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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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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NEW)
작품등록일 :
2012.12.13 14:43
최근연재일 :
2013.03.27 12:2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293
추천수 :
60
글자수 :
36,521

작성
13.03.27 12:26
조회
605
추천
4
글자
7쪽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3)

DUMMY

“이 분은 용사님이야! 먹지 마 백호(白狐)!”

“거 참, 안 먹는다니까!”


여우는 뒷발로 귀 뒤쪽을 긁적이며 툭하고 내뱉었다. 호기롭게 나와 여우 사이에 섰던 가온들찬빛은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헛기침을 몇 번 내뱉고는 내 어깨 위 걸터앉았다.


“용사님,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요.”

“아, 네. 그런데 저 여우는...”

“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웃어 보이며 여우에게 잠시 눈을 흘겼던 가온들찬빛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냉랭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저 백호라는 여우는 가온들찬빛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미리내, 그린나래. 돌아가자.”

“응, 알았어.”


그린나래는 팔랑팔랑 날아와 내 정수리에 살포시 앉았다. 그런데 미리내는 백호와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 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온들찬빛은 한 번 더 힘주어 미리내를 불렀다.


“미리내, 가자고 말했잖아.”

“어어, 알았어 알았어. 거참 성격도 급하긴. 아무튼 백호 다음에 또 보자고.”


백호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아까 집에서 설악산을 왔을 때처럼 요정들이 내 어깨와 머리 위에 자리하고, 집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백호가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다가 폴짝하고 뛰어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엉겁결에 백호를 안아들었고, 빛무리와 함께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백호!”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온들찬빛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백호는 유유히 내 품에서 뛰어내려 집 안을 구경하듯 휘휘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깨끗하네?”


마치 자기 집처럼 총총총 걸어 다니던 백호는 가온들찬빛의 시선을 싹 무시하고 침대 위로 올라가 베개 위에 앉았다. 뻔뻔한 백호의 행동에 우리는 모두 어이가 없어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왜 따라 온거야?”


미리내가 백호 옆으로 날아가며 물어봤다. 백호는 힐끔 가온들찬빛을 쳐다보고는 베개 위에 똬리를 틀고 눈을 감으며 말했다.


“추워서.”

“뭐? 네가?”

“좀 잔다.”


그렇게 말한 뒤 백호는 곧 쌕쌕 숨소리를 내며 내 배게 위에서 잠들어버렸다. 가온들찬빛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더니 백호에게 날아가서 뺨을 때렸다.


짝.


“아야!”


백호는 화들짝 놀라 깨어 가온들찬빛을 으르렁거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온들찬빛은 더욱 더 차가운 목소리로 백호에게 말했다.


“아무리 네가 백호라지만 예의는 차려. 여기는 용사님의 집이고, 네가 앉아있는 베개는 용사님이 잠잘 때 쓰는 것이야,”

“내 알바 아니야.”

“대체 왜 따라온 거야. 이유나 말해 봐.”


둘 사이에 싸늘한 바람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나와 미리내, 그린나래는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고 긴장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냥, 춥고 심심해서.”


가온들찬빛이 또 한 번 소리를 지르려고 가슴을 들썩이는 찰나, 나는 일단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여야 할 것 같으니까.


“저기요. 배가 고픈데,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할까요?”


어색하게 끼어들어 웃으면서 얘기하는 날 가온들찬빛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같더니 쌩하니 부엌으로 날아갔다.


“그린나래, 따라 와.”

“어? 응응!”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나는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그 까만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따라온 건지 나도 궁금했지만, 춥고 심심해서라고 말할 때, 언뜻 비쳤던 외로움이 그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었다.


“일단, 그 베개는 내가 머리를 대는 곳이거든요. 발을 깨끗이 씻지 않겠어요?”


백호는 흥하고 콧방귀를 끼더니 다시 눈을 감고 잠잘 모양새를 취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언젠간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잠시 몸을 뒤로 눕혀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는 원래 깨끗해. 굳이 씻지 않아도 된다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백호의 말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래도 나름 미안했는지 나긋해진 말투가 느껴져 피식 웃은 나는 백호처럼 잠시 눈을 붙였다. 요정들과도 함께 사는데 여우라고 함께 살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


그렇게 잠시 잠들었나 보다.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코를 찌르며 뱃속에서 음식을 당장 달라고 꼬르르륵 소리를 냈다. 그린나래의 밥 먹으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항상 1인분의 요리만 차려져있었는데, 2인분이 차려져 있었다.


“음?”


식탁에 앉으며 의문을 표하자 가온들찬빛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호를 불렀다.


“백호! 밥 먹어.”


못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냐는 듯한 가온들찬빛의 표정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요정들은 사람보다 더 사람 냄새가 나는 모습을 가끔씩 보여준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백호는 식탁으로 유유히 걸어오더니, 몸에서 빛을 내며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응?!”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리고 백호를 쳐다보는데, 뭘 그런 시선으로 보냐며 자신의 길다란 은발을 한 차례 손으로 쓸어넘긴 백호는 내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수저를 들더니 그린나래가 차려준 밥상을 게 눈 감추듯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용사님, 빨리 안드시면 식어요.”


넋을 놓고 그 작태를 바라보던 나는 그린나래의 말에 정신을 번뜩 차리고 이제 막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너비아니 조각을 급히 젓가락으로 집어 내 공깃밥 위에 올렸다.


“쩝.”


자신의 입 안으로 우겨넣은 너비아니 3번 째 조각을 씹으면서도 백호는 내 공깃밥 위에 있는 너비아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왠지 어서 먹지 않으면 이 너비아니도 머지않아 탈취당할 것 같은 불안감에 나는 급히 너비아니를 입 안에 우겨넣어 씹었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에 목에서 잘 넘어가지 않아 물을 마시며 가슴팍을 때렸다. 맛을 음미하면서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당연하지. 나 백호야. 설악산 백호.”


입 안 가득 반찬과 쌀알들이 뒤섞여 있는 불유쾌한 장면을 보여주며 백호는 활짝 웃었다.


“식사할 때는 입 안에 있는 거 다 먹고 말해야지 백호.”

“네에~네에~ 그러죠. 가온들찬빛님.”


백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 안의 음식물을 다 넘기지 않았고, 결국 가온들찬빛의 날개에 밥알이 하나 날아가 붙고 말았다.


“백호!”

“어이쿠 죄송해라.”


가온들찬빛의 날개를 파르르 떨며 분노의 휩싸이던 말던 상관없다는 태도로 백호는 날개에 붙은 밥알을 떼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에 떨던 가온들찬빛은 결국.


“배액호오!”


터져버렸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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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8 13.01.29 619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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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내가 미쳤나 봐 (7) +2 12.12.31 608 4 9쪽
8 1. 내가 미쳤나 봐 (6) +3 12.12.26 558 4 7쪽
7 1. 내가 미쳤나 봐 (5) +4 12.12.20 639 4 8쪽
6 1. 내가 미쳤나 봐 (4) +5 12.12.19 669 3 7쪽
5 1. 내가 미쳤나 봐 (3) +8 12.12.18 733 3 9쪽
4 1. 내가 미쳤나 봐 (2) +7 12.12.17 799 6 7쪽
3 1. 내가 미쳤나 봐 (1) +5 12.12.14 1,514 9 8쪽
2 Prologue.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6 12.12.13 1,752 7 3쪽
1 (첫 인사)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3 12.12.13 1,042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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