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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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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2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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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추천
3
글자
12쪽

의민(義民)

반갑습니다!




DUMMY

27. 의민(義民)


김역은 난감하였다. 이래서 연계가 되지 않으려고 도망을 쳤던 것인데 왜 다시 돌아왔나 싶었다.


“봉래각 회담이 취소된 대신 나흘 뒤 태산에서 할아버지와 원사방 방주가 만남 답니다! 그때 원사방이 할아버지를 해치려고 한다고 해요! 빨리 그곳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측은한 표정으로 손소민이 다급히 외치는 것은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두등형도 나섰다.


“어제 냇가에서 손가상포 손 대인 측과 우릴 갈라놓은 복면인들도 사실은 다 원사방이었답니다! 아가씨를 손 대인 측과 만나지 못하게 해서 우릴 함정에 몰아넣어 죽이려던 놈들입니다!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인즉슨, 태산으로 가 손 대인을 구해야 합니다!”


갈등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난 김역이 손소민 보다는 두등형을 향해서 물었다.


“한왕 재건을 모색한다는 손 대인이 그런 대비책 하나도 없이 원사방 방주를 만나러 간다고 보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겠지만···”


두등형이 우물쭈물 답변을 못하자 손소민이 말하였다.


“많은 위사가 따르겠지만, 할아버지를 해하려 한다는 음모는 모르고 계실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로곡에서 우릴 공격했던 것도 할아버지를 해하기 전에 취한 선제 조치가 아니었나 싶어요. 소녀와 할아버지를 떼어 놓으려고요. 그다음 소녀를 이용해 할아버지를 유인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사제형삼이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역은 괴로웠다. 손소민의 처지를 따라줘야 하느냐, 아니면 고려 사행단을 쫓아야 하느냐 하는 귀로에 놓이고 말았다.


두등형이 인연의 매듭을 조이려고 들었다.


“당연히 동행하시겠지요? 참, 이만량 총교가 아가씨와 의행공이 다정해 보이니 틀림없이 부부가 된 것이라고 단정을 짓더군요. 원사방은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군요. 월향 전포사가 객잔으로 우릴 찾아와서 의행공을 아가씨 상공이라고 부르지를 뭡니까요. 원사방에선 두 분을 부부로 본다던데요.”


소화천의 왜곡된 진실에 손소민이 펄쩍 뛰었다.


“상공이란 말은 했지만 언제 부부로 본다는 말까지 했다고 그래요!”

“아가씨도 참! 모 형제가 해명 좀 해주게나. 내 말이 거짓인가?”

“맞아요. 그런 말을 하긴 했습니다.”


이럴 때만은 소화천과 모용구는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다.


돌연 묵묵히 듣고 있던 김역이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순간 분위기가 냉랭히 변하였다. 특히 손소민은 큰 충격에 빠진 듯 커다란 눈망울로 홍매화 잎과도 같은 조그만 입술을 멍하니 벌린 채로 있었다.


“다음에 또 그들을 만나게 되면 의행공에게는 정혼녀가 있노라고 말하거라. 진작···”


김역의 시선이 손소민 쪽으로 향했다.


“···사실을 밝혔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일이 소저의 혼삿길을 막히게 할 지경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뀐 손소민은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황망히 고개를 돌려 두 손으로 뺨을 토닥거렸다.


“그, 그런 얘길 왜 소녀에게···”


실망스런 빛을 보였던 사제형삼은 그들만의 강점을 보였다.


“헤헤헤! 공자.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태산까지 가기가 싫어서 그러는 거 다 압니다요.”

“그게 사실이라면 어디 사는 낭자이고 이름이 뭔지 밝혀 보십시오.”

“아가씨의 뺨을 때렸을 때부터 두 분은 하늘이 점지해준 선남선녀입니다요!”


김역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세 사람을 노려봤건만, 죽음의 문턱에다가 간덩어리를 놓고 왔는지 그들은 기가 죽지 않았다.


그럴 때 손소민이 똑바른 자세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어디 가십니까요?”


두등형이 얼른 따라가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태산으로 가려고 합니다.”

“가면 다 같이 가야지요.”

“신세를 지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요. 힘을 합쳐 사지를 헤쳐 나온 의리로 똘똘 뭉친 우리가 아닙니까. 의행공께서도 가신답니다.”


시무룩한 손소민은 반응이 없고, 두등형이 두 아우에게 손짓하니 소화천이 김역의 말고삐를 빼앗더니 견마 잡이로 나섰다.


창졸간에 김역은 말을 탄 채 소화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으나, 표정은 곤란한 빛으로 가득했다.


그 눈치를 살핀 두등형이 그를 안심시켰다.


“그쪽에서도 남경으로 갈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어차피 사행단의 목적지가 거기가 아닙니까요?”


김역의 표정은 그제야 좀 부드러워 졌다.


손소민 일행이 타고 왔던 세 필의 말은 난리 통에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김역 외 나머지는 걸어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김역이 말에서 내려 손소민을 태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걷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두등형이 좋은 꾀를 내놓았다.


“이렇게 거북이처럼 가면 시간 내 당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제형삼이 이 말을 타고 내려가서 말을 구해 올 테니,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두등형과 모용구가 말 위에 오르고, 소화천은 여전히 고삐를 쥔 채였다. 김역이 물었다.


“돈은 있느냐?”

“없는뎁쇼.”


두등형이 두 아우에게도 물으니 역시나 태평스런 소릴 하였다.


“우리가 언제 돈을 가지고 다녔습니까. 늘 하던 데로 내 물건을 가져오듯 하면 되죠.”

“그건 안 돼요! 우리가 편해지고자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어요!”

“그건 맞다. 얼마 안 되지만 이거라도 가져가 보아라.”


완강한 손소민의 반대에 찬동하며 김역은 두 알의 진주를 꺼내어 내밀었다. 그거 가지고는 안 될 거라면서 손소민은 금귀걸이와 머리의 금비녀를 빼서는 함께 내밀었다.


“꼭 이 값어치에 맞게 사서 끌고 오셔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근데 두 분 그렇게 머리 늘어트리고 계시니 영락 부부로 보입니다요.”


두등형의 농에 빨갛게 물든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손소민의 모습은 귀엽기만 한 것이었다.


금비녀를 뽑은 그녀의 삼단 같은 머리채는 허리를 거쳐 궁둥이에 이르렀다. 또 다른 면모의 그 모습은 그녀를 소녀답게 비춰주었다.


***


김역과 손소민은 사제형삼이 기다리라고 하였건만 맹숭맹숭 앉아 있기가 서먹하여 하행 길로 나섰다.


걷다 보니 손소민은 두등형의 꾀에 빠져서 둘만이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일절 동요도 없이 걷기만 하는 김역이 그녀는 얄미웠다. 뭔가 말이라도 붙이면 서먹서먹한 심사를 풀어 보련만.


정혼녀가 있다는 게 사실일까. 그게 마음에 깊이 걸렸으나 물어보긴 싫었다. 혹시나 질투하는 마음에서 물어본다는 인상을 심어줄까 보아서.


이렇게 야박할 수가 있을까. 세상 이치란 꼭 알고 싶지가 않은 내용일수록 듣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굵직한 음성이 폐부를 찔러 왔다.


“정혼녀가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왜 눈물이 나려는 것일까. 그딴 소리는 듣기 싫다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목이 멜 따름이었다.


침묵을 지켜도, 대꾸하기도 묘한 이러한 상황. 묵묵히 있어도 소갈머리가 좁다고 여길 것만 같아서 울음을 삼키며 하늘을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그러시겠죠···”


굳이 정혼녀가 있음을 밝힌 것은 자기가 그를 연모한다는 걸 알기에 그리했다는 걸 떠올리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더는 연모하지를 말라는 방어막이라는 것쯤은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아둔하기라도 했으면.


사제형삼은 이런 말을 나누라고 자리를 비켜줬단 말인가.


대체 저 사람의 어디가 좋아서 마음이 이럴까. 소중한 걸 빼앗겼다는 기분. 울음이 날 것만 같은 비참함. 아니,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만 생각해야 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걷는 그녀의 뒤로 김역은 미첨도를 지팡이로 삼아 따랐다.


***


“두두두두!”


김역은 긴장의 빛으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기마인들을 살폈다.


손소민의 얼굴은 무표정이지만, 고개를 살랑거리며 김역은 못마땅한 빛을 보였다.


앞서 오는 기마인들은 바로 사제형삼이었다. 그 뒤에 오는 십여 명가량의 사나이들은 누구일까. 원사방 방도들을 더 데려오는 것일까.


기마의 무리가 두 사람 앞에서 멈추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말에서 뛰어내려 검을 든 손으로 포권을 취하며 동시에 외치는 것이었다.


“의행공 부부께 삼가 인사드립니다!”


김역은 놀란 빛으로 사제형삼을 쳐다봤으나, 손소민은 냉랭하기만 한 것이 한 손으로 삿대질해가면서 쏘아붙였다.


“누가 부부입니까! 의행공과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사제형삼이 어벙한 모습을 보였다. 두등형이 김역의 팔을 잡아끌어서 일행과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요?”

“일은. 정혼녀가 있다는 거 사실이라고만 했다.”

“아이고 공자! 그런 말을 하면 어쩝니까? 정혼녀가 있다는 말을 어느 여자가 좋아합니까요.”

“좋아하지 말라고 한 소리다.”


두등형이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같이 계실 거 형식이나마 좋게 지내시면 좀 좋습니까요?”

“어차피가 아니라 난 곧 떠날 몸. 난 또 너처럼 위선을 떨며 살아오진 않았다.”


두등형은 면피곡 다운 표정을 지었다.


“이럴 거 경로곡에서 구해주긴 왜 구해주셨습니까요? 죽게 놔두시지요. 자기 생명을 구해준 사람을 따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요. 이게 바로 의리고 인정이고 사랑입니다요.”

“그런 거 따질 경황이 없는 몸이다!”


김역의 큰 소리에 두등형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깔았다.


“이젠 따지셔야 합니다. 마을로 내려가니 벌써 의행공 소문이 쫙 퍼져 있었어요. 저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런 소문을 듣고 의행공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겁니다.”

“뭐. 뜻을 같이해? 너희가 부축인 게로구나!”

“아닙니다요.”


두등형이 김역을 그들 앞으로 데려가서 머리가 하얀 청포를 걸친 노인과 잘 생긴 적색 말 한 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말은 북원 대초원에서 자란 명마로 이 청포 노인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는 의행공께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노인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서는 김역을 우러러보았다. 그의 자줏빛 문신에 꽂혀 있는 노인의 시선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영웅적인 일에 보태라고 은자도 기증하셨습니다. 또, 나머지 분들은 의행공을 따르겠다고 자원한 분들입니다. 말하자면 의민(義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민···!”


김역은 기가 막혔다. 왜구 적자오 파에게도 추대를 받더니만 여기서도 그런 상황을 맞이하였다. ‘불출’이란 삽면이 자기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이건만, 이들에겐 그야말로 신력이 담긴 부적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삽인장 최가에게 고마워해야 할 노릇일까.


두등형이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손소민을 돌려세우고는 소개하였다.


“이 소저가 손가상포 하광거상 손춘문 대인의 손녀 손소민이옵니다. 의행공과 함께 의를 행하고 계십니다. 설부화용, 경국지색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정말 미인이십니다!”

“인사드립니다!”


무리의 칭찬에 손소민은 일단 샐쭉했던 표정을 풀었다. 청포노인이 금비녀와 진주를 도로 내밀기에 미소로서 받아들었으나, 진주 두 알을 김역에게 건네는 표정은 살얼음처럼 차가 왔다.


분타주란 직책을 맡았던 경력 때문인지 두등형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사람을 이끌 줄 알았다.


“자! 의행공께 충성의 절을 하십시오!”

“아, 아니 됐···”


말릴 사이도 없이 노인을 뺀 십여 명은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충성을 다해 의행공을 따르겠습니다!”


김역이 미간을 찡그리며 두등형을 노려보니, 그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를 안다는, 예의 면피곡 다운 모습을 보이기에 실없는 웃음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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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거두들의 만남 18.09.06 573 2 12쪽
30 포로 +1 18.08.31 554 3 12쪽
29 새벽길 18.08.26 573 4 12쪽
28 태산행로 18.08.22 568 2 13쪽
» 의민(義民) 18.08.18 607 3 12쪽
26 영륜산 전투 18.08.15 603 3 12쪽
25 호랑이 굴 18.08.11 603 2 12쪽
24 함정 18.08.08 582 2 12쪽
23 의혹 세력 18.08.04 586 2 12쪽
22 의행공 18.08.01 613 1 12쪽
21 음모 18.07.29 615 2 12쪽
20 애지화(愛之花) 18.07.25 627 3 12쪽
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18 아기발도 18.07.18 629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16 또 다른 자객 18.07.12 685 2 12쪽
15 자객 18.07.07 653 4 12쪽
14 입성 18.07.04 646 3 12쪽
13 기회 18.07.01 657 3 12쪽
12 복수의 칼날 18.06.27 709 4 12쪽
11 한담 18.06.24 712 3 12쪽
10 불출 18.06.20 774 4 12쪽
9 고죽도 18.06.15 767 5 12쪽
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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