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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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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3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6.15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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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추천
5
글자
12쪽

고죽도

반갑습니다!




DUMMY

9. 고죽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망망대해.


김역은 이른 아침 수장 외 두 명의 수졸이 몰고 가는 외 돛의 배에 태워졌다. 길이 35척 너비 10여 척의 관선은 벽란포를 출발하여 교동도 사이로 빠져 머나먼 바다로 나왔다.


갈매기마저 보이지 않는 잔잔한 바다에는 돛배만이 외로이 흘러갔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김역은 이 배의 수장으로 사십 정도는 돼 보이는 그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형부입니까, 아니면 도당에서 보내는 겁니까?”

“내가 보내는 거다. 낄낄낄!”


알아도 말해줄 리가 없지만, 이들이야 윗선까지는 알 필요도 없고 늘 하는 임무라 무덤덤하였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디? 이름도 없는 곳이다. 참, 우리끼리 지어 놓기는 했지. 망망대해에 외롭게 서 있는 섬에다가 대나무만 무성한 곳이라고 해서 고죽도라고 붙였지. 멋지지 않아?”

“유배지가 그런 곳에도 있단 말입니까?”

“유배지야 위에 있는 놈들이 정하기 나름 아닌가. 금은보화로 치장된 궁궐이라도 갇혀 지내면 유배지지.”

“하하하! 맞습니다!”


이십 중반의 수졸 두 명 중 키잡이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수장이 계속 말하였다.


“자네를 그 섬에다 내려만 놓고 오라고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바다에 나와 자루에 씌워 물에 던져 버리라고 할 때는 정말 못할 짓이야.”

“던져요?”


김역이 두 눈썹을 찡그리면서 시선을 먼 바다로 향하였다.


사실 그렇게 바다에 던져서 수장시킨 죄인이 다수 있었다. 대개 정치적 암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말로가 그러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경손 장군으로 고종 18년 정주분도장군으로 몽골군이 침입하자 결사대 12명을 거느리고 분전 격퇴하였다. 이어 귀주에 있는 병마사 박서의 휘하에 들어가 우세한 병력으로 밤낮으로 공격하는 몽골군과 20일간의 분투 끝에 물리쳤다.


그 뒤 전라도 지휘사가 되어 적도들을 규합하여 백적도원수라고 자칭하며 세력을 떨치던 이연년에게 포위되었으나, 별초 30명을 이끌고 그들과 싸워 이연년을 죽이고 패주 시켰다. 하나 추밀원부사로 민심을 얻자 최항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최항이 자기의 계모 대 씨와 그 아들 오승적 및 족당을 죽일 때 그 집과 사돈지간이라는 트집으로 장군은 배소에서 바다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였다.


뱃전의 판목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김역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념의 끝은 이렇게 살아서 뭐 하느냐는 뼈저린 좌절감으로 변질하여 나갔다. 유배가 풀린다 한들 떳떳이 왕영을 대할 수가 없는 얼굴이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뿐이고,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처럼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다는 인간 자체가 증오스러울 뿐이었다.


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었나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통 알 수 없었다. 요동 원정군의 4 불가론을 비판하고 다녔다는 것과, 회군의 순간에 장 장군의 배려로 군영을 이탈한 게 전부였다.


탈영한 죄는 인정 한다 쳐도, 그 죄가 자자형에다가 유배까지 갈 정도로 형벌이 크다고 보진 않았다. 그렇다면 무인답게 목을 치면 될 것 아닌가. 어찌 보면 이건 고난을 겪어보라고 일부러 조작한 것 같기도 하였다. 너무 귀엽게 자랐으니 고생 좀 해보라는 우군도통사 이성계 장군의 배려?


그럴 리가 없었다. 이도 저도 다 싫은 게 좌절의 구덩이에 푹 빠지면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두 눈만이 보이는 수건 속의 짙은 두 눈썹이 점차 일그러져 간다 싶을 때, 별안간 김역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상체를 일으켜 가슴을 뱃전 난간에다 기대었다. 이어 복부를 그 위로 걸쳤다. 누에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웅크려 매달려 있는 모습 그대로 두 다리를 회전시켜 그만 물속으로 첨벙 몸을 던지고 말았다.


“어어! 저, 저놈이!”

“염병! 구해야 한다!”


두 명의 수졸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맑지 않은 서해의 물빛에 희끗희끗하게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죄수의 몸이 보였다. 두 명의 수졸은 그쪽으로 팔다리를 세차게 놀렸다.


두 팔이 뒤로 묶여 있고 발엔 족쇄마저 채워져 있기에 김역의 몸은 저항 없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죽고자 뛰어들었으나 숨이 막혀 오는 동시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스스로 몸부림이 쳐지니 삶이란 끈질긴 모양이었다.


이러한 걸 보면 자살하는 사람도 죽기 직전까지는 고통을 받다 죽는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왕영의 아름다운 얼굴과 해맑은 웃음소리가 회오리처럼 들리고,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차례 짭짤한 물을 마셔가며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뒷덜미를 잡는 손이 있었다.


***


배의 수장이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내밀기에 두 명의 수졸은 김역의 뒷덜미에 그것을 걸었다.


수장이 김역이 매달린 장대를 끌어당겨 뱃전에 걸쳐 놓고는 두 손으로 기절한 상태의 그를 잡아 올려 갑판에 눕혔다.


정신을 잃은 김역의 배를 수장이 두 손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뺨을 때리기도 했다. 김역의 얼굴은 가리고 있던 수건이 물속에서 풀려 민얼굴 그대로가 되어 있었다.


“야! 눈 떠 인마! 누구 맘대로 죽으려는 거야!”

“나쁜 시키네! 왜 남까지 죽이려고 들어!”

“죽더라도 고죽도 가서 죽어!”


유배지에서 죽을지도 모를 죄인을 살리려 드는 게 우습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살아 있는 죄수를 유배지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기에 책임을 다하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일은 알 바가 아니었다.


기침과 함께 입으로 물을 뱉어내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물을 살피는 김역의 두 눈엔 세 명의 수군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무슨 글자더냐? 뭐라고 써 놓은 것이여?”

“난들 알아. 부적 같기도 하고, 무슨 무늬 같기도 하고. 수장 나리 뭔 글이래요?”

“이게 말이다. 전서로 새겨 놓은 건데, 이렇게 멋지게 새겨 놓을 놈은 삽인장 최가 놈밖에는 없다.”

“뭔 글자냐니까요?”

“무식한 것들아! 이런 건 그냥 작품으로 보는 거야! 잘 생긴 얼굴에 멋지게 새겨 넣은 삽면 작품!”


아련한 김역의 귀에는 ‘삽인장 최가’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았다.


수장은 또 자살할까 보아 김역의 몸을 돛대 기둥에다 묶어 놓았다. 그런 상태로 김역은 듣기 싫어도 세 명의 수졸이 나누는 말을 들어가면서 유배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자자형이라 해도 잘 생긴 놈의 얼굴에 새겨 놓으니 멋지기만 한데요.”

“자네도 잘 생겼어. 삽인장 불러다가 새겨 달라고 할까?”

“하하!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저놈은 싫은 모양입니다. 삽인장이라는 그분 정말 솜씨가 좋군요. 뭔 글자인지는 몰라도 자줏빛 물감으로 사방 두 치에 두 푼 정도의 두께로 멋지게 새겨 놓다니요.”


수장이 으쓱거렸다.


“그놈이 생긴 건 꼭 돼지 같아도 조각이나 삽면은 잘 새기지. 술도 엄청 잘 먹어. 저녁이면 꼭 남대가 저전거리 방 씨네 청루에 들러 한잔씩 먹고 가지.”


‘남대가 저전거리 방 씨네 청루?’


딴생각하고 있던 김역의 귀에는 그 말이 쏙 들어왔다.


“지금도 고죽도의 그 노인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네.”


수장이 화제를 바꿨다.


“노인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척석신기 석봉호라고, 내 선배 한 분이 그 섬에다 데려다 줬다는 사람이야. 작년까지만 해도 먼발치에서 봤는데, 요즘은 모르겠는걸.”

“척석신기라면 우리가 어렸을 때 말로만 듣던 돌 던지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다는 그분이 아니신가요?”

“맞아.”


두 명의 수졸은 놀라워하였다.


“그, 그런 분이 고죽도엔 왜 계시는 겁니까?”

“돌아가셨는지 알았더니 거기 계셨군요! 그럼 유배당하신 겁니까?”


수장이 담담히 말하였다.


“이인임 대감의 미움을 사서 고죽도에 유배됐다는데, 자세한 건 보낸 놈과 보내진 놈만 알겠지. 이제 이인임도 유배를 가서 죽고 없는 마당에 그 누가 꺼내주려나.”


그러면서 곁눈질로 슬쩍 김역 쪽을 살피며 혀를 끌끌 찼다. 그 표현은 너도 그 꼴이 나기에 십상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듯도 했다.


척석신기 석봉호.


석전은 민족 기상을 함양시키기 위해 예로부터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오는 집단놀이였다. 그건 전쟁이나 국가 변란 시 또는 마을에 도적이 들었을 때 석전꾼들에게 큰 활약을 펼치도록 하였다.


숙종 조에 문무관은 물론 온 백성과 노복에 이르기까지 유사시에 군인으로 징발하기 위해 조직한 별무반이 창설되고 나서 석투꾼은 그 진가를 나타내게 된다.


이 조직 가운데 말을 가진 사람은 신기군으로, 말이 없고 과거 응시자 외의 그 모든 백성은 신보군으로, 또 사원의 승려는 항마군으로 편성하였다.


이 세 조직이 별무반을 이뤘는데, 여기에는 도탕(跳?) 경궁(梗弓) 정노(精弩) 석투(石投) 대각(大角) 철수(鐵水) 강노(剛弩) 사궁(射弓) 발화(發火) 등의 병제가 있었다.


이 별무반을 주축으로 예종 때 윤관 장군은 여진족을 정벌하고 9성을 쌓는 공적을 올린다. 이때 석투반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러한 전적을 바탕으로 석전 놀이는 더욱 기세를 떨쳤으며 명성을 날리는 석투꾼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있었으니, 중원까지 명성을 떨친 척석신기 석봉호였다. 그의 신기를 따라갈 석투꾼은 없었다.


수십보가 떨어진 곳에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 머리를 맞출 정도로 명중률이 높았다. 또 돌을 던져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잡아 거지들에게 잔치를 벌였다는 일화도 있었다.


김역도 그런 고명한 분이 계셨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어느 때부터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옛날엔 무용이 뛰어난 기인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요즘엔 찌꺼기들만 남아서 잘났다고 나불대니 원.”

“그러게. 원나라 놈에 시달리고 왜구 놈에게 채이다가 이제는 명나라 놈에 들들 볶이게 생겼어.”

“그게 다 똑똑한 사람은 싹을 잘라내서 그래. 내가 유배지에 보내고 물에 빠트려 죽인 사람들 다 유능했어.”


그들의 대화는 그치지가 않았다. 보이는 게 아득한 수평선뿐이니 심심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잘났다고 무용을 떨칠 생각을 말고 되놈 나라에 가서 성공하는 거야.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3대 조가 신라사람 금준이듯 말이야.”

“수장 나리. 진짜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 맞을까요?”

“맞고말고! 예전에 아는 사람이 원나라 사신으로 가서 황실 서고에 있는 금사(金史)에서 확인한 사실이야. 우리가 왜 이리됐나 모르겠어. 그러니까 명나라 놈들이 여기 들어와서 횡포를 떨게 놔두고, 우리는 거길 정복해서 사는 거야. 금준 후예 아골타처럼. 어차피 거기도 우리 땅이었잖아. 어때?”


그럴듯한지 수졸 두 명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암초와도 같이 작았던 한 점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고죽도.

호호망망 외롭게 홀로이 서 있는 고죽도는 주먹처럼 우뚝 솟은 것이 이각 정도면 섬 둘레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외관상으로는 섬 주변에 푸른 대나무가 빽빽이 자라 있었으나, 중앙에 상투처럼 솟아오른 야산은 바위로 이뤄졌기에 여름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곳은 물새들의 터전이었다. 그 섬 한쪽으로는 겨우 배 한 척을 댈 수 있을만한 손바닥만 한 백사장이 있었다.


정박 시설이 되어 있지를 않아 백사장까지 들어갈 수 없는 배는 백사장 인근에 닻을 내렸다. 김역은 수졸 두 명과 그 배에서 내려 허벅지에 이르는 바닷물을 위태위태하게 걸어서 뭍으로 나왔다.


뜨듯한 백사장에 발을 내딛으니 한 수졸이 김역의 포승을 풀어 주었다. 두 발목에 채워진 족쇄의 열쇠는 모랫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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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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