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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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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NEW)
작품등록일 :
2012.12.13 14:43
최근연재일 :
2013.03.27 12:2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292
추천수 :
60
글자수 :
36,521

작성
13.01.29 15:33
조회
618
추천
4
글자
9쪽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DUMMY

대체 무엇이 내 얼굴을 덮친 것인지, 정체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뒤로 꼬꾸라져 산 속을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을 꼭 감은 채 귀로 스치는 풀 소리와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감각을 느끼던 찰나, 작은 나무에 등을 쿵 하고 부딪혔다. 나무에서 바스스스하는 소리가 한 차례 들렸고, 등에서 느껴지는 둔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하지만, 아까 내 얼굴을 덮쳤던 것이 아직 떨어지지 않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손을 얼굴로 가져가 아직도 꿈쩍도 안하는 무언가를 떼어내려고 할 때, 얼굴에 찬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시야도 확보되었다.


나는 경사가 완만한 낭떠러지 중간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는데, 내 앞쪽에는 눈보다도 새하얀 생물이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여우?”


커다랗고 새까만 눈동자 속에 당황하는 내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여우라니? 북극 여우만큼이나 하얀 여우가 우리나라에 있던 가. 혹시 저 여우는 알비노 여우인 걸까. 혹시 날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공격한 걸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지.


당황스러운 상황에 갈피를 못 잡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기 여우야. 나는 먹는 게 아니야.”


결국 실없이 여우에게 말을 걸며 나무에 손을 댄 채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여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계속해서 나를 노려보았다. 어떡해야 할까. 가온들찬빛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부른다고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럼 이만 가볼게, 여우야. 사람은 막 함부로 공격하고 그러면 안 돼.”


여우와 시선을 마주치며 조심스럽게 나무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말을 걸지 않고 그냥 움직이면 여우가 당장이라도 또 달려들 것만 같았다. 여우의 몸집이 그리 크지는 않아 두렵진 않았지만, 난생 처음 여우를 봤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최대한 여우의 신경을 긁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여우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더니.


“병신, 사람이니까 공격한 거야.”


라고 말했다. 그것도 욕을 하면서. 나한테 말을….


“으아아악!”

“아, 깜짝이야! 야. 이 미친 새끼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무들 놀라잖아.”


여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무들을 살피더니 나에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점점 다가왔다. 놀람, 공포를 순식간에 넘나들던 내 감정은 무척이나 천역 덕스럽게 그리고 태연하게 말을 하는 여우를 보며, 이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여우가 말을 하네. 허허….”

“말하는 여우 처음 보냐? 찌질 하긴.”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여우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입만 헤 벌린 채 허허허 하고 웃어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야, 너. 근데 너 사람이지.”

“…그런데요?”

“그런데 왜 요정들이랑 같이 있고 또 왜 사람 주제에 깨끗하냐?”


요정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봤는지, 여우는 이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깨끗하냐고 묻는 것은 내 몸이 방금 정화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여우는 그냥 평범한 하얀색 여우가 아니라 영물 쯤 되나 봐. 말도 하고, 그런 것도 알아보고.


“아, 그건 제가 용사이기 때문에….”


휘우웅.

어디서 불어 왔는지 모를 바람이 여우와 나 사이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때리며 지나가고 난 뒤, 격렬한 웃음소리가 내 고막을 거세게 두드렸다.


“으하핫, 하하하! 용사? 풉, 푸풉. 용사라고?”


작은 앞발로 자신의 배를 감싼 채 뒹굴뒹굴 좌우로 구르며 포복절도하는 여우를 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누가 들어도 어이없어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웃길 수 있다는 걸 인정했다. 나도 처음엔 어이가 없었으니까.


한참이나 주둥이를 쩍 벌리고 굴러다니면서 웃는 여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웃어서 지쳐버렸는지 여우는 바닥에 털썩하고 엎드려 아직도 꼬리를 가끔씩 좌우로 흔들며 몸을 들썩였다. 그래, 마음껏 웃어라 웃어.


“아무튼, 전 이만 가볼게요. 걱정하니까요.”


왠지 기분이 상해서 툭 내뱉고 여우를 지나쳐서 산을 올라가려는데, 여우가 벌떡 일어나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하아, 하아. 잠깐만. 아 100년 만에 배 찢어져라 웃었더니. 진짜 배 찢어진 거 같아. 좀 봐봐.”

“멀쩡한데요.”

“농담도 이해 못해? 역시 사람들은 띨띨해.”


입이 험하고 심지어 건방지기 까지 한 이 말하는 여우는 대체 정체가 뭘까. 영물이라고 하면 보통 뭔가 품격이 있어야 하지 않나.


“왜요. 할 말 있어요? 저 가봐야 돼요.”

“야. 내가 말하는 여우라고 너 나 무시 하냐. 내가 너 공격했잖아. 잊었어? 좀 무서워해야 되지 않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그런데 왠지 무서워 보이지가 않았다. 여우의 행동거지를 보고 있자니 말이다.


“으악. 말하는. 여우다. 너무. 무섭다. 됐어요?”


입만 크게 벌려서 국어책 읽듯이 또박또박 공포에 질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여우는 인상을 팍 쓰더니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에게 소리쳤다.


“뭐야? 이 새끼가, 왠지 기분 더러워. 하지 마.”

“무서워하라면서요. 변덕도 심하시네요.”

“됐고, 먹을 거 있으면 좀 주고 가. 꼴에 용사라니까 널 먹진 않을게. 게다가 사람치고 깨끗해서 맘에도 들고 하니, 특별히 놔주지. 와, 설악산 백호(白狐) 성격 많~이 죽었다.”


여우는 내 다리 밑을 빙글빙글 돌면서 혼자서 중얼 거리듯 말했다. 이 여우의 혼잣말에 따르면 사람을 먹기도 한다는 건데, 왠지 전혀 그래 보이진 않았다. 처음에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 생소해 두려웠지만, 요정들도 만난 마당에 말하는 여우라고 뭐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과 이 여우는 좀 친근한 느낌이 들어 무섭지가 않았다.


“아까 그 자리에 가방 두고 왔어요. 그 안에 간식 조금 있는데, 같이 갈래요?”

“뭐 있는데?”

“초코바요.”

“좋아. 가자.”


폴짝 폴짝 뛰어 올라 순식간에 낭떠러지를 올라가는 하얀 여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여우를 만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필연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이런 곳에 은근히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나의 육감이 저 여우는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보게 될 사이가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야! 빨리 좀 와! 겁나 느려 터졌어. 용사라며 너?”


저 위에서 나한테 소리치는 여우를 보며 그 감각은 더 강렬해졌다. 왜 일까. 왜 저 여우랑 오래도록 함께 하게 될 것만 같지.


아까 내가 서있던 자리로 돌아가 가방 안에 있는 초코바를 꺼내 들었다. 여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초코바를 보다가 내가 껍질을 벗겨 내밀자 한 입 베어 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참 귀여운 여우일 뿐인데 말이지.


그렇게 나는 초코바를 여우가 먹기 편하도록 쪼그려 앉아 내밀고 있고, 여우가 초코바를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그린나래가 먼저 돌아왔다.


“앗! 너!”


그린나래는 초코바를 먹던 여우를 보고 손가락질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그린나래를 싹 무시 한 채 여우는 초코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괜스레 내가 다 민망해져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왔어요?”

“너! 너! 우리 용사님한테서 떨어져!”


그렇지만 그린나래는 나를 지나쳐서 쪼르르하고 날아가 여우의 귀를 뒤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마지막 남은 초코바 조각을 먹던 여우는 성가신지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 그린나래를 떨쳐내더니 입 안에 있는 초코바를 마저 씹어 삼키고 말했다.


“아 거참, 성가시게. 안 먹어 안 먹어. 용사라며?”

“어? 어떻게 알았어?”

“저 찌질이가 말해줬다.”

“찌질이라니! 우리 용사님한테!”


마치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듯 둘은 티격태격 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돌아왔는지 미리내도 둘 사이에 끼어들어 인사했다.


“인사하러 갔는데, 없더니 여기 있었네?”

“오, 너까지 나온 걸 보니 저 사람이 용사인지 뭔지는 맞나봐?”

“그래 맞아. 오랜만이다 형씨?”

“넌 좀 맘에 들게 변했는데?”


왠지 동창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정 둘과 하얀 여우에게서 소외당한 나는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모두 다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더 이상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기는 싫어서 대화에 끼어보려고 질문을 던졌다.


“다 아는 사이에요?”


하지만, 내 질문은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방금 돌아온 가온들찬빛이 소리를 지르며 여우에게 다가가 나와 여우 사이에 서버렸기 때문이다.


“이 분은 용사님이야! 먹지 마 백호(白狐)!”

“거 참, 안 먹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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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3) +6 13.03.27 605 4 7쪽
»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8 13.01.29 618 4 9쪽
10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1) +2 13.01.02 755 6 9쪽
9 1. 내가 미쳤나 봐 (7) +2 12.12.31 608 4 9쪽
8 1. 내가 미쳤나 봐 (6) +3 12.12.26 558 4 7쪽
7 1. 내가 미쳤나 봐 (5) +4 12.12.20 639 4 8쪽
6 1. 내가 미쳤나 봐 (4) +5 12.12.19 669 3 7쪽
5 1. 내가 미쳤나 봐 (3) +8 12.12.18 733 3 9쪽
4 1. 내가 미쳤나 봐 (2) +7 12.12.17 799 6 7쪽
3 1. 내가 미쳤나 봐 (1) +5 12.12.14 1,514 9 8쪽
2 Prologue.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6 12.12.13 1,752 7 3쪽
1 (첫 인사)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3 12.12.13 1,042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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