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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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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3.02.20 07:17
최근연재일 :
2023.03.03 07:57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51
추천수 :
10
글자수 :
65,968

작성
23.02.20 07:52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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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2화

DUMMY

“고마워, 오빠.”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새 나는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다썼어? 증명사진은 필요없어.”


···당했다.

이력서에 쓰여진 내 이름, 한성재 세글자를 보자마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선미가 내 손에서 이력서를 가져가려고 할때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이력서를 붙잡은 채로, 선미가 웃었다.


“뭐 더 쓸게 남았어?”


나는 이력서를 누르고 있는 손에 힘을 빼지 않은 채, 선미에게 질문했다.


“혹시 회사에 직원이 몇 명이야?”

“직원? 아빠랑, 내 친 오빠랑 나, 그리고···.”


선미는 말 대신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가족 회사인 것도 모자라 5인미만 사업장? 게다가 여자는 선미 단 하나라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생각하자.

나는 확신했다. 저 회사에 들어가면, 전 회사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란 걸.


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지금 다른 손님이 온지도 모르고 넋놓고 선미만 보는 저 등신 같은 친구놈, 그리고 전직장에서 단물쓴물 다빨린 다른 멍청한 녀석들과 다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선미에게 홀리지 말자. 미인계에 넘어가지 말자.


“오빠, 대충 다 쓴거 같은데 이력서 좀 줄래?”


나는 속으로 굳게 다짐한 뒤,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선미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호흡조차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멀리서 보면 키스하는 착각을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나는 선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면접도 있어?”


***


나는 지금 선미의 회사 회의실에 홀로 앉아있다. 선미는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고, 마실것과 간식거리를 사러간다고 나갔다. 아마 근처 편의점에 갔다올 모양이었다.


그럼 그동안 내가 다닐 회사 구경이나 좀 할까.

나는 회의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회의실은 회사 규모에 비해 큰 편이었다, 긴 직사각형의 탁자 주위로 열 개 남짓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의자야 회사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사무용 의자였고, 그 주변에는 원목 재질로 보이는 장들이 있었다. 장의 한쪽에는 책들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사진, 그리고 또 다른 쪽에는 정체불명의 표창들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둥근 형태의, 어디서 줬는지 다른 기업 로고가 밖혀있는 벽걸이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글자가 적힌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 액자에는 굵고 거친 붓글씨로, 사훈이 적혀있었다,


‘대표는 신이다.’ 라고.


그 끔찍한 문구를 보는 순간 난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나가야겠어.


나는 혹시나 선미가 올라 조용히 회의실을 나왔다.

근데, 입구가 어디더라? 진짜 홀리기라도 했는지 회의실에 올때까지 기억이 희미했다. 나는 입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의실 바로 옆에는 ‘대표’라고 쓰여있는 팻말이 붙어있는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공간에는 기억자 형태의 싱크대와 커피머신, 그리고 각종 차 종류가 있었다. 마치 가정집 부엌 같은 느낌이다. 커피머신도 없이 냉장고와 정수기, 커피믹스만 잔뜩 있는게 딱 좃소의 탕비실 그 자체다.


그 옆, 큰 거실 같은 위치에 긴 탁자 세 개가 알파벳 T자 형태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탁자위에는 얼마나 오래된건지도 모를 낡은 컴퓨터 본채가 윙윙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파티션도 없네. 창가에 있는거 말고는 장점이 하나도 없군.


한 탁자 위에는 커다란 종이박스에 이것저것 담겨있었는데, 아무래도 전에 다니다 퇴사한 직원의 것 같았다.

내가 회사를 다니게 되면 저 자리에 앉겠지. 죽어도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내 정면에, 그토록 찾던 입구가 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 긴장하지마. 이대로만 가면 돼.


입구로 가서, 선미가 오기 전에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나와 도망치면 끝이야.

이건 세 살배기 어린이도 할수 있는 일이다. 선미에게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돌아갔다고 하면 되고.

나는 문앞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옥에서 탈출한 해방감을 느끼며,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이는, 덥수룩한 흰 수염과 흰 머리, 그리고 흰 정장을 입은, 그야말로 순백의 노인이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는 나를 보고, 노인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런 벼락맞아 죽을 놈의 새끼를 봤나, 도둑이야아!”


나는 지팡이를 피해 뒤로 도망쳤다. 노인의 지팡이질 한방에 화분이 박살나는 걸 보며, 나는 기겁해서 소리쳤다.


“도, 도둑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노인은 지팡이를 창처럼 들고 나를 겨두고 말했다.


“그럼 뭐야?“


입사하러 왔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에둘러 말했다.


“그 잠깐 그, 여기 직원이랑 친분이 있어서···.”

“친분? 누구랑?”

“그, 선미라고 하는데···.”

“선미? 내 딸이랑? 내 딸래미가 대려왔다고?”

“아, 예, 그 전 직장 동료거든요, 제가요.”


노인은 잔뜩 인상 쓴 얼굴로 나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았다. 나는 속으로 츄리닝에 패딩하나 걸치고 온 걸 후회했다. 멀쩡하게만 입었어도 도둑으로 의심받는 일은 없었겠지..

노인은 쯧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따라와.”

“···예?”


노인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를 지나쳤다. 그리고는 대표라고 쓰여진 방문을 열고 휙 들어가버렸다.

당황해서 멍하니 서있는데, 노인은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어 소리쳤다.


“뭐하냐, 이리로 얼른 안 들어오고!”

“아, 예···.”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의 심정으로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은 드라마에서 흔히 볼법한 풍경이었다. 커다란 탁자와 의자가 있고, 그 위에는 블랙크리스탈 명패에 ‘대표이사 피터 유’라고 쓰여있었다.

교포 2세인건가. 확실히 이제 보니 좀 얼굴에 서양인 태가 나는거 같네, 피부도 하얗고.

그리고 앞에는 응접실처럼 무릎까지 오는 탁자와 그리고 대여섯명이 앉을수 있는 가죽의자가 있었다.

노인은 그 중 상석에 앉아, 지팡이로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라.”


나는 주저하며 노인이 가리킨 곳에 앉았다. 노인이 말했다.


“내일부터 나와.”

“예?”

“예는 무슨 얼어죽을 예야? 너 어차피 여기서 일하려고 온거 아니야?”

“아니 그게···.”

“내 딸이 데려왔다며? 맞아, 아니야?”

“예에. 맞습니다···.”

“오늘 딸내미가 직원 하나 구해온다고 하고 나갔으니까 내 딸이 대려온 사람이면 여기서 일할 사람이 맞지.”


···좆됐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보았다, 선미와 다른의미로, 눈을 마주치기 거북해서 나는 시선을 피했다.

노인이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여기서 일하기 싫어?”


나는 속으로 결심을 하고, 노인에게 물었다.


“아직 여기서 무슨 일하는지도 잘 몰라서요.”


노인은 지팡이를 사선으로 들어올려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도 그 끔찍한 사훈이 있었다.


“읽어봐.”

“···대표는 신이다.”

“목소리 봐라. 더 크게!”

“대표는 신이다!”

“그래, 좋다, 좋아. 사내새끼라면 깡다구는 있어야지. 그러면 뭘해야 할까?”

“무교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이래서 요즘 MG인지 MZ세대인지 하는 것들은!”


노인은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심술을 내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그냥 나를 믿고 따르라 이말이야.”

“아, 예에···.”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래도 얼마주는 지는 확인해보자 싶어서 대표에게 연봉이 얼만지 물었다.


“나도 잘 몰라. 내일 나오면 딸이 계약서 쓰면서 알려줄거야.”

“아니 그래도 얼마 주는지는 알아야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죠!”

“어허, 이 내가 돈 떼먹을 것처럼 보여?”

“아니 그게 아니라···.”


“걱정하지마. 내가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잘 챙겨줄게.”


그때, 대표실 문이 열리고 선미가 나타났다.

선미는 내 맞은 편에 앉아 봉투에서 스트로가 붙어있는 브랜드커피를 꺼내 노인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석류주스를 두 개 꺼내 나와 자신의 앞에 두었다.

노인은 스트로의 비닐을 뜯고, 커피를 쪽쪽 빨아마신 뒤에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딸아, 믿을 만한 사람이냐?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해봤다면서?”

“네,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을 때 일 잘했어요.”

“그럼 됐다. 내일 보자. 내일 올때는 그렇게 거지꼴하지 말고, 나처럼 똑바로 입고 와라.”

“풀 정장이요?”

“그래, 일하려면 당연히 정장을 입어야지. 왜, 정장 없어?”

“있기는 한데···.”

“그럼 뭐가 문제야? 일할려면 정장이 기본 아니야?”

“아빠, 전에 있던 직원한테 그런 말이 없었잖아?”


선미의 말에 노인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여자는 경우가 달라! 아무 옷 입어도 태가 나잖아?”


여기 대표도 전 직장 못지 않은 꼴통 같은데···.

나는 영 미심쩍었지만, 이제와서 못하겠다고 때려치는 것도 뭐 했다.


에라 돈도 떨어졌겠다. 잠깐 알바한다는 셈치고 해보지 뭐. 진짜 개같으면 바로 도망가면 되지.


나는 달달한 석류주스를 원샷 한다음, 탁자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쌔끈하게 빼입고 출근하겠습니다.”

“그럼 가봐.”


목례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노인, 아니 대표가 나를 불러세웠다.


“왜그러십니끼?”

“깨진 화분은 치우고 가라. 너 때문에 깨졌으니까.”


···때려칠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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