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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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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1,848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8.07.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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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추천
4
글자
12쪽

자객

반갑습니다!




DUMMY

15. 자객


김역이 웃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때 송곳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당신은 대낮부터 술타령이요! 이럴 바엔 나오지 말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란 말이야!”

“당신도 참. 모처럼 시골서 동생이 올라와서 한잔 먹는 걸 가지고 타박이오.”

“어이구! 개경 바닥 다 동생에다 형님이지! 내가 못 살아! 최영 장군은 저런 인간 길손 삼아 왜 안 데려가나 몰라!”


김역은 얼른 일어나서 잘 마셨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곳을 떠났다.


***


그리 크지 않은 김역의 기와집은 외관상으로도 쓸쓸해 보였다. 그건 곧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불길한 예감을 몰고 왔다.


낮은 뒷담 쪽으로 해서 뜰 안을 살펴보니 잡초가 무성한 게 사람의 발자국이 끊긴 지 오래인 것 같았다.


훌쩍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하인들의 방도 텅 비었고 자기의 방, 그리고 부모님과 은이의 방도 비었으나 세간은 그대로였다.


어찌된 일일까. 왕영의 집과 마찬가지로 은이도 오라비를 위해 집마저 처분했는데 아직 임자가 들어와 살지를 않는 것일까. 아니면 오라비 때문에 죄인으로 몰려 노비로 잡혀간 것일까.


***


술이 얼큰한 최길충은 별이 총총한 밤길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김역의 집과는 그리 멀지가 않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이곳만 들어서면 울화가 치미는 최길충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못 사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였다. 또 줄줄이 딸린 형제자매들. 그런 곳에서 살아왔다.


“에이!”


못마땅한 화풀이를 하듯 그는 동네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를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옴에 따라 몸을 뒤로 홱 돌림과 동시 주먹을 힘차게 뻗었다.


상대 쪽에서 그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챘다. 곧 그자의 손아귀에 힘이 가해지면서 최길충의 팔을 옭아매었다.


잡힌 손목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최길충이 어둠 속의 상대를 바라보니, 삿갓을 쓴데다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자로서 살수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하나 목소리는 반가웠다.


“나야.”


상대가 팔을 놓아주었다. 의아한 빛으로 그자를 노려보던 최길충이 순간 물었다.


“역이? 김역?”

“그래.”


놀람과 동요의 빛이 최길충의 얼굴에 가득했다.


“어, 어디. 어디가 있었어? 분명 역이 네가 맞는 거지?”


대답 대신 김역은 삿갓을 벗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였다.


“얼굴, 얼굴은 왜 수건으로 감싸고 있는 거야. 그 잘난 네 얼굴이 닮을까 봐 그러는 거야?”


여전히 변함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벗 앞에서 김역은 그만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흑! 그, 그렇게 되었어. 박갑문 장군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겠지?”

“그건 왜?”


최길충이 의혹의 빛을 보였다. 김역이 수건을 들어 올려 문신을 보여주며 음침하니 말했다.


“나를 유배 보내기 전에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박갑문 장군이다! 꼭! 꼭 복수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고죽도를 탈출해 나왔어!”


최길충이 달빛에 비친 김역의 거친 얼굴을 매만지며 울먹거렸다.


“어, 어떻게. 잘 생긴 네 얼굴에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두억시니 같은 사람이로구나. 그런 것도 모르고 존경했다니. 흑! 미안하다. 네가 이렇게 된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는 모르는 척하고 있어. 참, 우리 집이 비었던데. 은이는 어디로 간 거야? 그리고 풍양군 댁도 집을 팔고 어디로 갔다던데 영이의 행방은 알고 있어?”

“거기에 갔다가 왔구나. 또 어디 들른 곳은 없어?”

“저전거리 방가 청루에 들러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든 삽인장 최가에 대해 물었더니 주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못 본 지 이년 정도가 됐다고 하더라.”


최길충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얘기하였다.


“은이가 네 옥바라지를 한다고 집마저 판다고 했어. 근데 네 행방이 묘연해지자 큰 슬픔에 잠겨 있다가 어느 날 가봤더니 사라지고 없더라. 미안하다. 너 대신 잘 보살폈어야 하는데···”


김역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풍양군 댁은···그동안의 일을 네가 잘 모르겠지만, 우왕이 폐위되고 그 아들 창왕이 등극했으나 둘 다 처형당했어. 정창군이 그 뒤를 이어 왕이 됐으나 그 역시 불안할 거야. 이는 왕 씨들에게 다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겠어? 그래서 언제 화를 당할지 몰라 소리소문없이 잠적해 버린 모양이야.”

“음···이해할 만해. 한데 그 새 집주인의 얘기로는 사위될 사람이 옥에 있어서 구명하기 위해 팔았다고 하던데···”


김역이 의혹의 빛을 달자 최길충이 얼른 대답하였다.


“처음엔 그러할 뜻이 있다고 은이가 말했었어.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다고 해. 너희 집만 팔면 된다고 말이야. 아마 집을 팔 생각을 품고 있다가 반역도들에 의한 위기감이 커지자 어디론가 잠적하기 위해 실행에 옮긴 건 아닐까 싶은데? 어쩌면 은이도 같이 데려갔을 수도 있고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기에 김역은 다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복수의 마음이 활활 타올랐다.


“방원이, 방원이 좀 만나게 해줄 수 있나?”

“방, 방원이? 왜, 왜?”


최길충이 깜짝 놀란 빛을 보였다. 김역이 벗의 두 손을 잡고 애달피 얘기했다.


“얼마나 날 증오하고 미워했으면 불출이란 글자를 새겨 유배지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는지 그 내막을 알고 싶단 말이야! 박갑문 말고 누가 또 있는지! 지금의 방원이 위세라면 가능할 거야! 제발!”

“알, 알았어. 얘기는 해볼게.”

“고마워. 역시 넌 내 친구야.”


김역은 요동 회군파의 두 주역 중 조민수 장군도 숙청되었다니 친구 아버지 이성계 장군을 실력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틀렸고, 그동안 어디에 있을 거야? 우리 집으로 가자.”

“됐어. 어떻게 이 꼴을 네 식구에게 보여. 또 만약에 박 장군 측에서 알게 되면 너만 곤란해질 거야. 우리 집이 비어 있으니 거기가 있을게.”

“그래? 그게 좋겠다. 저녁 안 먹었지?”


***


최길충은 김역을 데리고 남대가 저전거리로 왔다. 그는 굳이 김역이 낮에 들렀던 그 술집을 고집하였다. 김역은 내키지가 않았으나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푸른 깃발을 내걸었던 그곳은 붉은 등불을 내 걸은 홍등가로 변해있었다.


“어이구! 또 오셨군요.”


술이 취한 걸음걸이로 방 씨 주인은 낮에 본 김역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길충이 주인 방 씨를 날카로운 눈매로 살피다가는 김역의 옷소매를 끌어당겨서 귓속말하였다.


“딴 곳으로 가자.”


***


둘만이 있는 방에서 김역은 편히 삿갓도 벗고 얼굴의 수건도 풀었다. 죽마고우 앞에서 불편하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점원이 들락거릴 때만 얼굴을 피하면 되었다.


최길충은 진수성찬을 주문하고 거기에 독한 소주를 시켰다. 원나라와 함께 들어와 만들기 시작한 독한 증류주 소주는 비싸기에 함부로 마실 수가 없는 술이었다.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김역은 이렇게 친구들과 담소하며 지내는 걸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그게 깨졌으니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마구 술을 들이켰다.


“아까 방가 청루 주인 말이야. 어디서 봤는데 생각이 가물가물하네.”

“우리 가끔 술을 마시러 갔을 때 온갖 참견을 다 한 주인이잖아.”

“아니, 아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금오위 회식 때 아는 분이 오라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본 듯해서 말이야.”

“순찰하고 점검하는 치안 부서 회식에 그분이 왜?”

“거기가 특성상 밀정도 많이 쓰잖아. 도둑이나 악소들의 동태도 살펴야 하거든.”

“그 주인을 밀정으로 보는 거야? 에이, 그런 장사 하려면 금오위나 순검군과 친해져야 하기에 갔겠지.”

“하하! 넌 역시 착해. 그렇게 봐야 옳겠지. 자! 들자!”


두 사람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나와 어깨동무하고는 내 세상인 것 마냥 밤거리를 누볐다.


***


김역은 목이 타기에 두 손을 더듬거려가며 머리맡의 물그릇을 꿈길처럼 찾았다. 그런 그의 코에 매캐한 냄새가 확 풍겨 들어 왔다.


물그릇이 있을 리 만무하기에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최길충과 술을 진탕 마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자기 집 자기의 방에 들어와서 자빠졌다는 게 생각이 났다.


이건 대체 무슨 냄새일까. 하인이 방에 군불을 땔 리도 없었고, 더군다나 여름이 아닌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열린 창호지의 문 안으로 탄내가 밀려들었다. 찰나적으로 보니, 뱀의 혓바닥과 같은 불길이 날름대면서 문을 잠식해 오는데 그건 순식간이었다.


당황스런 김역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창호지의 방문 밖 마루 쪽에도 불길이 치솟는 게 인위적인 화재가 틀림없었다. 그 증거까지 뚜렷이 보였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의 괴한들이 손에 검을 든 채 불길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다. 김역은 분노가 치솟았다. 어떻게 박갑문이 알고는 자객을 보냈단 말인가.


망태기를 메고 얼굴에다 수건을 묶었다. 삿갓을 한 손에 든 채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늘 검술 연마를 위해 뒤뜰에서 휘두르던 목검을 집어 들었다.


불길이 약한 옆 창문 쪽을 살피니 그곳으로도 서너 명의 그림자가 어릿거렸다. 벼루를 집어 들어서 한 놈을 향해 던졌다.


“악!”

“이쪽이다!”


그 소리에 방문 앞의 흑의인들이 그쪽으로 몰려갔을 때, 김역은 목검으로 불타는 방문을 바깥으로 쳐내는 동시 뛰쳐나왔다.


마루도 불바다이기에 사뿐사뿐 날듯이 하여 마당으로 안착하자 그쪽으로 흑의인들이 몰려들어 칼을 번쩍번쩍 휘둘렀다.


모두 여섯 명이었다. 김역은 이거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삿갓을 방패로 삼아 베고 찔러 오는 예리한 칼들을 막으면서 목검으로 그들의 허점을 날카롭게 쑤셨다.


두 놈이 나가떨어졌으나 목검이기에 곧 일어나서 대형에 합류하려들 때, 삿갓을 내던진 김역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뭔가가 날아와서 얼굴에 꽂혔다. 그 따끔함에 주춤거릴 때 목검이 날아와 머리를 강타하였다.


골이 쪼개지면서 세 놈이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나머지 세 놈은 용감하게 공격해 오는 것이 자객 중에서도 가려서 뽑은 모양이었다.


발로 떨어져 있는 검을 감아올려서 손에다 쥔 김역은 한 손에 쥔 목검으로는 한 놈의 칼등을 쳐내는 동시 진검으로는 옆 놈의 검을 막았다.


그 자세에서 몸을 빙글 회전시킨 김역은 뒤에서 자기의 등을 비스듬히 베려는 자의 빈 가슴을 향해 칼을 막고 있던 자기의 칼 손잡이를 반대로 쥐고는 홱 던져 버렸다.


“욱!”


두 팔을 들어서 검을 추켜들고 있던 그자의 가슴으로 칼이 푹 박히자 그는 괴로운 소리를 내가며 스르르 주저앉아 버렸다.


김역은 좌로 보법을 살짝 틀면서 한 놈의 머리를 목검으로 내려쳤다. 그 동시 목검을 내 던지고는 옆의 놈에게 번개같이 안겨들어 그놈의 칼 든 손을 잡았다.


얼른 놈의 등 뒤로 돌아서 놈의 왼손을 쥐어트는 한편, 칼을 잡은 놈의 오른손으로 놈의 목에다 칼날을 대고는 윽박질렀다.


“누구냐? 누가 시켰느냐!”


김역에게 두 손이 제압당한 그놈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두 정강이마저 그의 두 다리가 뱀처럼 휘감고 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팍!”


그때 어둠 속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자객의 가슴을 맞추고 말았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김역이 시선을 돌렸을 때 괴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자객의 몸을 땅바닥으로 떨구고 난 김역이 삿갓을 집어 들고서는 훨훨 타오르는 집을 바라보았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자란 집인데 자기 때문에 잿더미로 변해 가는 게 너무나도 속상했다. 내 집이기도 하지만, 은이의 집이기도 했는데 이 집마저 없다면 동생이 돌아와서 어이 살까.


“박갑문!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다!”


마음의 울분을 소리쳐 나타낼 때였다. 담장 바깥으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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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불(神佛) 18.07.21 626 2 12쪽
18 아기발도 18.07.18 630 2 12쪽
17 왜구 18.07.14 62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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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피부적 18.06.10 804 4 12쪽
7 정국 18.06.06 812 4 12쪽
6 개경전투 18.06.01 990 5 12쪽
5 회군 +1 18.05.28 1,184 4 12쪽
4 소녀 18.05.28 1,310 9 13쪽
3 죽엽공자 18.05.25 1,641 9 12쪽
2 의문의 사나이(2) 18.05.22 2,06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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