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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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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3.02.20 07:17
최근연재일 :
2023.03.03 07:57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66
추천수 :
10
글자수 :
65,968

작성
23.03.0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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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DUMMY

···어제 대표랑 어디갔냐고?


그 질문의 순간, 나는 먹다가 사래가 걸려서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사모님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나는 뭔가 변명을 해야 겠다 싶어 황급히 말했다.


“제가 들어왔다고 입사 기념 회식을 했습니다.”

“마저 먹으라고.”


아니,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겠냐고.


하지만 사모님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장소, 이 상황에서는.


“누구랑?”

“저랑, 그 대표님이랑, 선미랑, 그 아드님?”

“태양이?”

“예에, 예. 이렇게 넷이서요.”

“어디서, 뭘 먹었는데?”


나는 기억을 더듬어서 가게 이름을 떠올렸다. 가게 이름을 말하고 거기서 고기를 구워먹었다고 하자, 사모님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거기 주인을 내가 좀 알지. 내 남편에게 꼬리치는 년이잖아.”


나는 더 못버티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사모님이 말했다.


“그 여편네랑 찝적댔다 이거지. 그리고 또?”

“또요?”

“그래, 2차 갔을거 아냐. 그 집은 자정 전까지 밖에 안하니까. 2차는 어디로 갔는데?”


귀신 같은 추궁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위험하다.


내 감이 말해주고 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솔직히 좆되는 건 대표겠지만, 그리고 그 꼴통 영감탱이가 좆되는 건 말건 나랑 상관없고 아니 오히려 바라는 바지만, 문제는 내가 거기 엮여있다는 거다.


대표의 고약한 성격으로 볼 때, 곧이곧대로 털어 놓으면 내부고발자가 나라는 것을 알 것이고, 그러면 분명 내게 복수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완전히 필름이 끊겨서요. 여기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걸요.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


사모님은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을 끝까지 견디려다, 참다 못해 슬쩍 눈을 흘렸다. 사모님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네.”

“내가 너 처음 볼때 뭐라고 했어.”

“그, 잘 지켜보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

“부르면··· 튀어오라고···.”

“내가 너 불러서 뭐 시킬거 같아? 집안일 같은 잡일? 그건 내가 다 알아서 하고 심지어 더 잘하는데 뭣 하러? 그리고 영 힘들면 사람 고용해서 시키면 돼. 우리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사모님의 말에 실제로 잡일을 시킬줄 알았던 나는 얌전히 찌그러져있었다. 사모님은 그런 나를 보더니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바라는건, 그 양반이 뭐 허튼짓 안하는지 내게 보고하라는 거, 그거 딱 하나야. 하루만 있어봐도 알겠지? 그 양반이 여자에 환장한 난봉꾼이라는거.”


나는 나도 모르게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고 사모님은 피식 웃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야. 나는 괜찮지만, 우리 애들은 어떻겠어? 그러니 선미를 봐서라도, 사실대로 말해.”


처음에는 부드럽던 사모님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졌다.

사모님은 나와 대표가 갔던 주점의 명함을 손에서 꺼내 들어 흔들었다.


···잠깐, 저게 어디서 났지?


설마 어제 삐끼가 내 주머니에 넣었나?


“아가씨 불렀지?”

“저는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


나는 그날 있었던 자세한 일을 내가 기억나는 대로 전부 털어놓았다. 물론, 2차는 내가 억지로 끌려갔었다는 점을 최대한 어필했다,

특히 그리고 가서도 별로 즐기지 않았다는 점은 특히 강하게 말했다. 그건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었다.

사모님이 말했다.


"의외네. 여자 밝히는 줄 알았는데."

"아니 무슨 소리십니까?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오해입니다. 오해."

"이왕 갔으니 즐기지 그랬어?"

"아유, 제가 한사코 말렸는데 가는데 끌려가면서도 선, 아니 사모님와 가족분들이 떠올려서 마음이 편치 않더라구요."


물론 여자들이 선미와 비교해서 심하게 차이나는 점도 이유 중에 하나였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낼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내 말에 사모님은, 살짝 눈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염병하고 있네."


***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사모님에게 반쯤 끌려다가시피 회사에 도착한 나는, 벼르고 있었는지 입구에 지팡이를 짚고 서있던 대표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모님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표의 귀를 잡고 대표실로 끌고 가버렸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표의 주책스러운 비명이 문 너머로 새어나왔다.


나는 후줄근한 몰골로 서서 그걸 지켜보다, 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그러자 모니터 뒤에 숨어있던 선미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보마나마 아버지가 2차에서 저질렀구만.”


이사 놈이 한손에 커피를 들고 다가와서 책상에 걸터앉아 이죽거렸다.


잘 알면 먼저 도망가지 말고 말려주지 그랬냐. 새끼야.


나는 치밀어오른 욕지거리를 삼키고,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넣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몰라, 피곤하니까 묻지마.”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서 이야기좀 해봐.”


나는 선미에게 끌려가 탕비실 싱크대에 힘없이 기대어 섰다.


“오빠는 뭐 마실래? 석류주스? 프림커피?”


나는 기운을 차리기 위해 프림커피를 주문했고, 선미는 종이컵에 뜨거운 커피를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말없이 달달한 커피를 홀짝였다. 선미는 석류주스를 마시면서 내게 물었다.


“대체 어제 우리 가고나서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가 저렇게 난리인거야?”


선미는 손으로 대표실을 가리켰다. 타이밍 좋게, 안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너는 눈치가 없네. 딱보면 몰라? 여자 불러서 놀았잖아.”


이사 놈의 말에, 나를 보는 선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손을 들어 부정했다.


“일단 먼저 말하겠는데, 나는 반대했어.”

“진짜?”

“진짜야, 네 아빠한테 물어봐. 난 피곤해서 그냥 가자고 했어.”

“거기서 뭐했는데?”

“몰라. 기억 안나. 아 진짜라니까! 너네 아빠가 뭐 정신차리라고 숙취해소제 같은거 줬는데 그거 먹고 완전히 필름이 끊겼어!”


내 말에,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둘의 표정이 갑자기 싹 굳었다. 이사 놈이 물었다.


“무슨 맛이었는데?”

“뭐, 과일 주스 같은 거였는데···. 뭐야, 반응이 왜그래? 설마 그거 몸에 안좋은 거야?”

“오빠,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프거나 이상한데 없지?”


내게 살짝 떨어져있던 선미조차 내가 다가와 안색을 살피는 것을 보니 나는 살짝 섬뜩해져서, 뒤로 물러섰다.


“잠깐, 설마 너네 아빠가 나한테 이상한거 먹인거야?”

“오빠, 진정해. 그 몸에 안좋은 건 아니야.”

“꼭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오빤 좀 닥쳐봐!”


남매가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숨이 가빠져온다.


아니 씨발, 나한테 대체 뭘 먹인거야?


나는 대표에게 따지기 위해, 종이컵을 구겨 버리고 대표실로 향했다. 뒤에서 선미가 뭐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대표실의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문이 열리고 사모님이 나타났다.


나는 순간 사모님의 포스에 밀려 나도 모르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내리깔았다. 사모님이 말했다.


“왜, 뭐야?”

“아니, 그게 어제 대표님이 저에게 먹인게 뭔지 궁금해서···.”

“그게 왜?”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젓고 있는 이사놈과 선미를 가리켰다.


“쟤들이 이상한거라던데요?”


사모님은 그쪽을 향해 눈을 부라린 다음, 다시 나를 보고 말했다.


“몸에 좋은 거야. 웬만한 사람들은 구하지도 못하는 아주 좋은 거.”

“그거 마시고 기억이 끊긴건 아니라는 거죠?”

“좀 독해서 몸에는 조금 안맞을 수는 있어.”

“뭐 한약이나 뱀술 같은 뭐 그런건가요?”


내 말에 사모님은 잠깐 인상을 구겼다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후에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책임지고 고쳐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근데 저 사모님 번호를 모르는데요.”

“아침에 내가 휴대폰에 저장해놨어.”


휴대폰을 꺼내서 보니, 진짜로 낯선 이름과 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었다.


신혜라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사모님 이름도 몰랐었네.


···근데 대체 내 폰의 잠금장치는 어떻게 풀었지?


“됐지? 그럼 나 간다. 너희들도 얘 몸 이상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그리고 너, 태양이는 저 양반처럼 굴지 말고 처신 잘하고.”


사모님은 엄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슬쩍 너머로 바라보자, 대표가 어디 파산한 실업자마냥 처참해진 몰골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물론이죠. 저 못믿으세요?”

“그 아비에 그 아들일거 같아서 걱정되서 그런다. 선미 너도, 농땡이만 피우지 말고 일 잘해.”

“엄마는 내가 언제 농땡이 피웠다고···.”

“여튼, 나 간다. 알아서 잘 들해. 지켜볼 테니까.”


사모님은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고, 주저없이 곧장 문으로 걸어나가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은 순간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마치 폭풍이 몰아친 이후의 고요함 같았다.


나는 대표실 앞에 멍청히 서있다가, 홀린 듯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젖은 수건처럼 축, 무너져내렸다.


···어떻게든 잘 끝난 건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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