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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연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만능 채집꾼으로 각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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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현연
작품등록일 :
2024.05.20 17:39
최근연재일 :
2024.06.25 18:0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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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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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5,674

작성
24.06.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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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혈랑초 분류

DUMMY


이채현의 뜬금없는 부탁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이런 신박한 소리를 지껄이지 않으면 오히려 진짜 제자놈인지 의심이 갈 정도랄까?


······이게 맞아?


“거긴 또 왜?”

“안 되다고 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역시 되나 보군요! 저는 스승님을 믿고 있었어요!”


허이고.

평소엔 손톱만큼도 눈치 없이 구는 녀석이 자기와 관련한 대화에서는 어쩌면 이렇게 귀신같이 잡아챌까?


대충 상황을 들어보니 채집꾼 자리 두 개를 밀어 넣지 못할 건 없어 보였다.

고작해야 1레벨 던전이니 적당한 포션 몇 개 던져주면 될 일이리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계속 내세우는 건 둘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채현은 나쁜 버릇만 들 테고, 자신 또한 예정에 없던 일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가만.

그러면 이걸 연금술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이채현의 표정을 보니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달이 나 있었다.


어디, 이놈 눈썰미가 어떤지 한 번 알아봐?


“내 일 하나를 완벽하게 처리해 준다면 생각해 보마.”

“일이요? 한번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도 아니고, 들어보고 결정한다고?


괘씸한 제자놈의 정신머리를 고쳐주기 위해 원래는 3일짜리를 주려다가 7일짜리 작업을 선물해주기로 했다.


“지난번 혈랑초 있지? 그거 상품과 최상품으로 분류해야 하거든? 저기 마대 하나 가져다 놓은 거 있는데 어디, 한 번 해볼텨?”


혈랑초는 물론 적야초까지 눈으로 구분해내는 신기는 저번에 잘 구경했다.

하지만 그건 미세한 마력의 차이를 감지했기에 가능한 것.


혈랑초를 품질별로 분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감별기를 쓴다면 하품, 중품, 상품 구분은 쉬웠다.

하지만 상품과 최상품은 마력 파장이 거의 똑같아 이건 눈으로 꼼꼼히 확인해야만 분류해낼 수 있었다.


혈랑초의 끄트머리 각도가 11.9도인지, 12도인지.

색깔이 완전 빨간지, 미세하게 짙은지.


눈으로 대충 봐서는 절대 구분할 수 없고, 한 3일은 들여다봐야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자신도 저 마대 하나를 해치우려면 작정하고 달라붙어도 3~4일은 걸렸다.

그나마 이채현이 유별난 놈이기는 하니 일주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어? 그거면 돼요?”


이채현이 40kg 마대를 쓱 훑어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허!

그거면 되냐고?

그래, 이 일을 그렇게 우습게 본다 이거지?


연금술사를 할 싹이 보이나, 안 보이나 테스트로 내주는 것 하나가 이 혈랑초를 상품, 최상품으로 구분하는 거였다.

아무리 봐도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데다, 별 의미도 없는 것으로 자길 괴롭힌다는 생각에 금세 포기하는 놈들이 많았다.


상품, 최상품의 차이로 마지막에 만들어지는 포션의 효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설명해 무엇하랴?

그런 녀석들은 알아서 떨어지니 자신도 편했다.


보통 신중하지 않은 놈들이 이 혈랑초 품질 구분 작업을 우습게 봤다.


그래, 그런 놈들이야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이라지만.

자신의 수제자인 이채현 이놈마저 이 작업을 이다지도 우습게 볼 줄이야!


“그래, 그거면 된다. 상품, 최상품을 구분한 건 이걸 보고 확인하고.”


권태율은 미리 몇 개 작업해놓은 걸 보여주었다.


아마 백날 들여다봐도 모를걸?


그러나 이어진 이채현의 행동은 이번에도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상품, 최상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뚫어지게 쳐다보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혈랑초가 담긴 마대로 찾아간 거였다.


······그래, 어디 네 멋대로 한번 해보든지!


두 혈랑초를 유심히 지켜보는 흉내라도 냈으면 하나라도 더 알려줬을 것을, 저놈은 자신의 소중한 지식을 배울 복이 이렇게도 없나?


마대를 살피려던 이채현이 돌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권태율을 찾았다.


“아, 스승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속으로 빈정거리던 권태율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두 품질의 차이를 좀 알고 싶어?”

“네? 아뇨, 그건 됐어요.”


되긴 뭐가 돼!

너 진짜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구분할 순 있어?


“그럼 뭐가 궁금한데!”

“권유리 씨요. 오늘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그게 궁금한 거였냐?


“몰라! 다 큰 애가 어딜 싸돌아다니든 내가 알아야겠어? 오히려 안 보이니까 속만 편하구만!”

“에이, 그래도 손녀가 같이 배우니까 좋으셨던 거 아니에요? 나중에 유리 씨가 스승님처럼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걔가?

너는 걔가 연금술사가 되고 싶어서 지금껏 나온 줄 알아?


정말이지 자신과 관련한 일이 아니면 눈치가 드럽게 없었다.


“······말을 말자. 아무튼, 저녁때 내려와 볼 테니 알아서 분류해 봐라.”


어디, 상품과 최상품을 얼마나 섞어 놓는지 두고 보겠다.


하나 틀릴 때마다 어떻게 면박을 줘야 이놈이 정신을 차릴까?


클클!


권태율이 사라지고 창고에 홀로 남은 이채현은 마대를 번쩍 들어 작업대 위에 올렸다.


“끙!”


한낱 풀이라도 이렇게 많이 모이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군!

그래 봤자 각성한 내 힘 앞에선 백지장에 불과하지만!


차르르르륵!


마대에 있는 혈랑초를 모조리 쏟아냈다.


음, 숫자가 제법 되는데?


혈랑초는 손 한 뼘 길이의 가느다란 풀잎이었다.

그런 것들이 40kg 마대에 한가득 들어있었으니 그 양이 오죽 많았을까.


“자, 시작해 볼까!”


이채현은 혈랑초를 양손으로 하나씩 집으며 바로바로 분류했다.


왼손으로 잡은 건 상품.

오른손으로 잡은 건 최상품.


권태율이 만약 이 꼴을 봤다면 제대로 작업하지 않을 거냐고, 지금 자기 앞에서 장난치는 거냐고 크게 호통쳤을 거였다.


그러나 이채현은 자신이 없었다.

품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자신이!


[초목혜안(草木慧眼)]

- 1레벨 : 반경 10미터 안의 마법 식물을 감지합니다.

- 2레벨 : 반경 20미터 안의 마력 식물을 감지하고, 식물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 3레벨 : 반경 30미터 안의 마력 식물을 감지하고, 식물의 품질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나비가 된 왕근욱의 도움으로 [품질 채집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레벨업 한 초목혜안은 또 하나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일단 감지 거리는 20미터에서 30미터로 10미터가 늘어났다.

화끈하게 2배씩 늘려주었으면 좀 좋았겠냐만은 그래도 거리가 계속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긴 했다.

예전에는 20미터 간격으로 살펴봐야 했다면, 이제는 30미터 간격으로, 반경이니까 더 정확하게는 60미터 간격으로 이동하면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50미터 달리기를 해도 한참을 뛰어야 할 거리를 그냥 눈으로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오오, 찬양하라.

이것이 바로 만능 채집꾼의 위엄!


여기에 더해 이제는 마법 식물의 품질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혈랑초(상품)], [혈랑초(최상품)], [혈랑초(상품)], [혈랑초(최상품)]······


이제는 마법 식물의 종류에 이어 품질까지 알 수 있네요?


그러니 혈랑초의 상품과 최상품을 얼마나 세심하게 비교해야 하는지는 이채현에게 알 바가 아니었다.


그냥 눈에 떡하니 보이는데!

그냥 집는 대로 쏙쏙 분류하면 되는데!


3살짜리 아기도 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스킬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라.

마법 식물이 한두 개 띄엄띄엄 있다면 모를까.

이렇게 마대 한가득 수천 개가 겹쳐 있다면 그에 따라 수천 개의 이름표가 튀어나와 얼마나 정신이 사나울지!


하지만 내가 누구?

바로 만능 채집꾼!


헌터들이 자신들의 스킬을 사용하면서 점점 발전시켜 나가듯이.

이채현 또한 스킬을 사용하면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바로 온오프 기능이 그것인데, 의식적으로 안 보겠다고 생각하면 마법 식물의 이름표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희미한 빛무리 정도만 나타나게 할 수도 있었고, 아예 빛무리 자체도 없앨 수 있었다.


후후후후후훗!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진정한 만능 채집꾼이지!


이채현은 거의 기계적으로 혈랑초의 상품과 최상품을 분류하며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딴생각했다.


엄마한테 오늘 저녁은 뭐 해달라고 할까?

고기 먹은 지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삼겹살?


그런데 권유리 씨는 왜 안 보이지?

설마 어디 아픈가?

안부 인사라도 남길까?


이채현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휴대폰을 조작했다.

그리고 다시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과자까지 나눠 먹었던 친한 사이라도 연락처를 모를 수 있지!

응, 그럴 수 있어!


다시 다른 생각을 이어가며 분류 작업에 열을 올릴 때였다.

휴대폰이 울려 화면을 확인하니 예상치 못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리스마 신종혁 형님.


그동안 그렇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도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얼마나 바쁜 일이 있기에 그러나 싶었는데, 이제야 그 일이 끝난 모양이었다.


이채현은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권태율은 이채현의 연락을 받고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니, 일을 맡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작업이 다 끝나?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채현이 그동안 허튼소리를 한적 또한 없었다.


반신반의하며 창고로 서둘러 찾아가 보니 그의 말대로 일단 상품과 최상품이 반듯하게 분류되어 있기는 했다.


“아, 스승님! 저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가긴 어딜 가! 일단 있어 봐!”

“중요한 약속인데······!”


이채현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확인차 물었다.


“무슨 약속인데?”

“갑자기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 그래서 5분도 있을 시간이 없어?”

“어······ 5분은 괜찮고요.”


이채현이 회사 직원은 아니니 그를 붙잡을 권한은 없었다.

자신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이놈이 언제 자기 말을 제대로 들었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권태율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끊었다.

그보단 지금 혈랑초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흐음······.”


왼손으로 상품으로 분류한 몇 개를 집어보니 확실히 같은 종류인 것 같았다.

다시 오른손으로 최상품 쪽 몇 개를 확인한 결과 이쪽도 같은 품질 같았다.


여기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제 상품과 최상품을 대놓고 같이 비교하는 것.

혈랑초는 이렇게 해야만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혈랑초를 꼼꼼히 비교한 결과.


“······허어!”


맞네?


상품이랑 최상품을 완벽하게······ 분류했다고?

자신도 3~4일 걸릴 각오로 살펴야 하는 걸 단 몇 시간 만에?


“너······ 대체 뭐야?”


귀신이야?


이채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승님, 5분 지났어요.”


······바랄 걸 바라자.


“잠시, 잠시만.”

“5분 지났는데······”

“5분만 아니, 3분만 더 있어 봐!”

“이번엔 시간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졸지에 시간도 제대로 못 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허허······


권태율은 사사로운 감정을 끊고 새로운 테스트를 진행했다.

최상품과 상품 혈랑초를 등 뒤에서 섞은 후에 양손에 하나씩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어떤 게 최상품이야?”

“왼쪽이요.”


보자마자 대답이 나왔다.

아니, 꺼내는 순간 이미 답을 아는 것 같았다.


권태율은 테스트를 계속했다.


“어떤 게 최상품이야?”

“왼쪽이요.”


“어떤 게 최상품이야?”

“오른쪽이요.”


“어떤 게 최상품이야?”

“오른쪽이요.”


이놈 진짜······

정체가 뭐야?


“너 대체 이거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어······ 그냥 보이는데요?”


아주 잘요.


상품, 최상품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는데요?


하지만 이채현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던 권태율은 그야말로 이채현의 재능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 생각했다.


“너······ 너······ 너는 진짜 연금술사가 될 놈이구나······!”


감격에 젖은 권태율을 향해 이채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승님, 3분 지났는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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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랑초 분류 +7 24.06.25 1,340 41 13쪽
38 부창부수 +3 24.06.24 1,907 56 14쪽
37 영화 줄거리가 시급함 +6 24.06.23 2,202 62 14쪽
36 봉인 해제 +4 24.06.22 2,477 80 14쪽
35 퍼플 크라이 +8 24.06.21 2,680 92 14쪽
34 조금이 아닌데요? +6 24.06.20 2,945 91 15쪽
33 품질 채집 퀘스트 +6 24.06.19 3,258 88 16쪽
32 행복한 권태율 +5 24.06.18 3,535 95 13쪽
31 위대한 이채현 형님! +6 24.06.17 3,788 109 17쪽
30 가족애 넘치는 남자 +7 24.06.16 4,307 115 14쪽
29 율사과 정산 +5 24.06.15 4,575 132 14쪽
28 팝콘이 시급함 +5 24.06.14 4,674 126 13쪽
27 채집팀 결성! +7 24.06.13 4,999 125 18쪽
26 채집 귀신 +6 24.06.12 5,368 145 14쪽
25 새로운 참전 +4 24.06.12 5,620 122 15쪽
24 최상품만 캐리라! +5 24.06.11 5,670 146 17쪽
23 율사과 채집 시작! +7 24.06.10 5,816 143 22쪽
22 율사과 나무 +9 24.06.09 5,950 142 17쪽
21 채짐꾼(?) 쟁탈전 +6 24.06.08 6,242 138 16쪽
20 나무 타기 참 쉽죠? +4 24.06.07 6,416 141 15쪽
19 교육 시작! +7 24.06.06 6,856 138 16쪽
18 올바른 선택이었나? +9 24.06.05 7,053 165 16쪽
17 약초 안 사세요? +9 24.06.04 7,070 167 15쪽
16 물건 좀 보자 +5 24.06.03 7,154 160 13쪽
15 루나 레머디 +3 24.06.02 7,290 157 13쪽
14 악마 교관 +9 24.06.01 7,386 181 14쪽
13 땅 안 파요? +4 24.05.31 7,419 158 13쪽
12 신규 퀘스트 발생! +5 24.05.30 7,529 144 13쪽
11 든든한 응원? +4 24.05.29 7,669 15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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