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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퍼의 서재입니다.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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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6,927
추천수 :
244
글자수 :
303,038

작성
19.06.14 07:30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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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8쪽

준비

DUMMY

준연은 백지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굣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그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가입만 하면 그를 점차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으로부터 해방해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그들은 이미 그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백지는 못 믿겠으면 한 달 정도만 가입했다가 나가도 된다고 설득했다.


준연은 그렇게 백지단에 들어갔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곤 그저 무리 지어 어울려 다니다가 이따금 ‘건’을 해결하는 게 다였다. 그들은 약속대로 준연을 강제로 그들의 일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끼워달라고 먼저 말한 건 준연이었다.


“처음엔 어려운 일은 전혀 시키지 않았어. 가벼운 심부름? 애들한테 편의점에서 먹을 걸 좀 사서 갖다 달라거나. 돈도 충분히 줬고.”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준연에게 좀 더 어려운 일도 시켰다. 특정 집에 초인종을 누르거나 해서 성가시게 한 다음 도망치는 것이다. 이 작업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진행했다. 이들은 사전에 로드맵을 보며 지리를 완전히 파악한 다음 각자 지정해둔 루트로 빠져나갔다. 현금을 내고 버스를 타 적당한 동네에서 내린 뒤 겉옷과 모자는 의류 수거함에 넣고 걸어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아와 보니 백지단원이 한 명 늘어 있었다. 집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도망쳐온 소녀였다. 준연은 이때까지만 해도 백지단이 기껏해야 학대당하는 아이들끼리 연대를 이루는 단체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이들의 대화 내용에는 ‘버리다’, ‘처리하다’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했으며 그 같은 말을 내뱉은 뒤엔 늘 ‘이건 옳은 일이야’라는 말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체’, ‘살인’ 같은 직접적인 말은 쓰지 않았다.


“너 같은 신입들은 알지 못하게 하면서도 살인은 계속해 왔다는 말이네.”


우빈이 말하자 준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글쎄, 실은 조금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피 묻은 옷을 발견한 적도 있고. 그치만 함께 몇 달, 몇 년을 지내다 보니까 친해져서 안 좋은 생각은 피하게 되더라고.”


마침내 그들이 본색을 드러낸 건 준연이 백지단에 들어온 지 3년이 지나서였다. 준연은 이제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백지단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가 백지단에 완전히 의지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말했다. 준연의 어머니와 그 애인을 해치우자고.


“그래서, 성공했어?”


소예가 물었다.


“임준연은 살인은 한 적 없어.”


수연이 한마디 거들자 아이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그들이 수연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묻기 전에 준연이 먼저 설명했다.


“총이···빗나갔어, 그리고 난 도망쳤지. 찜질방에서 하루 자고 일어나니까 눈앞에 다른 백지단원들이 있었어. 나랑 특히 친했던 형이랑 누나였어.”


형과 누나, 그들의 이름은 각각 이지훈과 허지아였다. 둘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다. 그들은 준연에게 이 작업을 하기 싫었냐고 물었다. 준연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지아는 사실 자신도 살인이 내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백지단에서 활동하면서 그녀와 관련 없는 사람을 찌른 적도 있었다. 그녀는 죄책감에 짓눌린 채 울었다. 지훈은 그런 그녀를 보고 준연도 보았다. 그는 준연에게 지아와 셋이서 백지단을 나가자고 했다. 준연은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백지단원들은 그들만 빠져나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준연은 잘 몰랐다. 지아는 죽고, 지훈은 모습을 감추었으며, 백지는 자수했다. 자수하기 직전 그는 준연에게 찾아와 말했다. 세상이 뒤집힐 일이 일어날 테니 기대하고 있으라고.


“그런 개인적인 일로 이 꼴을 만들었다는 거야?”


장미가 화를 내자 준연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백지 형에겐 백지단이 전부였어. 그리고 어른들을 죽이는 일···아무리 반복해도 여전히 뉴스에는 가정 폭력으로 비참하게 죽은 애들 얘기가 나오지. 난 형이랑 백지단이 한 일을 전부 옹호하는 건 아냐. 단지 난···”


수연은 정말로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의 얼굴은 그녀가 본 어느 때보다도 창백했다. 그러나 아직이었다.


“난 형의 마지막 계획만큼은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하지만 나 혼자 힘으론 막을 수 없으니까 여기에 온 거야. 내···내가 너희를···도와줘도···될까.”


준연은 말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품에서 갈색 병을 꺼내놓았다. 영어로 백신이라 쓰인 그 병. 장미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수연을 포함한 아이들 모두 긴장했다. 준연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그를 향해 다가오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한 손을 뻗어 준연의 굳어 있는 어깨를 툭 쳤다.


“괜찮냐, 너?”


순간 준연은 몸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이번에는 수연이 그의 한쪽 팔을 잡았다. 그는 넘어질 뻔하면서도 약이 든 병만큼은 꼭 잡았다.


수연을 제외한 세마디 회원들은 잠깐 그들끼리 준연을 신뢰해도 될지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그를 믿어보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백지단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이후 나무뿌리 왕국으로 이동해 정과도 처음 만났다. 그는 전화기에서도 아무 소식이 없어 지루해하던 차였다. 드디어 한자리에 모두 모인 그들은 어떻게 거대한 나무로 갈지에 대한 계획을 짰다. 모루가 사라진 이상 이들이 차를 타고 거대한 나무까지 가는 데엔 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준연은 아직 백지단에 남아있는 척하며 그들이 어른들을 제거하러 가는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야 한다. 그 날짜보다 반드시 앞서서 거대한 나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다른 아이들은 경비대원 출신인 민우로부터 무기를 받아(그는 무기고에서 무기 몇 개를 빼돌리기로 했다. 모루가 있으므로 무기고 침입은 껌이었다.)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훈련한다. 장미는 식량을 담당한다. 수연은 이제야 일이 제대로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단의 계획을 저지하고 어른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날이 머지않았다. 이들의 계획은 완벽했다. 단 한 가지, 백지가 계획을 실행할 날짜를 예고하지 않았다는 점만 빼고는. 그는 최측근에게조차 그들이 언제 거대한 나무로 진군할지 알려주지 않고 다만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준비해두라고 일렀다. 그는 준연이 수연에게 협조하기로 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식당에서 나오는 준연과 마주쳤다. 백지는 웃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요즘 얼굴을 못 보는 것 같냐.”


준연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형도 바쁘잖아. 우리 계획이 언제인지도 말 안 해주고.”


“아, 그거 말인데. 이틀 뒤야.”


준연은 그의 귀를 의심했다.


“진짜?”


“오늘 밤 연설에서 얘기할 거야. 만약 식물인간이 된 어른들을 발견하면, 첫 발을 쏘는 영광은 너에게 돌릴게. 전에 못 넘었던 벽을 넘을 기회잖아?”


백지단에 있는 모든 포와 총과 칼은 말끔히 손질되었다. 이제 쓰일 일만 남겨 두고 있었다. 준연은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어머니를 겨누고 있던 때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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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3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4 2 8쪽
71 살아줘 19.07.04 71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7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2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8 2 9쪽
67 내막 19.06.28 79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71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8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5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6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3 2 9쪽
59 민우 19.06.18 67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5 3 8쪽
» 준비 19.06.14 88 3 8쪽
56 합작 19.06.13 84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9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5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6 3 8쪽
50 녹음 19.06.05 65 3 8쪽
49 완성 19.06.04 64 3 8쪽
48 영웅 19.06.03 71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8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3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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