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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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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216

작성
18.05.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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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군

반갑습니다!




DUMMY

5. 회군


두등형 일행이 죽엽공의 방으로 달려갔을 때 그는 등을 돌려 앉아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호통을 쳤다.


“들어오지 마라! 나가!”


세 사람은 머뭇대다가는 나와서 방문을 닫았다.


이마를 탁자에 기댄 채 흐느낌을 참아가는 죽엽공의 입에서는 간간이 피맺힌 절규가 터져 나왔다.


“대, 대체···왜, 왜···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맺힌 눈으로 고개를 번쩍 추켜든 그의 귀에는 추적추적 끈적거리기만 했던 지난날의 무더웠던 여름밤 빗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


“이랴! 이랴!”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밤의 장맛비를 뚫고 필마단기가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갑주차림으로 왼손의 검을 번쩍 추켜든 기마인은 안장에서 궁둥이를 높이 들어가며 오른손의 고삐 끄트머리로는 연신 말을 닦달해 가며 빗속을 달렸다.


말발굽이 땅바닥을 내디딜 때마다 웅덩이에 고였던 물과 바닥을 흐르는 빗물이 그 발길에 차여 어둠 속으로 질퍽하니 퍼져 나갔다.


파발이라도 되는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연신 뒤를 돌아다 봐가며 불안한 모습을 얼굴에 드리우고 있는 기마인의 표정을 보아서는···


곧 그 내막은 밝혀졌다. 횃불 든 수십의 기마 무리가 필마단기를 쫓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섰거라!”

“멈춰라!”

“다 왔다! 사로잡아야 한다!”


필마단기의 기마인은 더욱 말을 재촉하였으나, 이미 지친 말은 추적자들의 말에 비해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나갔다.


추적자 또한 모두 군인으로서 사병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서너 명의 병사가 달리는 자기의 말 위에서 옆으로 상체를 기울인다 싶은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같이 끌고 온 옆의 말에 옮겨 탔다. 그들은 일행에 앞서 번개처럼 질주해 나아갔다.


이것은 마상 기예에 뛰어나지 않으면 위험한 기마술로 비가 오는 한밤중에 행한 걸로 보아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서 달리던 필마단기의 그자는 살이라도 날라 올까 보아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말 옆구리에 매달려가다가, 안장에 배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 좌우로 몸을 넘기며 달리는 좌우초마의 기예를 보였다.


힘찬 말로 갈아탄 서너 명의 병사가 바람처럼 기마인의 뒤를 쫓아와 활 대신 작은 쇠갈고리가 매달린 투삭(套索)을 허공으로 빙빙 돌려대었다.


“획! 획!”


서너 개의 투삭이 동시에 어둠 속으로 날아가 앞서 달리는 기마인의 몸을 덮쳤으나, 좌우초마의 기예로 목표가 벗어난 그것은 대신 말 뒷다리에 두 개가 감아져 그대로 말을 앞으로 고꾸라지게 하고 말았다.


전쟁 시 적장을 사로잡을 때 사방에서 던져 잡기도 하는 투삭은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야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히히힝!”


말 위에 타고 있던 기마인의 몸이 허공으로 붕 솟구쳤다가는 물이 질퍽한 얕은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파바박! 팍팍!”


그의 몸이 물기 흥건한 땅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다가 멈추는 동시,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려고 하였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병사들의 말이 다가와서 그 위로 던진 그물은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물고기를 이리저리 그물에 몰듯 그들은 말 위에서 그의 몸에 덮인 그물의 방향을 좌우로 틀고 돌리고 조이면서 그를 꼼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었다.


촘촘한 그물망 사이로 투구가 벗겨진 그자의 얼굴이 감파르게 나타났다. 이십 초반으로 여겨지는 그의 눈썹은 정갈했고 눈빛은 형형하였다.


완만한 콧날과 콧방울 밑의 아직은 숱이 많지 않은 깔끔한 수염만이 남자라는 걸 여실히 나타낼 뿐, 전체적인 외형은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게 옳았다.


검푸른 하늘에서 퍼붓는 비가 분한 듯 고르고 흰 치아를 야수처럼 드러내고 있는 그의 입속으로 스며들었다.


욱죄여 오는 그물 속에서 그는 이를 갈 듯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러한 실력으로 회군한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이냐!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말 위의 한 병사가 그를 향하여 조롱하였다.


“김역 별장!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치시는 게 꼴 보기에 좋습니다! 의리와 충성도 모르고 배신을 일삼는 게 권문인 모양입니다 그려!”

“오로지 수탈과 착취밖에 모르는 권문가 자제라 부귀영화를 쫓는 게지 뭐! 장군께 데려가자! 이랴!”


병사들은 말에 박차를 가했다.


김역은 그물에 옳아 맨 채 달리는 말에 의해 질질 끌려갔다.


몸이 땅바닥의 장애물에 부딪혀 끌려가면서도 김역은 굳세게 이를 악물고 거역하려 하였으나 두 필 기마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다행인 것은 빗물에 의해 거친 땅이 물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간혹 나타나는 자갈이나 돌부리의 예리함은 앞으로 닥쳐올 험난을 예고하듯 그 아픔의 감각을 잊게 하여 주었다.


사냥에 의해 잡힌 짐승처럼 그의 몸은 진흙 범벅의 몸으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니 시대의 거스름이 어떻다는 걸 예고하듯 잔물결을 튀겨가며 세찬 폭풍우 속으로 깊이 흡입되어 갔다.


***


비를 피할 수 있게 임시로 세워진 군막 바깥으로는 수많은 기병과 병사들이 비를 맞은 채 도열해 있었다. 그 안으로는 우군도통사 휘하로 1령, 천 명을 지휘할 수 있는 장군 장창모 이하 중랑장 두 사람 외 또 한 명이 무장한 채 포진해 있었다.


그 가운데로 상투가 산발인 흙탕투성이의 김역이 포박된 채로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빗줄기가 규칙적으로 군막 위를 때려 대었고, 더듬더듬 그 흐름을 묵직이 가라앉은 장 장군의 음성이 깨어 나갔다.


“···내 너를 총애하였건만···탈영하는 병졸은 많아도···200명의 부대를 지휘하는 낭장을 보좌하는 부지휘관 별장으로서···그것도 내 진영에서 나왔다는 게 수치스럽기만 하다.”

“장군. 그게 아니 옵니다. 소인은···”


그렇게 말하다가 말고 김역은 두 중랑장 옆에 서 있는 벗 최길충을 올려다보았다. 장 장군의 호통이 들려 왔다.


“그래도 뭔가 변명할 말이 있단 말이냐! 내,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해서, 이 회군을 팔도도통사 대감에게 밀통하려고 했던 것이냐?”

“그, 그것은···”

“아마 그러려고 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장군께서 김역 별장을 총애하시나, 김 별장의 사촌 김명 장군이 팔도도통사 측과 가깝습니다. 아마 그 형님에게 고자질하려 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김역은 자기를 음해하는 듯한 말을 하는 중랑장 박갑문에게 소리쳤다.


항상 자기를 삐딱하게 보는 그였다. 거기엔 김역이 하급 무관의 진급 절차도 없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뭐가 부족해서 회군 결정이 난 마당에 보고도 없이 군영을 이탈했는지 해명해 보아라! 이건 도통사의 뜻을 비난하고 다녔기에 처벌이 두려워서 겸사겸사 개경으로 도망을 치려 한 것이 아니더냐!”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째려보며 다그치는 박갑문 중랑장의 말에 김역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장 장군이 자기를 위해 몸을 피하라는 은밀한 지시를 벗을 통해 알려주었는데, 지금 두 중랑장이 지켜보고 있는, 특히 박갑문이 있는 이 시점에서 내막을 밝혀 장군과 벗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럴 때 대정 최길충이 장 장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벗을 거들고 나왔다.


“장군. 김역 별장이 약혼녀가 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먼저 달려간 듯합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고 넓은 아량을···”


항상 꼿꼿한 자세로 차분함을 보이는 최길충이 자기를 위해 그리 말해주는 게 고맙기만 한 김역이었다.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간, 하관이 길고 턱이 좁은 그는 늘 자신감이 넘쳤다. 때론 듬성듬성 자라있는 수염 아래의 우측 입가를 추켜올려 미소 지을 땐 온갖 포용력이 다 담긴 듯해 보이기도 하였다.


벗들 중에서도 언제나 의젓함과 어른스러움을 보여나갔다. 25명의 대를 이끄는 최하위 9품 무반 대정으로 7품인 김역과는 계급 차이가 나지만 두루 신망을 얻고 있었다.


장 장군이 손을 들어 올려서 최길충의 말을 가로막았다.


“동무라고 편애하지 마라. 어쨌든 지금은 대업이 막중하니 김역 문제는 도통사에게 맡기겠다. 예상보다 늦었다. 계속 회군하라!”


장군의 지시에 중랑장들이 비가 내리는 군막 바깥으로 나가 군사들에게 출발 명령을 내렸다.


나각 소리와 병마의 웅성거림으로 바깥이 소란스러울 때 최길충이 김역에게 다가와 다정스레 등을 두드려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미안하다. 이렇게 잡혀서 너와 장 장군을 곤란하게 만들어서···”

“괜찮아. 곧 도통사 본진이 올 거야. 나중에 개경에서 보자.”


최길충이 자신만만한 듯 입술을 꽉 다물면서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그 태도만으로도 다소 안심이 되는 김역은 역시 벗이란 좋은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차 벗의 등을 토닥거리다가 바깥으로 나간 최길충은 곧 비가 뿌리는 행군 대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김역이 포박된 꼴로 군막 안에 남아 산발된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때, 드디어 멀리서 대라 소리가 울려왔다. 그건 누구의 등장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신호였다.


곧 수많은 병마의 등장과 함께 우군도통사 일행이 그 앞에 당도하였다.


적궁과 백우전으로 무장한 갑주차림의 품격이 깃든 나이가 든 장군이 백마 위에서 내려 참모 서넛과 군막 안으로 들어와 비 맞은 투구를 벗어 탁자 위에다 내려놓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김역을 슬쩍 한번 본 그는 수염이 수북한 뺨에 사람이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허허! 탈영병이 어디 한둘인가. 역아.”

“옛!”

“다시는 너 같이 무모한 싸움에 끼어들기가 싫어서 탈영하는 병사가 없게 하려고 회군하는 거란다.”

“네···”


김역은 머리를 조아린 상태에서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가며 상황을 정리하였다.


아직 우군도통사는 단순히 군영을 이탈한 정도로만 보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장 장군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고 다소 안심이 되는 바도 있었다.


위화도에 와서 장마 때문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에도 4 불가론을 내세우며 두 차례나 회군허가 요청서를 올렸던 우군도통사 이성계였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 많은 군대가 움직이면 이 틈을 타서 왜적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셋째, 농사철에 전쟁에 임하는 것은 적합하지가 않다.

넷째, 장마철인 지금은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러한 내용을 젊은 무관들에게 조목조목 따져 가며 핑계에 불과하다고 우군도통사를 헐뜯었던 김역이었다.


더불어 팔도도통사 최영 대감이 우군도통사의 4 불가론에 반대 견해를 내세운 걸 적극 옹호하였다.


첫째, 명나라가 크다 하나 북원과의 관계가 있어서 요동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둘째, 요동의 방비가 매우 허술하다.

셋째, 요동은 매우 기름진 땅이므로 여름에 공격하면 가을에 충분한 군량을 얻을 수 있다.

넷째, 명나라 군사들은 장마철에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요동을 쳐서 땅을 되찾을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이러한 정략적 관점을 떠나 김역은 혈기 방장한 무반이기에 오직 국왕의 명을 받들어 나라에 충성하는 게 군인의 본분인바, 이 기회를 틈타 요동이 아니라 태조대왕이 내세웠던 고구려의 영토수복과 더 나아가 조선의 국토까지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한 불평을 우군도통사가 소문으로 들었을지는 모르나, 아직 까지는 단순히 탈영 정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음력 4월 12일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하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한 요동 원정군이 편성되었다.


좌우군 전투병력 약 3만 8천 명에 군수품 수송병력 약 1만 천여 명, 그리고 동원된 2만 1,682필의 말이 4월 18일 요동 원정군으로 서경을 출발하여 5월 7일 위화도에 도착해 진퇴 없이 작금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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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18 아기발도 18.07.18 629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16 또 다른 자객 18.07.12 685 2 12쪽
15 자객 18.07.07 653 4 12쪽
14 입성 18.07.04 646 3 12쪽
13 기회 18.07.01 657 3 12쪽
12 복수의 칼날 18.06.27 709 4 12쪽
11 한담 18.06.24 712 3 12쪽
10 불출 18.06.20 7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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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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