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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히나(NEW)
작품등록일 :
2012.12.13 14:43
최근연재일 :
2013.03.27 12:2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303
추천수 :
60
글자수 :
36,521

작성
12.12.31 14:55
조회
608
추천
4
글자
9쪽

1. 내가 미쳤나 봐 (7)

DUMMY

“아, 그게. 요새 친척 동생들이 와 있어가지고요.”

“아~ 그렇구나.”


같이 회사를 나서며 정현씨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친척 동생들은 몇 살 정도 됐는데요?”

“어 10살, 그 또래일 거예요.”

“거예요? 친척동생들 나이도 잘 몰라요? 해수씨 너무하다~”


확실히, 진짜로 친척 동생들이라면 너무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진짜로 친척 동생들도 아니니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정현씨는 친척 동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봤다. 여자 아이들이냐, 남자 아이들이냐, 왜 내 집에 와서 지내고 있는 것이냐 등.

정현씨가 갑자기 나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 조금 불편한 마음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거짓말이 탄로 날 까봐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아. 미안해요. 제가 너무 꼬치꼬치 물었죠.”

“아닙니다. 괜찮아요.”


눈치가 빠른 정현씨는 내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보고 먼저 사과를 해왔다. 나는 사과를 받고 나서, 표정을 풀려고 했지만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더 표정이 굳어버렸다.


띵-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폐쇄된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공간이 우리 사이를 더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난처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정현씨.”

“네?”

“다음에 제가 저녁 살게요.”


정현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옵션으로?”


내가 술을 먹는 시늉을 하며 바라보자 정현씨는 크게 하하-하고 웃더니 검지를 튕기며 ‘콜’이라고 말했다. 다행이다. 괜히 별 것도 아닌 일로 정현씨하고 사이가 어색해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도 회사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럼 내일 봐요. 애기들이랑 잘 놀고요.”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멀어져가는 정현씨의 뒷 모습을 보며 조금 감정이 묘해졌다. 갑자기 정현씨가 나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입 부근의 목도리를 정리하며 쌀쌀한 바람 속을 헤집고 걸어 나갔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집에 가서 그린 나래가 차려 준 맛있는 저녁을 먹다보면 행복해질 것 같다.


“다녀왔어~”

“용사님이다! 용사님이 오셨다!”


신발을 벗는 내내 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그린 나래를 어깨 위에 올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TV를 보고 있던 미리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반겨줬다.


“여어, 용사님 왔는가”

“...묘하게 껄렁한데요. 미리내 왜 저래요?”


인터넷으로 운동 방법을 보고 있던 가온들찬빛이 한숨을 푹 내쉬며 TV를 가리켰다. TV에서는 이병헌 주연의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건달이나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를 계속 보더니, 결국 저렇게 됐습니다.”

“용사형씨, 이런 내가, 맘에 안 들어?”


미리내는 내 얼굴 앞으로 날아와 허공에서 짝 다리를 짚으며 말했다. 요정은 허공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그냥 실소가 나왔다.


“뭐 상관없어요. 욕만 쓰지 마세요.”


외투를 벗어 컴퓨터 의자에 걸치자, 가온들찬빛이 제대로 옷걸이에 걸으라고 핀잔을 주었다. 조금 뜨끔한 표정으로 외투를 제대로 정리해서 옷장에 넣었다.


“용사님, 이번 주말에 설악산 가요.”

“네? 설악산이요?”

“네, 아무래도 이렇게 발달한 도시는 정력(淨力)이 부족해요.”

“정력...이요?”


정력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그 정력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가온들찬빛은 알까.


“네, 순수하고, 깨끗한 기운이 부족해요 도시는, 쉽게 말하자면 자연에서 형성되는 기운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설악산을 가자고 하는 겁니다.”

“아아.”

“가서 기운을 좀 모아 와야겠어요. 우리끼리만 가도 되지만, 용사님이 함께 가서 몸에 담아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여기서 설악산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버스를 타고 가도 기차를 타고 가도 꽤나 오래 대중교통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는데, 요정들이 그 먼 길을 같이 갈 수 있을까?


“혹시 가는 길을 걱정하고 계시나요?”

“네, 아무래도 사람들 눈이 있어서, 좀 그렇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에게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일단 저녁부터 먹죠.”


사실 아까부터 가스레인지 위에서 솔솔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위가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부리고 있었다. 가온들찬빛에게 나름의 방법이 있다니까, 걱정은 뒤로 미루고 식사부터 해볼까. 오늘 저녁 반찬은 뭘까?


“오늘 저녁 반찬은 뭔가요? 냄새가 고소한데~”


기대에 찬 시선으로 그린 나래가 가지고 나오는 그릇을 바라봤다. 그린 나래는 나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건지, 반찬 위에 냄비 뚜껑을 덮어놔서 아직 어떤 반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양 만점 건강식이에요! 헤헤, 열심히 만들었다고요. 기대되죠! 용사님?”

“정말 기대돼요. 과연?”

“개봉박두! 짜자잔~”


그린나래는 과장된 표정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 접시에는 닭고기 조림이 빨갛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와, 맛있겠어요. 잘 먹을게요!”


내가 젓가락을 들자 그린나래는 옆에 바짝 붙어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맛에 대해 평가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조금 들어 올려 입에 가져갔다.


“음~”


나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올려세웠다. 그린나래는 기쁜지 꺄르르륵 소리를 내며 식탁 위를 날아다녔다. 그린나래의 기분이 좋으라고 한 행동이 아니라 정말로 그린나래의 음식 솜씨는 정말 환상적이다. 말이나 활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조미료를 따로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항상 음식에서는 감칠맛이 났다.


“와, 이거 닭 날개 인가요? 정말 탱탱하면서도 부드럽네요.”

“응? 용사님 이거 닭 아니에요!”

“닭이 아니에요? 무슨 고기에요?”


내가 쌀밥을 우물거리면서 묻자, 그린나래는 냉장고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줬다. 투명한 비닐 봉투 안에는, 얼어붙어 있는 정체불명의 것들이 담겨있었다.


“이게 뭔데요?”

“뭐긴요. 개구리죠.”

“…….”


땡그렁. 텅. 텅.


손의 힘이 스륵 풀렸다. 내 통제를 벗어난 젓가락들이 식탁 위의 그릇들을 때리면서 바닥으로 자유 낙하했다. 미리내는 아주 친절하게도 내가 떨어트린 젓가락들을 다시 주워 식탁 위에 올려놔줬다. 하지만,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할 정신따위 없다. 내가 잘 못 들은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라도.


“…개구리?”

“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할 때 개구리요.”


미리내의 얼굴은 너무나 순수했다. ‘개구리라서 개구리라고 말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 것이냐’라는 의문이 떠올라있는 그 요정의 표정에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화장실로 걸어갔다.


“어? 용사님 밥 먹다 말고 왜 화장실을 가요!”


그린나래가 그 투명한 봉투를 들고 화장실 앞 까지 쫓아왔다. 밥 먹다가 화장실에 가면 안 된다고 쫑알거리는 그린나래의 코앞에서 화장실 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우웨에엑.”


변기를 붙잡고 뜨끈한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나는 사실 어릴 때부터 비위가 매우 약한 편이었다. 술을 잔뜩 먹고 취한 친구가 멀찍이서 토하는 소리만 들어도 나도 같이 토해버리고, 한 여름 길거리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옮기는 차가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토악질이 밀려 올라온다.


게다가 징그럽고, 미끈거리고, 끈적거리고, 이런 것도 너무 싫었다. 특히 양서류는 절대적으로 내가 친해질 수 없는 동물이다. 그 끔찍한 모양새라니.


쾅쾅쾅.


“용사님! 토해요? 왜 토해요! 내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었어요? 으아앙.”

“어디 아프신가요, 용사님? 용사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그린나래와 가온들찬빛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우웨에엑. 웨엑.”


구토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엉엉, 용사님 미워 미워!”


나는 너가 미워!


“우웨에에엑.”

“용사님! 문 좀 열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대체 이 상황에서 무엇을 도와주겠다는 것일까. 내 등 위에 올라와서 콩콩콩 뛰어 주겠다는 걸까. 아 그건 좀 도움이 될지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쳐가는 것만 같다.


개구리를 먹다니.


내가, 그것도 개구리를, 그것도 맛있게, 우욱.


“우웨엑.”


미칠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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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낭만냥
    작성일
    12.12.31 16:46
    No. 1

    히나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구리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01.02 16:19
    No. 2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용사형씨, 이런 내가, 맘에 안 들어? 난 네가 미워!"

    ....인상적인 대사 다 따라해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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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3) +6 13.03.27 607 4 7쪽
11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8 13.01.29 620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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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미쳤나 봐 (7) +2 12.12.31 609 4 9쪽
8 1. 내가 미쳤나 봐 (6) +3 12.12.26 559 4 7쪽
7 1. 내가 미쳤나 봐 (5) +4 12.12.20 639 4 8쪽
6 1. 내가 미쳤나 봐 (4) +5 12.12.19 671 3 7쪽
5 1. 내가 미쳤나 봐 (3) +8 12.12.18 734 3 9쪽
4 1. 내가 미쳤나 봐 (2) +7 12.12.17 799 6 7쪽
3 1. 내가 미쳤나 봐 (1) +5 12.12.14 1,514 9 8쪽
2 Prologue.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6 12.12.13 1,753 7 3쪽
1 (첫 인사)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3 12.12.13 1,043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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