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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히나(NEW)
작품등록일 :
2012.12.13 14:43
최근연재일 :
2013.03.27 12:2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295
추천수 :
60
글자수 :
36,521

작성
13.01.02 15:12
조회
755
추천
6
글자
9쪽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1)

DUMMY

오늘은 요정들과 함께 설악산에 가기로 한 토요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설악산에 가기 위해 바쁘게 준비했다. 예전에 사뒀던 등산화도 꺼내 신었다.


이런 한 겨울에 산행이라니, 그래도 요즘 가벼워진 몸 덕분에 등산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던 참이니까. 기쁜 맘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준비 다 했어요?”

“저희는 따로 준비할 건 없으니까요. 용사님 준비 끝났으면 출발해요.”


등산복이며 등산화며 바리바리 준비하고 있는 나에 비해,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이 공중에서 날갯짓하고 있는 요정들.


설악산은 추울 텐데, 요정들의 얇은 옷-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걸치고 있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다니면 춥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저희는 요정. 춥지 않아요.”

“오오 형씨. 우리 걱정해주는 거야?”


미리내는 월요일 이후, 건달스러운(?) 말투에 재미를 들린 것인지 아예 그런 말투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린 나래는 내가 본인의 음식을 토한 이유가 단순히 개구리 때문이란 걸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는지 내가 바라볼 때마다 볼을 잔뜩 부풀리고 시선을 휙 돌려버리고 만다.


“그럼 출발하죠. 그런데 어떻게 설악산까지 갈 거예요? 가방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건가요 혹시.”


내가 등산화의 끈을 꽉꽉 쪼이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시선을 올려 요정들을 바라보자 빙글빙글 웃고만 있는 가온들찬빛과 썩은 미소를 지으며 껄렁한 포즈로 미리내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단 가방도 챙기시구요.”

“아, 네. 정말 가방 안에 들어가실 생각인 건가요?”

“글쎄요?”


내가 가방을 매며 다시 묻자 가온들찬빛은 여전히 미소만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그럼 가시죠.”

“네, 어깨 좀 빌릴게요.”

“아, 네. 그런데 이러고 나가면 사람들 눈이..”


내 양 어깨와 정수리에 요정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 가온들찬빛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미리내와 그린나래의 몸 또한 빛에 휩싸였다. 그 모습에 내가 당황하자 가온들찬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은 감아주세요.”


차분한 가온들찬빛의 목소리를 따라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고민을 하기도 전에, 차가운 공기로 이루어진 공간에 퐁당하고 들어간 것처럼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다 왔습니다. 용사님.”


살며시 눈을 뜨자 내 동공으로 빛이 쳐들어왔고, 조금 시야가 익숙해지자 보인 것은. 시원하게 펼쳐진 설악산의 절경이었다.


“맙소사.”


정상은 아닌 듯 했지만 꽤 고지가 높은 곳이라는 걸 증명하듯 아래로 산의 여러 봉우리가 보였고, 시야 저 멀리 예전에 올라봤던 대청봉이 보였다.


“지금 공간이동을 한 거예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건 또 뭐예요.”

“형씨 그건 말이야.”

“네.”

“요정들의 비밀이야. 알면 다쳐.”

“아, 네...”


미리내가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저건 또 언제 배운 행동일까. 미리내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다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는 이정표 같은 것이 없었다. 근방에는 사람들이 다니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는 곳도 없었고,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라는 걸 중명하듯 조금 쌓여있는 눈 위에는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여긴 설악산 어디쯤이에요?”

“글쎄요. 설악산 인 건 확실하니까 걱정 마세요.”


가온들찬빛은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기쁜지 날개를 부르르 떨며 자유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일단, 정력(淨力)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왔으니까요. 미리내랑 그린나래는 주변에서 정력 좀 모아와. 나는 여기서 용사님 몸에 정력을 저장하고 있을게.”

“알았어. 자, 아가씨 가자고.”

“응.”


그린나래와 미리내가 시야에서 없어지고, 가온들찬빛은 내 머리 위에 앉아 말했다.


“지금부터 용사님 몸에 정력을 저장할겁니다. 그냥 가만히 서 계세요.”

“저장이요?”

“네, 달리 말하면 여기의 기운을 퍼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호수의 물을 떠가듯이.”

“아아. 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등산화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그래도 따뜻하게 입고 오기는 정말로 잘했다. 겨울의 산은 정말로 춥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서 설악산의 절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정수리 위에 앉은 가온들찬빛이 뭘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손가락에서부터, 그리고 발가락에서부터 시작된 청량한 기운이 점점 내 심장과 머리 쪽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목캔디를 먹고 난 뒤, 숨을 들이 쉴 때처럼 조금은 차갑고 시원한 기분. 그 느낌이 온 몸에서 느껴지자 이 추위 속에서도 춥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온 몸이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


“용사님. 죄송한데요. 아마 토를 조금... 할지도 몰라요.”

“네? 토를요?”

“네, 아무래도 정력을 몸에 저장하면서, 몸에 쌓여있던 독기와 탁기가 정력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 마지막엔 살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몸을 버리고 나올 거예요.”

“아. 뭐 괜찮아요.”

“정말요?”

“네.”


조금이라는데 뭐. 아마 토라고 해봤자. 독기라고 했으니, 약간 가래를 뱉는 정도가 아닐까ㅡ 라고 혼자 판단했던 30분 전의 나에게 멍청하다고 손가락 질 하며 비웃어 주고 싶다.


“우욱.”


왠지 이번 주에는 유난히 불유쾌한 상황이 자주 온다 싶지만, 별수 있나. 내 몸에 안 좋은 것들이 빠져나간다는 데 길을 열어줘야지. 이미 바닥에는 시커먼 것들이 세숫대야로 물을 뿌린 것만큼 퍼져있었고, 나는 아직도 그 위에 시커먼 물과 같은 것을 꾸역꾸역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가온들찬빛은 내 등 위에서 콩콩콩 뛰며 독기와 탁기들이 빠져나오는 걸 돕고 있었다.


한참 뒤, 드디어 토악질이 멈췄다. 나는 그대로 뻗어버릴 만큼 체력이 다 소진됐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몸에는 힘이 남아돌았고, 뒤흔들리던 머릿속도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신기하네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멀쩡하네요. 사실 평소보다 더 몸이 개운해요.”

“당연하죠. 독기와 탁기를 몰아냈으니까요. 사실 조금 더 체력을 키우고 하려고 했는데요. 도시에서는 쌓이는 정력이 부족해서 탈진하실 것 같았거든요.”

“아아, 그런데 지금은 괜찮은데요?”

“네, 여기는 정력이 넘쳐서. 독기와 탁기가 빠져나간 곳을 바로 채워주니까요.”

“그런데, 도시에 가면 다시 쌓이는 거 아니에요? 그 나쁜 기운들이요.”

“괜찮아요. 저희도 정력을 충분히 모아서 가는데다가 용사님 몸 안에도 정력을 상당히 많이 저장했으니까. 도시에서 흡수하는 독기와 탁기에 대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요정들과 있으면 신기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난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 때 마다 이것저것 귀찮을 정도로 가온들찬빛에게 질문공세를 괴롭혔는데, 가온들찬빛은 귀찮아하지도 않고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줬다.


“일단, 저도 따로 정력을 모아 올 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다녀와요.”


보랏빛 날개를 팔랑이며 멀어져가는 가온들찬빛의 뒷모습에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검은색 수증기에 깜짝 놀라 뒤로 주춤하고 물러섰다.


“허. 사라지고 있네.”


내가 뱉어낸 많은 양의 독기와 탁기들이 수증기로 변해 공중에서 분해되고 있었다. 마치 물이 건조되는 과정을 녹화해 빨리 감기로 재생한 것처럼 바닥에 내가 그려냈던 검은색 물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독기와 탁기의 흔적이 사라진 부분에 발을 살며시 디뎌봤다. 그냥 딱딱한 겨울의 땅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 위로 몇 번 지나가보기도 하고 콩콩하고 뛰어보기도 하던 나는 이내 흥미가 떨어져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대체 얼마나 많은 정력을 모아 올 생각이기에 그린나래와 미리내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


바스락.


마른 겨울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뒤 쪽에서 작게 들려왔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바람 때문에 난 소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혹시 산짐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곰은 아니겠지.


뒤 쪽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빙 둘러서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았기 때문인지, 발 디딜 곳을 찾는 것도 조금 힘들었지만, 온 몸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 덕분에 힘들지는 않았다.


한 열 걸음 정도 밑으로 내려왔을 때, 다시 왼쪽에서 ‘바스락’하고 소리가 들렸다. 조금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고개를 들려 그 쪽을 바라보는 순간, 무언가 내 얼굴로 달려들었다.


대체 무엇이 내 얼굴을 덮친 것인지, 정체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뒤로 꼬꾸라져 산 속을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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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3) +6 13.03.27 606 4 7쪽
11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8 13.01.29 619 4 9쪽
»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1) +2 13.01.02 756 6 9쪽
9 1. 내가 미쳤나 봐 (7) +2 12.12.31 608 4 9쪽
8 1. 내가 미쳤나 봐 (6) +3 12.12.26 558 4 7쪽
7 1. 내가 미쳤나 봐 (5) +4 12.12.20 639 4 8쪽
6 1. 내가 미쳤나 봐 (4) +5 12.12.19 670 3 7쪽
5 1. 내가 미쳤나 봐 (3) +8 12.12.18 733 3 9쪽
4 1. 내가 미쳤나 봐 (2) +7 12.12.17 799 6 7쪽
3 1. 내가 미쳤나 봐 (1) +5 12.12.14 1,514 9 8쪽
2 Prologue.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6 12.12.13 1,752 7 3쪽
1 (첫 인사)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3 12.12.13 1,042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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