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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기 님의 서재입니다.

객점에 헌터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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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기
작품등록일 :
2024.09.03 22:25
최근연재일 :
2024.09.13 17:3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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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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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글자수 :
5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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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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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강남객점 002

DUMMY

지욱이 쓰러진 사내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때,

깨진 창문을 통해 호리호리한 노인이 훌쩍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노인의 뒤를 따라 조금 전 태웅만큼이나 큰 거구의 부방주가 끙끙거리며 버겁게 창문을 넘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지욱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그냥 문으로 나오라고. 이 바보야...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창문을 빠져나온 동구는 후다닥 달려 씩씩거리며 걸어가던 노인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방주님! 손님이잖아요. 손님요!"

"손님 같은 소리 하네. 어딜 손님 놈이 주방에 기어들어 와? 뭐? 식기가 낡아? 칼이 낡아? 낡은 칼로 백만 조각을 내 줄까? 이게 디질라고! 놔봐. 놔 보라고!"

"아이고! 방주님! 일단 칼은 놓고요. 제발요. 백만 너튜버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네?"


참...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호리호리한 노인의 허리를 끌어안은 동구의 우람한 팔뚝하며...

자신보다 두 배쯤 되는 동구를 질질 끌며 앞으로 걸어가는 방주의 모습하며...


"진짜 아름답다. 아름다워."

"어? 객주님! 방주님 좀 말려주세요! 저 사람 죽어요!"

"아냐. 놔둬 봐. 백만 조각이라잖아. 나도 궁금하다."

"방주님, 방주님! 저기 객주님 계시잖아요. 네? 네?"


씩씩거리며 자신의 부방주를 질질 끌고 앞으로 걸어가던 노인이 지욱을 발견하자 마지못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큼...객주 오셨소."

"왜요? 하던 거 계속하시지. 아주 객점을 말아 드시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데. 하세요. 손님도 패고, 주방도 부수고...하세요. 마음대로 하세요."

"객주,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이놈은 손님이 아니라..."

"그럼 뭔데? 돈 내고 밥 먹으면 손님이지. 어이, 방주님. 주방에만 처박혀 사느라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시나 본데, 요즘 백만 너튜버는 돈 주고 불러요. 지가 제발로 와서 찍고 광고해 준다는데 저걸 저렇게 패요?"

"그게...크음..."

"그런데 지금 객점 하루 손님이 몇 명인지나 알고 이런 짓 하시는 거죠?"

"그야..."

"모르겠지. 알 턱이 없지. 아주 고고하게 주방에서 도를 닦으시니까. 지금 객점 하루 평균 손님이 다섯입니다. 다섯! 방이 백 개가 있는데 하루 다섯 명이 온다고요!"

"허어...저런...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이런 짓을 하면서 어쩌다?"


주방의 방주 허규태는 겸연쩍은 얼굴로 무시무시한 지욱의 눈길을 피했다.

허규태의 나이 일흔, 지욱의 나이 서른이었지만

객주와 방주의 차이는 명확했다.

그것이 이곳 강남 객점이 백이십 년이나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고.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손님이라도 주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허규태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크음, 미안하게 됐소. 객주."

"하아, 됐다. 나도 모르겠다. 해요. 하세요. 하던 거 계에에속...하세요."


지욱은 이제 버릇이 되어버린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허규태의 허리를 잡고 있던 부방주가 후다닥 쓰러진 사내를 안아 들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 마십시오. 객주님! 제가 손님 의방에 잘 모셔드리고 깨어나시면 말씀도 잘 드리겠습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모든 것을 체념한 지욱은 다시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걸음을 걷던 그는 뒤를 돌아 동구를 불렀다.


"아니다. 같이 가자."

"의방에 볼 일 있으세요?"

"벽 무너졌다며."

"아, 네.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얼마를 걸어 도착한 곳은 푸른 기와가 올려진 한옥 건물이었다.

건물의 출입문 위에는 예스런 글자로 [의방] 두 글자가 적힌 현판이 붙어 있었다.

현판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왼쪽 벽이 와르르...무너진 모습이 지욱의 눈에 들어왔다.


"창훈아. 환자다!"


동구의 부름에 나타난 것은 호리호리한 사내였다.

이곳 의방의 부방주로 창훈은 조금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창훈은 동구의 옆에 서 있는 지욱을 보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객주님, 오셨습니까?"

"나보다 이 환자 먼저 봐. 잘 달래야 하니까 좋은 거 팍팍 먹이고."


동구가 병상에 손님을 눕히자 창훈이 그를 잠시 살펴보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또야?"

"또라니?"

"주방장님이 팬거냐고."

"아, 응. 근데 어디 부러진 곳은 없자?"

"하여간 너나 태웅이나. 너네들은 어디가 부러져야 다친 거야? 너 전치 2주가 뭔지 모르지?"

"2주나 아플 일이 뭐가 있어?"

"됐다. 너랑 뭔 이야기를 하겠냐."


답답한 얼굴로 동구를 쳐다보던 창훈이 몸을 돌리자 지욱이 입을 열었다.


"벽 무너졌네?"

"그게...네. 약제실 쪽이..."

"도대체 뭔 짓을 하면 약제실이 무너지냐?"


그때였다.


"큼...객주 오셨소."


헛기침과 함께 등 뒤에서 나타난 노인은 이곳 의방의 방주 주인영 이었다.

지욱은 주인영을 보며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내 질문 들었죠?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의방에서 뭔 짓을 하면 벽이 무너집니까?"

"그...여러가지 약제 실험을 하다보니..."

"그러니까요. 공방도 아니고 의방에서 터질만한 실험을 할 일이 뭐냐니까요?"


지욱의 말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질책에 가까웠다.

하지만 주인영은 그것을 진짜 질문으로 들었다.


"그게 말이요. 객주, 각성자들 힘의 근원이 몸 안에 있는 기력이잖소? 그리고 각성자들은 기력이 클수록 더욱 강한 힘을 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몸의 기력을 강제로 증폭시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소?"

"죽겠죠."

"몸의 기력을 증폭...응?"

"죽는다고요. 벽이 무너질 정도의 폭발을 몸 안에서 일으키면 사람이 죽지 않겠어요?"

"아니 그건 아직 실험의 단계라서 그런 거고..."

"그리고 그런 뻘 짓을 할 거면 저 넓은 산에서 하던가, 왜 약제실에서 그 짓을 하다가 벽을 무너뜨리는 건데요? 예?"

"그야 산에서 하면 더우니까...크음. 알겠소. 내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지요."


변명을 하려던 주인영은 이글거리는 지욱의 눈을 보자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그리고 지욱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우리 객점이 문화재 지정이 되어 있어서 함부로 못 고치는 것은 방주도 잘 알테고. 올 겨울 춥답니다. 두꺼운 겨울옷 미리 준비하세요. 벽 무너진 채로 겨울나야 할 테니까."

"저...객주! 객주!"


그렇게 의방을 나온 지욱은 한동안 터덜터덜 걸었다.

그러다가 공방쪽을 슬쩍 쳐다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가봐야 공방주가 할 말은 뻔했으니까.

돈, 돈, 돈...


물론 이해는 했다.

공방은 객점의 수리와 보수를 담당했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할 일은 많았지만 요즘 공방의 주 업무는 수리였다.

객점이 워낙 오래된 탓에 수리해야 할 곳이 천지였으니까.


그런데 그 수리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문화재 관리 규정에 맞춰 수리를 해야하다 보니 일반적인 수리와는 차원이 다른 금액이 들어간다.

자재를 수급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그러니 공방주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면 돈돈 거릴 수 밖에.


"젠장, 어디서 돈 좀 안떨어지나..."


후우, 또 한숨을 쉰 지욱은 아주 자연스럽게 상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기운이 되는 곳은 상방밖에 없었으니까.

돈을 지출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공방과 달리 상방은 돈을 버는 곳이었으니까.


"상방주."


상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지욱은 방주를 찾았다.

하지만 상방 내실에서 나타난 것은 방주가 아니라 부방주였다.


"어? 객주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방주님은?"

"방주님 게이트 들어가셨어요."

"게이트? 왜? 무릎도 안 좋은 양반이? 갈 일이 있으면 팔팔한 네가 가야지!"

"저도 그러려고 했죠. 근데 방주님께서 꼭 본인이 가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시는데 어떻게 해요."

"무슨 일인데? 게이트에서 사 올 물건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


부방주의 얼굴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욱은 그 표정에서 싸한 기분을 느꼈다.


"말해라."

"그...제가 말씀드렸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암튼...오늘 용산 게이트에 샤렌이 온다고 해서요."

"샤렌? 그게 뭔데?"

"유명 너튜버요."

"뭐?"

"방주님이 엄청 왕팬이거든요. 엄청 예뻐요. 짠돌이 방주님께서 후원도 엄청 하신다니까요."


지랄도 풍년이다.

그럼 그렇지. 내 복에 무슨...

상방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채워줄 거란 헛된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 지욱은 상방에서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뒤에서 부방주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지욱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건물이며 객점의 컨트롤 타워인 본방으로 향하던 지욱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씨바. 도저히 못 참겠네. 내가 오늘은 결판을 내고 만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얼굴이 순간 와락 구겨졌다.

그리고 건물까지 남은 십여 미터를 순식간에 날 듯 뛰어가서는 창문을 열고 고함을 질렀다.


"차 키! 거기 내 차 키 던져! 그래. 그거!"


지욱의 고함에 상방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지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직원은 지욱의 책상에서 차 키를 들고는 휙 던졌다.


"오케이! 땡큐!"


키를 받아든 지욱은 정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 상방에서 출입문까지는 걸어서 대략 오 분 거리.

하지만 냅다 달린 지욱은 채 숨 한두 번 내쉬기도 전에 출입문에 도착했다.


"어? 객주님! 어디 가십..."


그리고 정문을 지키고 있던 직원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통과해 냅다 주차장까지 내달렸다.


- 부르릉...부르릉...


잠시 후, 지욱의 애마인 스포츠카가 빠른 속도로 주차장을 벗어난 것은 상방 앞에서 달리기 시작한 지 채 일 분이 지나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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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차는 꽤나 눈길을 끄는 차였다.

붉은색 스포츠카라서가 아니라,

유명한 외제차라서가 아니라,

상당히 오래된 차였기 때문이었다.

빨간 스포츠카의 나이는 지욱과 같은 서른 살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빨간 스포츠카가 도착한 곳은 서울 시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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