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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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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6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8.26 15:01
조회
573
추천
4
글자
12쪽

새벽길

반갑습니다!




DUMMY

29. 새벽길


“교당과 힘을 합칠 게 뭐 있습니까! 기껏 입만 나불대는 전포사와 교당사들 밖에 더 있습니까! 거기에 여자들이 태반 아닙니까!”

“어허! 영험한 원사 방주의 교리를 설파하는 교당을 무시하는 건가? 백련의 실체를 부정하는 방자한 그 태도, 방주에게 보고해도 상관없다 그거로군.”


총교당주가 짐짓 돌아서려고 하자 흑사단주가 얼른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게 아니옵고, 좋습니다. 힘을 합쳐 의행공이란 놈과 손 대인을 때려잡읍시다.”

“흐흐흐, 그래야지.”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


확실히 고려 땅보다 수십 배가 넓은 곳이었다.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서 김역은 가슴이 울컥울컥 거렸다. 그 옛날, 이 땅에서 말을 달렸을 선조를 떠올리니 피가 끓어올랐다. 특히 요동 땅은 달려도 달려도 산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벌판이었다.


고죽도로 유배를 떠날 때 배 안에서 수장이 얘기했듯, 이 땅과 고려 땅을 바꿔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확실히 조선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젊은 무장의 패기가 꿈틀거렸다.


의병이랄까 의민이랄까 하는 병사를 모아 거사라도 하고픈 심정이 들었다. 그렇게 발해가 세워졌고, 지금 달리고 있는 이 땅은 고구려의 후예 이정기 장군이 평로치정왕국을 세웠던 곳이기도 했다. 그처럼 자기도 나만의 왕조를 세워 자기의 꿈을 무참히 깨버린 고려를 향해 호령하고 싶었다.


하나 부질없는 생각이라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현재 자기 앞에 놓인 과제는 박갑문을 잡아서 자초지종을 들어본 뒤에 잔인하게 죽이는 것뿐이다.


뽀얀 먼지와 육중한 말발굽 소리.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을 달리는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기만 했다.


이 같은 기쁨이라도 있어야 미치지를 않고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광소(狂笑)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희열감 속에 한몸이 된 말과 사람은 흠뻑 땀에 젖을 정도로 줄곧 달렸다.


여름날의 해가 기울어 갈 무렵 앞서 달리는 김역의 담소귀마 뒤로 두등형이 소리쳤다.


“공자! 이제 다 와 가는데 쉬었다 가시지요!”


김역의 말이 속도를 줄이자 두등형의 말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모두 지쳤습니다. 손 소저도 생각하셔야죠. 우리도 궁둥이가 얼얼한데 오죽하겠습니까요.”


잠깐잠깐 밤에만 잠시 쉬었을 뿐 지금까지 계속 달렸기에 모두가 지치긴 했다. 김역만이 달릴수록 호연지기가 느껴졌을 뿐.


***


동구를 지나 한 고을에 이르렀을 땐 노을이 짙게 내려앉아 가고 있었다.


객잔으로 들어가 말을 부탁하고 방을 잡고 나서는 식사를 위해 이 층 누각으로 모였다.


푸른 수건으로 뺨을 가린 김역과 사제형삼과 손소민은 같은 탁자에 앉았다. 하지만 턱을 돌린 그녀의 눈초리는 아래층으로만 가 있었다.


식사가 나오기 직전, 김역 일행만으로도 꽉 찬 이 층 누각으로 장검을 든 대여섯의 일행이 올라왔다.


비단 장삼을 입은 그들 중 유독 한 사람은 훤칠한 것이 귀티가 나 보였다. 당당한 체구에 정갈한 수염과 약간의 매부리코인 그는 서른에 이르러 보였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은 공교롭게도 김역 일행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중 귀공자풍의 그자는 헝겊을 둘둘 말아 예리함을 감춘 기둥에 세워져 있는 김역의 미첨도를 슬쩍 살핀 다음, 손소민의 화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자리에 앉아서도 그자의 시선은 손소민에게 가 있었다. 그자뿐 아니라 이 층 누각의 모든 남자의 시선은 은근히 그녀를 훔쳐보고는 하였다. 단지 유독 그자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하였다.


당돌하게도 손소민은 뭇 남자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를 않는다는 듯 닭고기와 만두 등을 거침없이 먹어 치웠다. 그것마저 예쁘게 보이는지 남자들은 넋을 잃고 훔쳐보았다.


의식적으로 이목을 끌려는 행위로 보였는지 귀공자풍의 그가 그녀 쪽으로 와서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이며 말하였다.


“소저의 드시는 모습마저 미모를 따르듯 아름답기만 합니다.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사제형삼이 그자의 위아래를 살피다가는 김역에게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수건 들춰 가면서 만두를 먹고 있던 김역의 두 눈이 그자를 쏘아 보았다.


여유 만만한 그자의 눈빛과 살기를 담은 김역의 눈초리가 잠시 신경전을 벌였다. 이자는 정확히 이 일행 중 누가 우두머리라는 걸 꿰뚫었기에 이리 김역의 눈동자만 쳐다보는 것이리라.


김역이 시선을 밑으로 떨구며 말하였다.


“본인 의사에 달린 것입니다.”


하자 그자의 온화한 시선이 손소민에게로 향하였다.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 그녀에게서 왔다.


“좋아요! 식사 후에 풍류가 빠지면 안 되지요!”


그녀가 그자의 탁자로 옮겨 가는 모습을 사제형삼은 서운하니 쳐다봤다. 딱한 표정으로 두등형이 말하였다.


“안 된다고 하시지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러느냐.”

“아이고 참! 공자께서는 빼앗겼다는 기분이 안 드십니까? 소인은 수양을 쌓지 못해서 그런지 내 물건을 날강도 당했다는 기분이 듭니다요.”

“두 형님.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배신감 같은 게 듭니다. 역시 여자는 의리가 없는 모양입니다.”


소화천과 모용구 마저 투덜거렸다.


손소민의 낭랑한 웃음소리는 그들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


늦은 밤 한 방에서 김역과 사제형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술 취한 손소민이 들어와서 자랑스레 떠벌렸다.


“글, 글쎄, 이,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어요. 주, 주 공자께서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태산으로 가시는 중이라니까요.”

“태산으로 요?”

“그래요. 낼, 낼 아침 같이 가기로 하셨으니, 이젠 다, 다 필요 없어요!”


김역의 물음에 그리 대답한 그녀는 몸을 휘청거렸다. 두등형이 얼른 부축하였다.


“무슨 술을 이리 드셨습니까요. 방으로 모실게요.”

“슬, 슬퍼서 막 먹었어요. 슬퍼서요! 그, 그럼 안 되나요?”

“잘하셨습니다. 이리 오세요.”


두등형이 그녀를 데리고 나가고, 민얼굴의 김역 표정은 골똘하기만 하였다.


***


파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어본 심복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주 공자를 돌아다보았다.


주 공자가 문 앞으로 와서 바깥을 살펴보고는 정중히 그를 안으로 청하였다.


“들어오시지요.”


객방 안의 탁자를 가리키며 주 공자가 먼저 앉았다. 뒤따라 앉은 김역은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 역시 번득이는 눈초리로 김역을 마주하였다. 동요의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자는 태산준령과도 같은 위엄과 듬직함을 풍겼다.


“염치가 없으나,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소생에게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대하니 더 믿음이 가기에 마음이 놓입니다.”

“소생도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김역이 의아함을 보이자 그가 싱긋 웃고 나서 말했다.


“먼저 말씀하시지요.”

“손 소저에게 들으니 태산으로 손 대인을 만나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낼 같이 가기로 하셨다니까 드리는 부탁인데, 소생과 같이 있는 자들도 함께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소생도 부탁을 말하지요. 혼자 힘으로 천하에 뜻을 세우기는 힘듭니다. 소생과 함께 의를 행해주신다면 기꺼이 들어 드리지요.”


김역의 눈빛이 놀라움을 보였다.


“소생을 알고 계십니까?”

“발 없는 소문이 천 리를 간다지 않습니까. 미녀를 울릴 정도로 유명해지셨습니다.”

“미녀를 울리다니요?”


김역은 곤혹스러움을 눈빛에 담았다.


“하하! 말하는 간간이 손 소저가 눈물을 보인 건 의행공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자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된 거로군요.”

“솔직히 남자답게 말하겠습니다. 손 소저가 끌리긴 하나, 소생이 반한 건 의행공 입니다. 뜻을 세워 보지 않으렵니까?”

“송구합니다. 소생은 그런 재목이 못 됩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있고요. 단지 손 대인이 원사방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빨리 손녀와 대면시켜 주는 것으로 소임이 끝날 뿐입니다.”


주 공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손 소저가 손 대인의 손녀란 말입니까?”

“손 소저가 얘기하지를 않던가요?”

“전혀요. 할아버지라고만 하셔서 친척쯤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같이 모시고 가야 할 것 같군요.”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라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소생 일행을 손 대인에게 데려가시면 손 소저가 할아버지에게 잘 얘기 해줄 겁니다.”

“이왕이면 같이 가셔서 직접 얘기하시는 게 좋을 듯싶군요.”

“좀 전에 얘기했듯 소생은 할 일이 있습니다.”


주 공자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요. 그렇다면 일이 끝나는 대로 손가상포 손 대인을 찾아가심이 어떤가요? 그럼 소생과 연이 닿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만 잘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주 공자가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역은 이처럼 남자와 얘기를 나눠야 잘 통한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


“그런데 원사방이 손 대인에게 해를 입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생 일행 중 한 명이 원사방에 잡혀서 그를 구하러 갔을 때, 놈들이 손 소저에게 태산에서 할아버지를 해칠 거라고 했답니다. ”


김역은 더 구체적으로는 얘기하지를 않았다. 어차피 손소민과의 동행에 모든 게 나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주 공자도 더 자세한 건 묻지를 않고 무거운 얼굴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일어선 김역을 따라 주 공자는 방문 앞 까지 나와서 다음에 만나면 밤새 술을 마셔 가며 천하대세를 논해 보자고 하였다.


***


김역은 탁자에 앉아서 깊은 시름에 잠겼다.


첫 닭이 울고, 날이 점차 밝아져 왔다. 여기저기서 쓰러져 자고 있던 사제형삼 중 두등형은 소피가 마려워서 일어섰다.


“아니, 안 주무시고 여기 앉아 계셨습니까요?”

“앉아 보아라.”


두등형이 의자에 앉자 김역이 충격적인 얘기를 하였다.


“너희도 아침에 주 공자를 따라서 태산에 있는 손 대인에게로 가거라. 다 말해놨으니 주 공자가 손 대인에게 얘기를 잘해줄 것이다.”

“공, 공자는 요?”

“난 내 일을 위해서 갈 것이다.”

“아, 안 됩니다! 같이 가야지요! 사제형삼이 모신다고 했지 않습니까요!”


김역이 탁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화를 내었다.


“너희가 짐만 같아서 그렇다! 또, 일만 잘되면 손가상포로 찾아갈 거라고 주 공자와 약속했으니 그리 알아라! 모두 뜰로 집결시켜라!”


두등형이 부리나케 두 아우를 깨웠다.


***


“너희와 끝까지 했으면 좋겠지만, 부득불 급박한 일이 생겼기에 여기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모든 얘기는 주 공자에게 다 해 놨으니 잘 보살펴 주고 손 대인에게 천거할 것이다.”


김역은 담소귀마를 탄 채 뜰에서 의민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사제형삼이 훌쩍이니 모두가 그리하였다.


“일만 잘 해결되면 분명 너희 곁으로 돌아갈 것이고, 마음은 늘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나 의행공의 신력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마라.”


부하를 통솔해본 경험에 의하면 연설은 감동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나, 마음이 메말라서 그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을 떠나려 할 때 면피곡이 훌쩍이며 매달렸다.


“아무래도 아가씨를 깨워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요. 일어나 공자가 떠나신 걸 안다면 소인들만 혼이 날 것 같습니다.”

“하하! 잘 됐다고 기뻐할 것이니 걱정하지를 마라.”


김역이 객잔의 뜰을 통해 빠져나가고, 그 뒤를 일행이 따르며 배웅하는 것을 주 공자는 선선한 바람이 나부끼는 이 층 객실의 창을 통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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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길 18.08.26 574 4 12쪽
28 태산행로 18.08.22 568 2 13쪽
27 의민(義民) 18.08.18 607 3 12쪽
26 영륜산 전투 18.08.15 603 3 12쪽
25 호랑이 굴 18.08.11 603 2 12쪽
24 함정 18.08.08 582 2 12쪽
23 의혹 세력 18.08.04 586 2 12쪽
22 의행공 18.08.01 613 1 12쪽
21 음모 18.07.29 615 2 12쪽
20 애지화(愛之花) 18.07.25 627 3 12쪽
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18 아기발도 18.07.18 630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16 또 다른 자객 18.07.12 685 2 12쪽
15 자객 18.07.07 653 4 12쪽
14 입성 18.07.04 646 3 12쪽
13 기회 18.07.01 658 3 12쪽
12 복수의 칼날 18.06.27 709 4 12쪽
11 한담 18.06.24 712 3 12쪽
10 불출 18.06.20 774 4 12쪽
9 고죽도 18.06.15 768 5 12쪽
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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