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제갈량과 우길인 각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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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제갈량(諸葛亮)과 우길(于吉)인 각리선생(角里先生)
득래가 이야기했다.
“원직(元直)이 오늘도 늦나보네.”
제갈량이 득래의 이야기를 받았다.
“혼자 익히는 창술이니 쉽지 않겠지. 게다가 수일 후부터는 너와 함께 연마하겠다 했으니 서두르느라 늦는 것 같아.”
득래가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했다.
“나는 배우지 않겠다 했는데···.”
제갈량이 득래의 등을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적이 부럽지 않을 네가 무예를 익히지 않으면 누가 익히겠어.”
득래는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주어진 것일 뿐, 내가 택한 것이 아니잖아.’
득래의 굳은 표정을 살피던 제갈량이 화제를 전환했다.
“은래, 원직이 오기 전에 너한테만 들려줄 것이 있어.”
제갈량이 주위를 살핀 후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를 이었다.
“얼마 전 와룡강 근처에서 수염과 눈썹까지 흰 백발의 노고사를 만났어. 너는 고구려 유민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왔으니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마치 내가 장량(張良)이 되어 황석공(黃石公)을 만난 기분이었어.”
제갈량은 득래에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편에 묘사된 장량과 황석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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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은 한신, 소하와 함께 한(漢)이 진(秦)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책사이자 군사로 훗날 한고조 유방에 의해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장량의 선조는 진과 한이 차례대로 통일 제국을 세우기 전, 전국시대 전국칠웅(战国七雄) 중 하나였던 한(韓)의 공신이었다. 장량의 조부인 개지(開地)는 한의 소후(昭侯), 선혜왕(宣惠王), 양애왕(襄哀王) 때 재상을 지냈고 부인 평(平)은 희왕(釐王), 도혜왕(悼惠王) 때 재상을 지냈다.
제갈량이 이야기했다.
“장량의 아버지인 평이 죽고 난 후 이십 년 뒤에, 너도 잘 아는 것처럼 후일 진시황이 된 진왕 영정이 한(韓)을 무너뜨렸어. 그때 장량은 나처럼 나이가 어려 관직에 나가지 못했지.”
제갈량이 득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하지만 진과 진왕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은 대단했던 것 같아.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팔아 진시황 암살이라는 거사를 도모했거든.”
한이 무너질 즈음, 다섯 왕에 걸쳐 재상을 지낸 장량의 집에는 노복만 삼백이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한 장량은 죽은 동생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복수를 준비했다.
제갈량이 이야기를 이었다.
“거사를 함께 도모할 영웅호걸을 찾던 장량은 유주로 가서 창해군(倉海君)이라는 역사(力士)를 만났어. 창해군은 은래 너처럼 천하장사라 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대. 백이십 근이나 되는 철퇴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고 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득래가 제갈량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받았다.
“창해군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창해공은 창해 출신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했어. 아버지께 들었는데, 유주의 동쪽 바다인 창해는 진 때 고구려와 부여의 전신인 조선(古朝鮮)에 속해 있었대.”
제갈량이 득래의 이야기를 이었다.
“응. 창해는 유주를 비롯해 위만의 조선, 부여, 지금의 고구려와 닿아있으니까.”
득래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창해공은 네 이야기처럼 힘이 항우장사(項羽壯士, 서초패왕, 항적)에 뒤지지 않았다고 했어. 뜻이 맞는 협객을 만나 연주(兗州)로 간 후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는데, 생포되자마자 수레바퀴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고 들었어.”
제갈량이 득래의 이야기를 받았다.
“응. 사서는 그 창해공과 함께 진시황의 암살을 도모한 협객이 장량이라 기록하고 있어.”
진시황이 동쪽으로 순행을 나갔을 때 연주의 박랑사(博浪沙)에 매복하고 있던 장량과 창해군이 진시황의 암살을 도모했으나 진시황이 타지 않은 다른 수레를 공격하면서 실패하게 되었다.
사로잡힌 창해공은 수레바퀴에 머리를 부딪쳐 자진(自盡)했다. 가까스로 도망친 장량은 창해공의 폭사(暴死)를 슬퍼하며 십여 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장량은 그때 얻은 병으로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병치레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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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만난 노고사는 각리선생이라 했어. 세간에서는 우길이라 부른다 했지.”
득래가 놀라며 물었다.
“우길이라면 고구려에서 왔다는 그 방사(方士)를 일컫는 것이지?”
제갈량이 대답했다.
“응. 그런데 조금 우습게도 그 우길인 각리선생이 내게 신발을 주워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어.”
득래가 물었다.
“그것이 왜 우습지?”
제갈량이 대답했다.
“사백 년 전 황석공이 장량을 만났을 때도 신발을 벗어던지며 주워오라 했거든.”
제갈량이 득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장량을 만났던 황석공처럼 그 노인이 나를 떠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신발을 주워줄 수밖에 없었어.”
“왜 그랬어?”
득래가 물었고 제갈량이 대답했다.
“그 노인이 자기를 우길인 각리선생이라 하기 전부터,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어. 장량이 그랬던 것처럼, 예를 갖추어 대하다 보면 그 노인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 같은 비결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랬지.”
장량이 하비(下郵)의 이교(圯橋)를 지날 때, 거친 삼베옷을 입은 노인이 자기의 신발을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고는 장량에게 주워오게 했다. 장량은 황당해하며 그 노인을 때리려다 참고 내려가 신발을 주워왔다.
노인은 장량에게 그 신발을 자기의 발에 신기게 했고, 장량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주었다. 노인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르칠 만한 젊은이로다, 닷새 뒤 새벽에 이곳에서 만나자’며 그곳을 떠났다.
닷새 뒤 새벽에 장량이 그곳으로 갔는데 노인이 먼저 와있었다. 노인은 화를 내며 ‘약속을 해놓고 어찌 늦게 온 것이냐’며 나무라고는 ‘닷새 뒤 더 일찍 오라’며 자리를 떠났다.
다시 닷새 뒤 닭이 울 때 장량이 그곳으로 갔는데 그날 역시 노인이 먼저 와있었다. 노인은 전과 마찬가지로 장량을 나무라며 화를 냈고 ‘닷새 뒤 더 일찍 오라’며 자리를 떠났다.
다시 닷새가 지났을 때 장량은 밤이 되기 전부터 그곳에서 노인을 기다렸다. 얼마 뒤 노인이 나타났고 ‘기본이 되어있는 청년’이라며 크게 웃고는 장량에게 ‘태공병법’을 전해주었다.
제갈량이 이야기를 이었다.
“황석공은 장량에게 ‘태공병법’을 주면서 그것을 읽으면 왕의 스승이 될 것이라 했어. 실제로 얼마 후 장량은 진의 관중(關中)을 공격하러 가던 고조(유방, 당시 패공, 沛公)를 만나 그의 책사이자 스승이 되었지.”
득래가 제갈량의 이야기를 이었다.
“사서를 읽지는 못했지만 고조라면 나도 알고 있어. 관중을 점령해 진을 무너뜨렸지만 항적에 의해 파촉(巴蜀)으로 쫓겨나면서 한(漢)의 왕이 되었지. 나중에 서초패왕의 초(楚)를 무너뜨리면서 천하를 통일해 한의 황제, 한고조가 되었고.”
제갈량이 고개를 끄덕였고 득래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너도 왕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병법서나 비결서를 얻었어?”
제갈량 대답했다.
“아니, 병법서나 비결서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신 다른 것을 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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