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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퍼의 서재입니다.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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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6,930
추천수 :
244
글자수 :
303,038

작성
19.07.04 07:30
조회
71
추천
2
글자
9쪽

살아줘

DUMMY

남진이 먼저 백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했다. 그는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의식이 없었다. 수연이 만든 꽃잎들이 아직 그의 몸안을 어지럽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은 인원들도 통로로 내려와 어느 혈관에 모루가 있는지 찾아 다녔다. 혈관은 너무 많아서 열 명이 찾는데도 30분 가량이 걸렸다. 찾는 동안 지훈이 옆에 있던 성민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위에서 비명을 지른 건 뭐였지?"


성민이 대답했다.


"꼭대기층도 닫혔어요."


"우리가 오기 직전 거기 있던 여섯 명의 백지단원들이 방이 닫히면서 나무에 먹혔는데, 미성년자인데도 피를 빨아먹어서 몸이 녹색으로 변했거든요."


우빈이 자세하게 말했다.


"정말 징그러웠...아, 미안해요."


소예는 인원 중 네 명이나 초록빛 인간인 걸 깨닫고 사과했다.


"그럼 이제 이 나무에 남은 빈 공간은 이 곳밖에 없단 뜻이군. 최후의 발악인가. 여기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얼른 모루를 찾아야겠어."


모루를 찾아낸 건 정이었다. 심장으로부터 가장 먼 위치에 있는 혈관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그건 정확히는 '모루로 추정되는 검은 점'이었다. 다른 혈관에는 그나마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이 혈관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훈, 민우, 기헌은 혈관 안으로 들어갔다. 남진은 산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실험하는 걸 도왔다. 정은 혈관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한참 버텼지만 결국 못 참고 튀어나왔다.


"숨을 못 쉬겠어요. 난 진짜 모루를 찾으러 가고 싶은데!"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가 말했다. 다음은 식물 능력자가 도전할 차례였다. 남은 능력자는 준연 하나였다. 그는 안쪽으로 얼굴을 밀어넣었다. 그는 정보다는 오래 버텼으나 밖으로 튕겨져 나온 건 매한가지였다.


"숨을 쉴 수는 있어요. 그런데 뭔가에 막혀 더 들어갈 수 없었어요."


"식물 능력이 호흡에는 영향을 주지만 그게 다는 아닌가 보군요. 그렇다면 뭔가 다른 것이...아, 이럴 땐 제가 죽은 게 한스럽군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요. 다른 아이디어 있나요?"


"모루의 몸엔 항체가 있고 우린 없죠."


우빈이 말했다.


"아! 그럼 항체를 일시적으로 몸에 넣는다면...? 백지가 만든 백신이 있었다면 실험해볼 수 있었을 텐데."


"있어요."


준연이 말했다. 그는 품에서 백신이라 쓰인 약병을 꺼냈다.


"맞아, 너 백지단 출신이었지."


이제 누가 혈관 안에 들어갈 지가 관건이었다. 우선 식물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혈관 안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또 들어간 사람은 모루를 설득해 데리고 나와야 했다.


"난 자신이 없어. 그 애랑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니까. 좋은 애란건 알겠지만."


"그 백신, 식물에 완전히 잡아먹힌 사람도 되돌릴 수 있어?"


우빈이 물었다.


"가능할 거예요. 항체를 심장에 넣는 것으로 식물에 잡아먹힌 인간 성인들도 되돌릴 수 있는 걸 보면."


남진의 말에 회원들은 혈관에 들여보낼 사람을 한 명으로 좁혔다. 그러나 이미 완전히 식물화된 그녀에게 어떻게 백신을 주입해야 할지 헷갈렸다. 준연은 그의 마지막 식물 능력을 쓰기로 했다. 그의 피가 얼마나 잡아먹히냐에 따라 식물화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일이 제대로 풀릴 거라 굳게 믿었다. 그가 손키스를 하고 수연의 다쳤던 어깨 부분에 백신 병을 갖다대자 줄기가 수연의 몸에 난 줄기와 이어져 그 안에 백신을 쏟아 넣었다. 알 껍질이 깨지듯 수연에게서 식물 잎과 줄기, 꽃이 조금씩 떨어져나갔다.


수연이 눈을 떴다. 눈앞엔 연잎으로 얼굴이 점차 뒤덮여가는 준연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모루가 있는 곳을 찾았어. 다녀와."


수연은 전에도 그랬듯 의식이 없었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다. 회원들이 아직 사람으로 덜 돌아와 움직이기 힘든 그녀를 혈관 앞에 데려다 주었다. 수연은 손을 뻗었다. 이내 머리도 안으로 향했다. 피의 흐름 속에 들어와 있는데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았다.


"식물 능력이 사라지기 전에 서두르죠."


남진이 말했다. 그들은 모루로 추정되는 검은 점을 향해 헤엄쳤다. 한참 수영해 올라가자 형체가 보였다. 초록빛 인간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들은 수연이 아는 사람들 외에도 더 있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든 노인까지. 그 틈에는 전에 학교에서 수연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수위 아저씨도 있었다.


"무사했구나!"


그녀를 보며 인자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수연은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간신히 울음을 참아냈다.


울 때가 아니야. 모루는 어떤 상태지?


모루는 중심에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 때문에 멀리서는 전체적으로 검게 보였지만 가까이 보니 피부에 약간의 초록빛도 띠고 있었다. 그 빛은 초록빛 인간들의 빛과 비슷했다. 갈라진 나무껍질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빛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마치 피부 전체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혈관 밖에서는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수연은 당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루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수연의 손이 제 머리에 얹힌 것을 한참 쳐다보더니 수연에게 꼭 안겼다.


"그 애의 몸에 초록 인간 중 몇 명이 손을 댔는데 손을 댄 인간이 사라졌대."


민우가 설명했다.


"그 일이 처음 일어난 직후부터 계속 웅크리고 있었나 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초록빛 인간들은 이 나무에 피를 제공했고 나무에 속해 있었다. 모루가 들어오자 초록빛 인간들은 즉시 소환되어 자석처럼 거대한 나무로 모여들었다. 체관이 닫히면서 그들은 자연스레 혈관 안으로 들어왔다. 혈관에 들어오자 그들의 정신은 또렷해졌다. 이들의 관심은 혈관 안에서 유일하게 초록빛 인간이 아닌 모루에게로 쏠렸다. 그들 중 몇이 호기심에 모루를 만졌다. 초록빛 회오리가 일고, 손을 댄 이들은 영원히 모습을 감췄다.


"어, 모루 씨 피부가..."


남진도 모루의 피부가 빛나는 걸 알고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오지 마요!"


모루가 새된 소리로 외쳤다. 남진은 멈칫했다.


"오면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나 남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루와 닿을 듯 말듯한 거리까지 오더니 말했다.


"역시. 이 아인 죽어가고 있어. 전투 목적으로 개발된 바이러스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로 능력을 얻으면, 심각한 부상을 입어도 한 번은 살아나. 죽으면 초록 인간이 되지만, 모루는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형태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거지."


"이 앤 백지 때문에 한 번 불에 탄 적이 있어. 그게 원흉인가?"


지훈이 묻자 남진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확실하군. 혹시 이 애에게 손을 댄 초록 인간이 사라지고 나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왔는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수위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졌는데, 아이의 몸이 더 선명해졌죠. 실은 우리 중 몇 사람이 그래서 그 얘길 했어요, 만약 우리가 모두 저 아이에게..."


"그러지 마요! 저 때문에, 전, 전 어차피 희귀병이 있어서 얼마 못 살아요. 우리 엄마도 나만 없었으면..."


모루의 호흡이 가빠졌다. 수연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다 그녀는 움찔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수연이 기침을 하자 모루가 겁에 질린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없어...모루야. 난 널 데리고 나가러 왔어. 백신을 맞아서 식물 능력이 사라지고 있거든. 완전히 사라지면 여기서 숨을 못 쉬게 돼."


"그럼 얼른 나가!"


모루는 수연을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수연은 그런 모루를 더 힘껏 안았다.


"싫어."


"그래, 모루야. 우린 어차피 죽었어. 너한테 생명을 주고 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야."


민우가 말했다.


"우린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착한 일 하나 정도는 하게 해 다오."


다른 초록빛 인간도 그렇게 청했다. 초록빛 인간들은 그녀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


지훈은 말하며 수연을 보았다. 그는 입을 뻐끔거리며 소리내지 않고 세 마디 말을 했다.


고맙다.


"모루 씨, 모루 씨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은 행복할 거예요. 특히 모루 씨 어머니가요. 저도 동생이 살아 있단 것만으로도 기쁜 걸요."


남진의 말에 모루는 수연을 다시 끌어안았다. 수연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괜찮아.


모루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밝은 초록 빛깔이 회오리치며 그녀에게로 스며들었다. 수연은 처음으로 모루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병마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마른 몸. 그러나 두 눈만큼은 또렷하고 맑았다. 모루가 갑자기 키득거렸다.


"옷이 구멍투성이야. 이제 그럴 이유도 없는데."


수연도 따라서 웃었다. 별 일이 아닌데도 그 순간엔 유난히 우습게 느껴졌다. 한참 정신없이 웃던 모루가 수연을 보며 물었다.


"나 이상하지?"


수연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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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3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4 2 8쪽
» 살아줘 19.07.04 72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7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2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8 2 9쪽
67 내막 19.06.28 79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71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9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5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6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3 2 9쪽
59 민우 19.06.18 67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5 3 8쪽
57 준비 19.06.14 88 3 8쪽
56 합작 19.06.13 84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9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5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6 3 8쪽
50 녹음 19.06.05 65 3 8쪽
49 완성 19.06.04 65 3 8쪽
48 영웅 19.06.03 71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8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3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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