인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는 쓰레기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서 채택했는데.”


휴우,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신없는 플레이트 틈바구니에 용케도 끼어들어가 있던 캔들의 작은 불꽃이 아슬아슬 흔들렸다.


“문제는, 기왕 그런 컨셉이면 더 막나가야 했는데 ‘네 능력 때문에 너를 죽일 수밖에 없어’ 같이 묘하게 논리적인 컨셉을 잡아버렸다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맥락없이 동반자살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적당한 이유를 고른 건데······ 그게 오판이었던 거야. 그 덕분에 리사는 저를 죽인 걸 곱씹지는 않을지 몰라도, 영원히 자신의 능력을, 그 당위를 곱씹게 될거라는 걸 간과했어요. 그걸 제게 총을 오발한 리사의 눈을 보고서야 깨달았죠. 그만하면 절망할 법하지 않아요?”


나는 그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잔을 불쑥 들어 쭉 들이켰다. 탐정님은 놀란 듯 나를 보고 있다가, 식사를 시작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건지 미소지으며 샐러드에 젓가락을 뻗었다. 나는 내 말이 그 젓가락 앞을 가로막게 될 거라 예상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건 정말 컨셉일 뿐이었나요.”


예상과 달리 탐정님은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양껏 집은 샐러드를 우물거린 그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흰소리죠. 마음을 조종하는 사람이라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니,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못 믿으면 그게 사랑인가.”


리사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이것일까. 나는 고개를 겨우 끄덕인 다음, 수저를 들어 그다지 내키지 않는 식사에 참여했다.

침묵이 동석한 채 지켜보는 식사는 무미건조했다. 수저와 식기가 부딪혀 달각대는 소리만 한참 울렸다. 이것저것 덜어 먹으며 스스로 만든 요리를 즐기는 듯하던 탐정님이 문득 입을 열어 침묵을 갈랐다.


“저는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꾼다는 말을 믿지만, 이뤄질 거라곤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리고 그 말은 아무래도 침묵만이 아닌 나까지 갈라버렸다. 탐정님은 굳어버린 나를 주의깊게 눈 속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은하 씨가··· 정말 감사해. 어떻게든 답례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아무래도 넘어가줄 수 없어요. 은하 씨.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건 뭐예요?”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탐정님은 구태여 제 상체를 낮추어 올려보아서 억지로 눈을 맞췄다. 마치 주인의 기분을 읽으려는 강아지처럼. 그게 아마도 어떤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더 숨기기도 어려웠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폭로했다.


“웃고 있었어요. 서윤이. 그 순간에.”


내도록 이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 탐정님을 기껍게 여길 수 없었던 이유를.

탐정님은 누구를, 언제를 지칭하는지 곧장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먼저 말을 쏟았다.


“이긴 건 나야. 나는 증명했어요. 그 인간의 계략을 무너뜨리고, 미래를 바꾸어내서, 미래로 이어지는 완벽한 가능성을.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야······.”

“······잠깐 괜찮을까요?”


어느샌가 탐정님이 바로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조심조심 내 표정을 살피더니, 천천히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안겼다. 탐정님은 담담한 손길로 내 등을 토닥였다.


“사람은 가끔 절망하면 오히려 웃어요. 아니면, 프로그램의 오류라고 할까요? 그 사람은 온전히 인간이라고 하기 애매하니까. 그도 아니면 당신이 착각한거예요. 원하는대로 믿으세요.”


탐정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격렬하게 저었다. 탐정님이 한 손으로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쌀 때까지.


“역시 납득할 수 없겠죠. 탐정이란 족속은 다 그러니까.”


탐정님은 그대로 내 뒷머리를 어루듯 쓰다듬었다. 목소리는 어린아이에게 동화라도 들려주듯 나긋한 톤으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그늘져 우울했다.


“자신이 사라져서 모든 게 소급되는 것, ‘거기까지가 그의 계획 위’라고 깨달아버려서 이렇게 곤란해지신 거겠죠. 끝까지 숨겼어야 은하 씨가 죄책감에 붙잡히지 않았을텐데, 최후의 순간에 실수하는 게 저랑 꽤 닮았달까······.”


나는 탐정님을 밀쳤다. 탐정님은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항복 표시처럼 양 손을 들어올렸다.


“싫었어요? 반응이 늦네요.”

“죄책감은 무슨 얼어죽을 죄책감이에요. 그딴 것 아니야! 난, 난 그 인간, 죽여버리고 싶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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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2) 21.02.05 18 0 12쪽
»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1) 20.11.01 22 0 11쪽
55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完) 20.09.09 23 0 14쪽
54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7) 20.08.21 16 0 9쪽
53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6) 20.07.29 20 0 11쪽
52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5) 20.06.23 23 0 10쪽
51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4) 20.06.07 21 0 11쪽
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2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6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42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4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3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1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6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3 1 11쪽
33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7 1 8쪽
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0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0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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