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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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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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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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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수 :
2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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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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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DUMMY

들이삼킨 헛숨이 겨우 빠져나온 건 엄마의 얼굴에 다시 표정이 돌아온 후였다. 종이 마스크 위에 매직으로 그려놓은 듯이 인위적인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표정이 존재함으로서 아까보다는 숨이 덜 막혔다. 엄마의 목소리는 제법 태연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구나. 하긴, 우리 딸은 속이기가 참 어렵지.”


심지어 엄마는 미소지었다. 서서히 마스크는 인간의 얼굴로 변해갔다. 나는 다음 말을 더듬더듬 내뱉었다.


“왜 그랬, 그랬는지 말해줘.”

“어쩔 수 없었어.”


엄마의 그 말은 명료하게 진실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을 얘기해주기를 기대했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기를 바랐다. 그렇지요, 윤. 과거를 파헤친다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있댔지요. 내가 모르는 과거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엄마에게 있어야 나의 미래로 이어질테니까 분명 그런 것이 있어야만 해요. 그래야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게 될테죠. 그러면 가족을 미워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그게 무서웠다. 왜냐하면 내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니까. 사랑하는 법을 모르게 되었다는 말을 또다른 내가 듣는다면 역시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싶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엄마, 내가 엄마를 안심하고 사랑하도록 해 줘. 엄마가 말하는 사랑을 특별히 의심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랑을 환멸하지 않아도 되도록.


“딸도 다 컸으니까 얘기해줄게.”


엄마가 갑자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조금 후에야 심호흡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경력이 끊긴 여자가 이혼하면서 자식을 잘 키우려면 방법이 그것뿐이었어.”


이어진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아빠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버렸다. 사소한 것들이 다 싫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물 마신 컵을 헹궈서 건조대에 뒤집어놓지 않고 그냥 싱크대에 담가두는 것이 속상했는데, 그러고 나니 칫솔의 물기를 제대로 털지 않고 아무렇게나 세면대에 올려두는 것이 신경쓰였고, 어느 순간에는 숨쉬는 것마저 거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이고 사실은 그냥 질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책 한 권을 15년동안 반복해서 읽는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니, 엄마가 중얼거렸다. 실은 결혼하기 전에도 의문을 가졌었다고 한다. 한 사람과 몇십년이나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할까, 라고. 한 직장에서 몇십년을 근속하는 것도 이제는 희귀해진 시대다. 그래도 여전히 오래토록 함께 사는 사람들은 많았으니 엄마도 일단 결혼을 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더는 아빠와 살 수 없어졌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이 떠나간 이유들은 아빠에게 귀책사유를 물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이혼 사유를 설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떻게든 설명해내서 이혼에 도달하더라도 합의이혼의 형태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기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 경력이 단절된 상태였다. 합의이혼으로 분할받을 수 있는 재산의 양은 절망적이었고 엄마는 이혼 즉시 경제적으로 곤란해질 거였다. 게다가 그런 이혼이라면 양육권을 빼앗길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방안이 나를 유괴하는 거였다. 일단 몸값을 받아낼 수 있고, 이혼 소송에서 아빠에게 아이의 관리 감독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양육권이 엄마에게 올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작은 가게라도 차려서 나를 키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엄마가 생각한 대로 되었다.


“······그래서 그 방법밖엔 없었어. 그렇지 않니.”


엄마이 말이 끝나자 다시 주위의 소음이 스르르 흘러들어와 귓속을 아득하게 메웠다. 말소리. 행복한 가족들. 왜 이리도 엄마랑 데이트를 나온 딸들은 넘쳐나는지.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댈 수 있는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나는 필사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행간을 뒤졌다. 이 정도로는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협박을 당했다던지 아니면 아빠가 폭력을 휘둘렀다던지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다. 다 컸으니까 말해준다면서도 실은 어디쯤에선 여전히 나를 아이로 여기고 있어서, 그런 얘기들은 충격받을까봐 살짝 숨겨놓은 거 아니야? 질문이 눈에 드러났는지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짧게 덧붙였다. 어차피 속일 수 없으니까 솔직하게 다 말했다고. 전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울컥울컥, 토사물같은 말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 근데,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방법밖엔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럼 내 마음은 어쩔 수 있는 부분이야? 그게 어떻게 손쉽게 선택지 안으로 들어가는거야. 딸을 납치한다는 발상이 정상적이야? 적어도 내 의견을 물어본다던가ㅡ”

“하지만 너는 어렸어. 네가 알고 있으면 비밀이 새어나가버릴 가능성이 높잖니.”


맞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딸을 그 여름에 그 트렁크 안에 넣어 두는 게 말이 돼?”

“죽거나 심하게 다치지 않도록 계획을 짰었어, 그보다 더 편안하게 해서야 경찰에게 의심을 사버렸을 테니까······”

“변명좀 그만해!”


나도 놀랄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하상가의 쉼터에 울려퍼졌다. 마찬가지로 놀란 듯이 흩어졌던 말소리들은 쫓아봤자 도루묵인 날파리떼처럼 금세 다시 모여들었다. 소란한 북적거림 가운데서 엄마는 처연히 고개를 떨구었다.


“······. 미안해.”


그러나 그 말은, 거짓말이었으므로.

딱히 나를 속이려는 의도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미안하지 않게 여기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시 진심으로는 미안하다고 생각지 않기에 거짓말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뒷전이니까.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엄마 위주였던 거네.”


말하고 나니 이미 앉아있는데도 푹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탈력감이 몰려왔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윤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배신감을 느꼈다. 바보같아. 엄마가 범인이란 건 어차피 알고 있었던 건데 왜 새삼스럽게 눈물이 날까. 그건 윤이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윤 탓을 하지는 말자. 아마도 나는 원래부터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하는 순간에 엄마가 범인으로 확정된다는 말의 뒷면은 말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뜻이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듯 내 쪽으로 손을 뻗다가 허공만 쥐었다.

나는 엄마가 범인이어서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범인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행위가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에 이렇게나 슬퍼지는 것이다.


“그러네, 엄마가 범인이구나. 그냥 그런 거구나.”


더 이상 중얼거리지 않고 말해졌다. 이미 명백해졌으니 감출 것도 없었다. 그렇게 오랜 금기였던 말이 눈물을 틈타 꺼내졌다. 말할 수 없이 부글부글 뱃속을 끓던 감정이 처음으로 타겟을 잡고 쏟아져나갔다.

그러자 기묘한 해방감이 뒤따랐다. 식은땀 뒤로 찾아오는 날카로운 선뜩함을 닮았으며, 오래 앓을 때 피어나는 열꽃의 뜨거움을 닮았고, 한껏 내달리며 맞는 강바람의 상쾌함을 닮은. 무언지도 잘 모른 채 뒤엉켜있던 것들이 드디어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범인은 엄마야. 나쁜 것도, 엄마야. 전부 엄마 탓이야. 엄마가 무책임했어!”


범인은 범인.

딱히 탐정이 파헤쳐서도, 피해자가 잘못해서도 아니라 범인이 일을 벌였기 때문에 사건은 일어났고 범인은 범인이 되었다. 명료한 도식 하에서는 그 누구도 부당한 죄악감을 끌어안을 필요가 없다.

나는 옷과 엄마를 덩그러니 남겨둔 채 지하상가를 빠져나왔다.


* * *


내가 젖은 발자국을 남기며 사무소로 들어섰을 때 윤은 컴퓨터를 붙잡고 뭔가와 씨름 하는 중이었다. 사건 없이 사무소에서 빈둥거리던 동안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내 집마냥 빠삭해졌기 때문에 어려움없이 마른 수건을 찾아 머리를 닦고 젖은 가디건을 벗어 간이 건조대에 널었다.

몇분 전 갑작스럽게 시작된 소나기는 그새 더 기세등등해져서 사무소 창문을 둔탁하게 연주했다. 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섞여서 앙상블을 이루었다.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더니 물 끓는 소리도 합세했다. 나는 가만히 그 기묘한 협연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변했어?”


흘깃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모니터에 시선을 박은 채로 윤이 말을 던졌다.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로 커피포트에서 오르는 수증기나 바라보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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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完) 20.09.09 2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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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5) 20.06.23 24 0 10쪽
51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4) 20.06.07 22 0 11쪽
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3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7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42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5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4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2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7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5 1 11쪽
33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9 1 8쪽
»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2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1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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