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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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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3.02.20 07:17
최근연재일 :
2023.03.03 07:57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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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68

작성
23.02.2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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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화

DUMMY

고짓집 알바생이 내게 몰래 쪽지를 쥐어준다라···.


나는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탓이다.


뒤늦게 세상이 이 몸의 매력을 간파한 거지. 암.


나는 당장이라도 쪽지를 펴보고 싶은 욕구를 달래고자 소주 병을 들어 대표의 잔을 채웠다.

대표는 알바생이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 뭐 이리 늦게 와?”

“오다가 좀 해맸어요. 여길 와본적이 있어야지,”

“안내해줄걸 그랬나?”

“하하, 됐습니다.”


내 말에 이사 놈은 웃으며 소주병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대표는 단숨에 한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술은 좀 하나?”

“필름은 끊겨본 적은 없습니다.”

“아빠, 성재 씨 장난아니에요. 술 엄청 쌔요.”


옆에서 선미가 바람을 넣자, 대표가 호오, 하고 눈을 빛냈다.

나는 겉으로는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염병, 오늘 집에 못 들어 갈거 같은데.


나는 대표가 선수치기 전에 잽싸게 대표의 잔을 채웠다, 대표는 나를 빤히 보며 잔을 받은 다음, 내 잔에서 술을 따랐다. 다 따르자마자 대표가 내민 잔에 나와 이사 놈이 잔을 부딪혀, 깔끔하게 한잔을 원샷했다. 잔이 비기 무섭게 대표가 내 잔에 술을 채웠다. 나도 질세라 대표의 잔을 채우고, 이사의 잔을 채우고 다시 서로 원샷.


그렇게 셋이 쉬지도 않고 마셔대니, 채 고기가 다 익기도 전에 순식간에 소주병이 텅비고 말았다.


이거 속도 조절 안하면 훅 가겠는데?


간만에 달렸더니 벌써부터 알딸딸하게 올라온다. 나는 입가를 대충 물수건으로 닦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눈치를 살폈다.


대표, 변화 없음.

이사, 변화 없음.

결론, 쉽지 않음.


나는 한숨 돌리기 위해 나온 반찬을 몇 개 집어먹으며 말했다.


“안 섞어드세요? 요새는 대부분 섞어먹는데.”

“내가 별로 맥주를 안좋아해. 배만 부르고 많이 못 먹잖아.”


말하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네.

이사 놈이 텅빈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대표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 아스갈인가? 그쪽 출신분들 되게 좋아하잖아요?”

“거기는 꼬라지 부터가 고상하지가 않잖아? 딸아, 너는 그런 놈들과 엮이면 안된다. 알겠지?”


내가 보기엔 이쪽도 고상하지 않은 건 마찬가진데 말이지.


알바생이 소주를 너넷병 추가로 가져온 사이에, 나는 힐끗 선미를 보았다. 선미는 느긋하게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었다.

나는 선미씨 몫의 소주잔을 바라보다 넌지시 말했다.


“선미는 술 아예 안먹어? 전 직장에서는 그래도 조금은 마셨잖아?”

“컨디션이 좀 안좋아서 오늘은 패스하려고.”

“내 얼굴을 봐서라도 딱 한잔, 한잔만 어때?”


내가 소주병을 들고 선미에게 다가가자, 대표가 잽사게 소주병을 채갔다.


“니 얼굴을 보면 마시던 술도 안 넘어가겠다. 애비가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딸한테 수작을 부려?”


아니 이 노친네가 입에 필터가 없나, 그냥 막 뱉네?


“거 말씀이 심하십니다. 제 얼굴이 뭐가 어때서요? 저 여자한테 인기 많아요? 그리고 수작이라뇨. 직원들끼리 다같이 건배 한 번 하자는 건데요.”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잔이나 비워, 한번 더 돌리게.”


아, 너무하네. 진짜.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아 이사 놈이 건네주는 잔을 받았다.

시커먼 남자들끼리 이게 뭐냐, 진짜.


“벌써 취했어?”

“전혀.”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이사놈의 말에 속으로 이를 갈며 잔을 받았다.

그렇게 고기 겨우 한점 입에 넣고 소주 반 병 정도를 마시는게 한동안 반복되니 죽을 맛이었다. 선미라도 옆에 있어서 같이 이야기하면 몰라.


“그 연구과제 엎어진 건 솔직히 말이 안돼. 일을 줘놓고 갑자기 발을 빼는게 말이 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더라구요. 출산율 추세를 보더니 냅둬도 되겠다. 뭐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자고 하던데···.”


이사 놈은 제 아비랑 일을 못해서 죽은 귀신이 들렸나, 회식자리에서도 일 타령이었다.

뭔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참나.


나는 잔을 만지며 맞은 편에서 조용히 물을 마시는 선미를 보았다.

얘는 그냥 조명하나 없어도 무슨 모델 화보집 같네.


그나저나 선미와 드디어 술자리를 같이 갔는데 같이 제대로 술도 못마시는 상황이라니···.

나는 갑자기 현타가 심하게 와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표와 이사놈이 말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또 담배피러 가냐?”

“예에, 피러 갑니다.”


아, 갑자기 일어나니 머리가 좀 핑핑 도네. 좌식이라 다리도 저리고 죽겠고.


나는 미닫이 문을 연 뒤, 내 구두를 찾아 대충 구겨 신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서 담배피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하필 알바생이 다른 룸에서 서빙하고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어쩔수 없이 대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구석에 바닥에 꽁초가 가득한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라이터를 찾았다. 그런데 앉아있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빠졌는지 보이질 앉았다. 대신, 꼬깃꼬깃 접힌 종이만 손에 잡힐 뿐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꺼내서 펼쳤다.


‘잠깐 나와서 이야기 좀.’


아, 이거 좀전에 알바생이 나한테 줬던 쪽지네. 이 몸의 인기란.


나는 라이터를 입에 물고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라이터는 어떻게 하지.

다시 들어가기 귀찮은데 누구 담배피러 안나오나. 빌리게.


“자요.”


그때 내 앞에 은색 지포라이터가 들이 밀어졌다. 해골모양이 음각으로 새겨진 섬뜩한 디자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알바생이었다.

내가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알바생이 눈을 찌푸렸다.


“불 필요한거 아니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뚜껑을 열고 불을 붙인 뒤 지포라이터를 돌려주며 말했다.


“여성 분이 지포라이터를 가지고 다니는 건 좀 드문데, 담배 하세요?”

“담배 안해요.”

“아 그래요?

“왜요? 하게 생겼어요?”


나는 알바생의 귀에 달린 피어싱을 힐끗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연기를 다른데 뱉어내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그거다 편견이에요. 편견. 저 목관리해야 해서 담배 안해요.”

“목 관리? 가수에요?”

“뭐,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작은 인디 밴드?”

"아이고, 그러면 안되지."

나는 황급히 담배를 끄려고 하는데 알바생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옛날이나 열심히 했지. 지금은 먹고 살아야되니 가끔 취미삼아 하는 정도죠. 지금은 이렇게 엄마일 도와서 알바나 하고 있어요.”


알바생은 그렇게 말하며, 입고 있던 앞치마를 들어보였다. 그러자, 앞치마 아래로 해골이 그려진 검은 티가 보였다.


아까 라이터도 그렇고 락이나 뭐 메탈 쪽인가?


나는 그 티안에 숨겨진 볼륨을 힐끗보며 아무말이나 주워섬겼다.


“아우, 효녀시네. 요새 부모일 돕는 사람 흔치 않은데.”

“효녀긴요. 그냥 할거 없으니 하는거지. 그리고 일 돕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됐어요.”


쓰게 웃는 알바생을 보며, 나는 은근슬쩍 본론을 꺼냈다.


“근데 좀전에는 준 쪽지는 뭡니까?”


내 말에, 알바생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더니, 은근슬쩍 내게 다가왔다.

아무리 괜찮다곤 했지만, 그래도 눈치보여서 나는 피고 있던 담배를 벽에 비벼서 꺼버렸다.

연기를 손으로 흩어버린 다음, 알바생의 반응을 기다렸다. 알바생은 한 번 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서,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 물어볼게 있어서요.”

“뭔데요.”


지멋대로 치켜올라가는 광대를 자제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진짜, 무슨 날인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도 되는 거야?


아무래도 조만간 결혼하는지 주말에 사주를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옆에 계신 그 남성 분은 여친 있어요?”


확 찬물이 덮쳤다.


이런, 씨발.


갑자기 술이 확 올라오네. 밖의 찬 공기로도 뜨거워진 얼굴이 식지 않는다. 나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연거푸했지만, 달아오른 얼굴은 쉽사리 식지 않았다.


“···모르겠는데요.”

“알아봐주실수 있어요?”

“왜요?”


다 알지만,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오는 건 어쩔수 없었다. 알바생은 답지 않게 수줍은 태도로 말했다.


“얼굴이 너무 제 타입이어서···.”


그게 타입이 아닌 사람이 있겠냐.


그렇게 쏘아주고 싶은 것을 참으며, 나는 미간에 손을 짚었다.


그래, 세상은 원래 이랬지. 요새 여자들이랑 좀 썸 비슷한거 탄다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확 정신이 들게 해주네.


정말 세상의 불공평함에 진저리가 난다.



“해줄수는 있는데, 기대는 하지 마세요.”

“혹시 같이 앉아계시던 분은 여친 아니죠?”


알바생은 불안한 티를 내며 말했다. 열받아서 그렇다고 거짓말하려다가, 여기가 단골이라는 대표의 말이 떠올라 그냥 남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알바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반응 하나하나가 빡치네. 나는 괜히 기대했던게 허탈해져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마이를 벗어 손에 들고 쪼그려 앉았다.


그런에 왜 이 알바생은 점점 다가오는 거야.


알바생은 나를 따라 내 옆에 바짝 붙어 따라 앉았다. 그리고는 지포라이터를 건내주며 속삭이듯이 물어보았다.


“혹시 무슨 일해요?”

“요 근처 작은 회사에서 일하죠.”

“사원?”

“대표 아들이라서 사원은 아니고, 이사.”

“대표 아들?!”


그리 박수치면서 기뻐할 일은 아니야. 이사람아. 여기 좆소야, 좆소.


뭔가 이사 놈에게 빠진 거라고 생각하니 언동 하나하나가 거슬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무뚝뚝함이 신경질로 변질될 무렵, 가게 안에서 알바생을 찾는 주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여튼, 그럼 도와주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근데 어떻게 알려줘요? 번호라도 주던가.”


내 말에 알바생은 잠시 고민하다, 품에서 주문용 노트를 꺼내 뭔가를 막 적더니 찢어서 내게 주었다.


메일 주소였다.

아하, 나한테는 번호를 알려주기도 싫으시다?


“메일로 부탁드려요! 꼭 읽을 테니까!”


알바생은 그렇게 외치고 가게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길게 연기를 서너번 내뱉었다.

연기는 쓰고 밖은 추웠다.

개 같은 세상이다.


“뭐 그리 궁상맞게 앉아있어. 오빠.”


나는 고개만 돌려 선미를 바라보았다. 선미는 입구 근처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키면서, 반쯤 남은 담배를 꺼버렸다. 그리고 들고 있던 마이를 입었다.


“그냥, 뭐 이래저래 힘드네.”

“요전에는 안 힘들다고 허세 부리더니, 이젠 아주 노래를 부르네. 뭐가 그리 힘든데?”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나는 대충 둘러대고 선미에게 다가갔다.


“아유, 그나저나 네 아버지 술 잘먹네. 페이스 맞추기 힘들다 야.”

“오빠.”


덜덜 떨며,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선미가 나를 불러세웠다.


“왜?”

“잠깐 이야기 좀 해.”

“뭔 이야기?”


내 말에, 선미는 긴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쓸어넘기며,


“전 직원에 대한 이야기.”


차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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