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두문불출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5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7.01 17:25
조회
657
추천
3
글자
12쪽

기회

반갑습니다!




DUMMY

13. 기회


이날의 새벽하늘엔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물고기 비늘과도 같은 붉은 노을이 비집고 나와 마치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의 시뻘건 쇳물을 끼얹은 듯한 장관을 연출하였다.


황금물결이 살랑대는 바다는 잔잔하기만 했다. 건장한 나체의 모습으로 석관묘가 있는 언덕에서 하늘을 유심히 살피는 자줏빛 문신의 김역 표정은 절실하기만 하였다.


저녁노을은 맑을 징조이고 아침노을은 비가 올 징조라는데, 이 새벽의 노을은 유난히 붉기만 하였다.


요 며칠간 후덥지근한 것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웠다. 여름이라 더운 게 당연했지만, 천기 정도는 살필 줄 알았기에 끈적끈적함 속에 더운 바람이 느껴지는 건 간절함을 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할아버지! 도와주소서!’


척석신기 노인에게 간절히 외쳤다. 과연 노인이 10여 년 동안 바랐던 기회가 자기에게로 와줄 것인가. 유배의 경륜으로 치자면 이제 이년쯤 되어 가는 자기가 바란다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육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왕영은 잘 지내고 동생 은이는 이 못난 오라비 때문에 수난을 겪지는 않았을까. 최길충이 있으니 잘 보살펴줬겠지 하는 생각은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홀로 지내온 시간은 온전한 인간을 거의 야수처럼 만들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역의 마음은 황폐했다. 그날을 위해 척석신기 노인이 그랬듯 옷을 아끼려고 발가벗고 생활했다. 노인은 나뭇잎으로 아랫도리는 가렸으나 그는 젊었기에 당당히 알몸을 드러내었다.


***


“후드득! 후드득!”


반 시진 동안 그렇게 서 있을 때 드디어 하늘에선 비가 뿌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건만 진득한 것의 찜찜함은 가시지가 않았다.


내리는 비를 긴 머리와 가꾸지 않은 거친 수염과 알몸으로 고스란히 맞아가며 김역은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꼭 누군가가 올 것 같은, 반가운 벗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늘이 칠흑처럼 변하면서 세차게 비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바람까지 심상치가 않았다. 과연 바라던 바가 이뤄질 것인가.


김역은 두 손을 번쩍 추켜들고는 천지신명에게 광풍 노도를 몰아쳐 달라고 소리쳐 외쳤다. 그것도 모자라서 털썩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움켜쥔 채 간절히 빌었다.


아! 척석신기 석봉호 노인이 이끄는 것인가, 아니면 천지신명 조상님이 바람을 일으키시는 것인가.


까맣게 물든 수평선 저 끝자락으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김역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힘을 주었다.


점점 고죽도 쪽으로 다가오는 그 배는 길이가 57여 척에 너비가 13척 정도 되는 외 돛의 조운선이었다. 바람이 불기에 돛은 내린 채였다.


김역은 어느 정도까지 그 배를 관망하였다. 태풍이 올 걸 예상해서 대피하기 위해 이 섬을 목적으로 오는 것이 분명하였다.


얼굴로 부딪치는 빗물을 손으로 쓸어가며 입술을 굳게 깨물던 그는 돌연 밑으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동굴로 간 김역은 속이 막힌 대나무 마디마디를 잘라서 촘촘히 이어 엮어 놓은 것을 가슴에다가 묶었다. 만약을 위해 물에서 떠오를 수 있도록 부표처럼 쓰기 위함이었다.


이어 만들어 놓았던 갈고리가 달린 밧줄 외 또 한 개의 긴 밧줄과 옷 보따리가 담긴 칡넝쿨로 만든 망태기를 옆구리에 엇비스듬하게 메고는 백사장으로 달려 나갔다.


금세 어두워진 바다는 파도가 몰아치고 아직 배가 도착하려면 좀 더 있어야만 했다.


김역은 백사장 한편 바다와 인접해 있는 바위 뒤로 가서 몸을 숨겼다.


조운선이 서서히 백사장 해변 인근으로 와서는 닻줄물레를 돌려 닻을 내렸다. 그 동시 어부 두 사람이 허리에 이르는 물로 뛰어 내려 동아줄을 질질 끌고는 백사장 부근의 숲에 있는 굵은 나무에다가 그걸 묶었다.


태풍과 너울을 피해온 배가 틀림없었다. 비에 젖은 김역의 얼굴에는 감격의 빛이 서렸다.


배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데 열 명가량은 되었다. 그들의 손에는 밥을 해먹을 솥단지 등 필요한 물품들이 들려져 있고, 나무에 밧줄을 묶은 뒤 섬을 살폈던 두 사람의 인도에 따라 부랴부랴 안쪽으로 뛰어들 갔다.


김역은 배에서 사람이 다 내렸을까 하는 경계심을 갖고 허리를 숙인 알몸으로 바위 뒤에서 나와 허벅지에 이르는 물길을 걸어 그 배로 접근하였다.


아침이건만 천지는 새까만 먹빛으로 수묵화를 그려 놓은 듯했다.


거친 파도에 물이 허리에 이르기도 했다. 그 배로 접근한 김역은 뱃전 난간으로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져 두 손으로 잡아당겨 가며 그 안으로 넘어들어갔다.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배는 섬 쪽으로 기우뚱거렸다.


안을 살피니 이물 양옆으로는 섬과 짚에 덮인 많은 물품이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고물 쪽은 폭이 좁은 각형선미의 형태라 물건이 그다지 놓여 있지는 않았다. 허리를 숙여 갑판 밑 선실을 거쳐 창고로 들어가니 그곳에도 섬과 짚에 덮인 물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파도와 바람은 거세어져 갔다. 배의 놀림에 따라 배 밑창을 이리저리 기울어 가며 살피고 다니던 김역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곳에서 나왔다.


고물 갑판 쪽에는 치, 킷대를 잡아 주는 킷다리넉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고물비우 쪽을 살피던 그는 바다를 향해 훌쩍 몸을 날렸다.


가슴까지 차는 물속에서 고물큰멍 킷대 구멍을 통해 고물비우를 따라 비스듬히 밑으로 내려온 킷대 그 하체 부분에 길고 넓적하게 퍼진 방향을 잡아 주는 전향타, 키판을 살폈다.


위쪽을 쳐다보니 고물 갑판에 가려 이곳 아래쪽은 잘 보이지가 않았으나, 그 갑판 끝과 좌우 외판 끄트머리 사이로 외판을 지지해 주는 가룡목이 사다리처럼 놓여 있는 곳으로 까만 하늘이 보였다.


김역은 긴 킷대와 연결된 전향타, 직사각형 꼴로 장정 두 배 크기의 키판에다가 밧줄을 묶기 시작하였다.


파도에 의해 배와 몸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떠올랐다를 거듭하는 속에서 밧줄 두 개 중 하나를 키판 둘레에 단단히 동여매 놓고 하나는 길게 묶어만 놓았다. 헤엄을 쳐서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물살이 본격적으로 거세어 졌다.


집채만 한 파도가 출렁출렁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천지 구분이 안 되는 저 먼 곳에서 번개가 번쩍 내려쳤다. 인간사 모든 죄악을 벌하듯 땅이 쪼개지는 소리를 내었다.


이년 가까이나 바다와 친해져 있었지만, 오늘 날씨는 그야말로 폭풍해일이었다.


하나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김역에게는 거친 폭풍도 대적 거리가 되지는 못하였다.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백사장 나무에 묶어 놓은 동아줄을 잡고서는 뭍으로 나왔다.


껌껌한 빗속을 뚫고서는 배가 바라다보이는 숲으로 가서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얼마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좌우로 흔들렸고, 물에 떠 있는 조운선은 표주박이 출렁이는 것 같이 곧 파도에 잠식될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춤을 추었다.


빗방울은 굵어지고, 그 빗방울은 김역의 벌거벗은 궁둥이와 등과 어깨를 시원스레 두들겨 대었다. 그렇지만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처지의 그가 아니었다.


두 손을 포갠 손바닥을 땅에 대놓고 그 위에 턱을 바친 채 두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는 김역의 눈망울에는 이 세상이 다 삼킬 것 같은 광경으로 비췄졌다. 그 표정은 야수의 무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


시각을 갸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두운 현상 속에서도 차츰 바람이 약해지는 기미가 느껴졌다. 먹구름의 한쪽으로는 희끗희끗한 밝음이 비치기도 하였다.


아직 비는 내렸지만 세차지는 않았다. 동굴 쪽 방향에서 서너 사람이 나와 하늘과 바다를 손가락질해가며 살피다가는 들어가는 게 보였다.


꼬박 그 자세로 엎드려 있던 김역은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숙인 채 물로 뛰어가 동아줄을 잡고 조운선으로 접근하여 그 안으로 넘어들어갔다. 올라타서는 이물 쪽에 엎드려서 바깥의 동향을 살펴 나갔다.


먹구름이 엷어진 희뿌연 속에 어스름한 초저녁 빛이 스며들었다.


백사장 쪽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어릿거렸다. 아직 약하게 비는 내렸지만 출발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 같았다.


김역은 고물 쪽으로 기어가서는 키판이 담가져 있는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아침 무렵 키판에 묶어 놓았던 바닷물에 떠도는 밧줄을 잡아서 여유 있게 끈을 허리에다가 묶었다. 그런 다음 키판 둘레에 단단히 동여매 놓은 밧줄 틈 사이로 두 손을 찔러 넣어 그걸 꽉 움켜쥐었다.


고물비우를 등지고 키판을 일자로 끌어안고 있는 형국이었다. 평소에는 키판의 반 정도가 물에 잠기나 이날은 그 이상의 높이까지 파도가 몰아치고는 하였다.


위쪽으로는 고물 갑판이 덮여 있기에 밑을 자세히 살피지 않는 한 들킬 염려는 없었고, 또 이 폭풍 속에서 그 누가 그 밑에 사람이 있으려니 상상이나 하겠는가.


김역이 이렇게 키판에 의지해 가려는 것은 쥐새끼처럼 배 안에 숨어 있어 봤자 들킬 게 뻔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열 여명 되는 어부에게 겁을 줘서 타고 가도 되었으나, 그렇게 되면 자기의 행동이 밝혀져 박갑문 장군에게 알려질까 그게 염려스러웠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뱃전에서 들려 왔다. 선장인 듯한 사람이 외쳤다.


“닻을 올려라! 상앗대로 바닥을 밀고 돛을 올려라! 바람이 있을 때 여길 벗어나야 한다!”


조운선은 배 밑바닥이 평편한 평저선이었기에 웬만한 펄에 묻혀서도 쉽게 나올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아직 물살이 거세지만 뱃사람들은 두려움도 없이 조운선을 부려 드디어 배가 두둥실 파도를 타고 흐르기 시작하였다.


키판에 묶여 있는 줄을 양손과 양발로 굳게 지탱한 채 수면에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걸 반복해 가며 유성처럼 흘러가는 김역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머리만 내놓고 있는 그 위를 물살이 덮치기도 하고 배가 가라앉아 갈 때면 등으로 느껴지는 유속의 힘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숨을 쉬려 하면 어느새 넘실거린 바닷물이 목으로 넘어들어오고, 파도 속에서 숨을 참으려 들면 금방 머리가 바깥으로 나와 숨 쉴 때를 놓치고는 하였다.


배는 상하 좌우 제멋대로 요동을 치면서도 검푸른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나가는 게 신통하기만 하였다.


두둥실 떠올랐다가 푹 가라앉았다가 또 급자기 옆으로 기우는 예측지 못한 배의 동작은 김역을 멀미에 시달리도록 하였다.먹은 것도 없는데 뱃속에 든 이물질이 다 토해지다 못해 진득한 액체까지 넘어왔다.


눈물인지 바닷물인지가 눈앞을 가리고 괴수의 신음 같은 비명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그냥 이대로 바다에 휩쓸려 잔잔할 것 같은 해저 밑바닥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이러할 때일수록 힘을 주는 현상이나 아니면 귀신에 홀린 듯한 환상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이런 고난도 헤쳐나가기가 좋지만, 그 사랑하는 사람으로 죽기까지 한다.


지금 김역의 눈앞에는 활짝 웃는 왕영이 뽀얀 손을 내밀어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만 단단히 붙잡고 있는 키판의 끈에서 손을 놓고는 그 손을 마주하고 싶었다.


왕영의 그 고운 손을 잡으려고 왼손을 뻗쳤다. 하나 그녀는 술래잡기라도 하듯 뒤로 훌쩍 물러나서는 호호 웃었다.


그럼 나는 너에게 뛰어들어서 두 손으로 너를 품어야지 하며 나머지 오른팔을 내미는 동시, 폴짝 뛰는 흉내까지 내었다. 그 찰나 키판에 의지하고 있던 몸이 거센 물살에 떠밀려서 배 반대 방향으로 흘러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이물비우에 부딪쳐서 갈라진 물살이 고물비우 쪽으로 유속을 빨리하여 빠져나가는 힘은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셌다.


다행인 것은 허리에 밧줄을 길게 묶어 두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키판과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지게 되었다.


김역은 허리의 줄을 잡아당겨 가며 키판으로 가기 위해 애를 썼으나, 물보라가 튀기는 물살 속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상당히 벅찬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두문불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거두들의 만남 18.09.06 573 2 12쪽
30 포로 +1 18.08.31 554 3 12쪽
29 새벽길 18.08.26 573 4 12쪽
28 태산행로 18.08.22 568 2 13쪽
27 의민(義民) 18.08.18 607 3 12쪽
26 영륜산 전투 18.08.15 603 3 12쪽
25 호랑이 굴 18.08.11 603 2 12쪽
24 함정 18.08.08 582 2 12쪽
23 의혹 세력 18.08.04 586 2 12쪽
22 의행공 18.08.01 613 1 12쪽
21 음모 18.07.29 615 2 12쪽
20 애지화(愛之花) 18.07.25 627 3 12쪽
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18 아기발도 18.07.18 630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16 또 다른 자객 18.07.12 685 2 12쪽
15 자객 18.07.07 653 4 12쪽
14 입성 18.07.04 646 3 12쪽
» 기회 18.07.01 658 3 12쪽
12 복수의 칼날 18.06.27 709 4 12쪽
11 한담 18.06.24 712 3 12쪽
10 불출 18.06.20 774 4 12쪽
9 고죽도 18.06.15 768 5 12쪽
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