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두문불출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4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7.18 17:16
조회
629
추천
2
글자
12쪽

아기발도

반갑습니다!




DUMMY

18. 아기발도


“아키바쯔 아카차쇼오군 임에게 인사드립니다!”


광두는 뭔가가 잘못됐다고 여겨 두령의 옆으로 가 그를 추켜올리려고 했다.


“두, 두령! 왜 이러십니까? 일어나십시오!”

“치크쇼오! 이 망할 놈의 새끼가 어디 안전이라고 함부로 구느냐!”


두령이 벌떡 일어나서 칼을 뽑아 광두의 목이라도 칠 듯 괄괄하게 굴었다.


“아키바쯔 아카차쇼오군 임이 환생해서 돌아오신 게 네놈의 눈깔에는 보이지가 않는단 말이냐!”

“그, 그럼 이분이···”


더듬거리며 김역의 얼굴을 재차 살핀 광두가 중원의 말로 다 읊조렸다.


“아카차쇼오군? 아기장수가 돌아왔단 말인가···”


그 순간 ‘아기장수’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온 김역은 왜 이들이 자기에게 공경스레 구는지 그 이유를 알만하였다.


우왕 6년 9월 왜구는 500여 척의 배를 진포에 정박시켜 놓고 연안을 비롯하여 내륙 깊숙이 약탈을 자행해 들어갔다. 이때 100여 척의 배를 이끈 나세, 심덕부, 최무선 장군이 500여 척 왜구의 배를 대파해 버리는 진포대첩을 거둔다.


왜구의 주력군은 약탈을 자행하면서 진포에서 도망쳐 온 잔당과 합류해 추풍령을 넘어 남원성까지 공격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럴 때 이성계, 퉁두란, 배극렴, 변안렬 장군 등이 급파돼 황산에서 진을 치게 된다. 드디어 여기서 고려군과 왜구와의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만다.


왜구의 장수는 열다섯 정도에 불과한 소년으로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며 사납고 용맹스러워 고려군에서는 그를 아기발도라 불렀다.


고려 말로 어린 아기에다가 원나라 말로 영웅을 바투르로 불렀기에 그 말을 딴 음차로 발도를 붙여 아기발도라고 칭한 것이었다.


그는 백마를 타고 고려군 진영을 마음껏 휩쓸고 다니면서 창을 휘두르는 용맹함을 보였다. 더군다나 갑옷을 여러 겹 껴입고 얼굴엔 구리 면갑을 했기에 죽이기가 수월치가 않았다.


이에 이성계 장군은 퉁두란과 합세하여 자기가 활로 아기발도의 투구를 쏴 그걸 떨어트리면 그 사이 노출된 아기발도의 얼굴을 활로 쏴 죽이도록 하였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이성계 장군이 연속적으로 활을 쏴 아기발도를 죽였다는 등 어느 게 진실인지 천파만파로 왜곡돼 번져 나갔다.


이 전쟁담은 당시 십 대 초반이었던 김역의 피를 용솟음치게 하기도 하였다. 또, 무인이 되겠다는 신념을 더욱 갖게 해주었다.


전쟁은 아기발도의 죽음으로 고려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진포에 상륙했던 만여 명의 왜구가 이때 겨우 70여 명 정도가 도망쳤을 뿐이다. 이 황산대첩으로 이성계 장군은 더욱 고명을 떨치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되었다. 김역은 우렁찬 소리를 내질렀다.


“이거 풀지 못할까!”


광두가 얼른 달려들어서 두 손을 묶인 줄을 단도로 잘라내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김역이 자자된 자줏빛 얼굴로 가등천 두령 앞에 똑바로 섰다.


“내 육신은 죽었으나 혼은 구천을 떠돌다 이 자의 몸에 머물러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억울한 한을 풀길 없어 복수하지 않는 한 고려 땅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각오로 피눈물이 나는 문신을 새겨 가며 와신상담하였다! 이제 내 명을 따를 너희를 만났으니 천하를 얻은 듯하다!”


두령 이하 졸개들이 재차 엎드려서 절하는데 이번엔 광두도 끼고 다른 배의 왜구들도 따라서 했다.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급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김역이 두령의 누각 의자에 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왜구들을 내려다보며 들은 말로 알 수 있었다.


왜구들의 근거지 대마 송포 일기 등에는 팔번신과 아기발도로 고려까지 무용을 떨친 아키바쯔 초상화가 걸린 신궁이 있는데, 약탈을 나가기 전에 꼭 들러서 무사귀환을 빈다고 하였다.


그 아기발도의 초상화가 김역처럼 잘 생긴데다가 화공이 한스러운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는지 뺨 부위에 눈물과 같은 줄을 쭉쭉 그려 놓았다. 그게 흡사 김역의 뺨에 있는 자줏빛 문신과 연관되는 것으로 주술적 영험이 깃든 부적으로 왜구의 눈에는 보인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알아봤는데 왜 너는 못 알아보았느냐?”


김역이 광두를 노려보며 물으니 그는 주저하다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기실 소인은 명나라 강서 사람 도위록 입니다. 해구가 된 지 얼마 되지가 않아 장군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 용맹과 덕을 지니셨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욕심이 덕지덕지 한 광두 도위록은 어떠한 벌이 떨어질까 그게 두려운지 땀에 번들거리는 빡빡머리를 문질러 가며 쩔쩔매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부적이나 마찬가지인 신물이기에 신부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구 무리는 어디, 어느 나라 사람들로 이뤄졌느냐?”

“명나라, 고려, 여진, 달달, 왜, 남방 서역인 등등 초근모피의 유랑민이 골고루 섞여 있었습니다. 한데 진포와 황산대첩 이후 모두가 떠나고 주로 왜인들로 이뤄졌습니다.”


광두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신부(神符)가 시키는 일은 목숨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우선 나에게 사기를 친 놈들을 따라잡으라고 하여라.”


도위록이 가등천 두령에게 그 영을 전달하니 모든 배는 곧 어수선해졌다.


***


세 명의 협잡꾼은 노을빛 갑판에서 갓 잡은 우럭을 회 쳐 먹는 등 술을 마셔가며 시시덕거렸다. 그렇게 아둔한 놈이 자자 된 몰골로 명나라로 밀항하려 드는 게 우습기만 하였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느닷없이 뒤에서 소라 소리가 울려왔다. 보니, 10여 척의 왜구 선단이 빠르게 다가오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괄약근이 풀려서 방귀까지 다 나왔다.


온 고려를 휩쓸고 다녔기에 왜구라 하면 겁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단순한 해적 나부랭이들이 아니었다. 1척의 배로부터 500여 척에 이르는 선단과 많을 땐 만여 명에 이르는 인원으로 수시로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다.


밀정이 있어 어느 동네 어느 집이 잘 사는지도 꿰뚫었고, 낮에는 숨었다가 해가 지면 기습적으로 상륙해 기승을 부리기에 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최영, 최무선, 정지, 이성계 장군 등 명장의 승리도 있었지만, 졸장도 있어서 술을 먹다가 기습을 당해 혼자 살려고 도망친 장수도 있었다.


어떤 땐 육로와 뱃길이 끊겨 삼남 보고의 조세가 올라오지를 못해 개경이 곤궁에 처하기도 했다.


나라의 군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왜구가 야금야금 약탈을 자행할 초반에 박살을 내버렸더라면 이렇게 국력이 피폐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조대왕이래 숱한 전쟁과 고난을 겪고도 군비 증대를 소홀히 하였으니, 여기에는 왕권이 약해 모반이라도 일으킬까 보아 무신을 등한시 한 점도 있으리라.


더욱이 무신정권의 쓰디쓴 맛을 봤었기에 무인을 한층 신뢰하지 않은 점도 있었다. 고려는 애초 문치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나갔기에 무신은 정3품 이상 승진할 수가 없었다. 그 이상의 지휘권은 품계가 높은 1, 2품의 문신이 가지고 있었다.


무반의 등용문인 무과는 없었다. 전쟁에서의 전공자나 음서로 전 현직 고관자제를 무반으로 채용하거나 그 외 결원이 생기면 선군으로 채용하기도 하고, 아주 무예가 출중하면 선택됐다.


병졸은 나이 16세에서 60세 이하의 양인 남자에게 주어진 군역의 의무였다. 대개 3년에 한 번꼴로 1년을 복무해야 했다. 나이가 들면 1년의 복무는 제외되었으나 비상시에는 노역에 동원되었다.


병역제외대상자가 있었으니 부모가 80세 이상이거나 병이 위독하면 아들 1명, 90세 이상이면 아들 2명이 군역에서 빠질 수 있었다. 이외 많은 편법으로 군역을 피하고는 하였으나, 전란 때나 공민왕과 같이 요동정벌을 감행하려 할 그런 시기에는 국가적 동원령이 떨어져 적용대상이 광범위해지고 까다로워졌다.


이성계 장군이 요동원정 4 불가론에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도 이 군역 때문이었다. 모든 군인이 병영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었기에 복무기간 외에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 것인데, 그 중요한 농사철에 대부분이 전쟁에 동원되면 일손이 빠져버려 그만큼 국가적 손실이 크다는 것이다.


아무튼 공민왕이 원나라의 간섭기를 벗어나고자 군력을 강화해 파병도 하고 요동정벌도 감행하였으나 결국은 쉽게 물러난 것은 힘,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지탱시켜 주는 것은 군력과 국력인데 이를 망각한 나머지 작금에 이르러 왜구와 명나라에 휘둘리다가 결국은 혁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


황해낙조의 검붉은 노을은 바다도 배도 인간도 온통 핏빛으로 물들여 놓고 말았다.


세 명의 협잡꾼은 마치 굶주린 승냥이처럼 그들의 배를 포위한 왜구의 선단을 마른 침을 삼켜 가며 쭉 살폈다.


그럴 때 왜선 한 척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싸울 용기는 진작에 버린 뒤라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왜선에서 갈고리가 달린 밧줄이 날아와 뱃전이나 난간에 걸린 줄 그대로 그들의 배를 이끌고 갔다.


대장선 앞에 이른 그들의 배를 향해서 광두가 더듬거리는 고려 말로 소리쳤다.


“이리 올라와라!”


대장선에서 밧줄을 내려줘 세 명은 그 줄을 잡고 그들의 배보다 높은 그 배 위로 올라갔다.


잔뜩 겁에 질린 세 놈은 어깨를 웅크린 채 시선 둘 곳을 몰라 하였다. 40여 명에 이르는 먼발치에서만 봐왔던 훈도시를 찬 왜구들이 무기를 든 채 잡아먹을 듯 쏘아 보고 있었다.


광두가 그 배의 누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에 그쪽을 본 세 놈은 그곳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잠시 몰라보았다.


턱하니 누각 의자에 앉아 있는 핏빛 노을이 물든 자의 모습은 산발에다가 이목구비가 훤칠한 건 좋은데, 뺨에 글자를 새긴 듯한 자줏빛 문신은 분명 왜놈의 대장이 틀림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자형을 받았기에 얼굴을 수건으로 싸맸을 것이란 사람이 언뜻 연상되었다. 왜구의 밀정으로 순군이 쫓았다는 것을 그때야 알고 사색이 되었다.


“어이구 나리! 쇤네들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세 명은 털썩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조아려 가면서 두 손을 싹싹 비벼 대었다. 운수가 좋다고 여겼는데 하필이면 왜구 대장에게 사기를 쳤으니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란 절체절명의 생각이 들었다.


“날 알아보겠느냐?”

“예, 예! 나리!”


광두 도위록이 꾸짖었다.


“이놈들! 나리라니! 이분은 그 유명하신 아기장수님이시다!”

“아, 아지발도 임이라고요?”


어찌 그 별명을 들어 보지를 못했을까나. 고려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는 왜장. 아지는 어린애를 일컫는 방언으로서 백성 사이에는 아지발도라는 명칭으로 더 통용되었다.


세 놈은 분명 이성계인지 퉁두란 장군인지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곧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만하였다. 바다를 삼킬 듯 내려앉아 가는 검 불그스름한 노을 속에 양각되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아지발도가 환생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도 남았다.


무언가의 소문에 집착하는 백성으로서는 그 소문에 소문을 덧붙여 신비성을 부여해 나가는 게 사는 재미인바, 특이하게도 이마도 아닌 뺨에 자줏빛 문신을 한 건 신성성과 영험함을 보이려 한 환생자다운 주술적 모습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저러한 모습으로 환생하였을까. 저분은 틀림없이 아기발도가 환생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살아난다면 저런 형상을 부적으로 만들어 대문밖에 붙여놓으리라 다짐하였다.


“아지발도 임! 소인들의 죄 죽어 마땅하오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두문불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거두들의 만남 18.09.06 573 2 12쪽
30 포로 +1 18.08.31 554 3 12쪽
29 새벽길 18.08.26 573 4 12쪽
28 태산행로 18.08.22 568 2 13쪽
27 의민(義民) 18.08.18 607 3 12쪽
26 영륜산 전투 18.08.15 603 3 12쪽
25 호랑이 굴 18.08.11 603 2 12쪽
24 함정 18.08.08 582 2 12쪽
23 의혹 세력 18.08.04 586 2 12쪽
22 의행공 18.08.01 613 1 12쪽
21 음모 18.07.29 615 2 12쪽
20 애지화(愛之花) 18.07.25 627 3 12쪽
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 아기발도 18.07.18 630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16 또 다른 자객 18.07.12 685 2 12쪽
15 자객 18.07.07 653 4 12쪽
14 입성 18.07.04 646 3 12쪽
13 기회 18.07.01 657 3 12쪽
12 복수의 칼날 18.06.27 709 4 12쪽
11 한담 18.06.24 712 3 12쪽
10 불출 18.06.20 774 4 12쪽
9 고죽도 18.06.15 768 5 12쪽
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