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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연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만능 채집꾼으로 각성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현연
작품등록일 :
2024.05.20 17:39
최근연재일 :
2024.06.25 18:0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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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33
추천수 :
5,376
글자수 :
255,674

작성
24.05.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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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글자
14쪽

뜬금없이 각성?

DUMMY


일반인이 헌터로 각성하는 것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누군가는 밥을 먹다가 각성했고,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근심을 해소하다가 각성했다.


그래도 가장 많은 범주에 드는 것이라면 바로 던전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각성한 헌터의 절반가량이 이에 해당했으니 자신에게 각성 인자가 있는지 확인해보려면 제일 먼저 던전에 들어가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런 점에서 이채현은 다소 긴장했다.


설마 내가 던전에 들어갔다가 각성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위험하고, 귀찮고, 몸 써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려야 하는 헌터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블루칼라가 아닌 화이트칼라가 좋은데?

고되게 힘쓰는 노동자보다야 인텔리전트한 지식 전문직이 최고지!


그래서 설사 각성을 하게 돼도 그 사실을 그냥 숨기기로 했다.

말만 안 하면 헌터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


이채현은 비장한 각오와 함께 두 눈을 번쩍 떴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 각성을 안 하면 더 좋고.’


슈퍼맨처럼 정체를 숨기고 다녀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저희 삼족오 길드가 차근차근 공략해 나갈 테니 천천히 와주시기 바랍니다.”

“말 안 해도 우리 목숨이 소중한 줄 다 알고 있습니다. 부디 안전하게만 공략해주세요.”


던전은 일방통행이었다.

이번 던전의 환경은 평원이었으나, 일정 거리 이상 가면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던전 공략대는 앞으로 쭉 밀고 나가며 몬스터들을 말끔히 쓸어버리고, 채집꾼들은 그 뒤를 이어 약초나 광석, 몬스터 사체 등을 채집했다.


“삼족오 길드! 공략 개시!”


삼족오의 헌터들이 총 네 개 무리로 나뉘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며 나아갔다.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앞으로 계속 진행하면 한 마리의 몬스터도 남김없이 정리하게 될 거였다.


“자, 우리도 출발하자고.”

“내가 이 친구를 맡을 테니까 내 루트 적당히 비워놓고 가.”

“그래, 거기 신참 것까지 2인분은 남길 테니까 꼼꼼하게 잘 알려줘.”


채집꾼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으며 땅바닥을 조심스레 살펴 가기 시작했다.

숲 지형이 건질 게 많은데, 잡초만 무성한 평야 지역은 이렇다 할 채집 거리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른 지형보다 움직이기가 쉽고, 환경도 쾌적한 편이라 초보 채집꾼이 적응하기에는 괜찮은 장소였다.


“자, 따라와 보시죠.”


40대 중반 줄의 채집꾼이 이채현을 데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이고, 여기 괜찮은 게 하나 있었군? 이것들 오늘따라 눈이 삐었나? 이걸 보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채집꾼이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앞서간 동료가 손가락으로 살짝 신호를 보냈던 걸 이채현도 눈치를 챘지만, 모르는 척했다.

누나가 신경 써서 마련한 자리이니만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다들 좋았다.


“여기 이파리가 손가락처럼 세 개로 길쭉하게 갈라진 게 특징이죠. 트리포일이라고 하는데, 이 약초의 뿌리가 마비 독을 해독하는 포션에 사용된다더군요.”


그가 호미를 꺼내 들고 트리포일의 주변을 살살 긁었다.


“그런데 이게 뿌리가 참 약해요. 뿌리 주위를 크게 파서 물에 살살 푸는 게 제일 좋지만, 알다시피 던전에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건 오직 던전에서 얻었던 것밖에 없어서 말이에요. 던전에서 나갈 때도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딱 자기 몸무게만큼만 소지할 수 있으니 잔뿌리가 조금 잘리더라도 이래야 시간을 절약하고, 빨리 다른 것들을 채집할 수 있죠.”


채집꾼이 트리포일의 뿌리 부분을 크게 퍼낸 다음 모종삽으로 바꿔 들어 뿌리에 엉긴 흙들을 탁탁 치면서 털어냈다.

그 과정에 실처럼 자잘한 뿌리들이 같이 딸려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원뿌리는 유지되었다.


“흐음······ 이 정도면 중품은 되려나? 어차피 트리포일은 상품과 중품의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 이 정도만 하고 다량을 모으는 게 더 이득이지요. 이런 속도로 작업해도 하루에 10kg을 채울까 말까랍니다.”


채집꾼은 그 뒤로 몇 개의 다른 약초를 찾아 직접 시범을 보여주면서 캐는 방법을 알려줬다.


약초를 찾기부터 다듬는 과정까지 몇 시간이 흘렀다.

그가 허리를 뒤로 제치며 말했다.


“에구구, 일단 이 정도면 평원 지역에서 얻을만한 약초를 대강 보여준 것 같네요. 같은 약초가 나오면 한 번 지켜봐 주려고 했는데 시작 지점이라 영 안 보이는군요. 그래도 이 정도면 얼추 알겠나요?”


앞서간 채집꾼들은 얼마나 많이 갔는지 한 시간 전부터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신경을 써서 알려준 것이니 이채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네, 충분합니다. 저는 힘들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으니 어서 동료분들 따라잡으셔야죠.”

“하하, 어차피 초반에는 대단한 게 나오는 일이 없어요. 첫째 날은 쉬엄쉬엄하는 거지요. 그럼 먼저 가볼 테니 혹시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잘 표시해 두고 찾아와요.”

“네, 감사합니다. 꼭 심보시길 바랄게요.”

“하하하, 그쪽도 초심자의 운이 따르길 바라요.”


그가 길을 떠나고 나자 이채현은 배낭을 머리에 두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힘들었다아아!


누나가 애써 소개해준 자리라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끌려다녔다.


그래도 뭐······ 재미는 있었네.

풀을 뿌리째 쑥 뽑아 올려서 흙을 털며 작업하는 과정이 무언가 고고학자처럼 발굴해가는 느낌이랄까?

약초마다 어떤 건 탁탁 치고, 어떤 건 반죽하듯이 손으로 주무르고, 어떤 건 한 번에 팍! 쳐내면 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아니, 이게 아니지!


미래의 웹소설 대작가가 될 나같은 인물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집에서 키보드만 타닥타닥 두드리는 게 최고였다.

아기 손처럼 포동포동한 내 손가락에 저렇게 험상궂은 굳은살이 박이면 얼마나 보기 흉하겠는가!


그래, 차라리 채집꾼을 주제로 한 웹소설을 한 번 써볼까?

맨날 식상한 먼치킨 헌터물만 나오니까 의외로 먹힐지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금세 아이디어가 떨어졌다.

아는 게 있어야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게 아니겠는가?


“아, 배낭에 그게 있었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대여받은 배낭 안을 열어보니 3일 치 식량인 부스터 드링크 8병과 각종 채집 도구 그리고 초심자 채집 가이드 한 권이 들어 있었다.


“그래, 소설을 쓰려면 모름지기 자료 조사가 필수지!”


눈만 감으면 채집꾼이 약초를 작업하던 손동작이 아른아른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 왜 이렇게 머릿속에서 반복재생되는 걸까?

음······ 내 상상력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얘기겠지!


이채현은 가볍게 주의를 환기하며 꿋꿋하게 누운 자세를 유지한 채 책을 펼쳤다.

약초를 하나라도 직접 캐보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 같은 지식 노동자는 손에 흙을 묻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를 향해 창을 찔러댔다.


응, 나는 웹소설 대작가야. 흙장난 안 해.

그래도 자료 조사를 위해서······ 하나쯤은 제대로 캐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금세 사라졌다.

초심자 채집 가이드를 읽는데 정신이 팔린 것이었다.

원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즐겨 보는 편이었지만, 이건 조금 전의 채집꾼의 가르침이 같이 떠오르다 보니 내용이 머리에 쏙쏙 박혔다.


꼬르륵-


한동안 정신없이 독서를 하자 어느새 점심 시각이 되었다.

계속 책을 읽고 싶었지만, 오전에 고된 300km 행군을 해서 그런지 배가 매우 고팠다.

어차피 잠깐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책을 덮고 부스터 드링크 하나를 땄다.


꿀꺽꿀꺽-


“끄읍! 무슨 독약을 먹는 기분이네! 퉤! 퉤!”


마시고 나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해서 부스트 드링크라는 말이 있던데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던전 공략대는 어떻게 이런 맛없는 음료만 마시며 매번 던전을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채현은 어느 채집꾼의 말처럼 다소 왜소한 체형이었기에 반병만 마셔도 배가 충분히 찼다.

배고픔도 해결했겠다 이제 다시 바닥에 드러눕고 책을 읽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던전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


던전에서 보내는 이튿날 이른 아침시각.


“오늘은 할 것도 없겠다, 슬슬 주변이나 둘러볼까?”


책은 어제저녁에 다 읽은 참이었다.

내친김에 약초를 하나를 찾아서 채집해보려고 마력등까지 들고 주변을 훑어봤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깜깜하고, 보이는 것도 없어서 다음날을 기약했다.


이채현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스트 드링크로 허기를 채우고 바로 길을 나섰다.

원체 바깥 활동을 안 하던 몸이라서 그런지 몇 분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지쳐왔다.


“후우, 후우. 뭐 하나 찾으려면 한참 앞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이미 베테랑 채집꾼 다섯이 이 근방은 다 쓸어갔을 테니 뭐가 남아 있을까 싶었다.

평소 운동과 담을 쌓은 생활을 해왔기에 다 포기하고 다시 드러눕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상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풀떼기 하나라도 뽑아봐야 할 게 아니겠는가!

몸은 진즉에 포기를 종용했으나 머릿속에선 어제의 채집 작업과 책 속의 내용이 계속 반복되면서 빨리 약초를 캐고 싶다는 욕망이 조용히 들끓었다.


그렇게 3년 같은 30분이 흘렀을 때였다.


“어? 저거 트리포일인데?”


길쭉한 이파리가 세 갈래로 갈라진 풀.

저 풀의 뿌리를 온전하게 캐내는 것이 핵심 포인트였다.


“자 시작해 볼까?”


이채현은 자리를 잡고 심기일전하여 호미를 들고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극, 그극, 그극, 그극-


채집꾼이 시연했을 때보다 반 배 정도 더 넓게 땅을 팠다.

자신이 시작을 안 해서 그렇지, 뭐든 한 번 하면 제대로 끝장을 보는 타입이라서 이번 한 번에 영혼을 갈아 넣을 생각이었다.


“이제 파내면 되겠지?”


이채현은 호미로 땅을 팍팍 찍으면서 트리포일의 뿌리 부분을 커다랗게 파 올렸다.


쑤욱!


“오케이! 뿌리 하나 상하지 않고 잘 뽑혔네!”


채집꾼의 것보다 무려 두 배나 큰 흙덩이가 빠져나왔다.

작업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겠지만, 처음이니까 자신 맘대로 해도 그만이었다.


다음 작업은 잔뿌리를 최대한 살려서 흙을 모조리 털어내는 것이었다.

이채현은 시연에서 봤던 모종삽 대신 날이 뾰족한 곡괭이 호미를 꺼내 들었다.

책에서 본 내용으론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려면 이걸로 콕콕 찍으면서 조금씩 작업하면 좋다고 했다.


콕, 콕, 콕!

부스스스!


붙어 있던 흙덩이 한 덩이가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오, 이런 식인가 보네?”


대충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이채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마치 퍼즐 게임을 하듯이 뿌리를 최대한 상하지 않게 하며 흙을 털기 시작했다.


콕, 콕, 콕, 콕!

부스스!


콕, 코콕, 콕!

부스스스!


코코코, 코코, 콕!

부스스!


이거······ 은근히 집중이 잘 되고 재미도 있었다!

이채현은 0.1초마다 죽는 포인트가 나오는 리듬 게임을 하듯이 완전히 몰입해서 호미질을 이어 나갔다.


콕, 콕, 콕, 퍽!

부스스스슷!


“아, 이런!”


도중에 너무 욕심을 내다가 흙이 뭉텅이로 떨어지며 트리포일의 잔뿌리가 살짝 떨어져 나갔다.

상당히 아쉬운 마음이었으나 이미 쏟은 물이요, 떨어진 뿌리였다.


“안 되겠어,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


이채현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졌다.

능숙한 채집꾼은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중요시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콕, 콕!

부스!


콕, 콕, 콕!

부스스!


한 땀, 한 땀, 장인이 정성스럽게 호미질하듯이 매 순간을 집중해서 흙을 덜어냈다.

자신이 그렇게 무언가에 집중해본 일이 뭐가 있었을까?

거의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 호미질하다 보니 어느새 뿌리에 붙은 커다란 흙덩이들이 거의 떨어져 나갔다.


“휴, 여기까지 왔군!”


이제 남은 건 부드러운 손으로 문질러대면서 자잘한 흙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돌돌돌돌돌-

사라락, 사락.


실 같은 잔뿌리들이 최대한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손가락으로 비벼대며 흙을 떼어냈다.


꼬르륵!


배에서는 밥 시간을 알린 지 오래였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채현은 주린 배의 감각도 잊은 채 맨손에 흙이 묻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끝이 찾아왔다.

이제 물로 씻는 것 외에는 여기서 더 나아질 게 없었다.


“다 했다아아!”


이채현은 작업이 끝난 트리포일을 갓난아기처럼 소중히 끌어 앉으며 뒤로 발라당 누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하지?

채집하는 과정 하나하나부터 마지막에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재밌었다.


지저분하게 흙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힘들게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건만.

같은 자세로 계속 버틴 탓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음에도 체력만 받쳐줬다면 지금 당장 다른 트리포일을 채집하고픈 심정이었다.


천생 화이트칼라인 내가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긴, 내가 시작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뭐든지 잘한다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두어 번 정도 채집꾼 일 좀 더 해봐?


이채현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각성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대뜸 헌터로 각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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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금없이 각성? +10 24.05.20 9,758 196 14쪽
1 던전 채집꾼을 하라니! +8 24.05.20 11,290 1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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