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렌디퍼의 서재입니다.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6,928
추천수 :
244
글자수 :
303,038

작성
19.06.26 07:30
조회
68
추천
2
글자
10쪽

행운은 적에게

DUMMY

세마디가 사로잡은 백지단원은 위기 시 피를 공급하는 장치를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예비용이었다. 식물 능력이 있는 세마디 회원들은 이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회용 주사기를 사용했다.


타인의 혈액을 식물 능력으로 몸에 넣으려 할 경우, 식물 체액이 먼저 혈액을 삼켜 버린다. 따라서 식물 체액을 억제하기 위해 피를 넣을 땐 주사나 튜브를 통해서 공급하는데 공급할 혈액을 보관하는 게 문제였다. 이에 대한 식물 능력자들의 해결책은 혈액을 식물 능력으로 만든 주머니 안에 넣는 것이다. 주머니 안에서 ‘피가 돌기를’ 소망하면 그 안에서 피는 응고되지 않고 흐르는 채로 보관된다.


수연에겐 현재 혈액 주머니가 두 개 남아 있었다. 원래 청소년 대학에서 가져온 혈액은 더 많았지만, 나무뿌리 왕국에 있을 때도 피를 공급받아야 했기 때문에 점차 줄어들어 두 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나무에 들어가기 위해 지하에 있을 무렵 한 번 피를 새로 넣은 덕에 그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녀와 성민은 백지단원에게서 뺏은 장치를 역시 그에게서 뺏은 알코올로 소독하고 자신들의 몸에 연결했다. 이제 그들은 중간에 따로 휴식을 취할 필요 없이 식물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읍!”


백지단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를 묶어둘 도구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장미가 엎드린 단원 위에 올라탄 채였다. 그가 식물 능력을 맹신하지 않았다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기양양하게 세마디 회원들에게 손 키스를 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놈은 어쩌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장미가 영화에서 본 조직원 흉내를 내며 말했다. 우빈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진 않아. 우리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을 테고, 우리가 한 거라곤 얠 잡아서 장치를 뺏은 게 다잖아.”


“좀 맞장구쳐주면 안 되냐.”


“장미 오빠 말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야. 우리가 나무로 드나드는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수연이 말했다.


“그럼, 일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있어 줘야겠군.”



“그런데 우리 중 한 명이 없는 것 같지 않아?”


소예의 말에 그들은 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연은 급히 그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추리했다.


초록빛 사람의 도움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나가봤자 연결망에 먹힐 테니 밖에 나가진 않았겠지. 하지만 초록빛 사람의 도움 없이 벽을 못 여니까 혼자 다른 방에 갔을 리도 없어. 그렇다면 초록빛 사람 중 누군가가 정을 데리고 갔단 얘기잖아. 민우는 계속 여기 있었고 남우 누나분도 마찬가지야.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엔 한 명밖에 없는데.


“혹시 지훈 씨, 여기 왔다 갔었어?”


“왔다 갔었다고? 언제?”


“왔었어요.”


초록빛 여자가 말했다.


“말을 해야 했군요. 무슨 얘기를 한 지는 모르지만, 정을 데리고 저쪽 방으로 들어갔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쿵.


그들이 막 흥분하려던 차에 거대한 나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큰 흔들림 이후엔 작은 진동이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그 진동은 마치 심장의 울림처럼 느껴졌다.


“1단계에 진입했군. 모루의 힘이 효과가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각 지역에 있는 거대한 나무들은 연결망을 거두기 시작할 거예요. 유지할 힘이 부족해지니까요. 우리 연구에선 3단계까지 나눠 놓았는데, 실제로 어떨진 모르겠군요.”


“대체 그 연구라는 게 정체가 뭔데요?”


수연이 묻자 초록빛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목에 패인 손가락 자국이 점점 짙어졌다. 눈알은 튀어나오기 직전이었고 손발이 앙상해졌다. 지켜보던 회원들이 그때 우빈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얘기하기 싫으시면 다른 단계 얘기해 주세요. 2단계랑 3단계요.”


여자의 얼굴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2단계에 돌입하면 나무 안에서도 식물 능력을 쓸 수 있게 돼요. 대신 체관들을 점차 닫기 시작하죠. 어떻게든 혈관은 유지해야 하니까요. 최후에는 혈관을 제외하고는 심장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관만 남을 테고요. 3단계가 되면 어떻게든 피를 뽑아두려 하겠지만 결국 식물은 식물로, 피는 뽑아냈던 사람에게로 돌아갈 겁니다. 여기까지 가면 성공이에요.”


“그때까지 거대한 나무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문을···”


“모두 피해!”


초록색 여자와 민우가 각각 다른 방으로 향하는 벽을 열고 각자 가까운 위치에 있는 회원들을 안으로 벽 너머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수연은 방으로 넘어가 벽이 닫히기 직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았다.


거대한 나무의 벽이 열렸다. 초록빛 인간이 연 것이었다. 수연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수연 본인은 몰랐지만 사실 그녀는 그 초록빛 인간과 만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를 본 적은 있지만, 면대면으로 만난 적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청소년 대학에 갔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갔지만 정말 죽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사실 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식물 괴물들이 불에 탄 인간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란을 보인다는 것은 대부분의 생존자는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백지조차도 모루를 속여 데려올 계획을 세울 때 그녀가 ‘몸이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에 잘 탈 것’이라 생각했을 뿐 이 특성을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화상을 입은 인간을 ‘죽은 것’으로 분류한다. 지능이 있는 거대한 나무에 배달되고 나면 나무는 그 인간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미성년자들을 구체 내에 보관해 두는 저장소로 보낸다.


옻나무 능력자였던 이 17세 소년은 오기헌이란 인물로 청소년 대학을 어지럽히고 오라는 백지단의 임무를 받고 패기 넘치게 대학으로 향했다. 화상을 입고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순간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식물 연결망이 그를 거대한 나무 내부의 저장소로 보낸 것이다. 그는 화상을 치료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저장소에선 갇힌 미성년자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양분을 보내주긴 했지만, 상처를 치료해주지는 않았다.


기헌은 쇼크사하기까지 몇 달 동안 양분을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는 백지단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간 충성해온 세월이 있기에 그의 초록빛 인간은 백지단을 위해 봉사했다. 백지단원들은, 심지어 송백지까지도 이 예기치 못한 행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이어 기헌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와 그를 진즉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한 사과의 말을 전했으나 그의 진짜 정신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녀석들은 두 갈래로 흩어졌군. 모루는 없었어. 이 벽을 초록빛인 인간들이 열던데. 오기헌, 너도 벽에 손을 대 봐.”


기헌은 입구 맞은편 벽에 손을 댔다. 핏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백지는 황급히 벽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세마디 회원들이 피가 흐르지 않는 방으로 도망했던 것을 기억하고 수연이 향한 방향 벽을 짚었다.


“이쪽 벽에도 똑같이 해 봐.”


이번엔 피가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백지의 머릿속에 복잡한 여러 경우의 수들이 떠올랐지만, 그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나무 안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식물 괴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피를 순환시키는 가장 중요한 장기는 무엇인가, 답은 하나였다.


“우릴 이 나무의 심장으로 안내해 줘.”


백지는 기헌이 이 정보를 과연 알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기헌은 뒤돌아서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초록빛 여자가 장미를 제외한 세마디 회원들을 올려보냈던 바로 그 칸에 도달해 위로 손가락을 뻗었다.


“위로 올라가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는 그 자신이 기록용으로 들고 다니는 미니 태블릿을 기헌에게 넘겨주고 심장으로 가는 길을 그려 보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는 태블릿을 받아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림은 못 그리겠나 보군. 하지만 저 위로 올라가는 건 맞다고?"


기헌은 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정말 열심이었다. 시청에서 훈련받을 때보다 더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백지는 고민 끝에 그를 믿기로 했다. 다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팀을 나눴다. 그를 따라 심장에 갈 팀은 1팀 하나였다. 2, 3팀은 거대한 나무 내부에서 세마디 회원들을 감시하고 4, 5팀은 나무 바깥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준연이 속한 팀은 5팀이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백지는 그가 보는 앞에서 모든 단원이 제자리에 위치한 것을 보고, 4, 5팀이 나무 밖으로 나간 뒤 바깥으로 통하는 통로를 닫고 나서야 1팀과 함께 심장으로 향했다. 4팀과 5팀의 팀원 12명은 거대한 나무 주위를 시계 모양으로 둘러쌌다. 준연은 자신의 꼴을 보자 한숨만 나왔다. 여기까지 오기도 얼마나 어려웠던가!


그는 처음에는 식물 능력을 숨기고 있을 작정이었다. 백지가 그에게 맡긴 것은 얌전히 장갑차 안에 들어앉아 포를 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차량 내에 남아 있다가 몰래 세마디에게 합류하는 게 준연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선발대의 연락을 받은 백지가 식물 능력자만 추려서 급히 떠나겠다고 했을 때 준연은 다급해졌다. 그는 백지의 앞을 막아서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숨겨서 미안해, 실은 지훈 형이..."


지훈이란 단어를 듣자 백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알았어. 마지막 팀에 넣어주지."


그러나 그 마지막 팀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무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보초나 서야 했다. 준연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다른 단원들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맡은 일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경계를 덜 하고 있었다.


분명 이 상황을 이용할 방법이 있을 거야.


준연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3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4 2 8쪽
71 살아줘 19.07.04 71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7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2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8 2 9쪽
67 내막 19.06.28 79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71 2 8쪽
» 행운은 적에게 19.06.26 69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5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6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3 2 9쪽
59 민우 19.06.18 67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5 3 8쪽
57 준비 19.06.14 88 3 8쪽
56 합작 19.06.13 84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9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5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6 3 8쪽
50 녹음 19.06.05 65 3 8쪽
49 완성 19.06.04 64 3 8쪽
48 영웅 19.06.03 71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8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3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1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