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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024
추천수 :
37
글자수 :
251,734

작성
20.01.16 22:29
조회
28
추천
1
글자
8쪽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DUMMY

“꿈을 꿨는데요.”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윤은 키보드나 조금 더 두드렸을 뿐 딱히 말을 대지 않았다. 뭐라고 댔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했을 거지만. 그때 물이 다 끓어 우선 커피포트를 내렸다. 미리 녹차 티백을 넣어둔 머그에 뜨거운 김과 물을 함께 쏟아부었다. 연한 녹색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찻잔을 감아쥐고 그 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꿈이었어요. 나는 낡은 스웨터를 땔감으로 던져넣었죠.”


캠핑에서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둘러앉아 멍하니 불을 쳐다보는 행위를 ‘불멍’이라고 한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입고 있던 낡은 스웨터를 벗어 불꽃에게 먹이로 주고는 러닝 한 장 차림으로 불가에 앉아 불멍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하기는 라이터로 지져봤자 사실 풀린 데는 계속 풀리는 법이라고. 은율에게는 결과적으론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스웨터를 살라먹는 불길이 유독 아름답더라고요. 미련은 오래토록이었는데 타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어요. 하얀 재가 사뿐히 바람에 날려갔어요. 일부는 내 쪽으로 불었는데 그런 바람은 아마도 처음 맞아봤을 거예요.”


뺨에 묻은 재를 닦아내다가 일부를 들숨에 섞어 들이켰고, 그렇게 재채기와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어느덧 윤의 키보드 소리가 멈춰 있어 이제 사무소의 배경으로는 요요한 빗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거 엄청난 우연인데. 마침 딱 알맞은 선물이 있거든.”


푹 우러난 찻물에서 눈을 들어보니 책상 옆의 선반으로 팔을 뻗는 윤이 보였다. 그 손이 누구의 물건인지 너무 명백한 디자인의 상자를 집어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윤의 옆으로 다가가 찻잔을 내려놓은 뒤 상자의 뚜껑을 들었다.


“애인님이 두고 갔어. 네가 오면 주라고. 직접 떴대.”


아이보리색 털실로 뜬 스웨터가 상자 안에 잘 접혀 있었고 그 위로 손글씨 카드가 놓여 있었다. 카드에는 ‘계절을 고려하는 걸 깜빡했지만 가을은 또 오니까요. 그 때가 되면 입어주세요. 감기 조심하시고요.’라고 쓰여 있었다. 저번에 혼자 나를 찾아왔을 때 감기라고 거짓말했던 걸 여전히 믿고 있는 걸까.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라던가 오해해버린 건지. 다시 뚜껑을 닫아서 겉옷을 널어둔 간이 건조대 근처의 창가에 올려두었다. 이러면 까먹지 않고 퇴근할 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간의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사건의 예감을 기다리며 무료하게 시간을 죽였다. 윤은 다시 컴퓨터를 붙들었고 나는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하며 혹시라도 맞닥뜨릴 거짓말을 찾았다. 윤은 나에게 어떤 심경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전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기보다도 아마 짐작했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는 거겠지. 구체적인 것까지는 몰라도 대강의 얼개는 눈치채고 있을 거라는 묘한 믿음이 들었다. 단순히 믿음이라기에는 윤이 은율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행동을 생각하면 오히려 논리적인 추리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윤에게 꼬치꼬치 설명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기도 하고. 애초에 내게 일어날 전개를 미리 예측하고서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꾼다’는 그 말을 꺼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나기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는 선선한 바람 사이로 아주 작은 물알갱이가 섞여 날아다니는 듯한 촉촉함만이 남아 있었다. 널어두었던 가디건은 적당히 말라 있었다. 다시 그걸 걸쳐입고 옆의 창가에 두었던 리사의 상자를 집었다. 그런데 제대로 잡지 않았는지 몇 센티 들려올라가던 상자는 어느 순간 뚜껑만 손에 남고 아랫부분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선물 취급이 험하잖아.”


윤은 투시 능력도 있는 건지 노트북 모니터에 눈을 박고 있으면서도 얄미운 소리를 던졌다. 약은 오르지만 할 말은 없어서 얌전히 쪼그려 앉아 쏟아진 스웨터를 도로 개어 상자에 집어넣었다. 최선은 다했지만 처음처럼 예쁘게 접히진 않았다. 어느 정도에서 포기하고 날아간 카드를 집어서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다시 스웨터 위에 놓으려다 카드의 뒷면에도 글자가 쓰여있는 걸 발견했다. ‘과거를 바꾼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작게 소리내어 읽어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이거 당신 입버릇이에요? 리사 씨도 옮았네요.”

“음······ 아냐. 따지면 애인님이 처음 한 말일걸. 아니, 아닌가?”


믿을 수 없게도 횡설수설하는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니터 옆으로 슬쩍 보이는 얼굴이 곤혹스러워하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뭐예요, 뭔데요.”

“애인님이 서윤을 모델로 쓴 동화가 있는데 거기서 읽었어.”


어떤 혼란이 발생했는지 알아차렸다. 첫째로는 리사가 서윤을 모델로 쓰는 과정에서 서윤이 한 말이 아닌 것이 창작되거나 했던 말이긴 하지만 각색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리사의 말인지 서윤의 말인지 모호한 문제. 둘째로 윤 스스로는 내가 아닌 진짜 서윤을 모델로 한 동화라는 소리를 할 수 없는 문제. 이때문에 ‘서윤을 모델로 쓴’, 이라는 마치 자기 3인칭화처럼 들리는 모호한 표현이 들어갔을 것이다. 윤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어쩐지 재미있어서 나는 조금 웃어버렸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말을 믿고 있다고 했으니까. 시작이 서윤이든 리사이든 당신은 그 말에 대한 믿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그 말은 다시 리사에게 되돌아간다. 리사는 또다시 어느 이야기엔가에서 그 말을 풀어내게 될 것이고, 당신은 그 말에 조금 더 믿음을 실을 것이다. 그런 당신과 리사 간의 빛나고 묘하게 간질거리는 순환을 발견해서 나는 어쩐지 눈이 부시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들고 싶다는 작은 질투를 느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제목이 뭐예요?”

“<완벽한 탐정>. 미출간이니까 검색해봤자 의미없어.”

“아쉽네요. 보고 싶은데.”

“그럼 직접 보여달라고 하든지?”


리사로부터 왔으며 당신이 증폭시키는 그 말. 결과론적으로 나에게도 그 말은 적용되었다. 나의 과거는 바뀌었다.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는 막다른 골목을 명확히 확인함으로서.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아무런 기대를 느끼지 않았다. 그게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컨대 이런 기분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거라면 쭉 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탐정의 조수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 * *


“ㅡ그렇게 되었어요, 아저씨.”


저번에 불러내놓고는 도망쳐버렸던 일을 사과하기 위해 다시 마련한 자리에서 나는 아저씨에게 나의 다짐을 간략히 전했다. 저, 탐정 일을 돕기로 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파헤치고 뭔가를 찾아낼 거예요.

아저씨는 빙긋이 미소지었다.


“잘 되었네요. 응원하겠습니다.”


그 뒤로 새로운 탐정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시공의 틈새에서 구해낸 사람들과 헐겁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그들과 꾸준히 시간을 보냈다. 비유하자면 아저씨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윤은 그다지 필요없는 애프터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떤 의미에선 그게 나의 부수적인 업무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겪을 뻔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명료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도록 도왔다. 그럼으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내가 구해낸 이들이 다시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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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6) 20.07.29 20 0 11쪽
52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5) 20.06.23 2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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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2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7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42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5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4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2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7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5 1 11쪽
»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9 1 8쪽
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1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1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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