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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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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추천수 :
37
글자수 :
251,734

작성
20.01.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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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DUMMY

“나야. 문 좀 열어줘.”


윤의 목소리였다.


“차키를 두고 왔어. 내가 앉았던 자리 뒤쪽에 있지 않을까.”


마침 뭔가 짤그랑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참이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고양이가 자기 낮잠 바구니 아래에 끼어 있는 열쇠를 앞발로 찰캉거리는 중이었다. 나는 고양이의 등을 간지럽혀 물러나게 만든 후 열쇠를 주웠다. 현관을 열고 바깥에 서 있던 윤에게 열쇠를 건넸다. 윤은 차키의 키링을 손가락에 걸어 빙글 돌려보고는 피식 웃었다.


“고마워. 깜빡했네.”


······그 깜빡했다는 말이 거짓말이어서 윤이 ‘일부러’ 차키를 두고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의미는 아마도 리사를 떼놓고서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윤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순간 불현듯 예감이 치밀었다. 이 다음에 윤이 할 말을 아마 결코 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기묘한 긴장이 목구멍을 기어오르는 가운데 가짜 탐정의 입이 열렸다.


“미래는 과거에서 이어진다. 흔한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 봐. 그 말은 과거를 바꾸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뜻 아냐?”


복도 창문에서 어스름한 붉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색의 경계가 무뎌지는 시간을 어깨에 이고서 윤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탐정은 추리하는 거야. 타인의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꾸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 들여다보지 않은 과거를 샅샅이 해석한다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은 언제나 있어. 살아가고픈 미래로 이어지는 완벽한 정답을 찾는 것. 그게 탐정의 일이야. 의뢰인이 멋대로 의뢰를 종결해버리지 않는다면, 탐정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미래에 도달한다고 나는 믿고 있어.”


믿는다, 같은 말은 윤의 입으로 듣기에는 낯선 단어였다. 평소라면 ‘확신하고 있다’ 같은 표현을 썼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귓속을 메아리쳤다. 윤은 그 말을 남기고 별다른 인사 없이 자리를 떴다.

처음엔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지나니 리사와 꽤나 닮았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 감상도 흐려지자 무언가가 뱃속에서 울컥했다.

마음을 걸어보고 싶다는 감정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감정도 동시에 밀려왔다.

상상했다.

정말로 내가 찾지 못했던 미싱링크가 존재해서 초이와 소이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해지는 공상. 초이는 언제나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천재였잖아. 그러니 라미 몫까지 대신 그림을 그려나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더라면 본인에게도 더 좋은 결말이 아니었을까. 소이는 또 어떨까. 라미를 어떻게든 만나서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던가.

이윽고 나는 나의 들여다보지 않은 과거를 생각했다.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 * *


“딸, 이거 봐봐. 너무 귀엽지 않니?”


엄마는 내 몸에 멋대로 라벤더색 반팔티를 대어 보았다. 나는 부루퉁한 얼굴로 엄마가 그러게 내버려두었다. 옷에 관심이 없으니 욕심도 없는데 어느덧 손에 든 쇼핑백 하나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차피 입던 트레이닝복 서너 벌이나 돌려가며 입을 거라고 소심하게 반항해봤지만 엄마는 웃으며 묵살했다. 엄마가 사주고 싶은 거니까 사줄 때 받아두라면서.

적어도 이주에 한 번은 만나서 데이트를 할 것. 그게 엄마가 자취를 허락하면서 내건 조건이었다. 무시해버리기에는 자취방 보증금의 대부분이 엄마 돈이었다. 그래서 늘 체할 것 같은 식사를 하고 감흥 없는 영화 보기나 쇼핑을 했다. 나와서 살아보니 더더욱 어떻게 한 집에서 매일 부대끼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액이 내 돈이었으면 무시했을까? 라고 자문해보면 딱부러지게 그렇다, 고 말하지도 못하지만.


“사랑하는 딸, 신발은 필요없구?”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닌데 내가 무엇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나를 유괴해서 온갖 끔찍한 일을 당하게 만든 여자의 입에서 진실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니. 아무래도 나는 이 세계에 사랑따위는 없다고, 그 존재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는가.

거짓말을 안다고 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거짓말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혼란은 늘 혓바닥 아래로 지긋이 감춰물면서,


“별로 필요없어.”


같은 대꾸나 하는 것이다.

지하상가 안은 개미지옥 같았다. 오만가지 색깔의 알들이 매달린 다닥다닥 붙은 굴으로 머리 검은 이들이 빽빽히 드나든다. 그게 피로해져서 통로 중간의 쉼터 벤치에 주저앉았다. 엄마는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으며 걱정했다.


“벌써 다리 아프니? 운동 또 게을리하고 있구나.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강해져야 이 험한 세상에서 큰 일 안 당하지. 나쁜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구.”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정신적으로 피로해졌다고 말하기도 지쳤다. 무엇보다 내가 당한 큰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잘 모르겠다.

안대가 쓰여져서 얼굴은 알지 못하는 유괴 실행범들은 나름대로 신사적이었다. 불필요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괜히 겁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입을 테이프로 막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을거라고 이해는 했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내가 느낀 공포가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후에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거친 운전을 몸으로 느끼고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방치된 사실에 이르면 이해도 가능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엄마는 재차 잔소리했다.


“임용고시에 붙는게 제일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인턴 같은 거 해두면 어떨까? 엄마가 찾아보니까 스포츠 용품 회사에서 인턴 뽑더라. 국비로 해외 인턴도 신청 가능하구. 체육 계통에서 선수 안 하거나 선생님 안 하면 스포츠마케팅이나 경영 쪽으로 간다는데 그때 도움이 될 거 같아. 방학 인턴은 학기 말에 미리 신청받으니까 지금 찾아봐야 해.”

“······나 다음 학기 휴학하면 어떨 거 같아?”


하고많은 말이 차올라서 그냥 그렇게만 말했더니 엄마가 대번 세모눈을 했다.


“무슨 소리니, 얼른 졸업해서 돈 벌어야지. 그래서 빨리 자리 잡고 번듯하게 살어야지. 네가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어. 결혼하기 전에 돈 쌓아놔야 해. 결혼 안 해도 여자는 돈 쥐고 있어야 하구. 엄마가 죽고 나면······”


더이상 너를 지켜주지 못하니까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예상대로의 레퍼토리였다. 엄마는 대체로 나에게 설설 기면서 뭐든지 해주려 들었지만 동시에 자립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옳은 말이지만 아무래도 비뚤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상가 내부라고 해도 아직 에어컨이 팽팽 돌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비해 인구 밀도는 지나치게 높았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질척질척 뜨거웠다. 그게 자꾸만 비슷한 감각을 기억나게 해서 억눌린 감정이 임계를 넘어 흘러넘쳤던 것 같다.


“엄마가 그런 말 하는 거 좀 웃기지 않아?”


그 순간 주위를 떠돌던 사람들의 말소리마저 살라먹는 침묵이 드리웠다. 그제서야 나도 아차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말을 무르기에는 엄마가 뭐라 반응조차 하지 않는 바람에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이상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게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등 뒤가 싸늘해졌다. 줄곧 피해오던 순간이 결국은 들이닥쳤음을 깨달았다. 나는 흐르기 시작한 말을 막기를 포기했다.


“있잖아 엄마, 나는 아무것도 좋아지지가 않아. 좋아하고 싶지도 않아. 스스로 서는 삶은커녕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어.”


나직한 한숨과 함께 마지막 방둑이 터졌다.


“엄마가 나를 ······했기 때문에.”


‘유괴’라는 말은 중얼거림보다 작았지만 충분히 엄마에겐 들렸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았더니 눈꺼풀 안으로 윤이 이고 있었던 붉은 노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래에서 과거가 이어진다면,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꿀 수 있어.’ 이제 걸어볼 곳은 그 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똑바로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아직 내가 모르는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늘 예감하던 데드엔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 갈림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마치 갓 만들어진 채 아무런 칠도 하지 않은 종이 마스크처럼. 눈구멍도 입구멍도 뚫리지 않아 일그램의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하얀 얼굴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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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4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4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2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7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5 1 11쪽
33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9 1 8쪽
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2 1 9쪽
»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9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1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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