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027
추천수 :
37
글자수 :
251,734

작성
20.06.07 18:23
조회
21
추천
0
글자
11쪽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4)

DUMMY

“무슨 개소리죠?”


아주 잠깐 혹할 뻔했지만 금방 정신차렸다.


“일주일 정도가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서요. 당신을 되살린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 단서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내가 만난지가 일단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님 교환법칙의 규칙에 대해서도 거짓말했나.”

“다시 말하지만 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없어. 그리고, 넘지 않았어.”

“곧장 거짓말하면 잘도 설득력이 있겠네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


······하다! 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눈을 깜빡였다. 사건을 해결하며 소급을 거듭한 결과, 내가 윤과 보낸 시간과 실제 흘러간 시간 사이에 괴리가 생겨 있었다. 나는 멍하니 물었다.


“오늘 몇 일?”

“6월 30일.”


내가 윤과 처음 만났던 날짜가 6월 26일. 그러니 5일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리사가 소원을 빌기 위해 사건을 일으킨 때로부터 아직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간상으로는 가능했다. 나는 잠시 이 사실을 검토해보았다.


“하지만 당신, 나를 만나기 전에도 교환법칙 사건을 해결하고 있었다며요. ‘그간 경험에 비추어보면’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했잖아. 그건 꽤 오랜 시간 그 일을 해온 뉘앙스 아녜요? 그걸 합산하면 역시 일주일은 넘었을 거 같은데.”

“죽기 전의 나도 교환법칙 사건을 해결한 적들이 있고, 그래서 그 기억부터 끌어와 얘기한거야. 그럼 문제없지.”

“리사가 의뢰해서 시작한 거 아니에요? 그 의뢰는 당신을 되살린 후에 시작됐을텐데?”

“애인님이 교환법칙을 만든 게 아니잖아? 그 전부터 법칙은 존재했고 그러니까 사건도 있었어.”

“······그걸 수용한다고 해도 일주일이 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정확한 사건 날짜를 모르는 이상 당신이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나는 범인을 모른다, 던 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거기에 나는 그녀의 공범이라던 목소리도 겹친다.

윤은 내 거짓말 탐지 능력을 우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나. 바보도 아니고. 그 생각을 했더니 조금 마음이 아파졌다. ‘거짓말을 알아서 너무 나이브하다’던 말이 뒤따라 떠오른 탓이었다. 거짓말 탐지 능력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때엔 윤의 말을 너무나 덥썩덥썩 믿었다. 바보같이.

다리 힘이 돌아왔는지 비척비척 일어서려는 윤을 툭 걷어차 다시 쓰러뜨렸다. 윤은 볼품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당신이 그 피해자를 뭣하러 신경쓰죠? 당신은 피해자를 걱정했던 적 없잖아.”


새벽 늦게 걸려왔던 전화. 초조해하던 목소리. 빗속. 둔탁하게 부딪히는 물소리. 기울던 우산. 부탁이라는 말의 간절한 울림. 나는 그런 것을 소중히 품어버렸다. 진짜, 내가 너무 불쌍했다. 시간의 흐름과 피해자를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반비례한다며 서두르던 게 피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눈치챘다. 피해자가 사라져버리면 소급의 기회가 사라지니까, 그러면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못하고, 리사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으니까. 당신은 그런 이유로 간절했던 건데.


“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소급이 이루어지면 당신이 사라져요. 당신이 소원의 결과랬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그걸, 왜 원하죠?”


반론할 말이 있을 리 없는 체크메이트였다. 잠시 표정을 잃은 듯했던 윤은 순식간에 갈무리하며 히죽 웃었다. 바닥에 뻗어서 짓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따박따박 따지고 들지 마······라고 말하기엔 그래서 난 너에게 기대를 걸었지.”

“기대요?”

“기대. 예전에도 몇 번 말했어. 아무튼, 뭐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시간을 끌기 위해 뭐라도 지껄이고 있다, 라면 이해할 수 있어? 그럼 그런 걸로 하자. 하지만 그 경우에도 제일 좋은 방법은 네가 모르는 중요한 진실을 푸는 거야. 그건 납득할 수 있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피해자를 구하는 일은 너에게도 중요해. 피해자가 누구인지까지만 일단 추리해봐. 그럼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았다는 것도 납득하게 될 거고, 내가 왜 구하고 싶어하는지도 알게 될거야.”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

“머리를 써. 생각해. 추리해. 어차피 거짓말을 안다고 해서 다 알았던 것도 아니잖아. 가려진 진실이 무엇인지는 네가 탐지한 거짓말을 토대로 추리하고 있었잖아? 똑같아, 그렇게 해.”


물론 난 정말 거짓말한 적 없지만, 윤이 작게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잠시 곱씹었다. 나는 구할 수 있는 피해자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내게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까지라면, 크게 위험할 것도 손해를 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추리를······ 추리를?


“잠깐. 내가 추리하라고요? 그냥 당신이 말해주면 되잖아.”


내뱉은 직후 윤은 피해자가 누군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기 전의 일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말을 무르려는데, 윤이 문득 애매하게 웃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졌다.


“말할 수 없어.”

“장난하지 마요.”

“말할 수가 없다고.”


윤은 미소를 걸고는 있지만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발견했기 때문에 나는 즈려밟을 참이던 발을 거뒀다. 윤은 아랫입술을 짓씹더니 무언가 포기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제한에 걸려서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하면 믿어줄거야?”

“믿겠어요?”

“그럼 시간을 최대로 끌기 위해서 정보를 나누어 흘리겠다고 하면, 그건 믿어?”


······수완이라면 차고 넘치는 사람이 이따위로 입을 터니까 오히려 신뢰해볼 만하게 느껴졌다. 그 배신을 당하고도 미련을 놓지 못하는 호구 꼴이라는 건 안다. 정말 아는데.

나는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윤이 일어나도록 손을 빌려주었다.


“어떻게 흘릴 건지 말해봐요.”

“스무고개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네가 무언가 물어. 그럼 네, 아니오로 대답할게. 스무 번 안에 맞출 필요는 없어.”


나는 윤을 조수석에 앉히고 남은 청테이프로 좌석에 묶었다. 손이 묶여있긴 하지만, 내가 운전석에 타는 동안에 문을 열고 도망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고 그랬다간 좀 귀찮아지니까. 윤은 얌전히 묶였다. 입만 빼고.


“완전 범죄적이야. 100미터 밖에서도 범죄 현장인 게 훤히 보이겠어.”

“그러게 썬팅된 차로 가져오지 그랬어요.”


시크하게 대꾸했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그래서 운전석에 탄 다음 조수석 쪽의 선바이저를 당겨 내렸다. 아주 조금이지만 어쨌든 덜 보이긴 할 것이다. 윤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서 몇대 패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그럼, 어디부터 추리할까요.”

“무엇이든 네가 모순이라고 느끼는 부분부터.”

“좋아요. 손 이리 주세요.”

“응?”


앞으로 묶어 놓은 윤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양 손으로 덮어쥐었다.


“외간남자 손을 막 주물거리네. 내 손이 모순적이야?”


좋아하는 남자, 라고 속으로 고쳤다가 지워버렸다.


“시간을 끄는 거라고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요. 그건 시간을 끄는 동안 뭔가 하려는 속셈이라는 뜻이니까. 원천 봉쇄예요.”

“내가 뭘 하는 게 아니라 지원이 올 가능성도 있지.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이지만, 이 거짓말로 들리지 않긴 했지만 그걸 판단근거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리사와 윤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나 외의 제3자가 끼어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걸 근거로 삼았다. 그래도 오늘이 6월 30일이라면 아저씨에게 뜯어냈던 3일의 말미가 이미 넘었으니까, 특수단속반을 생각해서 서둘러야 하는 건 맞았다.

······가장 신경쓰이는 거라면 어떻게 거짓이 아니었던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지. 즉, 어떻게 내 탐지능력을 우회하고 있는지였다. 하지만 그건 유의미한 문답을 기대할 수 없었다. 윤이 만약 우회가 아니라 정말 자신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거라고 다시 주장한다면, 논리적으로는 ‘윤이 공범을 모르면서 아는 상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추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순은 너무 모순적이어서 진지하게 추리하고 싶어지기보다는 윤이 스무고개의 탈을 쓰고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 쪽이 훨씬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그 의심은 어떻게 내 탐지능력을 우회하고 있는지 판명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따라서, 순환질문이 된다. 그런 데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나는 다른 모순을 생각해보았다.


“당신은 서윤이죠.”

“질문이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질문할 필요가 없는 팩트예요. 리사는 교환법칙의 소원으로 서윤을 되살려달라고 빌었어요. 그러니 당신은 되살아난 서윤이에요. 그렇지만 리사의 말에 따르면, 서윤은 결코 리사의 공범이지 않을 사람이에요.”


그 때문에 리사는 서윤을 속이려 애썼다. 속여넘겼다며 무진장 안도하기도 했다. 사실은 윤이 속아넘어가주고 있었던 거겠지만, 아무튼.


“그런데 왜 당신이 리사의 공범이죠? 당신은 서윤인데 왜 서윤이 하지 않을 일을 하죠?”


윤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네,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인걸.”


아, 그러네. 나는 스스로가 갑갑한 기분이 되었다. 질문법을 바꿔보자. ‘당신은 서윤인데, 서윤이 하지 않을 일을 했다’. 이 문장을 가능하게 하는 게 뭐가 있지?

윤은 질문을 기다리며 묵묵히 잡힌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는 둥 말했지만 그보다는 역시 말할 수 없는 제한에 걸린 사람의 태도처럼 보였다. 연기에 능한 사람이라는 건 고려해야겠지만······ 어?


“협박당하고 있나요?”


당신은 서윤인데, ‘협박당하는 바람에’ 서윤이 하지 않을 일을 했다. 이러면 매끄럽다. ‘어떤 제한에 걸려서 제대로 말할 수 없다’던 말과도 연결되는 데가 있고.

괜찮은 추리라고 생각했는데 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나는 퇴짜맞은 가설을 빠르게 기각하고 다시 머리를 굴렸다. 일단 지금 주어진 내용을 찬찬히 되짚었다. 그러다 한 가지 가능한 의문을 발견했다.


“······리사의, 서윤에 대한 판단이 틀렸나요?”


서윤은 리사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소수의 의견을 마음대로 조종해도 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의 인과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람들을 조종해 교환법칙을 일으킨다는 건 더더욱 동의할 리 없다. 그게 리사가 서윤을 속이려 애쓰던 이유다. 하지만 그 판단 자체가 틀렸다면? ‘당신은 서윤이고, 서윤이 할만한 일을 했다’라면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젠장. 2연속 아니오를 처맞은 나는 막나가는 심정이 되었다.


“그럼 ‘서윤이 하지 않을 일’ 쪽이 아니라 ‘당신은 서윤이다’가 틀렸나봐. ‘당신이 서윤이 아니라서 서윤이 하지 않을 일을 했다’라는 거죠.”

“네.”

“······?”


그냥 던진 소리였는데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손바닥 아래로 윤이 제 손을 꾹 맞잡는 게 느껴졌다. 윤은 잡힌 손에 시선을 박은 채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네. 나는, 서윤이,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탐정이라는 거짓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2) 21.02.05 19 0 12쪽
56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1) 20.11.01 24 0 11쪽
55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完) 20.09.09 23 0 14쪽
54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7) 20.08.21 16 0 9쪽
53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6) 20.07.29 20 0 11쪽
52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5) 20.06.23 24 0 10쪽
»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4) 20.06.07 22 0 11쪽
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3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7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42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5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4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2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7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5 1 11쪽
33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9 1 8쪽
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1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1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