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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의 서재

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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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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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수 :
2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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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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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DUMMY

리사의 목적이 세계멸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사라진 사람들을 구하고 미래를 돌려주는 일이 시간왜곡과 얽히는 바람에 경찰에게 의심받고 있는 누구처럼, 뭔가 다른 선한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운나쁘게 엮인 걸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과 접촉한 사람을 조종해서 교환법칙이 일어날 법한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혹시 리사가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냐는, 즉 벌어진 일들이 그녀의 의지와 무관한 건 아니냐는 낙관적인 해석은 부질없다. 일단 리사는 윤에게 교환법칙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 장본인이라 사건 내용의 보고를 받고 있다. 어깨 위에 달린게 장식이 아니라면 교환법칙을 일으킨 가해자들이 모두 리사 자신과 접점이 있다는 걸 여태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다. 하지만 리사는 아직껏 원데이 클래스를 중단하지 않았다. 중단하기는커녕 나를 대상으로 아주 활발하게 영업했다. 능력은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휘될지라도, 타인과의 접촉은 그녀의 의지로 조절 가능한 부분일텐데도. 즉 리사는 자신과 접촉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똑똑히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행위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면 앞서 가정한 ‘뭔가 다른 선한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친동생을 차로 치라고, 사랑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앗으라고, 애인의 눈을 파내라고 사주하는 것과 선한 목적이란 말은 강렬하게 충돌한다. 이건 차라리 ‘악의’라는 말과 훨씬 잘 어울린다.


악의.


리사의 악의.


소매를 잡는 손의 온기와 망설임 묻은 중얼거림이 떠올랐다.


ㅡ행복해지셔야 해요.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별 의미없는, 빈껍데기 말로 흘려넘기는 게 밝혀진 사실관계를 고려하면 합리적이다. 얼핏 트렁크의 습기가 코끝을 맴돌아 헛구역질했다. 몸이 들썩이는 바람에 놀란 고양이가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솜방망이의 디딤돌이 된 명치 덕에 한번 더 헛구역질했다.


호흡을 정돈하고 다시 생각을 가다듬다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확신을 담아 리사와 악의를 연결지을 단계는 아니다. 아직 이 가정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


왜 리사는 윤에게 교환법칙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걸까?


탐정에게 자신이 벌인 사건을 추적해달라고 의뢰하는 범인 자체는 종종 쓰이는 구도다. 탐정과 범인이 한 패라서 수사하는 척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콤비플레이라든가, 아니면 범인이 탐정보다 한 수 위라서 탐정을 이용해먹으려고 끌어들인다거나. 하지만 이 사건은 교환법칙이 얽혀 있다. 탐정이 추리를 해내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던 걸로 되돌아간다는 특성이 있다. 위의 구도에 이 정보를 추가하면 이런 문장이 된다. ‘리사는 애써 사람들을 사주해 벌여놓은 일을 없던 걸로 만들어 달라고 윤에게 부탁하고 있다’. 이건 말이 안된다. 사건이 없어지는 데까지 리사의 목적에 포함되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대충 아무렇게나 던진 생각이었는데 식은땀이 솟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윤이 이미 말했었다. 교환법칙을 퍼뜨리는 모리어티의 목적은 ‘교환법칙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탈취’로 추정되며, ‘소급을 통해 세계가 되돌아갈 때’ 에너지를 가로채고 있다고. 그렇다면 리사는 사건을 일으킬뿐아니라 해결도 시켜야한다. 모든 게 깔끔하게 들어맞는다. 그리고 윤은 리사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심지어 존재를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다. 즉 리사가 범인이고 윤도 한 패다.


말도 안 돼. 나는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나는 왜 끌어들였어?”

“조금이라도 빨리 피해자들을 구해내야 하거든. 일분일초가 아깝지.”

“구한다니 웃기지마. 에너지를 훔쳐가려는 것뿐이잖아.”

“그러니까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거야. 얼른얼른 해결해야 할 것 아냐.”

“훔쳐서 뭘 하려는 거야······?”

“그렇게 물으면 잘도 ‘아, 제 목적은 사실’ 하고 불겠다. 뭐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건 눈치챘잖아.”

“······살아가고픈 미래로 이어지는 완벽한 정답을 찾는 게, 탐정의 일이라고 했잖아. 타인의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꾸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 탐정은 추리한다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범인일 수 있어?”

“탐지기님은 모든 사건에는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진짜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어서 진실을 용서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찾을 수 있나요?”


수화기 건너편이 리사의 목소리로 변했다.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꿀 수 있으시겠어요? 절대 실패하지 않아야 해요.”


목이 졸리는 기분에 백일몽이 부서졌다. 휴대폰은 윤의 번호가 떠있을 뿐 통화 버튼이 눌리지 않은 채다. 누른다고 해서 윤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누를 수 있겠어?

이렇게 선명한 이야기를 들을 각오가 되었어?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거니까, 이 진실과 대면하겠어?


살갗의 온도가 치솟았다. 눅진한 공기가 다시 코끝을 스친다. 트렁크의 냄새. 과거를 바꾸어 미래를 바꾼다는, 내가 희망을 거는 그 말 자체가, 당신들에게서 왔잖아. 발밑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윤과 리사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한 빛나고 묘하게 간질거리는 순환은 새카맣게 더럽혀진다. 범인은 범인이고 범인이 나쁜 거니까 아저씨한테 신고하자. 엄마의 일을 떨쳐내던 때를 생각하며 마음을 끌어모아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모르는 게 나았어.”


무심코 흘러나온 목소리에 깨닫는다. 그러네, 모르는 게 나았어. 역시 내가 옳았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아. 나는 리미티드나 리사처럼 의연하게 웃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야. 문득 갸우뚱했다. 리사는 윤이 가짜든 아니든 한 패니까 아무렴 상관없어서 멀쩡하게 웃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발밑만이 아닌 머리도 이상해질 것 같았다.


껍데기가 된 기분으로 울리는 전화를 바라보았다. 언제인지 동이 터 방 안으로 햇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빛이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 액정 위로 흐릿하게 이름이 보였다. 윤이었다. 나는 내 손이 전화를 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번엔 백일몽이 아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좀 이른 시간이라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네가 걱정할까봐서. 아니, 걱정을 두 번 말해버렸군.”

“······.”

“어제 전화는 매너없이 끊어서 미안해. 뭘 좀 해킹하다가 잘못 걸려서 크게 혼났지 뭐야. 다행히 지금은 다 정리했고 나도 멀쩡해.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는 못 하겠다, 나쁜 소식이 하나 있어서······ 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조용해?”

“······그만해요. 알고 있어요. 모리어티가 누구인지. 당신이 한 패라는 것도.”


능청맞은 목소리를 더 듣고 있기 힘들었다. 될 대로 되라지. 현실감이 없었다. 어차피 이 다음 같은 건 없고 나는 다시 가라앉을 뿐이야. 수화기 너머는 침묵했다. 그러더니,


“내가 한 패기에는 모리어티가 누군지 난 모르는데. 모르지만 공범이라는 트릭인가? 추리 좀 들려줘봐. 나도 알자.”


······?


“모른다고요?”

“몰라. 그리고 그게 아까 말하려던 나쁜 소식이야. 나 허탕쳤어. 다중세계를 연구하던 국가기관 출신 차모씨는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짝짝. 그런고로 너에게 큰소리 탕탕 쳤던 3일 안에 모리어티 대령해서 특수단속반의 손아귀 벗어나기 플랜은 불가능해. 하지만 아마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답이 없는 문제는 없을거야. 아마도. 내가 노력해볼게. 한번만 더 믿어줘. 이렇게 싹싹 빌려고 했는데.”


어디에도 거짓말은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밤을 꼬박 새운 추리가, 세상의 절망을 혼자 다 짊어진듯한 삽질이 낯뜨거웠다. 잠시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느리게 밀려온 안도감이 부끄러움을 씻어냈다. 다행이다. 윤이 범인이 아니라서. 나는 아직 희망을 걸어도 되어서. 응? 뭔가 껄끄럽다. 윤이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알아서 범인을 찾아온 모양이네. 키운 보람이 있어. 그래서 누군데? 한 패가 어쩌고 하는거보니 내 주위 사람?”

“······.”


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게, 리사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사가 범인이고 윤은 이용당하고 있다면. 표면만 보자면 기묘한 말이지만 윤은 리사에게 무르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나는 희박한 가능성에 온 믿음을 기꺼이 실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리사가 범인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왜냐하면 윤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뜸 그만 들여, 내가 밥솥에 안친 밥도 아닌데.”


태평한 목소리 덕분에 마음이 배로 괴로워졌다. 당신이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애인은 모두 행복한 세계를 만드는 것따위엔 관심없고 오히려 사람들을 해치고 있어요. 거기에 당신을 이용하고 있고요. 당신은 그런 여자를 위해서 모든 걸 걸었네요. ······라고 말하면 당신은 깔끔하게 납득할까. 물론 당신은 ‘사람은 진실을 알아야만 해, 그래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불행은 무엇인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애매하게 알고 있어서 벌어진다’고도, ‘들여다보지 않은 과거를 샅샅이 해석한다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은 언제나 있다’고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미래에 도달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의 그 믿음의 근원도 리사에게서 온 것 아니야? ‘당신의 모든 것은 리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흔쾌히 긍정했었지. 그런데도 당신은 무너지지 않고 웃을까.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충동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곧장 다시 걸려올 줄 알았는데 걸려오지 않아서, 그제야 이 번호 3회용이었지 깨달았다.


······아, 진짜 모르겠다. 일단 좀 걸어야겠다. 뛰든지. 도피성인 건 알지만 도피라도 좀 하지 않으면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휴대폰만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우뚝 굳었다.


리사가 계단참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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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2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7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5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4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1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7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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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1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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