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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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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3.02.20 07:17
최근연재일 :
2023.03.03 07:57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63
추천수 :
10
글자수 :
65,968

작성
23.02.21 12:14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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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5화

DUMMY

“너, 내가 잘하는지 지켜볼거야.”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서, 사라진 사모님을 보며, 나는 좆됬음을 직감했다.


“이야, 어머니 마음에 들었나 보네. 축하해.”


그 와중에 이사 놈이 커피잔을 들고와서 내 복장을 뒤집어 놓는 소리나 늘어 놓았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이사 놈을 노려보았다.


“이게 축하할 일이냐?”

“그럼, 어머니 눈에 들기 쉽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마음에 안들면 그냥 본척도 안해. 전 직원이 그랬지.”


그렇게 말하니 또 기대감이 생기네.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진짜?”

“잘해봐. 그럼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사 놈의 말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선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표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는거 보니 아직 대표와 이야기 중인 듯 했다.

나는 종이컵을 들어 씁쓸한 맛이 나는 얼음물을 홀짝였다.


“나는 딱히, 뭐···그럴 생각은 없는데?”

“그러시겠지.”


이사 놈은 킬킬 대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럼 난 미팅이 있어서 간다. 담배 적당히 피고, 내일 보자.”

“야.”


나는 막 나가려고 하는 이사 놈을 불러세웠다. 이사 놈은 입구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보기보다 좋은 놈이구나.”

“나는 원래 좋은 놈이야.”


내 말에 이사 놈은 재수없는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이사 놈이 나가고 나서 나는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근로의욕이 고취되는 군.


때마침,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복구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출력이 되었다. 나는 깍지를 낀 손을 쭉 폈다. 어깨와 손가락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울렸다

좋아, 그럼 점수 따기를 해보실까.


***


언제나 그렇듯이, 오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먼저 나는 복구된 파일 중이 안깨지는 파일과 깨지는 파일을 구분한뒤, 제대로 열리는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다.


이거 뭐, 안깨지고 제대로 열리는 파일도 멀쩡한 파일이 별로 없네.


열었더니 막 영어도 아닌 이상한 꼬부랑 글씨만 가득했다. 복사해서 인터넷에 붙여넣거 검색해보니 고대 인도문자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유니코드가 깨진 것 같았다. 나는 무료 프로그램의 한계이겠거니 하고, 체념 한 뒤, 겨우 건진 파일 몇 개를 분류해서 폴더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담배 좀 피우고 인터넷 쇼핑 좀 둘러보다보니 오전이 끝나버린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텅빈 엑셀과 워드프로그램을 만지작 거리며, 벽에 컴퓨터 우측 하단에 있는 시계만 바라보았다.


11시 47분. 구내식당이 없는 직장이라면 이미 출발해서 점심식사 메뉴를 고르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슬쩍 내 맞은 편에 앉은 선미와, 내 뒤편에 있는 대표실의 눈치를 살폈다.


딱 50분이 되었을 때, 선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오빠, 점심 뭐 먹을까?”

나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척하다, 못이기는 척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아무거나 괜찮아. 넌 평소에는 뭐 먹는데?”

“아빠랑 오빠가 자주 출장가서, 그냥 나혼자 떡볶이 배달시켜먹거나 그러지.”

“에이, 그럼 안돼지. 제대로 챙겨먹어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미리 조사해준 집을 흘렸다.


“마라탕이나 먹자. 전직장에서도 자주 먹었잖아? 출근하면서 봤는데 이 근처에서 있더라고.”

“좋지! 근데 지금가면 안늦을까?”


좋아, 좋아. 반응 좋고.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나는 입가의 미소를 감추기 위해 애쓰며, 지갑과 폰을 챙겼다.


그때였다.


“선미야, 미안하지만 신입은 나랑 어디 좀 급히 가야할 일이 생겨서 점심은 혼자 좀 해야겠다.”


···이게 갑자기 무슨 끔찍한 소리야?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대표가 지팡이를 짚은 채 내 뒤에 서있었다.


“뭐야 아빠,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별건 아니고, 그 전에 있던 애 때문에 좀 문제가 생겨서 그래.”


나는 선미가 험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다시 본 선미의 얼굴은 험상궃지는 안않지만, 보는 사람이 서늘해질정도로 차가웠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빠,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 내가 받지 말자고 했지?”

“···신경쓰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멍하게 부녀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미와의 오붓한 점심시간이 대표와의 단둘이 가는 출장으로 바뀌었다는거지 지금?


“신입! 너 이름이 뭐더라?”


이름도 모르는 거냐.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한성재입니다···.”

“한 사원. 기차 표 알아봐.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걸로 두장.”

“대구요?”

“그래, 대구. 한 사원 한국사람 아니야? 대구 몰라?”

“아, 아뇨 아는데, 알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대구로 간다고? 그것도 점심시간에?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시켰으니 폰에 깔려있던 앱으로 좌석이 있는지 확인했다. 평일 하행이라 그런지 좌석은 널널했다.


“자리는 많은데요.”

“그럼 바로 가지. 먼저 나가서 역 가는 택시 잡아놔. 난 화장실 좀 갔다가 뒤따라 갈 테니까. 카드는 이걸로 써.”


나는 대표가 떠넘기듯이 넘긴 가방과 법카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미는 그런 내게 힘내라고 작게 속삭였다.

유감스럽게도, 그정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앱으로 회사 앞으로 택시를 부른 다음, 흡연구역으로 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도저히 안피고는 못참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막 연초의 연기를 한모금 빨아들이려는데, 어느새 나타난 대표가 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아니 무슨 다 늙은 영감탱이가 동작이 이렇게 빨라?


나는 재빨리 입에 물었던 담배를 떼고 멋쩍어서 고개를 숙였다. 대표는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그새를 못참아서 담배를 피네. 이거 완전 꼴초네. 꼴초야.”

“아니 골초라니요, 그건 오햅니다.”

“뭐가 오해야, 임마. 한시간 전에도 피웠잖아.”


씁, 대체 어떻게 그걸 알았지? 설마 사무실에 감시카메라라도 달려있는 거야?


놀란 표정의 나를 보며, 대표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나 좀 줘봐. 이게 뭐가 그리 좋길래 니들이 그렇게 펴대는지 봐야겠다.”


나는 마이 안쪽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까치 꺼내 내밀었다. 대표는 채가듯이 가져간 다음 입에 물었다.


“불 없으시죠? 붙여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라이터를 꺼내려고 잠깐 고개를 돌린 순간에, 어느새 대표가 물고 있던 담배는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어떻게 한건지 궁금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나는 애라 모르겠다, 대표 옆에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나는 한모금 마시고 내뱉으며 대표에게 물었다.


“처음하시면 좀 매울겁니다. 처음에 깊게 들이쉬지 마시고 이렇게 살짝 맛만 보고 뱉으십쇼.”


대표는 나를 따라서 코와 입에서 연기를 뱉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연기를 뱉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내 말에 대표는 나를 슥 돌아보더니 물고 있던 담배를 꺼내 내게 건넸다. 다는 그 담배를 받아 재떨이에 있는 흙에 비벼껐다.

대표가 말했다.


“해봐도 모르겠다. 니들은 뭐가 그리 불이 좋아서 연기까지 연기조차 마셔대는 건지 원.”

“연기를 마시는게 아니라, 그냥 향을 느끼는 거죠. 그리고 담배는 대표님 또래가 더 많이 피는데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됐다. 말을 말자. 택시 올려면 얼마나 걸려?“


니는 폰을 꺼내 앱으로 택시 위치를 확인했다. 분명 곧 도착한다고 했던 택시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돌더니 3분 뒤 도착으로 바뀌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혀를 찬 뒤 말했다.


“곧 올 겁니다.”

“그럼 됐다. 그런데 넌 내가 오늘 아침에 뭐라고 했냐.”


나는 갑자기 눈치보여 나도 뒤따라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넣었다.


“피우는 모습 보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 조심해.”

“넵.”


출장 초창부터 완전 찍혔네, 찍혔어.

나는 택시가 도착할 동안의 끔찍한 침묵이 제발 빨리 끝나길 빌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택시는 평소와 달리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했다.

대표는 앞쪽 조수석에 타려는 내게, 다시 자기 가방을 맡기고는 뒷좌석 안쪽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 뒷 좌석에 타며 말했다.


“역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기차시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택시기사의 말에 대표는 나를 보았고, 나는 그렇게 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 내비대로 가겠습니다.”


기사의 말과 동시에, 택시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택시가 역으로 향하는 동안 자동차 앰프에서는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거 택시 기사 양반 취향한번 고상하네. 아마 점심을 먹었으면 깜빡 졸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고 보니 점심도 못 먹었네,


나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대표를 힐끔 보았다. 대표가 말했다.


“눈치보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저희 점심 어떻게 합니까?”

“시간 여유있다며? 그냥 역에서 대충 때우지 뭐.“

“저는 그래도 괜찮은데 대표님은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우리가 일하러 가는 거지 뭐 먹으러 가냐? 기집애가 끼어있는 것도 아니고 사내새끼들 밖에 없는데 대충 먹자.”


선미와의 점심이 그립다. 정말.


나는 창밖으로 매연으로 가득한 빌딩의 숲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때, 대표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너, 우리가 지금 어디가는지 아나?”

“대구 가신다면서요?”

“그거 말고, 뭐하러 가는지 아냔 말이다.”

“모르는데요.”


내 퉁명스러운 말에 대표는 꼬부랑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오기 전에 있던 직원 만나러 가는거다.”

“그 사람이 왜요? 사고라도 쳤습니까?”


내 물음에, 대표는 상상만해도 끔찍한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쳤지, 그것도 아주 대형사고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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