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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히나(NEW)
작품등록일 :
2012.12.13 14:43
최근연재일 :
2013.03.27 12:2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307
추천수 :
60
글자수 :
36,521

작성
12.12.20 13:23
조회
639
추천
4
글자
8쪽

1. 내가 미쳤나 봐 (5)

DUMMY


“그럼 용사님, 오늘은 간단하게 스트레칭부터 할까요?”

“스트레칭이요? 갑자기 스트레칭은 왜 하나요?”


내 질문에 침대 위에 쓰러져있던 미리내가 허공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용사님 체력이 지금 저질이니까. 체력부터 올려야죠.”

“아... 저,저질...”


대체 어디서 그런 말들을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리내는 요정치고 매우 거친 언어를 구사했다. 내가 요정들은 마냥 순수한 존재들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미리내의 말에 살짝 울컥하긴 했지만, 내 체력이 저질이란 건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더군다나 요새는 야간업무가 잦았기 때문에 간단한 운동을 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맞는 운동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찌보면 이런 체력 증진도 일종의 용사 훈련의 한 가지 일 텐데, 작은 요정들이 인간에게 맞는 운동 방법을 알고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가온들찬빛은 내 말에 컴퓨터 쪽으로 팔랑팔랑 날아가서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에는 각종 스트레칭 법을 알려주는 웹 페이지가 떠있었다.

아하! 현대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 그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있었구나. 하하하, 나도 참 바보같이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하하.


“아하하... 인터넷도 사용할 줄 아시는 군요?”

“그럼요. 저는 수호 요정이기도 하니까, 간혹 용사님을 지켜보곤 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아무튼 일단 이 동작부터 해볼까요?”


가온들찬빛이 가리킨 동작은 아주 기초적인 스트레칭 동작이었다. 다리를 모아서 선 채로 앞으로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바닥을 짚는 동작. 이 동작이라면 예전에는 분명 손바닥이 모두 땅에 닿았었다. 이래보여도 꽤나 유연하단 말이야.


“끄응.”


'닿았었다.'

알다 시피 과거형이다. 내가 그 동안 운동을 정말 많이 안했나 보다.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요정들도 동작을 함께 했는데, 바닥과 만나지 못한 채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가락 끝을 본 그린나래가 방바닥을 뒹굴면서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용사님 바보 같아요!”

“하아, 노력 중입니다. 비웃지 마요.”

“어머! 비웃는 거 아니에요오”


왠지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고 있는 가온들찬빛과, 대놓고 비웃는 표정의 미리내도 기분이 나빴지만 난 그래도 열심히 스트레칭 했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분명 예전에는 손바닥이 다 닿았는데. 아 물론 5년 전에는 말이지.


허공에서 파닥거리는 내 손가락을 보던 가온들찬빛이 웃음을 애써 멈추며 헛기침했다.


“흠흠, 아무래도 특훈이 필요할 것 같군요.”


#


그랬다. 그렇게 가온들찬빛의 말 한마디로 ‘특훈’이 시작되었고,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조깅을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는 곤욕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용사가 되기 위한 특훈이라는데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운동을 좀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었기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뛰고 있었고, 요정들은 또한 내 어깨 위에 걸터앉아 아침 바람을 만끽 중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가 하고 물어봤는데, 본인들의 의지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 조깅뿐만 아니라, 식단 조절, 스트레칭에서 부터 근육량 증가를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아령과 운동기구로 내 방은 지금 포화상태였다- 완벽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일정이었지만, 특훈이라니까 특훈인가 보다 하고 있다.


사실 고맙기까지 했다. 조금 의지박약인 나는 누군가 이렇게 옆에서 채찍질을 해주면 잘하는 성격이지만 방치해두면 한없이 늘어지고 게을러지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 집은 매일매일 깨끗하고, 난 건강한 밥을 먹게 됐고, 한 가지 더.


“우와! 저 사람이 방금 뭐했는지 봤어? 미리내, 저 사람 짱이야!”

“그러게 정말 신기한데? 인간이면서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둘 다 TV볼 시간 있으면 와서 용사님 특훈 계획에 아이디어라도 좀 내봐.”


매일 조용하던 내 방이 요정들의 재잘거림으로 시끌시끌해졌다. 직장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자취를 시작한지 7년, 왠지 방이 꽉 찬 느낌이 들고 요정들이긴 하지만 마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져서 그 점이 가장 좋았다. 때로 퇴근하고 홀로 들어오는 방이 싸늘하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에, 투닥거리는 세 요정들의 모습은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나 갔다 올게요. 쉬고 있어요.”

“다녀오세요 용사님!”

“차 조심하세요.”

“졸지 말고 일 열심히 해요.”


요정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직장까지 가는 내내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벌써 요정들과 함께 한지도 5일, 가끔씩 내가 용사라는 사실이 어색하긴 하지만, 아직은 커다란 위협도 문제도 생기지 않았기에 그런 것 같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홍보 마케팅 대행업체. 작은 사무실에 소규모 인원이지만, 내 적성에 맞고 대기업은 꿈도 꾸지 않았기에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요새 피부가 좋아진 것 같아 해수씨. 따로 관리 받아?”


내 옆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박정현 팀장이 물어왔다. 나와 같은 날에 입사한 동기로 나이도 동갑에 업무 스타일도 서로 상성이 잘 맞아 친한 인물이다. 나는 정현씨의 말에 슬쩍 까만 모니터에 얼굴을 비춰보며 대답했다.


“그냥 운동을 좀 시작했어요. 왜, 멋있어 졌어요?”

“응. 좀 멋있어 진 거 같은데?”

“반하면 곤란해요.”

“뭐야~ 왜 이래?”


시답잖은 장난으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외투를 벗어서 정리해두고 내 책상에 앉아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요즘 맡고 있는 홍보 업무에 관한 내용인가 해서 확인했다가 난 그대로 굳어버렸다.


[ 오늘 너무 춥다. 아침은 제대로 먹고 다녀? ]


하나의 연락이었다. 요즘 문자 메시지 대신 자주 쓰이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온 짧은 문장에 나는 지난 5일 동안 하나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악, 멍청이.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 응, 정말 춥다. 아침은 잘 챙겨 먹었어. 너는? ]


막상 답장을 보내놓고 나니까 좀 후회가 됐다. 이 내용도 몇 번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반복한 내용이었지만, 맘에 들지는 않았다. 내가 보낸 답장 앞에 상대방이 확인하지 않았을 때 뜨는 숫자 ‘1’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일단 하던 일을 마저 해야겠다 싶어 휴대 전화를 놓으려는 데, 답장이 왔다.


[ 나는 오늘 늦잠을 자버렸어, 덕분에 지각할 뻔 했다니까ㅋㅋ]


‘ㅋㅋ’이라니. ‘ㅋㅋ’이라니! 하나는 내가 연락을 늦게 했다고 핀잔 주지 않았다. 게다가 ‘ㅋㅋ’까지 붙여서 답장을 해줬다. 나는 휴대 전화를 들고 실실 웃었다. 왠지 하나가 보낸 글자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음성 지원돼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말



룰랄라 

오늘은 왠지 쉽게 쉽게 써졌어영!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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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3) +6 13.03.27 607 4 7쪽
11 2. 설악산에는 600년 묵은 여우가 산다 (2) +8 13.01.29 620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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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내가 미쳤나 봐 (6) +3 12.12.26 559 4 7쪽
» 1. 내가 미쳤나 봐 (5) +4 12.12.20 640 4 8쪽
6 1. 내가 미쳤나 봐 (4) +5 12.12.19 672 3 7쪽
5 1. 내가 미쳤나 봐 (3) +8 12.12.18 734 3 9쪽
4 1. 내가 미쳤나 봐 (2) +7 12.12.17 799 6 7쪽
3 1. 내가 미쳤나 봐 (1) +5 12.12.14 1,514 9 8쪽
2 Prologue. 하수구에서 요정을 보았다. +6 12.12.13 1,754 7 3쪽
1 (첫 인사)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3 12.12.13 1,043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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