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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기 님의 서재입니다.

객점에 헌터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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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기
작품등록일 :
2024.09.03 22:2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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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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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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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강남객점 007

DUMMY

지욱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방주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객주의 이야기를 끊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강남 객점에서 객주의 위치였다.


그런 방주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지욱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이후였다.


"허어,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그런..."

"사지 혈맥에 대침을 박아버릴 놈 같으니라고!"

"그런 호로 자식놈은 젓갈을 담가야 하는 건데."


공방 박삼동, 주방 허규태, 의방 주인영, 상방 도진상 그리고 본방의 장우까지 다섯 명은 지욱의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욱의 품에 안겨있는 서우의 사정을 듣자마자 한마디씩 분을 토해냈다.


그때 내내 잠자코 있던 장우가 살짝 손을 들고 주변 이목을 집중시킨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객주님께서 아이의 이야기보다 먼저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듯 합니다."


귀신같은 놈.

지욱은 장우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객점을 팔아버릴 생각입니다."


흐음...

장우를 제외한 네 방주들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은 연 것은 방주들 중 가장 연장자인 상방의 도진상이었다.


"객주,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다른 방주들의 표정을 보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진상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욱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주님들에게 이 객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지욱의 차분한 말에 방주들의 표정이 회한에 잠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들과는 결이 다르다 생각한 객주의 입에서 나온 치하였으니 그 마음이 더욱 깊게 다가온 것이었다.


"무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네. 선의였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무한의 선의. 하지만."


지욱이 잠시 말을 끊고 회의실문을 바라보았다.

사실 회의실이라고 해봐야 작은 문간방이었다.

그 작은 방에 여섯 명이 무릎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지욱이 문을 바라보자 문가에 앉아있던 장우가 그 눈빛을 읽고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문 밖에는 문에 바짝 붙어 귀를 대고 있던 다섯 명의 부방주들이 뻘쭘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허억!"

"아...엿들으려는 게 아니라..."

"죄송합니닷!"

"에이, 쒸! 밀지 말라니까."


그렇게 다섯 부방주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 지욱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도 들어야 하니까 툇마루에 앉아서 들어."

"아...넵!"


다섯 명의 부방주가 쪼르륵 툇마루에 걸터앉아 귀를 쫑긋 세우자 지욱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제 아버지와 방주님들 그리고 이 객점에서 젊음을 바친 수많은 헌터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객주, 다시 말씀드리지만 선대 객주님과 우리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게이트 밖으로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자 세상은 헌터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 밖에 없다며...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정의롭지 않다.

많은 헌터들이 대가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이기심을 채웠다.

그때 헌터들의 구심점이 된 것이 강남객점이었다.


헌터들을 모았으며 가르쳤고 지원했다.

그렇게 모인 헌터들은 괴수들과 싸웠으며,

때로는 악독한 헌터를 처단했다.

그리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는 주방에서 막걸리를 나눠마셨다.

공방에서는 장비를 만들어 주었으며,

상방에서는 정보와 자금을 마련하여 지원하였고,

의방은 다친 헌터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렇게 강남객점과 헌터들의 희생으로 게이트가 안정화된 것이었다.


"네. 그렇죠. 여러분들은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는데 희생 근처에도 안 간 것들이 그 대가를 챙겼다는 것이 문제죠."

"하긴, 토사구팽. 삶은 개꼴이 되긴 했어. 쯧!"


허규태의 말에 모든 방주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도진상의 말대로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허규태와 같이 억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으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들의 희생이 잊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진짜 이들을 힘들게 한 것은 권력을 움켜쥔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객점 출신 헌터들을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자신들의 정당성이 흔들릴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참았다.

선대 객주의 뜻이 그랬으니까.

괴수와의 전쟁으로 사람들은 지쳐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헌터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아버지는 바라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 여기 앉아있는 방주들은 그런 객주의 뜻을 따랐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고, 대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객주의 뜻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에 참은 것이었다.

무려 십 년이나.


하지만 지욱은 달랐다.

아들의 입장에서 본 부친은 무능했다.

게이트에서 엄마를 잃었으며 아버지 자신은 회복 불가의 부상을 입고 힘겨운 노년을 보냈다.

그런 부친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 외치면 아버지는 늙은 노병마냥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한 팔로 이 넓은 객점을 빗자루질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결국 지욱은 십 년이라는 시간을 외국에서 떠돌며 보냈다.

그런 지욱이 돌아온 것은 일 년 전.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서였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저에 대해 알만큼 아실 테니, 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객주 싸가지 없는거야 익히...어허! 왜 꼬집나?"


순간 주방 허규태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깼지만, 곧 방은 다시 침착해졌다.


"방주님들, 뒤를 보세요."


방주들의 고개가 열린 문 밖을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초롱초롱한 눈의 부방주들이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부방주들에게 방주님들이 살아온 것과 같은 길을 걸으라 말할 수 있습니까?"

"흐음..."

"난 저놈들에게도 제 아버지나 방주님들처럼 살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허접한 용병들도 한달에 천만 원은 우습게 버는 세상입니다. 난 이 객점에 일하는 식구들이 모두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리고 그 풍족함 위에 자부심을 얹어줄 생각입니다."


지욱의 단호한 말에 방주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는 툇마루에 앉아 귀를 세우고 있는 부방주들의 시대가 될 것이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그게 장우를 제외한 네 방주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객주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허나 꼭 객점을 팔아야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오만...객점의 의미가 큽니다."

"물론 이곳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연연할수록 우리의 목줄을 쥐려는 상대도 이곳을 무기로 삼을 겁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에서는 강남객점이라는 이름을 버리겠다는 겁니다. 난 이름보다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지욱의 말은 허명이라는 뜻이었다.

이름에 얽매이지 마라...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모든 방주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지. 허명이지. 진짜를 잊고 있었군.”

“맞아. 사람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떠들어놓고 정작 나이가 드니 이름에 연연했어.”


방주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린 객주에게 크게 한 방을 맞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객점을 버려야 할 가능성이 크겠군요. 3국이 약속을 했다고는 하지만 호락호락 풀어주겠습니까? 그럴 위인들이 아닐텐데 말이오."

"아니겠죠. 저도 정부나 3국은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곽운규 국장은 마지막으로 한 번 믿어 보려합니다. 곽 국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저보다 방주들께서 더 잘 알지 않나요?"


지욱의 말에 모든 방주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곽국장은 젊은 시절을 이 객점에서 보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게이트 안정화에 헌신한 헌터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동시대를 보낸 방주들은 곽국장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지. 곽운규라면 믿을 수 있지."

"참 똘똘한 놈이었는데 말이야."


방주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곽운규를 떠올렸다.

하지만 정작 지욱의 생각은 달랐다.

곽운규는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앉은 자리는 믿을 수 없다.

결국, 선택의 상황이 오면 곽운규는 인간 곽운규가 아니라 제3국의 국장으로 결정을 할 것이 분명했다.


"객주, 그러면 남산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거기도 문화재 지정이 되었잖습니까?"

"그 미친녀어...후우, 그쪽은 그쪽이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같이 움직이면 좀 낫지 않을까요?"

"싫어."

"네?"


단호한 지욱의 대답에 장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성적인 장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으니까.


"싫다고.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알테니 지들도 알아서 하겠지. 신경 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문제에 관하여 제 의견에 모두 따르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지욱의 말이 떨어지자,


"객주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장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으며 나머지 방주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객주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다섯 방주의 대답이 이어지고,


"객주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툇마루에 앉아있던 다섯 부방주들도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대답을 마치자 장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객주님, 그러면 우리 객점에서 그 아이를 계속 맡아야 하는 겁니까?"

"미쳤냐? 1주 동안만 맡기로 했어. 1주일 안에 민창기를 잡겠다니까. 그때까지만 봐주면 돼."

"그럼 1주일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이 친척이 있나요?"

"몰라. 어쨌든 1주일이야. 보모를 구하든 곽국장이 알이서 하겠지. 근데 보모 구하려면 힘 좀 들꺼다."


장우는 지욱의 이야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방주들의 눈동자는 그렇지 못했다.

호기심...

그들의 눈은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객주. 보모를 구하기 힘들 정도라면 그 아이의 힘이 어느 정도라는 겁니까?"

"안아보세요."


먼저 나선 것은 주방 허규태였다.

주방은 말 그대로 불을 다루는 곳.

그렇기에 허규태도 지욱과 마찬가지로 불을 다룬다.

그런 허규태가 지욱의 품에서 서우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자 서우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히잉...으이잉..."


그리고 서우의 칭얼거림이 심해질수록 허규태의 얼굴색이 점점 붉어졌다.


"허어, 이거...참..."


이 방의 모든 사람들은 허규태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허규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상당했다.

그건 아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허규태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의방 주인영을 향했다.


"자네가 한 번 안아보게."


주인영은 치유 각성자였으며 그의 능력 중에는 신체를 뚫어보는 관조와 진정이 있었다.

진정은 강력하게 사용할 경우 상대를 무기력 상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었다.

물론 신체를 접촉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 전투에 적합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최상의 능력임이 분명했다.


그런 주인영이 서우를 안고는 손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보는 것만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빛이 서우를 감쌌다.

그리고 칭얼대던 서우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얼마 후...


"후우. 재우기는 힘들겠어. 아이가 너무 어려. 내가 힘을 더 쓰면 아이 몸에 무리가 갈 거야."

"그럼 아이의 힘은 대강 알았고. 부방주 정도면 아이를 돌보는 것이 가능하겠구만."

"그렇지. 부방주 아래 애들은 힘들테고."


방주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모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힘들겁니다."


내내 침묵하며 앉아있던 장우였다.

그런 장우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그는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객주님께서 안고 계실 때와 달리 방주님들이 안으면 아이가 계속 칭얼대며 힘들어 했습니다."

"그건...그렇군. 아이가 내내 힘들어하는 것은 좋지 않지."

"맞아. 그 생각을 못 했네."


어? 뭐냐?

이 분위기 뭐야?

지욱이 살벌한 눈으로 장우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이후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일단 객주께서 아이를 돌보고 우리가 틈틈이 아이를 보며 낯을 익히는 것으로. 낯이 익어 칭얼거림이 없어지면 그때 우리가 돌보는 것이 어떻소?"

"그거 좋네. 그렇게 합시다."

"오케이!"


이런, 씨바...

지욱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다섯 명의 방주들이 우르르 방을 나가버렸다.


포대기에 싸인 서우를 놔둔 채...

결국, 서우와 둘이 방에 남은 지욱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믿을 새끼 하나 없다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포대기 속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꺄하하...꺄아..."


하아...

결국, 지욱은 자신을 향해 작은 두 손을 내미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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